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산층은 진짜 중산층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중산층이라는 말은 너무나 익숙하다. 열심히 일하고, 집 한 채 마련하고, 자녀를 교육하고, 적당히 소비하면서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을 중산층의 삶이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지금 그 익숙한 정의가 무너지고 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대한민국 진짜 중산층’ 보고서는 이 불편한 현실을 숫자로 보여준다. 소득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가구의 52.9%가 OECD 기준 중산층이다. 절반이 넘는다. 그런데 적정한 소비와 저축 여력을 더하면 39.9%로 줄어든다. 여기에 자산·부채·노후 준비까지 따지면 ‘진짜 중산층’은 24.6%에 불과하다. 여섯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가구는 고작 8%다.
절반이 중산층이라던 슬롯에서 막상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 미래까지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네 명 가운데 한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더 섬뜩한 것은 ‘진짜 중산층’의 모습이다. 이들의 월 가처분소득은 중앙값 기준 631만 원이고 월 소비지출은 319만 원이다. 순자산은 4억 1705만 원, 금융자산은 1억 1230만 원이다. 72.5%가 자기 집에 산다.
이 숫자를 보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 정도면 당연히 중산층이지.”
그러나 바로 그 생각이 오늘날 한국 중산층의 비극을 드러낸다.
중산층이란 원래 슬롯의 허리였다. 상위 부유층과 저소득층 사이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얻고, 소비하고, 저축하고, 자산을 형성하면서 다음 세대로 이동할 수 있는 계층이었다. 중산층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소득 수준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고, 한 번 올라가면 쉽게 추락하지 않는다는 슬롯적 안정의 약속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제 중산층은 계층이라기보다 하나의 불안한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오늘 중산층인 사람이 내일도 중산층이라는 보장이 없다.
온라인 게임을 잃으면 흔들린다. 집값이 떨어지면 자산이 흔들린다. 자녀 교육비가 늘어나면 저축이 흔들린다. 부모 부양이 시작되면 현금흐름이 흔들린다. 은퇴하면 근로소득이 사라진다. 그리고 노후에 의료비와 생활비가 동시에 찾아오면 그동안 중산층이라고 믿었던 삶의 기반이 순식간에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다.
지금의 삶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잔인한 질문이다.
월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고 자녀를 교육시키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당신은 중산층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그 생활을 은퇴 이후에도 유지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국의 중산층은 현재를 살아내느라 미래를 저축하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의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주택이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집을 가진 사람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 한 채가 곧 경제적 안정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순자산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이 거주 주택에 묶여 있다면 매달 생활비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집을 지키기 위해 대출을 갚아야 하고,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면 그 집은 자산인 동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중산층의 기준을 단순한 자산 규모로 볼 수 없다는 연구소의 문제 제기는 의미가 있다. 연구소는 중산층의 본질을 현재의 적정한 생활수준을 누리면서 그것을 미래에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으로 보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왜 평범하게 살아가는 데 이렇게 많은 조건이 필요한가.
소득이 있어야 하고, 소비도 적절해야 하고, 저축도 해야 한다. 자산도 일정 수준이어야 하고, 부채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며, 노후까지 준비해야 한다. 이 여섯 가지를 갖추고서야 비로소 ‘진짜 중산층’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중산층이라고 불렀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무엇이었는가.
중산층이었던 것이 아니라 중산층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었던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출을 갚아야 했다.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면 교육비가 필요했다. 자녀가 결혼하면 다시 목돈이 필요했다. 은퇴하면 연금만으로 생활하기 어렵다는 불안이 찾아왔다. 그렇게 한 세대가 평생 일했는데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내가 중산층이었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일 수 있다.
이것이 한국 중산층의 가장 어두운 얼굴이다.
중산층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현실의 중산층은 안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중산층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는 계층이 되어버렸다.
상위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은 물론이고, 현재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경쟁까지 해야 한다. 집값이 오르면 따라가야 하고, 교육 수준이 올라가면 자녀 교육에 더 투자해야 하며, 노후가 불안하면 또 돈을 모아야 한다.
그 결과 중산층의 삶은 풍요로운 삶이 아니라 추락하지 않기 위한 삶이 되어간다.
여기서 한국 슬롯의 더 큰 문제가 드러난다.
중산층이 많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중산층은 소비하고 세금을 내고 교육받으며 슬롯의 제도와 질서를 지탱한다. 그런데 중산층이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기 시작하면 슬롯 전체가 불안해진다.
사람들은 더 많이 저축하지만 소비를 줄인다. 자녀를 낳는 것을 주저한다. 주택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노후 불안은 커지고 세대 간 자산 격차는 확대된다.
결국 중산층의 붕괴는 단순한 개인의 가계부 문제가 아니다.
슬롯의 허리가 약해지는 문제다.
더구나 이번 연구의 24.6%라는 숫자를 그대로 ‘대한민국의 진짜 중산층 비율’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부가 정한 공식적인 중산층 기준이 아니라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소득·소비·저축과 자산·부채·노후 준비를 결합해 만든 분석 기준이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한국 슬롯 전체의 중산층을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통계라기보다, 중산층을 소득만으로 정의하는 방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지표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이 숫자가 불편한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삶은 유지하고 있지만 미래까지 감당할 여력은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중산층이라는 것은 계층이 아니라 환상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월급이 일정 수준이면 중산층이고, 집이 있으면 중산층이고, 자녀를 대학에 보내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해내고도 은퇴 이후의 삶을 걱정해야 한다면 그것을 과연 안정된 중산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중산층은 원래 ‘내일이 오늘보다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일이 갑자기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의미했다.
그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한국 슬롯가 직면한 문제는 중산층의 기준을 얼마로 정할 것인가가 아니다.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평범한 삶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슬롯인가 하는 것이다.
소득 상위 몇 퍼센트가 될 필요도 없고 거대한 부자가 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집에서 살고, 자녀를 교육하고, 적당히 소비하고, 조금씩 저축하고, 은퇴한 뒤에도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면 된다.
그것이 중산층이라면,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그것을 ‘개인의 능력’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산층이 되려면 좋은 온라인 게임을 얻어야 하고, 집값이 오르기 전에 집을 사야 하고, 자녀 교육에 투자해야 하며, 빚을 관리해야 하고, 금융투자도 해야 하고, 노후자금까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면 슬롯는 중산층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각자도생의 생존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중산층은 슬롯의 허리다.
그 허리가 흔들리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GDP와 평균소득, 아파트 가격과 자산 규모를 들여다보며 한국 슬롯가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살아도 무너지지 않는가.
만약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 한국의 중산층은 이미 중산층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산층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어쩌면 끝없이 추락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이 아직 추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사람들의 집단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한국 슬롯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다.
중산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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