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갇힌 미친 여자에게도
이름은 있었다

남의 말로 기억된 여자,『JE』

다가오는 월요일(10월 6일), 올해 공쿠르상의 두 번째 후보 명단이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달 최초로 발표된 16편의 소설 가운데, 한 편이 인공지능에 의해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지난 9월 25일 후보작에서 제외되었다.


논란이 되었던 근거도 흥미로웠다. 인공지능 생성 문장을 탐지하는 프로그램(Pangram)으로 작품을 분석한 결과 소설의 95%를 인공지능에 의해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왔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작가가 과거 발표한 글의 표절 문제까지 드러나면서 공쿠르 아카데미는 결국 작품을 후보 명단에서 제외했다. 물론 작가는 의혹을 아직까지 부인하고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그 작품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올해 공쿠르 후보작 가운데 릴리아 아센(Lilia Hassaine)의 『나(JE)』와 필리프 자에나다(Philippe Jaenada)의 『자벨 부두에 신원 미상의 여자(L'Inconnue du quai de Javel)』에서도 한쪽으로 쏠린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미친 여자 가운데 한 명이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살해된 뒤 타락한 여자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릴리아 아센과 그녀의 소설 『나(JE)』



아센의 『나』는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제인 에어(Jane Eyre)』에 등장하는 버사(Bertha)의 삶을 다룬다.


원작에서 버사는 로체스터의 첫 번째 아내로 손필드 저택의 다락방에 갇혀 살아가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로체스터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정신이 이상하고, 폭력적인 성격에, 통제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저택 안에서 기이한 웃음소리를 내고, 사람을 공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집에 불을 지른 뒤 지붕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다.


기이한 하지만 비극적인 방식으로 삶을 마감한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작품 속에서 그녀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로체스터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락방에 갇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로체스터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버사 그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한 부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작품 속 버사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는 이미지로 남게 되었지만, 1966년, 카리브해 출신 작가 진 리스(Jean Rhys)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에서 그녀를 다시 조명했다.

리스는 버사에게 앙투아네트 코즈웨이(Antoinette Cosway)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자메이카에서의 어린 시절과 가족, 로체스터를 만나기 이전의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60년이 지난 2026년. 아센은 앙투아네트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아직 들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로체스터와 자신 사이의 이야기였다.



필리프 자에나다와 그의 소설『자벨 부두에 신원 미상의 여자』



반면 실화를 바탕에 둔 『자벨 부두에 신원 미상의 여자』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시작한다.


1949년 9월 7일 새벽 1시 30분 무렵. 파리 15구 센강변 자벨 부둣가를 지나던 한 남자가 길가에서 젊은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여성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가방도, 신분증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흔적이 남아 있었고, 옷은 누군가 급하게 다시 입힌 것처럼 보였다.


이름조차 알 수 없었기에 신문은 '자벨 부두에 신원 미상의 여자'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다음 날 지문을 통해 신원이 밝혀졌다.

그녀의 이름은 루이즈 캉소(Louise Cansot)였다.


그녀는 프랑스 브르타뉴의 작은 도시 트레기에(Tréguier)에서 태어난 스물아홉 살의 여성이었다. 열여섯 살에 파리로 올라왔고 여러 일을 전전하다 몽파르나스의 화가들을 위한 모델로 활동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여러 화가가 그녀의 얼굴과 몸을 그렸고, 무대와 영화에도 잠시 모습을 보였던 이력을 갖고 있었다.


경찰은 그녀 주변의 여러 용의자들을 조사했지만, 사건은 결국 미제로 남았다.


그리고 75년이 지난 뒤 자에나다가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는 경찰 기록을 찾고, 당시 신문을 읽고, 파리의 장소들을 직접 걷고, 루이즈의 가족과 연인, 친구와 화가들을 추적한다. 소설은 오래된 살인사건을 다시 조사하는 동시에, 사건의 피해자로만 남아 있던 루이즈의 삶을 다시 따라가는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다.


그는 우연히 오래된 잡지 『탐정(Détective)』의 표지에서 루이즈를 발견했다. 사진 속 젊은 여성 위에는 '백 개의 초상을 가진 여자(La fille aux cent portraits)'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로운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았다. 남들과 똑같이 '누가 이 여자를 죽였을까?' 하는 호기심에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그의 관심은 살인범에서 점점 루이즈에게로 옮겨갔다.


