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징병제는 불가능한 꿈이다
누가 군대에 가고 싶을까. 아마도 솔직히 말하자면 이 질문에 선뜻 “내가 가고 싶다”라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군대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일정한 기간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국가에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징병제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개인의 삶에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력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최근 실시된 병역제도 관련 여론조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여성 징병제에 대한 찬성은 59.6%에 이르렀고, 특히 20·30대 남성의 찬성률은 71.7%로 매우 높았다. 얼핏 보면 이것은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성평등의 요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숫자를 단순히 ‘여성도 군대에 가라’는 남성들의 분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 안에는 훨씬 근본적인 질문이 숨어 있다.
“왜 국가가 요구하는 의무와 희생은 특정한 성별에게만 집중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여성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희생의 공정성에 대한 질문이다.
오히려 이번 조사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선택적 모병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태도다. 전체적으로는 선택적 모병제에 대한 찬성이 47.4%로 반대보다 높았지만, 정작 병역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18~29세와 30대에서는 반대가 각각 55.3%, 57.2%로 나타났다.
이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군대에 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청년들이 오히려 모병제에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왜일까.
그들은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병제가 도입되면 과연 누가 군대에 갈 것인가. 국가가 충분한 급여와 복지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자발적으로 군대에 지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충분한 보상을 제공한다면 국방비 부담은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모병제는 군인을 공짜로 얻는 제도가 아니다.
징병제에서는 국가가 청년의 시간을 강제로 가져간다. 모병제에서는 국가가 그 시간을 돈으로 사야 한다.
이 차이를 정치권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저출생으로 병역자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여성까지 징집하면 된다”는 주장은 얼핏 매우 간단한 해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한다.
여성 징병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인구절벽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군의 비효율적인 구조가 개혁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줄어드는 병역자원을 여성에게까지 확대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여성 징병제를 한국 병역 문제의 해법으로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에 가깝다고 본다.
우선 여성 징병제는 단순히 남녀 모두에게 똑같이 입영통지서를 보내는 문제가 아니다. 남녀의 신체적 차이, 군사적 직무의 특성, 병영시설, 생활관, 의료체계, 장비, 보직체계 등 군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슬롯적 합의다.
징병제는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인 만큼 압도적인 정당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슬롯에서 병역 문제는 이미 세대와 성별을 둘러싼 가장 민감한 갈등 가운데 하나다. 여성 징병제가 실시되는 순간 병역 문제는 또 하나의 거대한 젠더 갈등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징병 논의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여성 징병제라는 주장이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의 징병제가 얼마나 심각한 정당성의 위기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남성이 군대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제 젊은 세대는 묻는다.
“왜 내가 가야 하는가.”
그리고 여기에 국가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국방의 의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헌법에도 국방의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의무가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그 의무를 어떻게 부과하든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가 청년에게 18개월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요구한다면 국가는 그 시간의 가치도 인정해야 한다.
군 복무 때문에 취업이 늦어지고, 학업이 중단되고, 슬롯 진출이 지연된다면 그것을 단순히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는 말로 덮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청년에게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존중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병역 논쟁은 여성 징병제냐 모병제냐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더 적은 사람을 군대에 보내면서도 더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는가이다.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 과거처럼 수십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려는 발상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드론과 인공지능, 무인체계, 정밀유도무기, 감시·정찰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국방력을 단순히 사람의 숫자로 측정하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다.
한국군도 이제 ‘병력 중심 군대’에서 ‘기술 중심 군대’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병력은 징병으로 확보하고,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는 제대로 된 보수를 지급하는 모병으로 확보하는 혼합형 체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군대부터 달라져야 한다.
청년에게 “국가가 부르니 와라”고 말하는 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군대에 가는 것이 손해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군 복무 기간을 경력과 교육의 일부로 인정하고, 복무에 따른 경제적·슬롯적 불이익을 최소화하며, 전문적인 군인은 민간의 전문직에 버금가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성도 군대에 보내느냐가 아니다.
누가 군대에 가느냐보다 왜 군대에 가야 하는지를 국가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징병제의 가장 큰 위기는 병역자원의 감소가 아니다. 정당성의 감소다.
청년들이 국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내놓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가 왔다. 이것은 이기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개인의 삶과 권리에 대한 감각이 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사람을 군대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적은 사람에게 더 적은 희생을 요구하면서 더 강한 국방력을 만드는 것이다.
여성 징병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정치적 구호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인구절벽 시대의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미래의 해법은 아니다.
누가 군대에 가고 싶을까.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가고 싶지 않아도 가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가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국가에서 징병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져야 할 최소한의 바카라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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