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만드는 작은 몸짓들, 『Joseph dans la nuit』
문학을 공부하고 서점에서 일하던 그롱도는 어느 날 갑자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 뒤로 8년을 길 위에서 보냈다.
그는 휴대전화도, 가진 돈도 없이 히치하이킹으로 도시와 도시 사이를 떠돌아다녔다.
누군가 그에게 무엇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면, 웃으며 엄지를 내미는 일이라고 답했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2022년 가을에도 그는 길 위에 있었다. 이란 시라즈(Shiraz)에서 파키스탄 라호르(Lahore)를 거쳐 인도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인도의 어느 해변에서 새해를 맞이할 계획이었다.
그 무렵 이란에서는 여성들의 복장 단속을 둘러싼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된 뒤 구금 중 숨졌고, 이를 계기로 여성의 권리와 국가의 강압적인 통제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다.
10월 12일 아침, 시라즈의 숙소 테라스에서 그롱도는 식탁 사이를 서성이는 남자 넷을 보았다. 흰 셔츠를 입고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방을 찾는 관광객인가 싶었다. 그런데 잠시 뒤 숙소 직원이 다가와 그들이 경찰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날 그롱도는 이란 정보부에 끌려갔다.
스페인 친구 아나(Ana)도 같은 날 붙잡혔다. 두 사람은 3년 전 조지아에서 처음 만났고, 시라즈에서 다시 만난 사이였다.
그들에게 씌워진 혐의는 외국을 위해 이란 내부의 정보를 모았다는 것이었다.
수사관들은 그롱도가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지역을 돌아다녔고, 휴대전화도 없이, 돈도 거의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또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도 의심의 대상이 됐다. 그롱도에게는 오랫동안 고수해 오던 여행 스타일이었지만, 수사관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올리비아 그롱도(Olivier Grondeau)의 첫 작품 『밤 속의 요셉(Joseph dans la nuit)』은 이란에서 구금되었던 최초 72일의 기록이다.
함께 붙잡혔던 아나는 136일 만에 풀려났지만 그롱도의 구금은 계속 됐다.
그는 자신의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2024년 2월 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2025년 1월에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프랑스 언론을 통해 직접 구금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그렇게 이어진 구금은 체포된 지 887일 동안 이어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옥중에 쓴 무거운 에세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내용은 그리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란의 시인 하페즈(Hafez)와 프랑스 낭만주의 시인 네르발(Nerval)의 시가 등장하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으면서 흥얼거린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Everytime〉과 고개를 무릎 사이에 처박고 머릿속으로 상영하던 〈반지의 제왕〉 이야기도 있다.
Youssef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어느 날, 쉰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샤합(Shahab)이 교도소에 들어왔다. 침울한 얼굴로 신의 이름을 되뇌는 그에게 그롱도는 별생각 없이 자신이 알고 있던 하페즈의 시 「길 잃은 요셉」 두 줄을 페르시아어로 읊어주었다.
'밤의 거처가 위태롭고 목적지가 아직 멀게 느껴지더라도, 끝나지 않는 길은 없으니 슬퍼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샤합은 그 시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롱도에게 코란 속 요셉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코란 12장에 등장하는 야곱의 아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유난히 많이 받았다. 이를 시기한 형제들이 그를 우물에 빠뜨렸고, 아버지에게는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했다.
우물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었는데, 그는 그곳에서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함께 갇힌 두 수감자의 꿈을 풀이해주기도 했다. 그중 한 사람이 풀려나 왕의 술을 관리하는 시종이 되었고, 왕이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말에 감옥에서 만난 요셉을 떠올렸다.
요셉은 왕의 꿈을 풀이하게 되고, 앞으로 닥칠 가뭄과 기근을 예지 했다. 이 계기로 풀려난 요셉은 이집트에서 관리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흉년이 닥치자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온 형제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샤합은 이야기를 끝내고 그롱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를 요셉의 아랍식 이름 '유세프(Youssef)'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롱도는 체포된 지 6일째 되던 날 정오에 다시 심문실로 불려 갔다.
상냥한 놈이라고 불렀던 남자가 벽을 향해 놓인 학교 바카라상에 그를 앉혔고, 흰 종이 한 묶음 위에 펜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질문을 하나씩 불러주었다.
네 삶에 대해서 작성하시오.
이번 이란 여행에 대해 작성하시고.
만난 이란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적고, 함께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시오.
