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청권을 방패 삼아 대통령까지 패싱하는 사법부의 오만은 심판받아야 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결국 칼을 뽑았다. 지난 3월 퇴임한 노태악 대법관의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다음 달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의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했다. 문제는 후보자의 자질이나 경력만이 아니다. 조 대법원장은 대통령실과의 사전 조율 없이 서면으로 후보자를 제청했다.
조 대법원장 측에서는 헌법이 보장한 제청권을 행사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실제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청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조희대가 헌법의 화신인가?
헌법에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대법원장이 곧 헌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청권은 조희대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헌법이 대법원장이라는 직위에 부여한 권한이다. 더구나 헌법은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인사를 독점하도록 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국회에 동의권을 각각 부여했다. 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조 대법원장의 행보를 보면 마치 제청권 하나만으로 대법관 인사의 모든 과정이 완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과 협의하지 않는 것이 곧 사법부 독립이고, 자신의 판단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이 사법부에 대한 간섭이라는 식이라면 헌법이 만들어 놓은 권력분립의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를 단순한 인사 갈등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이재명 대통령 사이에는 이미 국민이 기억하는 중요한 사법적 충돌이 존재한다.
2025년 5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2심 무죄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1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고, 대법원이 다시 2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대선이 불과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법원이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 판결해서는 안 된다. 판결은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법부에는 더욱 높은 수준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외관상의 중립성이 요구된다.
당시 대법원의 판단이 법률적으로 옳았는지 여부와 별개로, 대선 직전 유력 대선 후보의 정치적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결이 내려졌다는 사실은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낳았다. 그리고 그 판결의 중심에 있었던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제 이재명 대통령과 대법관 인사를 놓고 충돌하고 있다.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는 것과 국민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서 지금 조 대법원장에게 필요한 것은 “헌법상 제청권은 나에게 있다”는 선언이 아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다.
왜 이 후보자인가. 왜 지금인가. 왜 대통령실과의 협의 없이 제청했는가. 특히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이 상당 기간 공석으로 남아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제청권만 내세운다면 국민의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법부 독립’이라는 명분이 대법원장 개인의 권한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로 이용되고 있다는 의심만 키울 뿐이다.
사법부 독립은 대법원장의 독립이 아니다.
사법부 독립이란 법관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지 않고, 국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정당이나 정치권력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원칙이다. 대법원장 개인이 자신의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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