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피어버린 꽃이 되나 보다
정치에는 이상한 법칙이 있다. 너무 빨리 뜬 정치인은 너무 빨리 추락할 위험도 커진다는 것이다. 정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사라진 뒤에도 살아남는 것이다.
한동훈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박철언이 떠오른다.
물론 두 사람의 정치적 경력과 시대적 상황, 현재 처한 사건은 전혀 다르다. 박철언에게 적용됐던 사건을 한동훈에게 그대로 대입할 수도 없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모두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등에 업고 정치권의 중심으로 급부상했고, 그 과정에서 ‘차기 권력’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박철언은 노태우 정부 시절 인사와 정바카라 결정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6공 초·중반과 3당 합당 직후까지 그는 사실상 권력의 핵심이었다. 당시 언론은 그를 ‘6공의 황태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시간은 영원하지 않았다.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이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박철언은 구속·기소됐고, 자신에게 제기된 금품수수 혐의를 부인했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급격히 무너졌다. 한때 정권의 인사와 정바카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치인이 불과 몇 년 사이 사법처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정치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오늘의 실세가 내일의 구시대 인물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동훈의 정치적 궤적은 상당히 흥미롭다.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검찰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섰고, 법무부 장관을 거쳐 집권여당 대표까지 맡았다. 짧은 기간에 한국 정치의 중심부를 관통했다. 한때 그는 사실상 윤석열의 정치적 후계자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에서 후계자라는 이름은 축복인 동시에 족쇄다.
자신의 정치적 능력으로 성장한 것인지, 대통령의 신임과 후광으로 성장한 것인지 끊임없이 검증받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결별한 뒤 한동훈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윤석열의 한동훈’에서 ‘한동훈의 한동훈’으로 변신하는 것.
그런데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인물이었다는 이유로 진보 진영에서는 여전히 강한 공격을 받고 있다. 반대로 보수 진영에서도 윤석열과의 결별 과정에 대한 불신과 바카라임론이 남아 있다. 지금은 국민의힘 밖에 있는 무소속 정치인이다.
더구나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한동훈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한동훈의 정치적 존재감이 다시 살아났다는 평가가 있지만, 친한계가 복당론을 제기하는 것과 별개로 당권파에서는 개인 플레이에 대한 경계가 나타나고 있다. 연합뉴스도 국민의힘 내부에서 한동훈의 존재감을 인정하면서도 복당 문제를 별개의 문제로 보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한동훈으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위치다.
민주당과는 정치적으로 함께 갈 수 없다.
그렇다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아직 완전한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혼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김승원 사건은 한동훈에게 기회이면서 동시에 상당한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한동훈은 김승원 후보자의 신약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과 관련해 과거 검찰의 기소계획서 등을 공개했다. 한동훈 측은 검찰이 외압을 받아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김승원 후보자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커졌고 결국 후보자가 사퇴했다.
정치적으로 보면 한동훈에게 상당한 존재감을 만들어준 사건이다.
그러나 곧바로 역공이 시작됐다.
민주당 김동아 의원은 한동훈이 공개한 자료의 취득과 공개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공무상 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및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사건을 영등포경찰서에 배당했고 9월 13일에는 김동아 의원에 대한 고발인 조사까지 진행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논쟁의 중심이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김승원 후보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동훈은 그 수사자료를 어떻게 확보했는가’가 새로운 쟁점이 되고 있다.
이것은 한동훈에게 매우 중요한 정치적 시험이다.
정치인이 상대방을 공격할 때는 누구보다 강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정말 중요한 능력은 공격 능력이 아니라 방어 능력이다.
자신을 향한 의혹이 제기됐을 때 감정적으로 반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와 사실관계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동훈에게 불법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반대로 공익제보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결국 자료가 어디에서 나왔고 누구를 거쳐 전달됐으며, 공개된 문서가 어떤 법적 성격을 갖는지가 확인돼야 한다. 현재 경찰은 바로 그 경위를 들여다보고 있다.
여기서 한동훈의 정치적 생존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만약 수사가 별다른 법적 문제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한동훈은 오히려 이번 사태를 정치적 반전의 계기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권력에 맞서 내부의 문제를 폭로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도 있다.
반대로 수사 과정에서 자료 취득과 공개에 중대한 문제가 확인된다면 상황은 상당히 달라진다. 그 경우 한동훈은 김승원 사건의 폭로자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해명해야 하는 정치인으로 전환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사건의 법적 결과보다 정치적 이미지다.
정치인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 전에도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도 정치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
박철언의 사례가 바로 권력 정치의 냉혹함을 보여준다.
박철언은 한때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그 권력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신임과 정권의 힘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기반 위에 서 있었다. 그 기반이 사라지자 그를 둘러싸고 있던 정치적 공간도 빠르게 축소됐다. 당시 서울신문이 그의 정치적 부침을 ‘떠오르는 태양’에서 ‘사정낙엽’으로 표현한 것은 한국 정치에서 권력이 얼마나 빠르게 사람을 띄우고 또 떨어뜨리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동훈도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윤석열의 후계자’라는 이미지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정치적 이유가 필요하다.
왜 자신이 정치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을 바꾸려는 정치인인지 보여줘야 하며, 검찰이나 법무부 장관 시절의 경력을 넘어 경제·복지·교육·외교·안보에 대한 자신의 정바카라적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동훈은 영원히 윤석열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그림자의 일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한동훈 정치의 가장 큰 역설이다.
윤석열에게서 가장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이 윤석열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야 자신의 정치가 시작된다.
그러나 너무 멀리 떨어지면 자신의 과거 정치적 기반을 부정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가까이 있으면 ‘윤석열의 사람’이고, 멀리 있으면 ‘배신자’라는 공격을 받을 수 있다.
바로 그 사이에서 독자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한동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폭발적인 인기보다 시간이다.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자산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폭로로 정치적 스타가 될 수는 있다.
한 번의 선거로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신임으로 장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 오래 살아남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판에서 진짜 실력은 상승 속도가 아니라 추락했을 때 드러난다.
한동훈은 이미 한 차례 추락했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에서 여당 대표까지 올라갔다가 대통령과의 정치적 결별을 거쳐 무소속 정치인이 됐다.
그런데도 아직 정치적 영향력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최근 김승원 사건을 통해 다시 정치적 존재감을 만들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그의 복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끝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다만 당권파의 경계 역시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지금 한동훈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시 뜰 수 있느냐’가 아니다.
이미 다시 뜨고 있다.
진짜 질문은 이번에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다.
박철언에게는 결국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한 순간이 찾아왔다.
한동훈에게도 그런 순간이 올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넘어설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한동훈은 이제까지와 다른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
검찰 수사와 폭로의 언어만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넓히기 어렵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과도 공존할 수 있는 정치적 기술, 자신의 지지자에게 불편한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독립성, 그리고 윤석열이라는 과거의 정치적 자산 없이도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정바카라적 콘텐츠가 필요하다.
결국 한동훈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이번 사건 하나가 아닐 것이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통과하느냐, 그 이후 무엇을 보여주느냐,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중요하다.
박철언도 한때는 ‘황태자’였다.
한동훈도 한때는 ‘윤석열의 황태자’로 불렸다.
그러나 정치에서 황태자라는 이름은 왕위 계승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황태자였던 사람에게는 더 혹독한 시험이 기다린다.
권력의 후광이 사라진 뒤에도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한동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왕관이 아니다.
왕관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인으로 변하는 일이다.
정치판에서 결국 살아남는 사람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난 사람이 아니다.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다.
한동훈이 박철언의 길을 걷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제부터는 한동훈 자신이 그 답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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