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교육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꿀 것인가?
인공지능이 수학 문제를 인간보다 잘 풀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다. 한국 교육에는 훨씬 불편한 질문이 던져졌다.
그동안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쳐온 능력이 과연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었는가.
한국에서 수학은 오랫동안 교육의 왕좌에 앉아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문제를 풀고, 중학교에서 더 어려운 문제를 풀고, 고등학교에서는 수능을 위해 문제를 풀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전공에 따라 수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얼마나 많은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고 빨리 풀 수 있는가’였다.
사교육은 이 구조를 더욱 강화했다. 문제집이 쌓이고, 기출문제가 분석되고, 유형이 세분화되고, 학생들은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풀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스스로 질문하기보다 ‘이것은 어느 유형인가’를 찾았다. 수학적 사고가 문제풀이 기술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AI가 등장했다.
AI는 바로 그 일을 인간보다 훨씬 잘한다.
수많은 문제를 분석하고, 풀이 방법을 탐색하고, 계산하고, 오류를 찾아내고,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인간이 오랜 시간 훈련해서 얻었던 문제풀이 능력이 더 이상 인간만의 희소한 능력이 아니게 되고 있다.
이것은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와 비슷하다.
알파고의 승리는 단순한 바둑의 패배가 아니었다. 인간이 오랫동안 지혜와 직관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영역에도 기계가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AI가 수학에서 인간을 앞서는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수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수학이라고 부르던 것 가운데 무엇이 진짜 수학적 사고였는지를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결국 대학입시를 향한다.
수능은 AI 시대에도 존속할 수 있는가.
나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수능은 장기적으로 존속하기 어렵다고 본다.
수능의 가장 큰 장점은 객관성이다. 동일한 시험을 치르고 동일한 기준으로 채점하기 때문에 학생을 비교하기 쉽다. 한국 슬롯가 수능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객관성이 AI 시대에는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다.
수능이 측정하는 능력의 상당 부분이 AI가 이미 잘하거나 앞으로 더 잘하게 될 능력이기 때문이다.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를 독해하고, 국어 지문을 분석하고, 주어진 자료에서 답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물론 이것들은 여전히 중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능력을 인간끼리 경쟁시켜야 할 이유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계산은 AI가 한다.
검색도 AI가 한다.
번역도 AI가 한다.
요약도 AI가 한다.
자료 분석도 AI가 한다.
글쓰기조차 AI가 상당 부분 수행한다.
그런데 대학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과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능력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이것은 마치 계산기가 등장한 뒤에도 사람이 계산기를 쓰지 못하게 하고 누가 더 빨리 곱셈을 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대학입시에서는 부정행위와 공정성이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장 AI를 허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AI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시험을 설계할 수도 없다.
수능은 결국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 없이 무엇을 얼마나 빨리 풀 수 있는가”가 아니라 “AI를 활용할 수 있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가”를 측정해야 한다.
이것은 수능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내신은 안전한가.
그렇지도 않다.
내신은 학교 수업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라왔는지를 평가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국 상당 부분은 교사가 정한 범위에서 학생이 얼마나 잘 암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평가한다.
더구나 내신은 학교마다 평가의 난이도와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공정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AI 시대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수행평가와 보고서, 발표 자료, 독후감, 탐구보고서 등을 AI가 상당 부분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이 직접 작성했는지 AI가 작성했는지를 판별해야 하고, 학생은 AI를 사용했는지 여부를 숨기거나 설명해야 한다.
결국 교육은 ‘무엇을 배웠는가’를 평가하는 대신 ‘누가 작성했는가’를 감시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이것은 정상적인 교육이 아니다.
논술은 더 복잡하다.
논술은 정답을 찾는 능력보다 사고력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수능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논술 역시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좋은 문장을 만드는 능력은 이제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AI는 논리적인 문장을 만들고, 반론을 제시하고, 문체를 바꾸고, 긴 글을 압축하고, 심지어 특정한 사람의 문체를 흉내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학생에게 “이 주제에 대해 2,000자 논술문을 작성하라”라고 하는 것이 과연 학생의 사고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까.
앞으로 논술은 완성된 글보다 사고의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
왜 이런 주제를 선택했는가.
어떤 자료를 사용했는가.
처음 생각과 최종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AI가 제시한 반론 가운데 어떤 것을 받아들였고 어떤 것을 거부했는가.
자신의 주장을 어떤 근거로 수정했는가.
이런 과정을 평가하지 않는 논술은 AI 시대에 점점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면접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학생의 인성과 의사소통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면접을 활용한다. 그러나 AI는 이미 말하고,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을 구성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예상 질문을 준비해서 답변하는 방식의 면접은 점점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오히려 면접관은 학생에게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학생이 AI에게 미리 준비된 답을 받았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봐야 한다.
