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생각할 이유가 없어 가난해진 인간

AI가 인류의 멸망을 이끄는 것은 인간의 바카라임이다

byFrancis Lee

인류가 멸망하는 날 우리는 아마 인공지능의 반란을 상상할 것이다. AI가 인간을 공격하고 지배하는 장면 말이다. 그러나 더 현실적인 멸망은 훨씬 조용하게 찾아올지도 모른다. AI가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2008년 픽사의 애니메이션 《월-E》는 이 미래를 놀랍도록 정확하게 보여준다. 환경을 파괴한 인간은 지구를 버리고 우주선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기계에 맡긴 채 살아간다. 음식은 자동으로 공급되고, 이동도 기계가 대신하며, 오락은 끊임없이 제공된다.

인간은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인간다움은 사라진다.

사람들은 뚱뚱해지고 걷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보다 자신의 화면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다.

《월-E》의 핵심은 환경오염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모든 불편을 제거한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AI 시대에 더욱 절박해진다.

AI는 인간의 육체노동뿐 아니라 정신노동까지 대신하기 시작했다. 정보를 찾고, 글을 쓰고, 번역하고, 계산하고, 코드를 만들고, 복잡한 문제를 분석한다. 이제는 인간이 오랫동안 고민해야 했던 수학 문제까지 풀어낸다.

이것은 분명 놀라운 기술적 진보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인 수학자들이 우려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AI가 정답을 내놓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그 답을 이해하고 스스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과정까지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답과 이해는 다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단순히 답을 얻는 데 있지 않다. 왜 그런지 묻고, 기존의 답을 의심하고,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런데 AI가 모든 질문에 즉시 답을 내놓는다면 인간은 점점 질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AI에게 물어보면 되지.”

이 말이 습관이 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공부하기 어려우면 AI에게 묻고, 글쓰기가 어려우면 AI에게 맡기고, 판단하기 어려우면 AI의 분석을 따른다. 처음에는 시간을 절약하는 편리함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스스로 고민하는 능력 자체를 덜 사용하게 된다.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지듯이 사고능력도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진짜 위험은 일자리의 감소만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 필요 없는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은 진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생각에서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간은 불편했기 때문에 문명을 발전시켰다. 배고팠기 때문에 농업을 발전시켰고, 질병 때문에 의학을 발전시켰으며, 세상이 왜 존재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철학과 과학을 발전시켰다.

문명은 불편과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AI가 인간의 불편과 고민을 모두 제거한다면 인간은 무엇을 통해 성장할 것인가.

《월-E》에서 인간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인간들이었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물질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결정해야 할 이유였다.

AI 역시 인간에게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힘든 노동을 줄이고, 질병을 치료하고, 지식을 민주화하며, 인간의 능력을 크게 확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혜택을 누리는 과정에서 인간이 판단과 바카라임까지 AI에게 넘겨버린다면 풍요는 오히려 인간을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한 것이 아니다.

생각할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근본적인 가난이다.

질문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 인간은 아무리 풍족하게 살아도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AI 시대에 인간이 지켜야 할 것은 모든 일을 직접 하는 능력이 아니다. AI가 인간보다 계산을 잘하고 글을 잘 쓰고 수학을 잘 풀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지, 왜 해야 하는지, 그 결과에 누가 바카라임질 것인지를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다.

AI에게 답을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질문까지 맡겨서는 안 된다.

AI에게 일을 맡길 수는 있다. 그러나 판단과 바카라임까지 맡겨서는 안 된다.

그 선을 넘는 순간 AI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대신하는 주체가 된다.

그리고 그때 인류의 멸망은 로봇의 반란처럼 극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도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 인간은 계속 먹고 마시며 편안하게 살아간다.

다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더 이상 스스로 결정하지 않는다.

《월-E》의 인간들이 바로 그랬다.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것만이 아니다. 더 두려운 것은 인간이 AI보다 생각하기를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AI가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위기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순간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인간은 모든 것을 가진 채, 가장 가난한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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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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