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임대시장에도 'IMF 위기'가 오나

주택은 더 이상 거주지가 아니라 기관투자가의 수익 품목이다

byFrancis Lee

1997년 겨울,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벽 앞에 무너졌다. 기업이 쓰러지고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으며 주가는 폭락했다. 부동산 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소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으로 기업과 부동산 자산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그때 한국의 자산을 사들인 것은 국내 자본만이 아니었다. 외국 자본은 위기에 빠진 한국에서 값싸게 나온 자산을 찾아 들어왔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투자와 기업·자산의 해외 매각을 둘러싸고 ‘헐값 매각’과 ‘국부 유출’ 논쟁이 거세게 일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이번에는 국가가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외환위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와 닮은 장면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주택이 점점 더 ‘사는 곳’에서 ‘투자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고, 그 주택을 사들이는 주체 가운데 국내 개인이 아닌 글로벌 기관투자가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 임대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전세라는 계약 형태만이 아니다. 사실상 한국인의 주거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임차가구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69.7%에서 2024년 61.9%로 낮아졌다. 반대로 월세는 30.3%에서 38.1%로 높아졌다. 전세 가구가 약 3만5000가구 줄어드는 동안 월세 가구는 5만2000가구 이상 늘었다. 임차가구 전체가 크게 증가한 것이 아니라 같은 주택시장에서 전세가 월세로 이동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임대차 방식의 변화가 아니다.

전세는 한국에서 매우 독특한 금융제도였다.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거액의 보증금을 맡기고 매달 임대료를 거의 내지 않았다. 집주인은 그 보증금을 활용해 다른 주택을 사거나 금융자산에 투자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전세는 오랫동안 한국 부동산 시장에 거대한 사적 금융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월세는 다르다.

월세는 집주인에게 매달 현금이 들어온다. 따라서 주택을 소유한다는 것은 이제 단순히 집값 상승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하는 일이 된다.

바로 이 순간 주택은 개인의 자산에서 금융기관의 투자상품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한국 임대주택 시장에는 KKR,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GIC, 모건스탠리, TPG 등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KKR은 국내 임대주택 포트폴리오 구축에 나섰고,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는 코리빙 기업과 대규모 합작법인을 만들었다. GIC 역시 한국 임대주택 투자 프로그램을 조성했다. 이들은 아파트 몇 채를 사서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개인 투자자와 다르다. 오피스텔이나 코리빙 건물을 통째로 확보하고, 호텔이나 상업용 건물을 임대주택으로 전환한 뒤 전문 운영회사를 통해 장기간 임대수익을 얻는다.

이것은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다.

과거의 부동산 투자 공식은 간단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그러나 기관투자가가 바라보는 주택은 다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가.’

따라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집값의 단기 상승이 아니다. 공실률, 임대료, 관리비, 운영비, 금리, 자산가치, 장기 현금흐름이다.

주택이 완전히 금융상품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1997년을 다시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 한국은 외화가 부족했다. 기업과 금융기관은 부실했고 자산가격은 급락했다. 외국 자본은 한국이 절박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대외 단기부채는 외환보유액을 크게 웃돌았고, 국제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이 위기를 증폭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외국 자본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한국이 가장 약해졌을 때 한국의 자산을 누가, 어떤 가격에, 어떤 조건으로 사들이느냐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정반대처럼 보인다.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에 빠진 것도 아니고 외국 자본이 위기 때문에 강제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글로벌 자본이 한국의 임대주택 시장을 ‘매력적인 투자시장’으로 판단하고 자발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더 주목할 대목이다.

1997년에는 위기가 외국 자본을 불렀다면, 지금은 ‘월세화’가 외국 자본을 부르고 있다.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커질수록 주택에서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의 1인 가구 증가와 인구구조 변화까지 겹치면서 임대주택은 장기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내는 자산으로 변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부동산 투자업계는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주거 투자시장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업형 임대주택이 활성화되면 장기임대가 가능해지고 전문적인 주거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 노후한 호텔이나 오피스가 주거공간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개인 집주인보다 전문적인 기업이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것이 세입자에게 더 나은 경우도 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주택의 소유권이 개인에서 거대한 기관으로 이동할 때 주거의 성격 자체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집주인에게 집은 때로 가족의 자산이고 노후자금이며 상속재산이다. 그러나 연기금이나 사모펀드에게 주택은 수익률을 만들어내야 하는 포트폴리오다.