결국 면접의 핵심은 말 잘하는 학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학생을 찾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더욱 복잡하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원래 시험 점수만으로 학생을 평가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교과 성적뿐 아니라 비교과 활동, 탐구활동, 진로활동, 학교생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들었다.
학생부를 잘 만들기 위한 새로운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어떤 활동을 해야 하는가.
어떤 보고서를 써야 하는가.
어떤 대회에 나가야 하는가.
어떤 동아리에 가입해야 하는가.
어떤 탐구 주제를 선택해야 하는가.
결국 학생부종합전형조차 사교육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AI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학생의 탐구보고서를 AI가 도와줄 수 있고, 활동계획을 AI가 설계할 수 있으며, 자기소개와 발표문까지 AI가 만들어줄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학은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결국 지금의 학생부종합전형도 학생의 ‘성과물’을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 학생이 어떻게 생각하고 성장했는지를 검증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하나씩 뜯어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수능도 문제다.
내신도 문제다.
논술도 문제다.
면접도 문제다.
학생부종합전형도 문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 학생을 뽑아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이 앞으로 한국 교육의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답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AI가 쉽게 대신할 수 없는 능력을 평가하면 된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량이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다.
주어진 정보를 의심하는 능력이다.
서로 다른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수정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판단에 바카라임을 지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기존의 객관식 시험 하나로 측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대학입시도 장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의 인생을 결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을 주관적으로 평가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여러 종류의 평가를 통해 학생의 실제 사고능력을 검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이 일정한 공통 기초시험을 유지하되, 그 시험은 단순한 문제풀이보다 개념 이해와 논리적 추론을 중심으로 구성할 수 있다. 여기에 학생이 실제로 수행한 탐구 프로젝트를 제출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만들었으며 어떻게 실패했고 어떻게 수정했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학생과 평가자가 직접 대화하면서 제출한 결과물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평가방법의 숫자가 아니다.
학생의 실제 사고를 얼마나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느냐다.
이렇게 되면 대학입시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시험은 사라질 수도 있고, 형태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 대학마다 선발 방식이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대학입시가 더 이상 ‘누가 문제를 많이 풀었는가’를 측정하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 슬롯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입시의 불공정성이다.
그래서 객관식 시험을 좋아한다.
그러나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능력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도 결코 공정하지 않다.
모든 인간의 능력을 몇 개의 숫자로 환원하고, 그 숫자를 다시 줄 세워 대학과 직업의 서열을 결정하는 방식 자체가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AI는 이 오래된 시스템을 더욱 강하게 흔들 것이다.
AI가 문제를 풀어주기 시작하면 시험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시험이 어려워지면 사교육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사교육이 AI를 활용하면 다시 시험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것은 끝없는 군비경쟁이다.
그 경쟁에서 학생은 결국 지쳐버린다.
그리고 교육은 더욱 본질에서 멀어진다.
한국은 지금 선택해야 한다.
AI를 막아서 과거의 교육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AI를 인정하고 교육의 목적 자체를 바꿀 것인가.
AI 시대에 필요한 교육은 AI보다 더 많은 것을 외우게 하는 교육이 아니다.
AI보다 더 빨리 계산하게 하는 교육도 아니다.
AI보다 더 유창하게 글을 쓰게 하는 교육도 아니다.
AI에게 무엇을 시킬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다.
AI의 답을 그대로 믿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인간, AI의 오류를 찾아낼 수 있는 인간, AI가 내놓은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인간, 그리고 AI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찾아낼 수 있는 인간이다.
이것이 대학이 선발해야 할 인간이다.
그리고 이것이 교육이 길러야 할 인간이다.
지금까지 한국 교육은 학생에게 답을 요구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대학이 학생에게 질문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능은 “정답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앞으로 대학은 “왜 이 질문을 던졌는가”를 물어야 한다.
지금까지 학교는 학생에게 문제를 풀게 했다.
앞으로 학교는 학생에게 문제를 만들게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입시제도 개편이 아니다.
한국 교육의 철학을 바꾸는 일이다.
수능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객관적인 기초학력 평가의 기능은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수능이 한국 교육의 최종적인 선발 기준으로 계속 군림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AI가 인간보다 문제를 잘 푸는 시대에 인간을 문제풀이 능력으로 줄 세우는 교육은 결국 스스로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알파고가 인간에게 바둑을 포기하라고 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AI도 인간에게 수학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AI는 오히려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왜 인간에게 기계가 더 잘할 일을 시키고 있는가?”
한국 교육은 이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답을 찾지 못한다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학생이 아니라 대학입시라는 제도 자체의 정당성일 것이다.
AI 시대에 교육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게 하느냐에 있지 않다.
얼마나 좋은 질문을 만들어내는 인간을 길러내느냐에 있다.
결국 미래의 대학은 가장 많은 정답을 맞힌 학생을 뽑는 곳이 아니라, 아직 아무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은 문제를 찾아낼 수 있는 학생을 뽑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교육은 AI와 경쟁하지 않고 AI를 넘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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