루이즈는 왜 열여섯 살에 혼자 파리로 왔는지,

어떤 사람들과 지냈는지,

어떻게 모델이 되었는지,

왜 딸과 함께 살지 못했는지,

그녀에게 전후의 파리는 어떤 곳이었는지 등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도 살인사건은 단지 이야기의 출발점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사람들 입에 오르는 미제 사건이 아니라,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당시 젊은 여성들이 놓여 있던 현실, 피임과 낙태가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의 삶, 미혼모가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슬롯적인 조건, 전후의 주거와 노동 환경을 이해하고 나서야 그 시대를 살아간 한 여성, 루이즈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빈 복도 같은 이름


소재와 분위기는 사뭇 다른 두 작품이지만 주인공을 바라보는 묘하게 겹치는 시선이 있다. 비극의 두 여인이 실제보다 훨씬 간단한 이야기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품 속 버사의 모습, (왼쪽부터) 영화 『제인 에어, 2011』, 영화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1993』, 소설 『나, 2026』



우선 『나』에서는 그녀가 실제보다 훨씬 단순한 이미지로 남게 되는 과정이 아주 선명하게 보여준다.


1832년, 자메이카를 떠나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서였다.


앙투아네트는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 메이슨과 작별한 뒤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갑판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체스터는 그녀에게 승선권을 건넸다. 앙투아네트가 종이를 내려다보자, 그곳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버사 페어팩스 로체스터Bertha Fairfax Rochester


앙투아네트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고 말해보았지만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이 너무 복잡하고, 크리올(Creole)적이라고 대답했다. 크리올은 유럽계 혈통이지만 영국 본토가 아니라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자란 백인을 의미했다. 게다가 영국에서 생활하기에는 버사라는 이름이 훨씬 단순하고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물론 이름 하나가 바뀌었다고 해서 앙투아네트가 곧바로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로체스터는 영국에 도착한 뒤에도 계속 그녀를 버사라고 불렀고, 심지어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준비한 작업실을 보여주면서 언젠가 유명한 버사의 소설을 읽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농담까지 던졌다.


그렇게 아무 의미도 없었던 이름이 조금씩 그녀의 삶 안으로 들어왔다.


앙투아네트는 양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 새로운 이름으로 서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을 버사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버사가 더 흔하고 적절하다는 로체스터가 그녀에게 이야기한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루이즈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니었지만, 루이즈는 파리에서 모델과 무대 일을 하며 리즈(Lise)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녀를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버린 것은 이름보다, 죽은 뒤 그녀에게 붙기 시작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녀의 사건이 알려지자 당시 신문들은 루이즈를 다양한 방식으로 불렀다.


'백 개의 초상을 가진 여자'

'몽파르나스의 모델'

'방 3호의 고독한 여자'

그리고 때로는 '타락한 여자'로 그녀를 불렀다.


쏟아지는 기사 속에서 그녀의 삶은 점점 한 편의 익숙한 이야기로 정리되어 갔다.


지방에서 올라온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파리의 예술가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남자들과 술에 빠져 점차 삶이 무너져 내리다가, 결국 어두운 센강변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스물아홉의 삶은 파리의 화려함에 휩쓸려 몰락해 가는 타락한 여성으로 기억되었다.


따지고 보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젊었고, 아름다웠고, 그래서 파리의 예술가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때로는 술에 취하기도, 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몇 개의 사건이 만들어낸 자극적인 수식어가 그녀의 삶 전체를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에서 이렇게 이미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진 삶을 다시 조명하는 방식은 무척 직접적이다. 작품의 주인공, 앙투아네트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그녀는 영국 손필드 저택의 다락방에 갇힌 채 자신의 삶을 직접 글로 써 내려간다. 자신이 어떻게 자메이카를 떠나 로체스터와 함께 영국에 오게 되었고, 결국 이곳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기억 속에서 하나씩 되짚어 보게 된다.


