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과녁을 빗나간 화살이다
‘죄’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무엇부터 떠올리는가. 거짓말, 술과 담배, 폭력, 성적인 문제, 도박, 예배에 빠지는 것 같은 구체적인 행동들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교회에서 오래 신앙생활을 한 사람일수록 머릿속에는 저마다의 죄 목록이 있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죄가 아닌지, 무엇을 하면 안 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름의 기준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성경이 죄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의외의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법정도 아니고 감옥도 아니다. 활터다.
신약성서에서 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헬라어가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다. 이 단어를 이해하는 데 흔히 사용되는 이미지가 ‘빗나감’이다. 활을 쏘았는데 과녁을 맞히지 못한 것이다. 화살은 힘차게 날아갔지만 목표를 벗어났다.
여기에서 죄에 대한 아주 중요한 통찰이 나온다.
화살이 약해서만 빗나가는 것이 아니다. 활을 잘못 쏘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바람을 잘못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애초에 과녁을 잘못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의 죄도 그렇다.
사람은 반드시 악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어서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서도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오히려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이것이 죄를 단순한 행동 목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람이 거짓말을 했는가, 술을 마셨는가, 예배에 빠졌는가만 묻는다면 죄를 너무 좁게 이해하게 된다.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를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더 무서운 질문이 있다.
그가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죄는 때로 악의적인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더 많은 죄는 자기 확신 속에서 자란다. 사람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까지 악을 선택하기보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다른 사람을 해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다.
역사 속에서 가장 무서운 악들이 모두 악인들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손에서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진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하나님을 위한다는 이유로 타인의 존엄을 짓밟는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일까.
여기에서 기독교 신앙의 아주 불편한 질문이 시작된다.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을 정말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말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욕망을 말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명예를 추구할 수도 있다.
이것이 종교가 가진 가장 위험한 함정 가운데 하나다.
죄를 짓는 사람이 반드시 하나님을 떠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너무 열심히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하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도 죄인이 많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 안에 죄인이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교회는 원래 죄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죄인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죄인이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죄를 발견하는 방법도 익숙해진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죄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저 사람은 교회에 잘 나오지 않는다. 저 사람은 술을 마신다. 저 사람은 헌금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저 사람은 성경을 잘 모른다. 저 사람은 교회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죄를 찾아내는 데 점점 능숙해진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이것이 종교적 인간의 역설이다.
죄를 많이 아는 사람이 죄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의 죄를 잘 찾아내면서 자신의 죄에는 둔감해질 수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술 한 잔 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한다.
주일예배를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무시한다.
성경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는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증오한다.
교회 봉사를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폭언을 한다.
정통 교리를 지키는 데 목숨을 거는 사람이 인간의 존엄을 쉽게 훼손한다.
그렇다면 누가 더 죄인인가.
술을 마신 사람인가.
아니면 자신이 의롭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사람인가.
이 질문 앞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죄의 목록이 흔들린다.
죄는 단순히 금지된 행동의 목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는 삶의 방향이 틀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문제는 행위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사람은 무엇을 하느냐에 앞서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살아간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과 능력을 사용하는지,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다고 말하면서 모든 삶의 기준이 돈과 성공과 명예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손해가 되는 사람을 철저하게 배제한다면 어떠한가.
복음을 전한다고 말하면서 교회의 규모와 영향력을 자신의 성공으로 여긴다면 어떠한가.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기뻐한다면 어떠한가.
화살은 아주 멀리 날아갈 수 있다.
높이 날아갈 수도 있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녁에서 벗어났다면 결국 빗나간 화살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성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제대로 산 것은 아니다. 교회가 성장했다고 해서 반드시 복음에 충실한 것도 아니다. 신앙 경력이 길다고 해서 하나님과 가까운 것도 아니다.
얼마나 멀리 왔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방향으로 왔느냐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교회가 만들어온 죄의 목록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는 술과 담배와 성적인 문제와 예배 출석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 교회의 성공주의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한가.
왜 우리는 개인의 도덕적 실패에는 분노하면서, 교회가 약자를 외면하는 문제에는 침묵하는가.
왜 다른 교단의 잘못과 다른 정치 진영의 잘못에는 그렇게 엄격하면서, 자기 교단과 자기 정치 진영의 잘못에는 그렇게 관대한가.
