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모든 윤리적·도덕적 정당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참으로 묘한 장면이다.
평생 진보의 편에 섰던 소설가 황석영이 진보 진영의 대표적 정치 유튜버 김어준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것도 아주 직설적으로.
황석영은 김어준을 두고 “정치적으로 권력화되는 모습이 보이니까 염려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을 했다.
“언론은 언론의 일을 하면 되는 것.”
김어준이 이재명 대통령과의 관계를 두고 “사랑의 시기가 끝났다. 이제 우정의 관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한 데 대해서는 “대단히 오만한 이야기”라고 했다.
왜 오만한가.
대통령과 언론인이 언제부터 사랑과 우정을 논하는 관계가 되었는가.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다.
언론인은 국민에게 설명하고 권력을 감시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일부 정치 유튜버들은 자신들이 정권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지지했던 정치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영향력을 정치적 자산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언론과 권력의 경계가 무너진다.
감시자가 권력의 일부가 된다.
비판자가 정치적 행위자가 된다.
여론을 만드는 사람이 여론 자체를 권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김어준에게 정치적 의견을 말할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정부를 지지할 자유도 있다.
대통령을 비판할 자유도 있다.
문제는 자유가 아니다.
자신의 영향력을 무엇으로 이해하느냐의 문제다.
정권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해서 정권의 지분을 갖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을 도왔다고 해서 정치적 후견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해서 국민을 대신해 판단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유시민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의 지식과 발언이 슬롯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영향력이 클수록 자기검증은 더 엄격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이 사실인가.
내가 좋아하는 진영에 유리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닌가.
반대편에 적용한 잣대를 우리 편에도 적용하고 있는가.
내가 가진 대중적 영향력을 정치적 권력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을 멈추는 순간 지식인은 권력자가 된다.
그리고 진보의 언어도 권력의 언어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다.
한국의 진보는 오랫동안 보수 권력의 오만을 비판해왔다.
언론 권력을 비판했다.
검찰 권력을 비판했다.
재벌 권력을 비판했다.
정치권력의 독점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똑같은 잣대를 자기 자신에게도 들이대야 한다.
그것이 진짜 진보다.
진보라는 이유만으로 도덕적이지 않다.
민주주의를 말한다고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공정을 말한다고 공정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권력을 비판한다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더 엄격하게 자신을 의심해야 한다.
황석영의 발언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김어준의 과거 기여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가지 수고와 기여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선을 그었다.
기여했다고 권력을 가질 수는 없다.
도왔다고 정치적 지분을 요구할 수는 없다.
정권을 지지했다고 정권의 방향을 결정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전쟁이 아니다.
정권을 잡았다고 전리품을 나누는 것도 아니다.
누가 누구를 도왔는지 따져 권력을 배분하는 제도도 아니다.
특히 언론과 유튜버에게 정치적 지분을 나누어주는 제도는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황석영의 말은 단순한 김어준 비판이 아니다.
진보 전체에 던지는 경고다.
진보의 가장 큰 적이 반드시 보수인 것은 아니다.
자기 진영의 잘못을 보지 못하는 순간 진보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과거 보수 권력의 오만을 비판했던 사람이 새로운 권력자가 될 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언론을 비판했던 사람이 새로운 여론권력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정치권의 줄 세우기를 비판했던 사람이 자기편과 남의 편을 갈라놓을 수도 있다.
그때 진보라는 이름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엄격한 자기검증을 요구한다.
그래서 황석영의 말이 중요하다.
“언론은 언론의 일을 하면 되는 것.”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에서는 이 당연한 말이 낯설게 들린다.
정치인은 정치를 해야 한다.
언론인은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지식인은 권력을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유권자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누구도 국민 대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김어준도 아니다.
유시민도 아니다.
황석영도 아니다.
대통령도 아니다.
진보도 아니다.
보수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판단을 대신해주는 사람을 뽑는 제도가 아니다.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지키는 제도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말아야 한다.
“누가 우리 편인가.”
먼저 물어야 한다.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다음에는 더 무서운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 편의 권력을 누가 감시하고 있는가.”
여기에 답하지 못한다면 진보의 도덕적 우월성은 허상이다.
진보에게도 권력욕은 있다.
진보에게도 오만은 있다.
진보에게도 위선은 있다.
진보에게도 자기편을 감싸는 침묵이 있다.
그러므로 진보가 특별히 선한 것이 아니다.
보수도 특별히 악한 것이 아니다.
권력은 진보의 손에 들어가도 권력이고, 보수의 손에 들어가도 권력이다.
권력은 사람을 진보적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를 감시하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 진보의 깃발 아래에서도 똑같은 권력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황석영의 말은 아프다.
하지만 필요한 말이다.
진보라고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외쳤다고 권력을 가져도 되는 것도 아니다.
정권을 만들었다고 정권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김어준과 유시민을 포함해 한국의 모든 정치적 영향력자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이다.
당신들이 국민을 대신할 수는 없다.
당신들이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국민의 주권까지 만든 것은 아니다.
권력은 당신들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바로 그 선을 넘는 순간.
언론은 권력이 되고.
지식인은 정치인이 되고.
논객은 후견인이 된다.
그리고 진보의 이름으로 시작했던 권력 비판은 어느 순간 새로운 권력의 자기변호로 바뀐다.
그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진보가 아니다.
다시 민주주의다.
누구도 성역이 되지 않는 민주주의.
우리 편의 권력도 의심하는 민주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에게서 판단할 권리를 빼앗지 않는 민주주의다.
그것이 황석영이 이번에 던진 가장 불편한 질문이다.
“당신은 권력을 감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새 권력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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