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의 슬롯를 지양해야 한다
한국의 4년제 대학 교수 317명을 조사한 연구에서 14.9%가 자살생각을 경험했다. 7.9%는 자살시도 경험까지 보고했다.
놀라운 숫자다.
그러나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프랑스 대학병원 교수 2,390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14%가 자살생각을 경험했다. 40%는 심각한 번아웃을 호소했다.
호주의 학자들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13.6%가 자살생각 또는 자해를 경험했다. 89.5%는 초과근무를 했다.
미국에서도 교수들의 번아웃과 자살생각이 중요한 문제로 나타났다.
나라가 달라도 대학은 비슷한 방향으로 변했다.
논문.
연구비.
평가.
승진.
학생 수.
취업률.
대학순위.
모든 것이 숫자가 됐다.
교수도 숫자가 됐다.
교수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이제는 성과를 생산하는 사람이 됐다.
논문을 생산한다.
연구비를 생산한다.
학생을 모집한다.
취업률을 생산한다.
대학평가 점수를 생산한다.
교수에게 남은 것은 끊임없는 증명이다.
당신은 얼마나 유능한가.
얼마나 많은 논문을 썼는가.
얼마나 많은 연구비를 가져왔는가.
얼마나 많은 학생을 취업시켰는가.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았는가.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가.
뒤처진다.
평가에서 밀린다.
연구비에서 밀린다.
승진에서 밀린다.
학과가 사라질 수도 있다.
결국 자신의 존재 이유까지 의심하게 된다.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경쟁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경쟁에서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슬롯가 무서운 것이다.
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나는 이 구조를 낯설게 느끼지 않는다.
강단에 서는 순간부터 교수는 학생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연구해야 한다.
논문을 써야 한다.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
행정도 해야 한다.
회의도 해야 한다.
평가도 받아야 한다.
때로는 연구자보다 행정가에 가깝고, 교육자보다 성과관리자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교수에게는 이상한 의무가 하나 더 있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연구가 막혀도 말하기 어렵다.
학생이 줄어도 말하기 어렵다.
학과가 없어질까 두려워도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교수 자신이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힘들다.”
이 한마디가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침묵한다.
그리고 고립된다.
해외 연구에서도 이 고립이 중요한 문제로 나타났다.
프랑스 연구에서는 직업적 어려움을 동료와 이야기하기 어려운 환경이 자살생각과 연관됐다.
결국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일의 양만이 아니다.
혼자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국 슬롯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가.
학생은 1등을 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인은 성과를 내야 한다.
교수는 논문을 써야 한다.
운동선수는 이겨야 한다.
작가는 조회수를 만들어야 한다.
유튜버는 구독자를 늘려야 한다.
자영업자는 매출을 올려야 한다.
노인은 재산이 있어야 한다.
젊은이는 집을 사야 한다.
모두가 경쟁한다.
모두가 평가받는다.
모두가 비교된다.
그리고 탈락한 사람은 조용히 사라진다.
우리는 이것을 능력주의라고 부른다.
성과주의라고 부른다.
공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질문해야 한다.
성과가 인간보다 중요한가.
논문 한 편이 사람보다 중요한가.
취업률 1%가 교수의 인간적 가치보다 중요한가.
대학순위 한 계단이 학생과 교수의 삶보다 중요한가.
아니다.
대학은 원래 그런 곳이 아니었다.
대학은 인간을 길러내는 곳이었다.
실패한 사람이 다시 생각하는 곳이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사람이 질문하는 곳이었다.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도 붙잡는 곳이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 연구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효율을 앞세우면서 대학은 점점 기업을 닮아갔다.
기업처럼 평가하고.
기업처럼 경쟁하고.
기업처럼 성과를 요구한다.
문제는 대학이 기업이 아니라는 데 있다.
대학에서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상품이 아니다.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숫자로 완전히 측정할 수 없다.
한 편의 논문으로 측정할 수 없다.
연구비 액수로 측정할 수 없다.
학생 취업률로 측정할 수 없다.
교수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성과가 떨어졌다고 인간의 가치까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패했다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잠시 멈췄다고 인생에서 탈락한 것도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어버린 슬롯가 사람을 병들게 한다.
한국 대학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교수들에게 더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대학.
실패를 말할 수 있는 대학.
동료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학.
성과가 떨어졌다고 인간의 존엄까지 떨어뜨리지 않는 대학.
그것이 진짜 대학이다.
교수도 사람이다.
학생도 사람이다.
직원도 사람이다.
대학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사람이 대학을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교수들이 죽고 싶다고 느끼는 대학이라면 먼저 물어야 한다.
교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가가 아니다.
우리가 대학을 무엇으로 만들어버렸는가.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이 있다.
교수마저 경쟁에 지쳐 무너지는 슬롯라면,
도대체 이 경쟁의 끝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을 살기 위해 만든 제도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다면,
바꿔야 할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다.
그 사람을 몰아붙이는 슬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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