왜 교회의 숫자와 건물과 재정이 커지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쉽게 말하면서, 그 교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정의와 자비를 베풀었는지는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혹시 우리는 과녁을 잊어버리고 화살의 모양만 검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죄를 목록으로 만들면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
목록을 지킨 사람과 지키지 못한 사람이다.
그리고 목록을 지킨 사람은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죄를 방향의 문제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과녁을 벗어난 순간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한 순간이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순간이 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회개는 단순히 죄의 개수를 줄이는 일이 아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다시 돌리는 것이다.
어제 거짓말을 했으니 오늘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만으로 회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서는 왜 거짓말을 했는지를 물어야 한다.
무엇이 두려웠는가.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가.
무엇을 잃고 싶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무엇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했는가.
바로 그 질문까지 내려가야 한다.
궁수가 화살을 쏘았는데 빗나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화살을 주워 들고 과녁을 옮기지 않는다.
“내 화살이 떨어진 곳이 원래 과녁이었다”라고 우기지도 않는다.
다시 과녁을 바라본다.
자세를 고친다.
활을 다시 당긴다.
그리고 다시 조준한다.
이것이 회개다.
회개는 자신을 미워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 확인하면서 절망하는 것도 아니다.
회개는 내가 바라보던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
내가 이웃을 향하고 있는가.
내 삶이 사랑과 정의와 자비를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결국 모든 것이 나 자신을 향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개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회도 끊임없이 이 질문을 받아야 한다.
우리 교회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사람 수가 늘어나는 것을 향하고 있는가.
재정이 늘어나는 것을 향하고 있는가.
건물이 커지는 것을 향하고 있는가.
목회자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향하고 있는가.
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고 있는가.
교회가 커지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죄가 아니다.
돈을 많이 모으는 것도 그 자체로 죄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과녁이 되는 순간이다.
수단이 목적이 되는 순간 화살은 빗나가기 시작한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돈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돈을 모으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 되면 방향이 바뀐다.
사람을 섬기기 위해 조직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되면 방향이 바뀐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영향력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영향력 자체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방향이 바뀐다.
성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순간 화살은 과녁에서 벗어난다.
어쩌면 기독교 교회 안에 죄인이 많은 이유는 교회가 죄인을 잘못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가 죄를 너무 좁게 가르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죄를 행동 목록으로 가르치면 사람들은 목록에 없는 죄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죄를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교만도 죄다.
무관심도 죄다.
증오도 죄다.
자기 의로움도 죄다.
약한 사람을 이용하는 것도 죄다.
자기편의 잘못을 감싸는 것도 죄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것도 죄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한 나머지 자신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더 이상 묻지 않는 것도 심각한 죄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것일 것이다.
“나는 죄를 얼마나 피하고 있는가?”
가 아니라,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살고 있는가?”
오늘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화살을 쏘며 살아간다.
돈을 향해 쏘고,
성공을 향해 쏘고,
명예를 향해 쏘고,
자녀를 향해 쏘고,
교회를 향해 쏘고,
정의를 향해 쏘고,
심지어 하나님을 향한다고 믿으며 화살을 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화살의 힘이 아니다.
얼마나 멀리 날아갔느냐도 아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박수를 쳐주었느냐도 아니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 화살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혹시 빗나갔다면, 우리는 과녁을 옮길 것인가. 아니면 다시 과녁을 바라볼 것인가.
기독교 신앙에서 회개는 바로 그 순간 시작된다.
죄를 발견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방향을 돌리는 순간이다.
그래서 죄인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도 있다.
목회자에게도 있고 평신도에게도 있다.
신앙이 오래된 사람에게도 있고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에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도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가장 정직한 모습은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화살도 자주 빗나간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해서 과녁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교회가 정말 회개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죄의 목록을 더 길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금지사항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정말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다시 묻는 것이다.
과녁을 잃어버린 채 너무 멀리 날아가 버린 화살은 성공한 화살이 아니다.
아무리 높이 날았어도, 아무리 빠르게 날았어도, 아무리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았어도 과녁을 벗어났다면 빗나간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오래 믿었다고 반드시 제대로 믿은 것은 아니다.
교회가 크다고 반드시 좋은 교회인 것도 아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반드시 하나님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고 확신한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이 자신의 편에 서 계신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른 사람의 죄를 찾는 것이 아니다.
다시 과녁을 보는 것이다.
내 삶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 질문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죄를 피하면서도 죄의 한가운데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 가장 무서운 것은 화살이 빗나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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