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마저 경제에 종속된 시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제도도 경제에 굴복한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슬롯를 분석하면서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물질적 조건, 즉 경제적 토대가 슬롯의 정치·법률·문화·의식과 같은 상부구조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물론 오늘날 마르크스의 이론을 19세기의 문법 그대로 현대슬롯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인간의 가치관과 문화, 종교와 정치, 개인의 선택이 모두 경제에 의해 기계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한 주거 형태를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결혼이라는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슬롯제도마저 경제적 조건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보면, 과연 마르크스의 통찰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낡은 것인가.
최근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연애나 결혼 관계가 아닌 친구끼리 돈을 모아 집을 공동 구매하는 이른바 ‘플라토닉 공동구매(Platonic co-buying)’가 새로운 주거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15년 이상 친구로 지낸 두 여성이 각각 이혼한 뒤 미국 워싱턴 D.C.에서 약 90만 5,000달러에 집을 공동 구매한 사례도 소개됐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녀를 포함해 함께 생활하면서 주거비와 생활의 부담을 나누고 있다. 이것만 보면 그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확대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배경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의 높은 주택가격 때문에 젊은 세대가 혼자 집을 마련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실제로 미국 생애 첫 주택 구매자의 비중은 21%까지 떨어졌고 첫 주택 구매자의 평균 연령은 40세에 이르렀다는 조사 결과가 소개됐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역전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대체로 사랑이 결혼을 만들고 결혼이 가족을 만들며 가족이 집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제는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결혼과 가족 형성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보다 먼저 “집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지고, 아이를 낳고 싶으냐는 질문보다 “아이를 키울 경제적 여력이 있느냐”가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된다. 인간의 가장 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사랑과 결혼이 사실은 소득과 주택가격, 고용과 자산이라는 경제적 변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과 슬롯제도가 아무런 물질적 조건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인간은 먹고살아야 하고, 집이 있어야 하며,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슬롯관계 역시 이러한 물질적 조건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물론 이것을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단순한 공식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가 던진 중요한 질문은 오히려 인간이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어떤 물질적 조건 위에서 가능한가라는 데 있었다.
오늘날 결혼을 생각해 보면 이 질문은 상당히 불편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누군가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우리는 흔히 가치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주의가 강해졌기 때문이고, 자유를 중시하기 때문이며, 결혼보다 자신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안정적인 온라인 게임을 구하기 어렵고, 월급으로 서울의 집값을 감당하기 어렵고, 전세나 월세 부담이 커지고, 결혼하면 두 사람의 소득만으로 주거비와 교육비를 감당해야 하는 슬롯에서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에게 단순히 “가치관이 변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리는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자유로운 선택인가, 아니면 결혼할 경제적 조건이 사라진 것인가.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물론 현대슬롯에서 결혼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결혼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고,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할 권리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왜 결혼이라는 제도가 경제적 조건에 점점 더 강하게 종속되고 있는가다.
인류의 역사에서 혼인은 단순한 연애의 결과가 아니었다. 종족을 보존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재산을 이전하고 슬롯적 관계를 재생산하는 가장 기본적인 제도 가운데 하나였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형태는 달랐지만 인간 슬롯가 지속되는 데 혼인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제 그 혼인이 점점 더 경제적 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변수가 되고 있다.
사랑은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결혼은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은 결코 낭만적인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함께 살 집을 구하고, 결혼식을 치르고, 아이를 키우고, 의료비와 교육비를 부담하고, 노후를 준비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이 제도적인 결혼으로 전환되는 순간 경제적 현실이 개입한다. 사랑과 결혼 사이에 경제라는 거대한 문턱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주택은 그 문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집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다. 그런데 주택이 투자자산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게 되면서 주거의 문제가 자산의 문제가 되었고, 자산의 문제는 다시 결혼과 출산의 문제가 되었다. 집값이 오르면 기존 주택 보유자에게는 자산 증가가 되지만 집을 사지 못한 청년에게는 결혼과 가족 형성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누군가에게 집값 상승은 부의 증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혼의 지연이 되고 출산의 포기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경제적 토대가 슬롯의 상부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이 다시 살아난다.
주택시장이라는 경제적 조건이 변하자 가족이라는 슬롯제도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고용시장이 불안정해지자 결혼 연령이 늦어진다. 소득이 주거비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면 독립이 늦어진다. 독립이 늦어지면 연애와 결혼의 시기도 늦어진다. 결혼이 늦어지면 출산 가능성도 떨어진다. 결국 경제의 변화가 주거를 바꾸고, 주거의 변화가 가족을 바꾸고, 가족의 변화가 인구구조를 바꾸는 연쇄작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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