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까?

『Une forêt』와 과거가 남는 방식

1947년 2월 22일, 제이컵 마이클 렌츠(Jacob Michael Lenz)는 독일 브레멘(Bremen)에 도착했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도시는 여전히 기차가 들어갈 수 없는 도시에 속해 있었다. 폭격의 잔해가 철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내린 곳은 브레멘이 아니라 근교의 작은 마을 후데(Hude)였다. 그는 그 사실을 한참 뒤에서야 알았다.

오후 다섯 시였지만 이미 밤처럼 어두웠다. 마중 나온 미군 하사가 그의 가방을 지프에 싣고 숲을 가로질렀다. 천둥이 울렸고, 번개가 칠 때마다 길가의 참나무와 밤나무가 잠깐씩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사이로 무언가 반짝였다. 늪에 고인 물 위에서 은빛 조각들이 빛나고 있었다. 렌츠는 달빛이 물에 비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숲을 다시 걸었을 때에야 그는 그것이 달빛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뭇가지와 갈대 사이에 매달린 은박 조각들이 바람에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연합군 폭격기가 독일군 레이더를 교란하려고 하늘에서 뿌린 알루미늄 띠였다. 폭격이 있던 밤이면 수백만 장의 은빛 조각이 도시 주변의 들과 숲에 내려앉았다. 그것들은 녹지도, 증발하지도 않았다.


도심의 건물들은 대부분 무너져 있었다. 시계탑의 문자판을 보려면 고개를 기울여야 할 정도였다. 지상에서 사라진 도서관은 지하에서 겨우 운영되고 있었고, 표지가 그을린 바카라, 가운데가 타서 구멍이 뚫린 바카라, 손을 대면 부서질 것 같은 바카라들이 서가에 기대어 있었다. 차마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보존된 바카라을 두고 사서들은 하루 종일 목록 카드와 남은 바카라을 한 줄씩 대조하며 사라진 바카라에 표시를 했다.


남은 것이 아니라 없어진 것을 세는 일.

렌츠가 도착한 독일은 그런 곳이었다.


렌츠는 미국인 법률가이자 조류학자였다. 그는 특별 임무라는 말만 듣고 이곳에 왔다. 하지만 그 특별한 임무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








장이브 주아네(Jean-Yves Jouannais)



장이브 주아네(Jean-Yves Jouannais)의 소설 『숲(Une forêt)』은 안타깝게도 공쿠르상 2차 후보작에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소재와 다루고 있는 주제만큼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주아네는 미술비평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전쟁과 폐허라는 주제를 다루어 왔다. 2008년부터 16년 동안 그는 한 달에 한 번 퐁피두 센터 무대에 올라, 전쟁에 관해 쓰인 글의 조각들을 읽고 해설하는 전쟁 백과사전이라는 공연을 진행했다. 무대 위에서 쓰이고 끝내 바카라이라는 콘셉트로 남지 않을 기록이라고 불렸다.


호메로스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광범위한 전쟁의 글을 글을 다루면서 그가 갖게 된 시선은 전쟁 그 자체라기보다 전쟁이 지나간 뒤에 남는 것들이었다.


무너진 건물,

쓸모를 잃은 무기,

그리고 그 잔해 사이에서 이어지는 이상한 삶.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그 시선이 머무는 곳은 1947년, 전쟁에 패배한 독일 브레멘 근교의 한 숲이다.



전쟁이 끝난 뒤 연합국은 독일 슬롯에서 나치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이 작업을 탈나치화(dénazification)라고 불렀다. 나치당과 관련 조직을 해체하고, 전범을 처벌하고, 행정과 교육과 문화 곳곳에 스며든 나치의 영향을 걷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수많은 독일인이 131개 문항의 질문지를 받아 언제 어느 조직에 가입했고 어떤 직바카라을 맡았는지 적어 냈다. 그 답에 따라 누군가는 온라인 게임을 잃었고, 누군가는 처벌을 받았다.


렌츠가 브레멘 시청의 탈나치화 위원회에 처음 출석한 날, 접수대의 여자는 고개도 들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새들의 변호인님



위원회 안건으로 올라온 사건은 사람이 아니라 새에 관한 것이었다.


브레멘 남서쪽에는 하스브루흐(Hasbruch)라는 숲이 있었다. 수령 천이백 년의 참나무가 자라는 오래된 숲이었다. 1930년대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곳은 나치 친위대 부대의 훈련장이었다.


