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는 한국 야구, 이대로는 안 된다
한국 스포츠에는 이상한 공식이 하나 있다. 과정이 엉망이어도 이기면 된다. 경기 내용이 형편없어도 금메달이면 박수를 받는다. 팬들이 비판해도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리고 그 금메달이 병역 문제까지 해결해 준다면 선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다.
이번 아시안게임 야구가 바로 그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은 결승에서 일본을 3-1로 꺾고 5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결과만 보면 훌륭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대만을 상대로 5이닝 동안 1안타에 그쳤고, 슬롯인 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 0-5로 완패했다. 더욱이 한국 타선을 7이닝 무실점으로 막은 일본 투수가 이틀 뒤 결승에도 다시 나왔다.
그런데 대표팀 주장 노시환은 팬들의 비판에 “신경 안 쓴다”라고 했다. 금메달을 땄으니 됐다는 것이다. “과정은 전혀 필요 없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
선수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선수에게 금메달은 목표이고, 경기장에서 여론을 신경 쓰다 보면 오히려 경기력이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스포츠 전체가 이 사고방식에 빠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스포츠를 가장 쉽게 망가뜨리는 방법이다.
야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축구도 그렇고 다른 종목도 비슷하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경기력이 어떠했는지, 선수 선발은 공정했는지, 대표팀 운영은 합리적이었는지, 국제 경쟁력이 실제로 높아지고 있는지는 뒤로 밀린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만의 독특한 병역 문제가 결합한다.
한국의 예술·체육요원 제도는 아시안게임 1위와 올림픽 3위 이상 입상자에게 현역 군복무 대신 예술·체육요원 복무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체육요원은 34개월 동안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고, 그 기간에 총 544시간의 공익복무를 해야 한다. 흔히 ‘병역 면제’라고 부르지만 법적으로는 현역 복무를 대신하는 예술·체육요원 제도다.
문제는 제도의 존재 자체보다 그 제도가 스포츠에 만들어내는 유인이다.
아시안게임이 국가대표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대회인 동시에 일부 선수에게는 병역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문제가 걸린 대회가 되어버린다. 실제로 2026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24명 가운데 병역 미필 선수가 16명이었다. 대한야구위원회도 아시안게임을 프로야구 선수들이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국가대표 선수를 뽑는 것인가, 병역 혜택을 받을 선수를 뽑는 것인가.
물론 대표팀 선발이 병역 혜택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현행 제도는 국가대표 성적과 국제대회 입상을 기준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하는 한 그 유인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의 병역 의무와 스포츠 스타의 국제대회 성과가 하나의 금메달로 교환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군에서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국가대표로 금메달을 따고 체육요원으로 복무한다. 법적으로 정해진 제도이므로 그 자체가 곧 특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민에게 납득 가능한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질문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 스포츠의 현실은 냉혹하다.
선수에게 금메달 하나가 너무 큰 보상이 되면 스포츠의 목표가 ‘좋은 경기’에서 ‘금메달 확보’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감독에게도, 협회에게도, 선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과정은 귀찮은 것이 된다.
팬들의 비판은 소음이 된다.
경기력에 대한 분석은 패자의 변명이 된다.
국제 경쟁력에 대한 질문은 금메달을 시기하는 목소리로 취급된다.
마지막에 금메달만 목에 걸면 모든 질문이 사라진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스포츠가 경계해야 할 병폐다.
스포츠에서 승리는 중요하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승리를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승리가 모든 평가를 면제하는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한국 야구의 금메달은 축하할 일이다. 동시에 슬롯인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 0-5로 패한 사실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두 사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금메달을 축하하면서도 경기력을 비판할 수 있다. 선수를 존중하면서도 대표팀 운영을 비판할 수 있다. 결과를 인정하면서도 과정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오히려 그래야 스포츠가 발전한다.
선수에게 “금메달을 따라”라고 요구하는 것과 스포츠 시스템에 “왜 이런 경기력이 나왔는가”를 묻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선수는 승리를 위해 뛰면 된다.
그러나 협회와 지도자와 언론과 팬은 그 승리의 내용까지 살펴야 한다.
한국 스포츠가 정말 세계적인 수준을 원한다면 ‘이기면 그만’이라는 철학부터 버려야 한다.
더구나 병역 문제까지 걸려 있는 국제대회라면 더욱 그렇다.
금메달 하나로 병역의무의 형태가 달라지는 제도를 유지할 것인지, 유지한다면 어떤 종목과 대회가 그 기준에 적합한지, 단체종목에서 개인의 기여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병역이라는 국가적 의무와 국위선양이라는 보상을 어떤 원칙으로 연결할 것인지까지 슬롯적 논의가 필요하다.
국가대표가 금메달을 따면 국민은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박수 뒤에는 반드시 질문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정말 잘한 것인가.’
‘다음에도 세계와 싸울 수 있는가.’
‘금메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경기력을 어떻게 평가했을 것인가.’
그리고 가장 불편한 질문도 남는다.
‘금메달을 따서 군대에 가지 않게 되는 것이 선수에게 최종 목표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스포츠가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는 순간, 스포츠의 본질은 흔들린다.
국가대표의 목표는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답게 경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금메달은 그 결과여야 한다.
금메달을 따고 군 복무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 제도의 결과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경기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 스포츠가 정말 바뀌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다.
‘군대 안 가게 되면 그만이다.’
이 사고방식으로는 금메달은 딸 수 있어도 세계적인 스포츠는 만들 수 없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