세입자가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사느냐는 투자 의사결정의 첫 번째 기준이 아니다.

공실률이 얼마인가.

임대료를 얼마나 올릴 수 있는가.

관리비를 얼마나 효율화할 수 있는가.

자산가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는가.

몇 년 뒤 얼마에 매각할 수 있는가.

이것이 그들의 언어다.

결국 주택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공간이 금융의 가장 비인간적인 언어로 평가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에서 전세가 사라질수록 주택을 통한 자산축적의 사다리도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의 청년은 월세를 거쳐 전세로 이동하고, 전세보증금과 저축을 바탕으로 언젠가 자신의 집을 마련하는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러나 월세가 구조적으로 확대되면 청년은 매달 자신의 소득 일부를 임대료로 지출하면서 자산을 축적해야 한다.

집을 가진 사람은 월세라는 현금흐름을 얻는다.

집이 없는 사람은 그 현금흐름을 지불한다.

이렇게 되면 주택은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니라 계층을 재생산하는 장치가 된다.

바로 여기에서 ‘제2의 IMF’라는 표현이 의미를 갖는다.

물론 지금 한국에 IMF 외환위기가 다시 온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게 주장한다면 과장이다. 1997년과 지금은 경제적 조건도, 금융 시스템도, 외환보유액도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IMF가 남긴 자산 소유의 기억’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7년에는 국가와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서 한국의 자산이 외국 자본에게 넘어갔다.

앞으로의 임대시장에서는 반드시 위기가 아니더라도 한국인의 주거공간이 글로벌 자본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될 수 있다.

이것은 훨씬 조용하게 진행될 것이다.

은행이 문을 닫지도 않는다.

환율이 폭등하지도 않는다.

IMF가 구제금융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하나의 건물이 팔리고, 또 하나의 건물이 팔리고, 호텔 하나가 임대주택으로 바뀌고, 오피스텔 하나가 기관투자가의 포트폴리오에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매달 내는 월세가 어느 외국 연기금이나 글로벌 사모펀드의 안정적인 수익률이 되고 있구나.’

이것은 국부 유출이라는 단순한 민족주의적 논리로 접근할 문제도 아니다. 외국 자본 역시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 주거시설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고용과 서비스를 창출한다면 그것은 한국 경제에도 분명한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거를 완전히 시장의 논리에 맡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주택은 다른 금융상품과 다르다.

주식은 팔고 다른 주식으로 갈아탈 수 있다. 채권도 투자자가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집을 쉽게 바꿀 수 없다.

주거는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외국 자본을 막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이 임대주택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인정하되, 그 시장이 세입자의 삶을 희생해서 수익률만 극대화하는 구조로 변하지 않도록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장기임대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되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막고, 임차인의 계약 안정성을 보장하며, 임대사업자의 재무건전성과 보증금 반환 능력을 관리해야 한다. 공공임대와 민간임대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주택을 단순한 투자상품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미 부동산을 금융자산으로 보는 데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집값이 오르면 경제가 좋아진 것으로 생각하고, 집값이 떨어지면 경제가 무너지는 것처럼 반응한다. 정바카라 역시 주거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부동산 가격을 관리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러나 월세시대에는 질문이 달라져야 한다.

‘집값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국민이 소득의 얼마를 주거비로 지불하고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누가 집을 소유하고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주택에서 발생하는 임대수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가 중요해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인은 앞으로 자신의 집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금융자산 안에서 살 것인가.

1997년의 IMF는 한국 경제를 강제로 개방시켰다.

2026년의 월세화는 한국의 주택시장을 조용히 금융시장에 편입시키고 있다.

전자는 충격으로 왔다.

후자는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온다.

그래서 오히려 더 경계해야 한다.

IMF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지만, 주택의 금융화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으로 한국의 임대시장에 찾아올 ‘IMF’는 국제통화기금이라는 이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이름은 글로벌 연기금일 수도 있고, 사모펀드일 수도 있으며, 부동산 투자회사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사들이는 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우리의 가장 사적인 공간, 바로 ‘집’이다.

주택이 더 이상 거주가 아니라 기관투자가의 수익 품목이 되는 순간, 우리는 부동산 정바카라의 질문 자체를 다시 던져야 한다.

집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집에서 살기 위해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이 두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임대시장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효율적이고 선진적인 금융시장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주거를 위한 시장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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