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이 마주한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려면?

동양과 서양이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만날 이유가 있다

byFrancis Lee

서양 철학의 긴 역사를 관통하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분리된 세계를 어떻게 다시 하나로 이해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려는 순간부터 그것을 나누고, 나눈 세계를 다시 통합하려는 긴 여정을 반복해 왔다.

근대철학의 출발점에서 데카르트는 이 문제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제기했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통해 존재의 확실성을 외부 세계가 아니라 사유하는 주체 내부에서 찾았다. 이 순간 세계는 둘로 갈라진다. 생각하는 나와 생각의 대상이 되는 세계,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라는 구분이 그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세계 안에 자연스럽게 속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관찰자가 된다. 이로써 인간 이성은 자율성을 획득했지만, 동시에 세계와의 근본적인 분리를 감수해야 했다.

이후 칸트는 이 분리의 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분석했다. 그는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를 사물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 구조를 통해 구성된 현상으로 보았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사고 형식이 만들어낸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통찰은 또 다른 한계를 남겼다. 인간은 현상은 알 수 있지만, 그 너머에 있는 물자체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인간과 세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설정되고 말았다.

이러한 분리를 극복하려는 거대한 시도가 헤겔에게서 나타난다. 그는 칸트가 남긴 현상과 물자체의 이분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헤겔에게 현실은 고정된 두 영역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통해 전개되는 하나의 운동이었다. 세계와 인간 정신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완성해 가는 동일한 흐름의 두 측면이다. 그가 말한 절대정신은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문화, 예술, 종교, 철학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해 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진리는 고립된 점이 아니라 전체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는 그의 생각은 주체와 객체를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절대정신이라는 전체 구조로 포섭함으로써 개별 존재의 독립성과 구체성은 다시 희미해질 위험을 안게 된다.

20세기에 등장한 후설의 현상학은 이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다시 붙잡는다. 그는 “사태 자체로 돌아가자”라고 말하며, 기존의 이론과 선입견을 제거한 상태에서 의식에 나타나는 세계를 직접 기술하려 했다. 이를 통해 의식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밝히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곧 그는 한 개인의 의식만으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타인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등장하면서, 그는 간주관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세계는 단일한 의식 속에 갇힌 것이 아니라, 여러 주체들이 함께 경험하고 공유하는 과정 속에서 객관성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인간이 이미 역사와 문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강조하는 생활세계 개념으로 나아간다. 순수한 의식에서 출발한 그의 철학은 결국 관계와 삶의 세계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 문제를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 철학자가 마르틴 부버이다. 그는 인간 존재를 고립된 자아에서 찾지 않고 관계 속에서 이해했다. 그의 사유에서 중요한 구분은 나-그것의 관계와 나-너의 관계이다. 나-그것의 관계에서 타인은 분석되고 이용되는 대상이 되지만, 나-너의 관계에서는 상대가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로 마주해진다. 부버에게 인간은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된다. 나는 너와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이 된다는 그의 통찰은 데카르트 이후 잃어버린 관계의 차원을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동양사상과도 깊은 대비를 이룬다. 서양 근대철학이 독립된 주체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불교와 노장사상은 애초에 존재를 독립된 실체로 보는 관점 자체를 의심한다. 불교의 연기 사상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며 성립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라는 존재조차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수많은 조건과 관계가 잠시 모여 형성된 과정일 뿐이다. 노장사상 역시 세계를 고정된 개념으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으로 이해한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이미 본래의 도에서 멀어진다는 노자의 말은 인간의 개념이 세계를 완전히 포착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경계한다.

이처럼 서양 근대철학과 동아시아 사상은 출발점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다. 서양은 분리된 주체와 객체를 어떻게 다시 연결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해 왔고, 동양은 애초에 왜 존재를 분리해서 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하나는 분리 이후의 통합을 향하고, 다른 하나는 분리 이전의 관계적 세계를 전제한다.

결국 서양 철학의 긴 역사는 분리와 통합 사이의 반복된 긴장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데카르트가 열어놓은 근대의 길은 인간 이성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했고, 과학과 기술 문명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과 자신을 분리하고, 타인을 객체화하며, 세계를 분석 가능한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되었다.

이에 대해 헤겔은 절대정신으로, 후설은 생활세계로, 부버는 나와 너의 만남으로, 동아시아 사상은 연기와 도의 사상으로 각기 다른 방식의 응답을 시도했다. 이 모든 시도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인간은 어떻게 다시 세계와 하나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21세기의 철학은 이제 주체와 객체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체성과 관계성을 동시에 사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인간은 고립된 원자도 아니고 전체 속에 흡수되는 부품도 아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형성하고, 그 관계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존재이다.

어쩌면 서양 철학이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맨 답은, 이미 처음부터 분리되지 않은 세계를 바라보았던 사유의 전통 속에 조용히 놓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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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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