앙투아네트는 젊은 시절부터 소설을 쓰고 싶어 했지만 제대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녀가 다락방에 갇힌 뒤에야 비로소 자신에게 글을 쓸 시간과 써야 할 이유가 생겼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온 길을 다시 되돌아봐야 했다. 앙투아네트는 자메이카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가족, 자신을 돌봐준 크리스토핀, 크리올 여성으로서 겪었던 혼란과 폭력, 그리고 로체스터를 처음 만났던 순간과 그에게 마음이 끌렸던 순간까지 기억을 더듬으며 직접 써 내려갔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로체스터는 처음부터 폭력적이지 않았다. 때로 다정했고, 앙투아네트를 배려하는 자상한 남자였다. 그녀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작업실을 별도로 마련해 줄 만큼 세심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의처럼 보였던 행동이 통제가 되고, 사랑에서 비롯된 관심이 상대를 자신의 방식에 맞추려는 태도로 변해갔다.



루이즈의 사진과, 그녀를 모델로 한 작품, 그리고 잡지에 실린 그녀의 기사



자에나다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루이즈의 삶을 다시 들여다본다.


앙투아네트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 없는 사람에게 남아 있는 것은 기록뿐이었다. 경찰 보고서와 신문기사, 호텔 장부와 주소록, 법원 문서와 가족관계 기록, 루이즈가 남긴 편지의 초안, 그녀가 모델이 되어 그려진 그림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에나다는 그런 흔적들을 하나씩 따라갔다. 파리 경찰 기록보관소에서는 당시 수사바카라임자가 작성한 약 300쪽 분량의 사건기록도 발견했다. 75년 동안 낡은 서류철 안에 남아 있던 기록을 읽고, 당시 경찰이 찾아갔던 장소를 다시 걷고, 조사서와 신문기사 속에 한두 줄로 남은 사람들의 삶을 다시 찾아갔다.


루이즈는 1945년 딸을 낳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화가 랑슬로 네이(Lancelot Ney)였다.


처음 자에나다는 당시 기록과 주변 정황상 루이즈가 잠시 만났던 남자에게 임신한 뒤 버림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자료를 더 들여다볼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랑슬로의 아내가 파리를 떠나 있던 동안 두 사람은 호텔에서 일주일씩 함께 지내는 일도 있었다. 루이즈가 남긴 편지에서는 그에 대한 깊은 사랑의 감정도 남아 있었다.


루이즈는 아이를 임신한 뒤에도 랑슬로가 적어도 아이의 아빠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고, 랑슬로는 경찰 조사에서 나탈리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사랑이라고 고쳐 쓴 기억


『나』에서 앙투아네트와 로체스터의 관계가 가까워지던 무렵, 로체스터는 스패니시타운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앙투아네트와 몇몇 사람을 초대해 점심을 함께 먹었다. 분위기는 즐거웠고, 앙투아네트 역시 그날을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일행은 정원을 산바카라했다. 그곳에서 일행들과 잠시 멀어진 사이 두 사람은 처음으로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 순간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의 목에 입을 맞추듯 다가가 옷깃을 어깨까지 조금 내린 뒤, 갑자기 이빨을 세워 그녀의 살을 깨물었다. 앙투아네트는 놀랐지만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일행들이 눈치챌까 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당시의 앙투아네트에게 그 행동이 당황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로체스터가 자신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욕망의 표현처럼 느꼈다.


하지만 이후 다락방에서 그날을 돌아보면서 그녀는 또 다른 감정에 휩싸였다.


그때 그녀는 분명 당황스러웠고 아팠다. 그의 행동에 작은 폭력성이 담겨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지 못했다.


앙투아네트는 로체스터에게 보낸 편지에 그날의 기억을 사랑의 표현으로 바꾸었다. 그녀는 로체스터가 자신을 깨물었던 순간을 자주 떠올리고, 그 흔적이 너무 빨리 사라진 것이 때로는 아쉽다고 적었다.


그리고 영국, 손필드 저택의 다락방에서 그녀는 당시 자신이 왜 로체스터의 행동을 사랑과 욕망의 표현처럼 적었는지를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


그녀는 아팠고 불편했던 기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너무 원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앙투아네트에게는 적어도 자신의 기억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루이즈에게는 그마저도 없었다.


하지만 루이즈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설명해 줄 수도 없었다.


결국 그가 도달한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모른다.


