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에

『Chronique d'un royaume perdu』,remanence

소니아 드빌레르(Sonia Devillers)가 사라진 피아노의 흔적을 하나씩 더듬으며 가족의 시간을 복원해 나갔다면, 아난다 데비(Ananda Devi)의 『잃어버린 왕국의 연대기(Chronique d’un royaume perdu)』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낸다.


과거를 기억하는 이정표가 되는 일련번호는 없지만, 대신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와 오래된 공간, 그리고 그곳에 남겨진 흔적들이 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가?

황폐해진 현실 속에서도 온전한 채 남아 있는 비현실 때문에.

부름과 피에 둘러싸인, 그들의 모험적인 우회로들 때문에.

선택되었으나 끝내 닿지 못한 것 때문에,
도약이 시작된 물가에서 마침내 다다른 기슭까지,
생각할 틈도 없이 사라져 가는 현재 때문에.

미친 듯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가
나보다 먼저 죽어갈 한 별 때문에.

— 르네 샤르(René Char), 「잔존(Rémanence)」


작품을 펼치면 가장 처음 맞이하는 것은 르네 샤르의 시 한 구절이다.


사람이 떠나고 시간은 흐르고, 남아 있는 모든 것은 이미 황폐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기억, 데비의 소설은 바로 그런 기억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그 시작에는 소설보다 훨씬 오래전에 작가 자신이 마주했던 한 장소가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처음 자신에게 찾아왔던 때를 회상한다.


1980년, 인류학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그녀는 모리셔스(Mauritius) 남부의 사탕수수 농장에 남아 있던 캠프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노예제 시기 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에서 끌려온 사람들, 그리고 그 뒤 계약노동자로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었다.


당시에도 그 후손들이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지역을 잘 알고 있던 한 노인이 스스로 안내자를 자처해 데비를 여러 캠프로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노인은 그녀에게 르 부숑(Le Bouchon)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질문 끝에 그곳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고 덧붙였다.


르 부숑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데비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가족은 그곳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트루아 부티크(Trois Boutiques)에서 살았다. 그녀는 매년 르 부숑의 작은 별장을 찾곤 했다. 그녀의 기억 속 당시 르 부숑은 울창한 나무와 알로에 사이에 숨어 있어 찾아가기조차 쉽지 않은 곳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트루아 부티크를 떠나온 뒤로는 그곳을 다시 찾을 일이 없었다.


데비는 노인과 함께 르 부숑을 찾았다.


그곳은 어느새 하나의 마을이 되어 있었다. 주민들은 데비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자신들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르 부숑 사람들의 조상은 크게 두 갈래에서 시작되었다. 한쪽은 백인 계통과 흑인 계통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작은 마을 안에서 거의 자급자족하며 지냈고, 여러 세대에 걸쳐 서로 결혼하면서 두 계통의 사람들은 계속 뒤섞였고, 이제 어느 한쪽으로 나누기 어려울 만큼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건네받은 이야기는 몇 줄의 계보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얼굴과 오래된 기억,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들이 뒤섞여 르 부숑이라는 장소의 시간을 이루고 있었다.


데비는 결국 이 이야기를 박사 논문에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언젠가 자신이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쓰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라세(Grasset) 출판사의 올해의 작품, 아난다 데비의 『잃어버린 왕국의 연대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르 부숑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한 노인의 목소리 속에서 되살아나는 소설이 되었다.


작품 속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늙은 파울로(Paulo)이다. 그는 자신의 손녀 비르진(Virgine)을 앞에 두고 르 부숑의 오래된 역사를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거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자유를 활용했다고도 설명했다. 그것은 이야기꾼에게 허락된 권리와도 같았다.


그리고 파울로는 그 이야기를 르 부숑이 생겨나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사탕수수 농장이 섬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던 1830년대의 모리셔스였다. 당시에는 노예제가 막 폐지되었지만, 과거 질서에 대한 흔적은 여전히 섬 곳곳에 남아 있던 시기였다.


모리셔스는 1810년 영국의 지배 하에 들어갔고, 1835년에는 공식적으로 노예제 폐지가 확정되었다. 하지만 자유가 곧바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해방된 노예들은 다시 몇 년 동안 도제(apprentissage)라는 이름으로 농장에 묶여 있어야 했고,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부족해진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인도로부터 계약노동자들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뒤몽테(Dumontais)는 모리셔스 남동부에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을 소유한 부유한 백인 농장주였다. 그의 농장은 2,000 아르팡(arpent, 과거 프랑스에서 사용하던 단위, 1 아르팡 = 약 1,300 평)이 넘었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비외 부크(Vieux Bouc), '늙은 숫염소'라고 부르는 남자가 있었다. 스무 살 무렵 쇠사슬에 묶인 채 이 농장으로 끌려왔던 흑인 남자였다.