수백 명의 군인이 매일 숲길을 달리고, 나무를 향해 총을 쏘고, 군가를 불렀다. 그 가운데에는 나치당의 당가였던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Horst-Wessel-Lied)〉도 있었다.


그런데 이 숲에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데 능한 새들이 살고 있었다. 군인들은 매일 같은 노래를 불렀고, 새들은 매일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1945년, 정권은 무너졌고 군인들은 숲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새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구관조는 15년에서 30년을 산다. 그렇다면 전쟁 중에 태어난 새들에게는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새들은 배운 소리를 새끼에게 가르치는 습성까지 가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하스브루흐 숲에서는 수십 년, 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 나치의 노래가 울려 퍼질 예정이었다.


위원회가 두려워한 것은 노래 한 곡이 아니었다. 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그 이념이 사람들의 말과 습관 속에 살아남아 언젠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위원회의 한 노인은 나치의 노래는 가사뿐 아니라 그 선율도 금지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숲(Une forêt)』 표지에 그려진 구관조



렌츠는 법률가이면서 새를 연구한 사람이었다. 그는 버지니아 군사학교에서 법학과 조류학을 공부했다. 그는 그곳에서 칠 년 동안 이안(Ian)이라는 회색앵무를 관찰했다.


이안은 160개의 단어를 알았고, 알파벳을 익혔고, 물건의 개수를 세고 일곱 가지 색을 구별했다. 렌츠는 ‘0’이라는 개념까지 가르쳤다고 믿었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나치의 노래를 부르는 구관조 재판은 난처하면서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위원회는 새들이 금지된 노래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렌츠는 새들이 노래의 뜻을 모른다고 맞섰다. 새들이 부르는 것은 가사 없는 선율이었고, 그 선율은 나치보다 훨씬 오래된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이라는 19세기 노래에서 왔고, 그 선율 역시 프랑스 혁명기 작곡가 메윌의 오페라 《요셉》에서 왔다고 맞섰다. 여기에 서기 에피 리히터는 메윌의 그 선율은 글루크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한 줄 더 보탰다.


같은 선율이 시대마다 다른 노래가 되어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숲에서 들리는 소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나치의 노래일 수도
혁명기 오페라의 한 소절일 수도
그리고 지금은 그저 새소리일 수도


렌츠는 노르망디의 일화도 꺼냈다. 1944년 여름, 철로를 따라 진지를 지키던 미군 대대가 일주일 내내 총알이 스치는 소리에 시달렸다. 총성은 없는데 쉭쉭거리는 소리만 이어졌다.


병사들은 이 정체 모를 소리에 참호 속에서 흙을 씹으며 잠들었다. 하지만 일주일 뒤에야 정체가 밝혀졌다. 한 달 사이 총알 소리를 흉내 내게 된 검은지빠귀들이었다.


그렇다고 어느 장교도 그 새들을 이적 행위로 군사 법정에 세우지 않았다. 더욱이 위원회도 새들이 범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새들도 죄는 없다.
그럼에도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위원회의 한 노인은 이렇게 되물었다.


만약 나치 포스터나 깃발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물건에 바카라임을 물을 수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없앨 것이다.


새들도 죄는 없다.

그럼에도 사라져야 한다.


논쟁은 몇 주에서 몇 달로, 다시 1년 넘게 이어졌다. 위원들은 영국군이 항구 창고에 남기고 간 홍차를 홀짝이며 같은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미세한 변주만으로 논쟁은 앞으로 나아가는 시늉을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숲에 찾아간 사람은 없었다. 새들이 실제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언제 노래하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숲에 가서 새끼들이 먹이를 받아먹는 소리라도 들어 보자는 렌츠의 말에 돌아온 것은 비웃음이었다. 새끼 울음소리는 이번 사안과는 무관하다는 말만 돌아왔다.


회의실 안에서 새들은 하나의 사안이 되어 있었다. 법 조항과 진술서와 금지된 노래의 족보 사이에서, 새들은 살아 있는 존재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리고 소설 끝까지 그 새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숲을 찾지 않는다. 렌츠의 산바카라길조차 언제나 숲과는 반대를 향하고 있었다.