자신이 자료를 통해 그려낸 루이즈가 있었지만, 실제 그녀가 자신이 그려낸 그 모습이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빈칸을 끝내 채우지 않기로 했다. 기록이 끊기는 순간마다 그는 빈자리를 자신의 상상, 혹은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추론으로 완성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이야기가 도착하는 곳


『나』의 마지막에서 앙투아네트는 자신이 쓴 이야기를 아들 피에르에게 전해주려고 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들을 찾아가는 길에 앙투아네트는 자신이 써온 원고를 떠올렸다.


로체스터와의 관계와 자신이 겪은 고통, 그동안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시간을 기록한 글을 피에르의 생일 선물로 주려고 했다. 이야기는 자신의 것이지만, 동시에 조금은 아들의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앙투아네트가 영국 북부의 황량한 들판 끝에서 마주한 것은 아들이 아니었다. 그의 무덤이었다.


앙투아네트는 이제 자신이 써온 이야기까지 모두 불태우려 했다. 자신이 남긴 글도 더는 세상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은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끝이 났다.


수백 페이지 동안 앙투아네트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던 이야기가 멈추고, 1847년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다시 등장한다.


손필드 저택에 불이 났고, 로체스터는 지붕 위에 선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앙투아네트는 『제인 에어』 속 문장 안에서 다시 미친 여자가 되어 지붕에서 떨어졌다.


반면 『자벨 강변의 이름 모를 여자』의 마지막에는, 오래전 사라진 루이즈의 딸 나탈리를 만나게 된다.

여든 살의 나탈리는 파리의 비스트로에 앉아 자에나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나는 평생
내게 생물학적인 어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어요



나탈리에게 루이즈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 어렸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낡은 사진 한 장과 어린 시절 우연히 읽었던 오래된 신문기사에 대한 흐릿한 기억 정도였다.


그 기사 속 루이즈는 남자들과 아무렇게나 관계를 맺고, 술집에서 돈을 탕진하고, 자신의 아이마저 사실상 버린 여자였다. 그리고 결국 어두운 강변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은 매정한 여인이었다.


나탈리는 거의 75년 동안 그것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가지고 살아왔다.


자에나다는 그런 나탈리 앞에서 자신이 실제 루이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냈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자료를 통해 적어도 몇 가지는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루이즈는 딸의 존재를 숨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증언과 그녀는 딸을 무척 사랑했다는 기록, 가난했고 안정적으로 머물 곳조차 없어 함께 살지는 못했지만, 아이의 아버지인 랑슬로가 나탈리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이도록 여러 차례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탈리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에는 굳은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며 자에나다를 경계했다. 그러다 루이즈가 거칠고 쉽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도 쉽게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나탈리와 딸 카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나탈리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경계심은 조금씩 풀렸고, 오랫동안 안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만남을 마치고 딸과 함께 돌아가는 길에 나탈리는 자신이 아직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남겼다. 너무 늦기 전에 자에나다를 만나,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이런 이야기들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비스트로를 나와 작별 인사를 하던 자에나다는 나탈리에게 입을 맞춰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탈리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한쪽 뺨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른 쪽 뺨도 내밀었다.


두 사람과 헤어진 자에나다는 푸른 하늘 아래 루이 블랑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루이즈는 오래전에 시간 속으로 사라졌고, 나탈리는 이제 어머니를 직접 보았던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았지만, 자신이 방금 입을 맞춘 그 뺨에, 오래전 루이즈도 입을 맞추었을 것이다.


같은 뺨.


그리고 그는 루이즈의 붉은 립스틱을 떠올렸다.






최근 프랑스 소식을 하나 더 전하자면, 지난 9월 말부터 교사 부족과 과밀학급, 낙후된 학교 환경에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하는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프랑스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이들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는 지보다, 표현 방식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과격하다 말하고, 기성세대들은 힘으로 그들을 누르려 하지만, 투쟁의 민족답게, 그들이 배운 대로, 의견 없이 말을 잘 듣는 학생이 아니라,

설령 틀리더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개인이 되기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언제나 옳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다음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내가 내린 판단 역시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아직 알 수 없는 곳에는 너무 성급하게 답을 만들어 넣지 않는 것.


생각해 보면 『나』와 『자벨 강변의 이름 모를 여자』가 끝까지 붙잡고 있던 것도 바로 그런 태도였다.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말속에서 다락방에 갇힌 미친 여자 앙투아네트는 타락한 모델이라고 낙인찍힌 루이즈를 있는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에 다시 조금의 여백을 돌려주는 시간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