점심을 먹인 뒤에도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시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시위에 참여했는가?
그롱도는 대학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다만 7번째 질문에서 그는 잠시 생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시위는 몇 주 전, 마흐사 아미니가 '죽었을 때' 시작되었다고 적었다.
그롱도가 그날 고른 동사는 '죽었다'였다.
'죽였다'는 쓰지 않았다.
그는 '죽였다'라고 쓰는 순간 자신의 구금이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죽었다'라고 표현했다.
이 일이 있고 몇 년이 지난 뒤 그롱도는 그날 끝내 쓰지 못했던 동사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사과의 문장 속에서 그녀와 함께 놓였다. 공식 이름인 마흐사가 아니라, 그녀의 쿠르드 이름과 함께였다.
용서해 줘, 지나. 그들이 너를 죽였다고 차마 쓰지 못했어.
Pardonne-moi, Jina, de n'avoir pas osé écrire qu'ils t'avaient tuée.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빛 한 줄도 시계가 되었다.
시라즈의 구금실에는 창문 대신 화장실 벽 꼭대기에 철망을 친 작은 환기구 하나가 있었다.
아침 열 시쯤이면 그곳으로 들어온 빛이 북쪽 벽에 가느다란 선을 그었다. 그리고 하루 동안 벽을 따라 조금씩 움직였다. 빛의 선이 함께 수감된 함자(Hamza)의 담요에 닿으면 정오가 가까워졌다는 뜻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도 소리가 울렸다. 점심을 먹고 두 시간쯤 지나 빛이 화장실 쪽 벽에 이르면, 선은 서서히 흐려지다가 사라졌다.
교도관들에게 시간은 묻지 마.
거짓말하라는 지시를 받았어.
그 방에 들어간 첫날, 먼저 수감되어 있던 파르자드(Farzad)는 그롱도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러주었다. 시간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안의 희망은 시계의 단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끌려가던 아침, 숙소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롱도는 오후 정도면 풀려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오후가 저물어 갈 무렵에는 밤이 조금 길어질 뿐, 날이 밝으면 보내줄 것이라고, 다음 날 저녁이 되자 오늘 밤이나 늦어도 내일 아침이면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 호송차 안에서 아나가 손가락으로 숫자 하나를 만들어 보여주었다.
21
그롱도는 그 숫자에 곧 의미를 붙였다.
며칠 뒤 10월 21일이 자신의 이란 비자가 만료되는 날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숫자와 날짜가 맞아떨어졌다. 21일이 되면 이란을 떠나는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는 교도소 안을 걸으며 상상했다.
얼마가 들든 21일에 풀려나면 비행기 표를 사서 떠날 계획이었다.
시라즈 공항에서는 이스탄불로 가는 직항편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이스탄불에 도착하면 넋이 나간 채 마르마라이 열차의 역들을 지나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로 갈 생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고 여기에서 겪은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이야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글을 쓰던 2층 창가에 앉아 부모님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화면에 부모님의 얼굴이 나타나면 걱정하지 말라고,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하고 싶었다.
10월 21일이 다가오자 그날에 기대는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전날부터 이미, 내일이면 풀려날 거라는 믿음마저 사라져 있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일도 이곳에서 보냈던 다른 날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잔시 뒤 생각을 고쳐 먹기로 결심했다. 혹시 그들이 아나에게 말한 것이 10월 21일이라는 날짜가 아니라, 구금 기간 21일이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11월 1일이었다. 하지만 구금 21일째 되는 날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하루를 세는 단위가 날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교도소 벽에는 그보다 먼저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남긴 막대가 빼곡하게 남아 있었다. 일곱 개씩, 열 개씩, 스무 개씩 묶여 있는 것도 있었고, 하루도 빠뜨리지 않은 듯 맞은편 벽까지 길게 이어진 흔적도 있었다. 그롱도는 막대가 191개나 이어진 자리를 바라보면서 이 선들을 그은 사람이 결국 풀려났다는 것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막대 그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표시는 오래 갇혀 있을 사람들이나 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벽의 낙서에 관심을 보이는 것조차 감시하는 이들의 눈에 의심스러운 행동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했다.
구금 28일째, 그는 닭뼈 하나를 손에 쥐고 벽 앞에 섰다. 그리고 빈자리를 찾아 막대 하나를 그었다.
오늘 하나를 그은 것은, 내일 또 하나를 긋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적어도 자신과 두려움 사이에 작은 몸짓 하나가 남을 것 같았다.
