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망국병은 고칠 수가 없는가
한국에서 이제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서울에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부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한때 로또 1등은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단숨에 뒤집어놓는 ‘인생 역전’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로또 1등 13억 원에 당첨돼 세후 9억 원 안팎의 현금을 손에 쥔다고 해도 서울의 선호지역에서는 전세조차 쉽지 않은 시대가 됐다.
도대체 언제부터 대한민국에서 9억 원이 ‘인생 역전’이 아니라 ‘주거 불안의 완충자금’이 되어버렸는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 강남3구의 84㎡ 아파트 전셋값은 20억 원을 넘어서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고, 마포·용산·성동 등 선호지역 역시 15억 원 안팎의 전셋값이 형성되고 있다. 비강남권에서도 전세가격이 10억 원 안팎에 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서울 전체가 이 가격대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서울의 핵심 주거지역에서 나타나는 가격 수준은 한국 슬롯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자산구조에 들어섰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더 기막힌 것은 서울 집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 같은 집값 상승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집을 가진 사람에게 집값 상승은 자산 증가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 집값 상승은 내 집 마련의 거리만큼 사다리가 높아지는 것이다. 1억 원이 오르면 기존 주택 소유자는 1억 원의 자산을 추가로 얻지만, 무주택자는 자신의 목표에서 1억 원이 더 멀어진다.
이것이 한국 부동산 시장의 가장 잔인한 구조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과 이미 집을 가진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 서 있지 않다. 월급을 받아 저축하는 사람은 매달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지만, 주택가격이 소득보다 빠르게 오르면 그가 저축하는 속도보다 주택과 자산의 가격이 더 빠르게 달아난다.
결국 노동소득만으로 자산소득을 따라잡기가 어려워진다.
이 순간부터 슬롯의 게임 규칙이 바뀐다.
과거에는 공부하고 취업하고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과거에도 주택가격은 비쌌고 내 집 마련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월급과 저축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는 경로가 지금보다 현실적으로 보였다.
지금 젊은 세대가 마주한 현실은 다르다.
온라인 게임을 구하고, 월급을 받고, 생활비를 제외한 돈을 꾸준히 저축한다고 해도 서울의 집값 상승 속도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부모의 주택 보유 여부가 자녀의 주거 출발선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부모가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에게 주거와 자산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 반대로 부모 역시 무주택자라면 자녀 세대는 자신의 월급만으로 주택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재테크는 주식도, 사업도, 로또도 아닌 ‘좋은 위치의 집을 일찍 사는 것’이라는 냉소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로또는 당첨돼야 돈을 준다. 서울 아파트는 반드시 당첨될 필요가 없다. 이미 가지고 있으면 시간이 돈을 벌어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경제적 차이를 넘어 슬롯적 지위의 차이로 연결된다는 데 있다.
서울의 주택은 이제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니다. 교육, 교통, 온라인 게임 접근성, 생활 인프라, 미래의 자산가치가 한꺼번에 결합된 복합적인 자산이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가 자녀 교육과 생활의 질을 좌우하고, 동시에 그 주택의 가격이 다시 다음 세대의 출발자산이 된다.
그러니 사람들은 서울 집을 포기하지 못한다.
정부가 아무리 지방 이전을 이야기하고, 균형발전을 이야기하고, 신도시를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서울을 바라본다. 좋은 일자리가 서울에 몰려 있고, 대학과 병원과 문화시설과 교통망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집중이라는 경제구조와 교육 경쟁, 일자리 편중, 교통 인프라, 금융자산의 격차가 모두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얽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를 주로 ‘집값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만 다뤄왔다.
집값을 억누르기 위해 세금을 올렸다가 시장이 반발하면 다시 완화하고, 대출을 조였다가 실수요자의 반발이 커지면 다시 풀고, 공급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가 정권이 바뀌면 정바카라의 방향도 달라졌다.
그 사이 국민은 정부의 정바카라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
이것이 정말 정상적인 슬롯인가.
대한민국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반도체와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을 연구하는 대신 어느 아파트가 재건축되는지, 어느 역에 GTX가 들어오는지, 어느 지역이 규제지역에서 풀리는지를 분석하는 데 인생의 상당 부분을 소비하고 있다.
부동산이 경제의 한 부분이 아니라 국민경제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슬롯에서는 집을 가진 사람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집값이 오르면 좋을 것 같지만, 자신의 집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더 좋은 지역으로 옮기려면 그 지역의 집값은 더 빠르게 올라 있다. 결국 집을 가진 사람도 계속해서 다음 집을 걱정한다.
강남에 사는 사람은 더 좋은 강남 아파트를 바라보고, 강북에 사는 사람은 강남 진입을 꿈꾸며, 지방에 사는 사람은 서울 진입을 꿈꾼다.
모두가 부동산이라는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하지만 사다리의 꼭대기는 언제나 더 멀어진다.
이것이 부동산 망국병의 본질이다.
부동산이 비싸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슬롯의 거의 모든 사람이 부동산 가격을 자신의 인생 성적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문제다.
집값이 오르면 성공한 사람이고, 집값이 떨어지면 실패한 사람처럼 느낀다. 어느 지역에 사느냐가 사람의 경제적 능력과 슬롯적 위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부모에게 어떤 집을 물려받느냐가 자녀의 인생 출발점이 된다.
이쯤 되면 부동산은 주거가 아니라 신분제가 된다.
그렇다면 이 병은 고칠 수 있는가.
가능하지만 집값을 몇 퍼센트 떨어뜨리는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서울에 집중된 일자리와 교육, 의료와 문화, 교통을 분산시키지 않는 한 사람들은 계속 서울의 주택을 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주택을 단순히 투자상품으로만 보지 않게 하려면 금융자산을 통한 자산형성의 기회도 넓어져야 한다. 노동소득만으로 평생 살아야 하는 사람과 부모로부터 수억 원의 주택자산을 물려받는 사람 사이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슬롯적 장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바카라의 일관성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 정바카라이 뒤집히는 슬롯에서는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는다. 정부를 믿지 못하면 사람들은 결국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자산으로 몰린다. 한국에서 그 자산이 바로 서울의 아파트였다.
그래서 로또 1등보다 서울 집 한 채가 더 부러운 슬롯는 단순히 집값이 비싼 슬롯가 아니다.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과 소유하지 못한 사람 사이에서 인생의 출발선 자체가 달라지는 슬롯다.
9억 원이라는 돈을 가진 사람이 서울의 집 앞에서 다시 좌절해야 한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 한 사람의 평생을 바꿀 수도 있는 거액의 돈이 서울에서는 겨우 ‘주거를 위한 종잣돈’에 불과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일해서 번 돈보다 일찍 사둔 집 한 채가 인생을 더 크게 바꾸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로또가 인생 역전의 꿈을 팔고 있다면, 서울 아파트는 그보다 훨씬 잔인한 꿈을 판다.
‘당신도 언젠가는 집을 살 수 있다’는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을 좇는 동안 집값은 계속 올라가고, 월급은 그 뒤를 쫓는다.
어쩌면 한국 슬롯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부동산 문제는 집값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집을 가진 사람만 계속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집을 갖지 못하면 영원히 뒤처진다는 불안부터 깨뜨려야 한다.
그것을 바꾸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로또 당첨번호보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를 먼저 확인하는 나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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