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믿는 것과 인간을 제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류 문명을 움직여 온 것은 언제나 위대한 사상가들이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서 살았지만 하나의 공통된 전제를 공유했다.
곧 인간은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통치하는 정의로운 국가를 꿈꾸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정의했다. 공자는 군자를, 예수는 사랑의 인간을, 부처는 깨달은 인간을, 니체는 초인을, 프로이트는 자기 무의식을 직면하는 성숙한 인간을 이야기했다.
그들의 철학은 서로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의 역사는 끊임없이 다른 질문을 던져 왔다.
정말 인간은 그렇게까지 선하고 이성적인 존재인가.
20세기 이후 인류는 놀라운 과학기술을 만들었다. 원자력을 개발했고, 달에 착륙했으며, 인터넷과 인공지능까지 만들어 냈다. 그러나 동시에 아우슈비츠도 만들었고, 킬링필드도 만들었으며, 르완다 대학살도 경험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은 얼마나 발전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위대한 사상가들의 낙관주의는 현실과 충돌하기 시작한다.
플라톤은 철인이 권력을 잡으면 정의로운 국가가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역사는 철인이 권력을 잡는 경우보다 권력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경우를 훨씬 많이 보여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라고 보았지만 현대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성보다 감정과 편향, 군중심리에 훨씬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증명해 왔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부처는 탐욕을 버리라고 했다.
니체는 자신을 극복하라고 했다.
하지만 인류는 2천 년이 넘도록 그들의 가르침을 존경하면서도 여전히 증오하고, 탐욕을 좇고, 자신의 욕망 앞에서 무너진다.
그렇다면 그들은 인간을 오판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그들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일까.
이 질문에 가장 냉정한 답을 내놓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홉스다.
홉스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욕망하고 경쟁하며 서로를 경계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선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가는 인간의 선의를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약점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루소는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슬롯가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보았다.
두 사람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지만, 현대 민주주의는 놀랍게도 이 둘을 동시에 받아들였다. 인간에게는 자유를 주되, 권력은 견제한다. 인간을 믿되, 인간을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20세기에 들어와 이 문제를 가장 깊이 성찰한 사람은 아렌트였다. 그녀는 나치 전범 재판을 지켜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거대한 악은 악마 같은 인간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평범한 인간에게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그녀가 두려워한 것은 악인이 아니라 사고를 멈춘 보통 사람이었다.
문명은 천재보다 평범한 다수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그 다수가 생각하기를 멈출 때 민주주의는 가장 쉽게 무너진다.
포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좋은 지도자를 어떻게 뽑을 것인가'보다 '나쁜 지도자를 어떻게 평화롭게 끌어내릴 것인가'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정치철학의 혁명이었다. 그는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대신 인간이 언제든 실수하고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제도를 설계했다. 삼권분립도, 언론의 자유도, 독립적인 사법부도, 선거도 모두 같은 철학 위에 세워져 있다.
인간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권력을 나누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대한 종교와 철학은 민주주의와 만난다.
예수는 인간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부처는 인간 안의 가능성을 보았다.
공자는 덕을 가르쳤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인간의 덕성만을 믿고 설계되지 않았다. 헌법은 인간이 선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언제든 탐욕스럽고 오만하며 폭력적일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좋은 슬롯는 좋은 사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도 쉽게 악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제도 위에서 유지된다. 이것이 문명이 수천 년 동안 얻은 가장 값비싼 교훈이다.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간의 가능성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문명을 앞으로 끌고 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문명을 실제로 지탱한 것은 또 다른 지혜였다.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것과 인간의 한계를 전제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윤리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인간을 무조건 신뢰하는 것은 정치의 출발점이 될 수 없다. 문명은 이상주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동시에 냉소주의만으로도 발전하지 않는다. 이상은 인간을 앞으로 이끌고, 제도는 인간의 추락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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