빨갱이 몰이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해방 직후의 좌우 극단 대립이 재현되는가?

byFrancis Lee

무서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영화 한 편이
한국 슬롯 깊숙이 잠복해 있던
좌우의 적대감을 끌어냈다.

이제 박정희를 비판하면 빨갱이다.

진보를 말하면 종북이다.

역사적 의문을 제기하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박정희를 옹호하면 독재 추종자다.

보수라고 말하면 극우다.

상대방의 말보다
상대방의 정치적 색깔부터 규정한다.

토론은 사라진다.

낙인만 남는다.

댓글은 전쟁터가 된다.

욕설이 논리를 대신한다.

조롱이 반론을 대신한다.

한국 슬롯에 잠재되어 있던
오래된 좌우 대립이
이제 다시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해방 직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는 모든 것이 혼란이었다.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국가는 둘로 갈라지고 있었다.

좌와 우가 갈라졌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충돌했다.

친일 청산을 둘러싼 갈등도
좌우 대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치적 반대자는
곧 체제의 적으로 규정됐다.

빨갱이라는 말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가 됐다.

한번 빨갱이로 지목되면
그 사람의 주장만 부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의심받았다.

가족까지 피해를 입었다.

그렇게 한국 슬롯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그런데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언어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물론 지금의 대한민국과
해방 직후는 같지 않다.

그러나 정치적 언어의 구조가
놀랍도록 닮아가고 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대신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한다.

역사적 사실을 놓고 토론하는 대신
상대방의 정치적 정체성을 공격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말이 있다.

빨갱이.

종북.

좌파.

극우.

친일.

매국.

이 단어들은 이제
논쟁을 끝내는 가장 손쉬운 무기가 됐다.

<암살자(들)> 논란이
그 민낯을 드러냈다.

영화의 역사적 해석은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사실 관계가 틀렸다면
사료를 가지고 반박하면 된다.

영화적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과 혼동됐다면
그 문제를 지적하면 된다.

그것이 정상적인 토론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일은
그보다 훨씬 거칠다.

박정희를 비판하는 순간
그 사람의 정치적 정체성부터 의심한다.

영화를 옹호하면
좌파로 몰린다.

진보적 의견을 말하면
종북이라는 공격을 받는다.

반대로 박정희를 옹호하면
독재 추종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것은 역사 논쟁이 아니다.

진영 전쟁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권까지 이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를 둘러싼 논쟁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환된다.

5·18이 소환된다.

세월호가 소환된다.

과거의 모든 정치적 상처가
서로의 머리를 겨누는 무기가 된다.

한쪽이 박정희를 공격하면
다른 쪽은 노무현을 공격한다.

한쪽이 과거사를 꺼내면
다른 쪽은 또 다른 과거사를 꺼낸다.

결국 아무도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

서로의 상처만 들춰낸다.

이런 정치가 계속되면
대한민국은 미래로 갈 수 없다.

과거의 유령들이
현재의 정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이 대립이 인터넷을 통해
일상적인 폭력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글을 쓴다.

곧바로 공격이 시작된다.

빨갱이다.

종북이다.

극우다.

매국노다.

친일파다.

한 사람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을 공격한다.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말로 슬롯적 죽음을 선고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판 정치적 마녀사냥이다.

우리는 이미 이런 슬롯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경험했다.

해방 이후의 극단적 좌우 대립은
결국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빨갱이라는 낙인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다.

그 상처가 아직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상처를 다시 후벼 파고 있다.

박정희를 둘러싸고 싸운다.

이승만을 둘러싸고 싸운다.

노무현을 둘러싸고 싸운다.

5·18을 둘러싸고 싸운다.

세월호를 둘러싸고 싸운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를 빨갱이와 극우로 부른다.

이것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다.

한국 슬롯에 잠재되어 있던
좌우의 적대감이
다시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보수와 진보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에는
보수도 필요하고 진보도 필요하다.

문제는 상대를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보는 순간이다.

보수에게 진보는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세력이 되고,

진보에게 보수는
과거의 친일로 돌아가려는 세력이 된다.

이렇게 되면
중도는 사라진다.

상식도 사라진다.

타협도 사라진다.

결국 남는 것은 우리 편과 적뿐이다.

대한민국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박정희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노무현에 대한 비판도 아니다.

역사를 둘러싼 논쟁 자체도 아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상대를 빨갱이로 만들고
상대를 극우로 만드는 정치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토론을 잃는다.

토론을 잃으면
타협을 잃는다.

타협을 잃으면
정치는 적대적 대립이 된다.

적대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역사는 다시 비극이 된다.

우리는 해방 이후의 역사를
너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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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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