그는 지나간 날들을 따라잡듯 막대 스물여덟 개를 채워 넣었다. 그 앞에는 페르시아어로도 자신의 이름을 썼다. 그가 기억하는 한, 페르시아어로 자기 이름을 적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얼마 뒤 그롱도는 테헤란의 에빈 구금시설로 옮겨졌다.
장소가 바뀌자 하루를 붙잡는 방식도 달라졌다. 시라즈에서 벽에 막대를 그었다면, 테헤란에서는 하루에 단어 하나를 적기 시작했다.
같은 방에 있던 페이만은 요구르트 뚜껑의 얇은 알루미늄을 길게 접어 펜처럼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것으로 문을 긁으면 희미한 자국이 남았고,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면 다시 지울 수도 있었다.
그롱도는 그 펜으로 방 안쪽 문에 하루 한 단어씩 네르발의 소네트를 옮겨 적기 시작했다.
『키메라』의 첫 번째 소네트였다.
소네트는 모두 119단어였다. 앞으로 그는 넉 달 동안은 하루에 하나씩 쓸 무언가가 생겼다.
아무리 숨 막히는 날에도 그날을 지나야 할 이유가 하나씩 생긴 셈이었다. 그리고 120번째 날이 오면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은 아직 '꽃', '입맞춤', '포도덩굴', '세이렌' 같은 앞으로 써야 할 단어들 뒤에 가려져 있었다.
소네트는 매듭 119개가 달린 긴 밧줄처럼 느껴졌다. 그 밧줄이 자신을 어둠 밖으로 끌어올려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빠르게 추락하지 않도록, 어둠 속으로 조금씩 내려갈 수 있게 붙잡아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함께 지내던 발루치인 수감자 누레딘(Noureddine)은 몇 해 전 자신이 갇혀 있던 교도소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었다.
그는 몇 년 전 갇혀 있던 교도소에서는 침대에서 잘 수 있었다고 했다. 샤워실에는 문이 있었고, 마당의 작은 가게에서는 공바카라과 펜, 사탕도 팔았다고 했다.
그롱도가 자기가 좋아하는 과일을 얇게 펴 말린 젤리, 라바샤크도 있었냐고 물었다. 누레딘은 항상 있던 건 아니지만, 꽤 자주 있었다고 대답했다.
복도는 또 얼마나 긴지, 백 걸음을 걸어도 벽에 닿지 않는다고 했다. 그롱도는 그 말까지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생각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자신을 기쁘게 해 주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샤합은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 말고 그롱도에게 말을 걸었다.
"유세프, 손 줘 봐."
샤합은 그롱도의 손바닥에 난 선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이틀 안에 나갈 거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열쇠 소리와 함께 교도관이 문을 열고 들어와
"너, 짐 챙겨."
라고 말했다.
"넌 자유야. 마샤알라. 넌 자유야. 신이 너를 지켜주시시길."
동료들이 작별 인사를 속삭였다.
그롱도가 그 불안한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누군가 방에서 불려 나갈 때마다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어디로 가는지 교도관조차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늘 그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중에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누군가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풀려나서 갔지
더 이상 볼 수 없는 동료에게 그가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상상해 주는 것 정도는 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막상 자기 차례가 오자 그롱도 역시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이틀 안에 나갈 거라는 샤합의 말도 믿고 싶었다.
눈을 가린 채 교도관을 따라가자, 첫날 옷을 벗었던 창문 없는 방이 나왔다. 그곳에는 그를 데려온 것은 동료들 사이에서 '늙은이'라고 불리던 교도관이었다.
그는 보관해 두었던 청바지와 티셔츠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손으로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흉내를 내며 말했다.
그롱도가 옷을 갈아입자 늙은이는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끝났어. 끝났어. 이제 가는 거야.'
그러고는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는 다시 눈을 가린 채 어디론가 끌려갔고, 얼마 뒤 낯선 방의 바카라상 앞에 앉혀졌다. 눈앞에는 벽이 있었다.
옆 칸에서 들려온 기침 소리가 아나의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나, 너야?"
그리고 잠시 뒤 두 사람을 데리러 사람들이 왔다. 그롱도는 목이 메인 채 말했다.
"난 네가 풀려난 줄 알았어."
늙은 교도관이 손으로 그려 보인 것처럼, 그롱도는 정말 비행기를 탔다. 다만 행선지는 자유가 아니라 테헤란이었다.
