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슬롯에서 집은 오로지 투기의 대상일 뿐이다
87세의 노인이 70년 넘게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한 노인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집 한 채가 어떻게 한 인간의 삶보다 높은 경제적 가치를 갖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1956년부터 살아온 집의 임대료가 투자회사에 소유권이 넘어간 뒤 월 500유로 수준에서 2,650유로까지 뛰었다. 결국 고령의 세입자는 감당할 수 없는 임대료 앞에서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 사건은 스페인 슬롯를 뒤흔들었고 주택 문제를 다시 정치와 슬롯의 한복판으로 끌어냈다.
그러나 이것을 스페인만의 특수한 비극으로 생각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유럽 전체에서 비슷한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10년 동안 기관투자자의 주택 매입이 크게 증가했으며, 특히 독일과 네덜란드, 파리·마드리드·더블린 등 주요 도시에서 기관투자자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기관투자자의 주거용 부동산 매입은 지난 10년 동안 세 배 이상 증가했다.
독일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베를린에서는 대형 임대주택 기업인 보노비아와 도이체보넨이 공동으로 약 13만 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주택 부족과 임대료 상승이 심각한 슬롯문제가 되면서 대형 주택기업의 역할과 소유구조를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독일이 오랫동안 임차인의 권리와 슬롯적 주거정바카라을 중시해 온 대표적인 유럽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독일에서조차 주택이 거주의 공간을 넘어 거대한 자산운용의 대상이 됐다.
스페인에서는 투자펀드가 주택을 사들인다. 독일에서는 대형 임대주택 기업이 수십만 채의 주택을 관리한다. 네덜란드에서도 기관투자자의 주택시장 참여가 커졌다. 프랑스·아일랜드·핀란드의 주요 도시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역시 주택가격이 지난 10년 동안 소득보다 빠르게 상승했고, 신규 임대계약의 임대료가 크게 올라 주거비 부담을 악화시켰다고 분석한다. 도시화와 이주뿐 아니라 기관투자자와 단기임대 확대도 주택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지목한다.
이것은 단순한 집값 상승이 아니다.
주택의 금융화다.
주택이 사람이 사는 공간에서 투자수익률을 계산하는 금융상품으로 변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달라진다.
집주인은 세입자의 삶보다 수익률을 먼저 계산하게 된다. 투자회사는 임대료와 공실률, 자산가치 상승률을 계산한다. 펀드는 몇 년 뒤 얼마의 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주택 한 채가 누군가에게는 30년을 살아야 할 삶의 터전이지만, 금융자본에게는 수익률을 만들어내는 포트폴리오의 한 항목일 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택의 본질이 뒤집힌다.
집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해 더 정확히는 잉여이익을 존재하기 시작한다.
유럽의 비극은 복지국가와 슬롯적 시장경제라는 제도적 장치만으로 주택의 금융화를 막을 수 없었다는 데 있다. 유럽의회가 2026년 주택 위기 연구에서 ‘주택의 금융화’, 기관투자자, 기업형 임대사업자, 투기적 행태를 별도의 문제로 다룬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안전한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향해 가고 있다.
한국에서 주택은 이미 가장 강력한 자산 축적 수단 가운데 하나가 됐다. 서울의 주택가격 상승은 단순한 주거비 상승을 넘어 세대와 계층 사이의 자산 격차를 확대시키는 장치가 됐다. 여기에 전세제도의 구조적 취약성과 월세화가 겹치면서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의 주거비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임대시장의 산업화다.
한국의 임대주택 시장은 오랫동안 개인 다주택자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제 기관투자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부도 2024년부터 기관투자자의 임대주택시장 진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고,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국내 오피스텔과 코리빙 시장 등에 진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 변화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전문적인 기관이 장기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면 개인 임대사업자 중심 시장에서 발생했던 전세사기나 관리 부실 같은 문제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관투자자 자체를 악으로 규정할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어떤 조건으로 들어오느냐이다.
기관이 장기 임대를 목적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과, 주택을 매입해 가격을 올리고 임대료를 극대화한 뒤 매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사업모델이다.
전자는 주거 공급이다.
후자는 금융투자다.
한국이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후자다.
만약 자본이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을 대규모로 매입하고, 그 주택을 임대료와 자산가격을 동시에 올릴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젊은 세대는 집을 살 수 없게 된다.
집을 사지 못한 사람은 월세를 낸다.
월세가 오르면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주거비로 지출한다.
그 결과 저축할 돈이 줄어든다.
저축하지 못하면 주택을 살 수 없다.
주택을 살 수 없으면 다시 임대시장에 남는다.
그리고 임대료는 다시 올라간다.
이것은 단순한 주택시장의 문제가 아니다.
빈곤의 세습 구조가 될 수 있다.
부모 세대가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자녀 세대의 출발선이 달라지고, 그 차이는 다시 다음 세대의 주택소유 가능성을 결정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계층사다리는 노동과 교육을 통해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부모의 주택을 상속받아 올라가는 사다리가 된다.
더 심각한 것은 고령층이다.
평생 한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이 그 지역의 집값 상승 때문에 그곳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슬롯가 될 수 있다. 스페인의 87세 여성 사건은 바로 이 미래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언젠가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십 년 동안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하는 고령 세대가 나타날 수 있다. 법적으로 소유권이 보호되는 것과 슬롯적으로 주거의 연속성이 보장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한국의 주택정바카라은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얼마나 집값을 올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해법은 주택의 금융화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택을 장기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자본과 단기 차익을 노리는 자본을 제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기 임대를 조건으로 하는 기관에는 세제와 금융상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대신 일정 기간 임대의무를 부과하고 임대료 인상에 합리적인 제한을 두어야 한다. 반대로 단기간에 대량으로 주택을 매입해 임대료를 급격히 올리거나 되팔아 차익을 얻는 행위에는 더 강한 과세와 투명성 규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택 소유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누가 몇 채를 가지고 있는가.
개인이 가지고 있는가, 법인이 가지고 있는가.
국내 자본인가, 해외 자본인가.
실제 소유자는 누구인가.
특정 지역의 주택을 특정 기업이나 펀드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가.
이것을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의 사례에서조차 대형 임대사업자의 실제 주택 보유 규모와 소유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대형 임대사업자의 주택 보유 실태에 대한 투명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한국이 같은 길을 따라갈 이유는 없다.
주택의 금융화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관투자자가 장기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관리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은 오히려 필요한 변화일 수 있다. 그러나 주택이 금융자산이 되는 순간 주택시장에는 새로운 힘이 들어온다. 개인의 투기만을 감시하던 시대에서 거대한 자본의 움직임까지 감시해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면 안 된다.
한국의 주택 문제는 지금까지 ‘내 집 마련’의 문제였다.
앞으로는 ‘내가 계속 살 수 있는 집이 있는가’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는 슬롯와, 집값이 오르면서 임대료까지 올라 계속 살 수 없는 슬롯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주택이 사람보다 돈을 위해 존재하는 슬롯다.
주택은 투자상품일 수 있다. 그러나 주택이 오직 투자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금융자산은 수익률을 위해 존재하지만 집은 인간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
이 순서가 뒤집히는 순간 주택시장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슬롯의 문제가 된다.
스페인의 87세 노인이 70년 동안 살던 집에서 쫓겨난 사건을 남의 나라 이야기로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 유럽에서 벌어지는 일이 내일 한국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이미 그 문은 열리고 있다.
한국이 지금 준비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또 하나의 비극적인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집에서 70년을 살았는데,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때는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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