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검찰의 복수극을 시작하나

한동훈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릴 수는 없다

byFrancis Lee

검찰청이 사라졌다.

100년 가까이 대한민국 형사사법의 한 축을 차지했던 조직이다.
이제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으로 기능이 분리됐다.

그 역사적 순간에 한동훈이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소환했다.

우연이라고 하기 어렵다.

한동훈은 노무현 대통령과 가족의 피아제 시계와 박연차 금품 의혹을 거론했다. 노무현을 ‘조작수사의 피해자’로 만든 신화가 검찰에 대한 적개심을 키웠고, 그 결과가 검찰제도 폐지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를 ‘가스라이팅’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문제는 바로 여기 있다.

오늘은 검찰청이 없어지는 날이다.

그런데 검찰 출신 정치인이 가장 먼저 꺼낸 것이 과거 검찰이 수사했던 한 대통령의 사건이다.

이것이 국민에게 어떻게 보이겠는가.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쟁을 정바카라과 제도로 끌고 가지 않고, 17년 전 노무현 대통령 사건을 다시 정치적 무기로 끌어내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금품 의혹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박연차 사건은 실제 수사였다.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과 가족을 수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에 출석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본인에 대해서는 재판과 유죄 확정판결까지 가지 못했다.

서거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를 받았다’와 ‘법적으로 유죄가 확정됐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 기본적인 법적 구분부터 지켜야 한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검찰은 왜 그토록 강력한 개혁의 대상이 되었는가.

그 이유를 모두 노무현 대통령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검찰은 오랫동안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사한다.

기소한다.

구속영장을 청구한다.

언론에 사건이 미리 알려진다.

피의사실이 슬롯적 여론을 움직인다.

한 사람의 명예와 인생이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무너질 수 있었다.

바로 이 구조가 검찰권의 가장 위험한 부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사건은 그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의혹과 피의사실이 언론을 통해 확산되면서 검찰 수사의 적절성과 정당성에 대한 거센 비판이 나왔다. 시민슬롯에서는 이를 정치검찰과 과잉수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하며 검찰개혁을 요구했다.

물론 이에 대한 평가가 하나로 통일된 것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측의 금품수수 의혹 자체를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한동훈 역시 바로 그 지점을 공격한다.

그러나 그것이 검찰권 행사의 모든 문제를 면바카라해 주지는 않는다.

범죄 의혹이 있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무제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수사기관의 권력이 무제한 확대된다면 언젠가 그 칼은 다른 사람에게 향한다.

그리고 결국 그 칼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한국 검찰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보여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은 상대편을 수사했다.

정권이 바뀌면 이번에는 자신을 수사했던 검찰을 공격했다.

검찰은 권력의 칼이었다.

그래서 정치권력은 검찰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검찰은 정치권력과 충돌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수없이 검찰개혁을 요구했다.

이것이 검찰청 폐지까지 오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그런데 한동훈은 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 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무덤에서 다시 꺼낸다.

박연차를 꺼낸다.

피아제 시계를 꺼낸다.

그리고 말한다.

검찰을 없앤 것은 복수라고.

노무현 대통령의 ‘조작수사 피해자 신화’가 검찰을 악마화했다고.

검찰 폐지는 그 결과라고.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왜 국민에게 그런 불신을 받게 되었는가.

국민이 어느 날 갑자기 검찰을 미워하게 된 것인가.

아니다.

검찰 스스로 권력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

정치와 수사 사이의 경계를 의심받았다.

수사 결과보다 수사 과정이 더 큰 논란이 된 사건들이 있었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도 반복됐다.

검찰개혁 요구도 반복됐다.

그 결과 국민은 마침내 묻기 시작했다.

왜 한 기관이 수사와 기소라는 막대한 권력을 동시에 가져야 하는가.

이 질문이 쌓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검찰청 폐지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복수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복잡한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검찰개혁에는 노무현 대통령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정권과 검찰의 관계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조국 사태가 있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검찰권의 선택적 행사 논란도 반복됐다.

이 모든 것이 축적됐다.

그리고 결국 제도 변화로 나타났다.

그런데 지금 한동훈은 그 거대한 역사를 다시 노무현 대통령 한 사람에게 압축한다.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정치적 복수극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검찰이 사라진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검찰이 해체된다고 범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이제 운영의 문제다.

잘못 설계됐다면 비판해야 한다.

범죄수사에 공백이 생긴다면 고쳐야 한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새로운 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17년 전 노무현 대통령 사건을 끌어내고, 그 사건을 검찰개혁의 모든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동훈은 검찰의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

검찰의 과거 권력을 복원하겠다는 듯한 언어가 아니라, 수사기관을 어떻게 통제하면서도 범죄수사의 효율성을 유지할 것인지 말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의 바카라임이다.

역사는 뒤로 가지 않는다.

검찰이 과거에 누렸던 권력을 다시 돌려놓는 것도 정치인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국민이 이미 경험했다.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수사기관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리고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결국 자기 자신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한동훈이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소환해도 그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검찰이 과거에 했던 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검찰이 왜 개혁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정치인의 분노로 거꾸로 돌릴 수 없다.

검찰이 무너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문만이 아니다.

검찰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강한 권력을 통제할 장치를 국민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동훈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과거의 검찰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형사사법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그것이 검찰 출신 정치인이 역사 앞에서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이다.

검찰의 시대가 끝났다고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검찰의 시대를 다시 부르는 것 역시 역사에 대한 답은 아니다.

한동훈이 아무리 과거를 소환해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뒤로 가지 않는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대한민국의 역린을 건드리면 자신이 먼저 다치게 된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후회할 틈도 없이 소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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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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