브레멘에 머무는 동안 렌츠는 한 청년과 가까워졌다. 그가 묵는 여관 주인 이르마의 아들, 열아홉 살의 오스카 메제리처(Oskar Meseritscher)였다.


두 사람은 자주 함께 걸었다. 무너진 공장 터와 강가와 늪지를 지났다. 오스카는 늪에서 신석기시대의 미라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렌츠는 오스카의 영어를 가르쳐주었다.


전쟁 중에 무엇을 보았느냐는 물음에, 오스카는 영어로 대답하려다 그만두고 독일어로 말했다. 전쟁에서 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아버지조차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폭격이 시작된 뒤로는 지하실에서 먹고 자고 꿈꾸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나이가 너무 어려서 무기를 들지 않아도 되었던 게 다행이었다고 덧붙였다.


오스카의 아버지는 스탈린그라드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베르됭에서 전사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오스카는 알지 못했다. 남은 것은 전선에서 온 편지들 뿐이었다. 그 편지마다 열 번씩 등장하는 비행장 이름들뿐이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고 묻자, 오스카는 드물게 화를 냈다. 남이 어떻게 죽었는지 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라고. 자신은 그저 상상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1948년 2월의 어느 일요일, 오스카가 체포되었다. 누군가의 밀고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기 몇 달 전, 열여섯 살의 오스카는 나치 친위대에 들어갔고, 1945년 4월 26일 새벽에 영국군 포로 열두 명이 총살당했던 사건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오스카는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숲의 새들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다. 배운 노래를 그대로 되풀이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자신이 한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질문에 거짓으로 답할 수 있다.


렌츠는 위원회에서 그 모순을 지적했다. 2년이 지난 지금, 미국 점령지구에서 심사를 받은 사람의 절반 이상이 단순 추종자로 분류되었다. 주범 범주의 유죄율은 0.17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들 대부분은 바로 그 질문지 덕분에 혐의를 벗었다. 거짓으로 답했고, 위원회가 그 거짓을 믿어 주었기 때문이다.


렌츠는 언젠가 이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 질문지는 사람들에게 우편으로 발송되었다. 그렇다면 구관조들에게 질문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주소가 있었나?


인간은 질문지 위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었다. 새들에게는 거짓말을 할 기회도, 감출 죄도 없었다. 그렇지만 끝까지 피고석에 남아 있던 것은 새들이었다.


1948년 봄, 렌츠는 독일을 떠날 채비를 했다.


마지막 산바카라에서 그는 멀리서 폭발음을 들었다. 브레멘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첫 식사를 하다가 들었던 것과 같은 소리였다.


그때 그는 그것을 이미 지나간 세계의 메아리쯤으로 여겼다. 위원회 회의실에서도 몇 번이고 들었지만, 1년 동안 한 번도 그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리를 따라 걸어갔다.


연못가에서 남자 세 명이 낚싯대도 그물도 아닌 수류탄으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두 개씩 물속에 던질 때마다 갈가리 찢긴 장어 뭉치가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미군에게 수류탄을 받으면, 그 대가로 미군 장교 식당에 생선을 납품한다고 했다. 물가의 덤불 사이에는 뉴트리아 일곱 마리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남자들은 그것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 가족이에요. 펑, 한 번에 잡았어요.



수류탄은 저녁 식탁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폭발이 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1948년 5월 12일, 렌츠는 베를린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작품에서는 그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났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떠나기 일주일 전을 비춘다.


탈나치화가 공식적으로 끝났다고 선언된 직후, 미 육군 병참 중대와 공병대 병력이 하스브루흐 숲에 들어갔다. 샤무아 털 장식을 단 모자를 쓴 인근 마을의 독일인 산림 경비대가 그들을 도왔다.


한밤중이었지만 비행기 격납고를 위장하는 데 쓰던 거대한 그물로 나무들을 밑동부터 꼭대기까지 덮었다. 그물에 걸린 새들은 종을 가리지 않고 총에 맞거나 질식해 죽었다.


새벽이 되자 화염방사기가 등장했다. 사다리는 필요 없었다. 불길은 땅에서 가장 높은 가지 위의 둥지까지 닿았다.


질문지에 거짓말을 적은 사람들은 일터로 돌아갔지만,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새들은 불에 타 사라졌다.

숲은 마침내 조용해졌다.


그렇게 그날 사라진 것은 나치의 노래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