기적처럼 아나와 나란히 앉았다. 창 아래로 긴 하얀 사막이 지나가는 동안 아나는 자신이 지난 몇 주 동안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라즈에서 머물렀던 집의 주인이 이란의 남부 도시 페르세폴리스(Persepolis)까지 차로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그녀는 주유소에서 경찰들에게 붙잡혔고, 그 뒤 며칠 동안 온갖 혐의를 뒤집어썼다고 했다.
아나는 구금되어 있는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하면서 듣던 콜롬비아 전통 노래 쿰비아(cumbia)를 자주 떠올린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둘은 잠시 그 가락을 흥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올라 아나에게 질문했다.
"아나, 그때 왜 21이라고 한 거야?"
아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가 처음 잡히던 날 호송차에서, 네가 손가락으로 21을 만들었잖아."
아나는 기억을 더듬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날의 신호를 다시 보여주었다.
열 손가락을 한 번 펼치고, 다시 한번 펼쳤다.
마지막으로 검지 하나를 세웠다.
"그때 막 지문을 찍었거든."
아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너도 그전 사무실에서 찍었잖아. 열 손가락을 두 번, 그리고 오른손 검지 한 번. 그저 나도 너처럼 지문을 찍혔다는 의미였어"
그롱도 역시 그 사무실에서 지문을 찍을 때는 이것이 마지막 절차라고 생각했다. 이제 서류가 닫히고,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이면 보내주리라고 믿었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숫자가 그롱도는 두 번의 미래를 만들어 주었다.
10월 21일까지.
그리고 스물한 번째 날까지.
12월 21일, 그롱도는 네르발의 소네트에서 71 번째 단어를 적었다.
포이보스(Phébus), 빛의 신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Mon front est rouge encor
du baiser de la Reine
나흘 뒤 성탄절이 되면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내 이마는 아직 여왕의 입맞춤으로 붉다"라는 문장이 가디라고 있었다.
그날 인터폰이 울렸다. 그리고 같은 방에 있던 니마(Nima)가 불려 나갔다. 교도관이 문을 닫고 니마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멀어질 때, 그롱도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마샤알라, 넌 자유야."
니마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말에 담긴 희망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방에서 가장 오래 갇혀 있는 사람은 그롱도가 되었다.
그날은 샤베 얄다(Shab-e Yalda)였다.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었다. 함께 방을 쓰고 있던 야샤르(Yashar)가 그것이 빛이 어둠을 이긴 것을 기념하는 아주 오래된 축제라고 알려주었다.
그날 가족 면회를 다녀온 야샤르는 가장 긴 밤 한가운데에서 울고 있었다. 어린 아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엄마에게 이 사람은 자신의 아빠가 아니라고 매달리며 말했다. 야샤르는 살이 빠져서 그런 거라고, 면도를 하지 못해 얼굴이 달라져서 그런 거라고 되풀이할 뿐이었다.
이튿날 새벽, 야샤르가 그롱도의 팔을 건드렸다.
"올리, 일어나."
문가에 교도관이 서 있었다.
"널 데리러 왔어."
몇 시냐고 묻자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쯤이라고 했다.
밖은 몹시 추웠다. 난로를 피운 작은 오두막에서 옷을 돌려받았다. 요구르트 뚜껑으로 만든 펜으로 종이쪽지에 적어두었던 시는 죄수복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가 가진 옷은 흰 티셔츠 한 장뿐이었다.
"그것밖에 없어?"
그롱도는 10월의 시라즈는 따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잠시 뒤 누군가 옷걸이에서 검은색 파카를 내려주었다.
그는 파카를 입고 다시 대기 의자에 앉아야 했다. 오 분쯤 지났을 때 눈가리개를 조금 밀어 올렸다.
앞에는 머리에 베일을 쓴 사람이 앉아 있었다.
새벽 시간이라 복도는 비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는 않았다.
그롱도는 아주 작게 쿰비아의 가락을 휘파람으로 불었다. 이번에는 그가 아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잘못 읽힐 리 없는 신호였다.
잠시 뒤 두 사람은 다시 차 뒷자리에 앉았다.
아나는 오른쪽에, 그롱도는 왼쪽에 있었다.
둘 다 눈을 가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데려가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21일은 어제였다. 일 년 중 가장 긴 밤도 지나가고 있었다.
차는 빠르게 달렸고,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아무도 손가락으로 숫자를 만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