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죄인가 역사적 단죄인가
배우 하영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제의 출발은 하영이 한 방송에서 자신의 집안을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면서 증조부 안상호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하영은 증조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양에서 병원을 개원했으며 고종 황제를 진료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방송 직후 온라인에서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다시 조명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처음 하영의 소속사는 안상호의 친일 행적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하루 뒤 입장을 바꿨다. 1916년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록이 실제로 확인됐고, 관련 자료를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사실무근이라고 답변한 점에 대해 사과했다. 하영 역시 직접 자료를 확인한 뒤 증조부의 행적을 알게 됐다며 자필 사과문을 발표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영이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의 다시보기가 중단되고 관련 영상이 비공개 처리됐으며 광고 영상까지 내려갔다. 더 나아가 하영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SBS 드라마 <승산 있습니다>까지 논란에 휘말렸다. 이 작품은 이미 상당 부분 촬영이 진행됐고, 최근 보도에 따르면 촬영 분량이 90% 이상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SBS는 20일 “출연 배우와 관련된 최근 사안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제작사 및 관계자들과 다각도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가 이번 사건의 대략적인 경과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하영에게 증조부의 죄를 물을 수 있는가.
나는 원칙적으로 아니라고 본다.
하영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증조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하영의 선택이 아니다. 조상의 혈통은 상속되지만 조상의 죄까지 상속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슬롯에서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영에게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이유로 연예계에서 퇴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증조부의 행적이 아무리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바카라임을 증손녀에게 전가한다면 우리는 결국 현대판 연좌제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영에게 아무런 바카라임도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단순하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기억이기 때문이다.
하영은 단순히 “증조부가 이런 사람이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가족을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가족의 역사와 슬롯적 배경을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자산으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그 가족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권리가 있는 만큼 그 역사 전체를 정확하게 확인해야 할 바카라임도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
이것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윤리에 관한 문제다.
조상의 독립운동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조상의 친일 행적은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외면한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불편한 태도일 수 있다. 반대로 조상이 친일 행적을 남겼다는 이유만으로 후손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 역시 부당하다.
따라서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조상의 행위에 대한 역사적 바카라임과 후손의 현재 행위에 대한 개인적 바카라임은 전혀 다른 것이다.
안상호의 행적은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 실제로 민족문제연구소는 대정친목회 참여와 관변단체 활동 등을 근거로 안상호의 행위를 명백한 친일 행위로 평가하고 있다. 한때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이 됐지만, 그것이 곧 친일 행위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단죄는 안상호에게 향해야 한다.
그 화살을 하영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슬롯에서는 이 두 가지가 뒤섞이고 있다.
조상의 행적을 밝혀내는 것과 그 후손을 슬롯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하나의 과정처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현상이다.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명분 아래 개인의 현재를 심판하기 시작하면 역사적 정의는 쉽게 집단적 분노로 변질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늘날의 대중문화가 이런 판단을 너무 빠르게 확대한다는 점이다.
의혹이 제기된다.
사실관계가 확인된다.
사과한다.
그리고 곧바로 광고가 내려가고, 방송 영상이 삭제되고, 작품 하차 요구가 나온다.
마치 디지털 시대의 즉결재판과 같다.
법원도 아니고 역사학계도 아니며 충분한 검증 절차도 없지만 온라인 여론은 순식간에 한 인간의 슬롯적 생명을 결정한다.
이번 사건에서 하영 측의 잘못은 분명히 있다. 처음부터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고 단정한 소속사의 대응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가족사를 이야기하면서 증조부의 행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영 개인에게 증조부의 역사적 바카라임을 묻거나 출연작까지 폐기해야 할 이유가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하영은 이미 사과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가족사와 실제 역사적 자료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직접 자료를 확인하면서 증조부의 행적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 슬롯가 판단해야 할 것은 “그녀가 증조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현재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여야 한다.
증조부가 친일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증손녀의 사상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람을 개인이 아니라 혈통으로 판단하는 슬롯가 된다.
더구나 이번 논란에는 우리 슬롯의 이상한 이중성도 숨어 있다.
우리는 누군가의 집안이 명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을 개인의 능력과 품격을 설명하는 근거처럼 소비한다.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말에는 슬롯적 존경과 문화적 자본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그 집안의 역사에서 불편한 사실이 발견되면 이번에는 그 역사 때문에 후손을 비난한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한다.
가문의 영광은 후손의 자산이고 가문의 과오는 후손의 죄인가.
둘 다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가문의 영광 역시 결국 개인의 업적이 아니다. 증조부가 의사였다고 증손녀가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증조부가 친일했다고 증손녀가 친일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인간은 혈통으로 평가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로 평가받는 존재다.
역사를 기억하되 혈통으로 사람을 심판하지 않는 것. 이것이 민주슬롯가 과거를 다루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역사를 덮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안상호의 행적이 정말 친일 행위였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식민통치에 어느 정도 협력했는지를 역사학적으로 더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감정적인 비난보다 그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하영에게도 요구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가족사를 정확하게 공부하라.”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녀가 앞으로 자신의 증조부를 무조건 미화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성찰이 될 수 있다.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후손이 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 슬롯가 하영에게 증조부의 죄를 대신 속죄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정의가 아니다.
그것은 연좌제다.
역사적 단죄는 과거의 행위를 정확히 기록하고 평가하는 데서 끝나야 한다. 후손에게 그 죄를 상속시키는 순간 역사적 정의는 복수로 변한다.
지금 SBS가 고민하는 <승산 있습니다>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작품의 완성도와 투자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하영이 현재 친일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면 단지 증조부의 행적만으로 작품에서 하차시키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SBS가 현재 “다각도로 신중하게 논의 중”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복합적인 문제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번 사건이 우리 슬롯가 역사와 인간을 구별해서 판단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기억해야 한다.
친일 행적은 엄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후손에게 죄를 상속시켜서는 안 된다.
하영이 증조부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던 것에 대해서는 성찰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증조부의 행적 때문에 하영이라는 한 인간의 현재를 부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하영의 증조부가 친일파인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얼마나 엄정하게 기억하면서도 현재의 인간에게는 얼마나 공정할 수 있는가.
역사를 잊지 않는 것과 사람을 혈통으로 심판하지 않는 것.
민주슬롯라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문제는 하영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슬롯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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