그는 노예 신분에서 벗어난 뒤에도 그는 농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곳에는 마담 뒤몽테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을 다루는 데 능숙했던 비외 부크는 마담 뒤몽테가 말을 타러 나갈 때마다 동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졌다. 당시 모리셔스에서는 백인 여성과 노예 출신 흑인 남성의 관계는 금기 이상으로 범죄 행위처럼 여겨졌다. 백인 농장주의 아내가 흑인 노예 남성을 연인으로 선택하는 것 자체가 인종적, 그리고 슬롯적 위계를 뒤집는 행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쉽게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둘의 관계는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시드니(Sydney), 밀렌(Mylène), 레몽(Raymond)이라는 세 아이가 태어났다.


뒤몽테는 자신이 아이들의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20년이 넘도록 뒤몽테의 자녀로 그의 집에서 자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 아이들은 자신들이 그 집에 완전히 속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밀렌에게 그 사실을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거울이었다.


열두 살이 되던 어느 날, 밀렌은 복도를 지나가다 큰 거울 속에 비친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순간 하녀가 서 있다고 생각했다. 목이 말랐던 그녀는 물을 부탁하려 손을 들었다가, 그 모습이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멈춰 섰다.


그녀는 거울 가까이 다가가 얼굴과 입술, 머리카락을 천천히 만져보았다. 그리고 곧장 방으로 달려가 어머니의 초상화를 가져왔다.


밀렌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 옆에 어머니의 초상화를 나란히 놓았다.


그제야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자신은 지금까지 믿어온 모습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밀렌에게 자신이 살고 있던 집도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했던 방과 가구들 사이에서 자신은 더 이상 그 집의 딸이라기보다, 잠시 머물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얼마 뒤 함께 케이크를 먹던 자리에서 그녀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는 한마디의 말로 드러났다.


밀렌은 뒤몽테를 무심코 그를 '무슈(Monsieur)'라고 불러 버린 것이다.


바뀐 호칭에 뒤몽테는 잠시 의식했지만, 곧 자신에게도 그 편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원한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부르라고 했다.


그날 이후 밀렌은 더 이상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무슈가 되었다.


시드니에게 그 경계는 훨씬 더 잔혹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어느 날 저녁, 손님들과 함께 식사하던 자리에서 뒤몽테가 아껴두었던 비싼 와인이 떨어졌다는 말이 나왔다. 그때 시드니가 웃으며 자신이 마지막 남은 와인을 마셨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함께 웃었다.


하지만 뒤몽테에게 그 웃음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는 손님들 앞에서 자신이 조롱당했다고 느꼈고, 그 순간 시드니를 향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뒤, 뒤몽테는 시드니를 집 뒤뜰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오래전 노예들을 묶어두던 기둥이 남아 있었다.


뒤몽테는 시드니를 그 기둥에 결박하게 한 뒤 직접 채찍을 들었다. 몇 병의 와인 때문에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한 벌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뒤몽테는 세 아이의 출생에 얽힌 진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분노와 거부감은 이미 시드니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들이라고 믿어왔던 시드니를 노예들이 묶였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웠다.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옛 노예들의 캠프에는 또 다른 두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윌리(Willie)와 메리(Mary)는 한때 노예였던 제니(Zénie)와 그녀의 남편 페리시테(Félicité)의 아이들이었다.


사실은 알 수 없었지만 비외 부크는 이 아이들 역시 자신의 자식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비외 부크의 주장이 맞다면, 큰 집에서 뒤몽테의 자녀로 자란 시드니와 밀렌, 레몽, 그리고 옛 노예들의 캠프에서 자란 윌리와 메리는 모두 같은 아버지의 피를 나누고 있는 셈이었다.


한쪽은 농장주의 저택에서 자랐고, 다른 한쪽은 노예들이 살아가는 캠프에서 자랐다. 그리고 서로 전혀 다른 자리에서 자란 다섯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서로의 세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드니는 캠프를 자주 드나들다가 메리를 만났다. 밀렌은 뒤몽테의 농장에 잠시 정원사로 일하게 된 윌리와 가까워졌다.


그리고 레몽 역시 이웃 농장의 딸 마그리트와 사랑에 빠졌다.


그 무렵, 뒤몽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사실들도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장남 시드니를 좋은 백인 가문의 딸과 결혼시키려 했다. 서재에 앉아 혼처로 적당한 집안들의 이름을 적어 내려가던 어느 날, 우연히 창밖에서 밀렌과 윌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뒤몽테는 순간 당황했지만 애써 그 장면을 외면했다. 그리고 준비해 둔 명단을 바탕으로 여러 가문에 시드니의 혼사를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잇따른 거절이었다.


어느 집도 분명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거절 편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던 뒤몽테에게, 그동안 따로 떨어져 있던 장면들이 조금씩 하나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노예들을 묶던 기둥에 세워 채찍질했던 시드니,

창밖에서 윌리와 함께 있던 밀렌,

그리고 마그리트와 결혼하려는 레몽.


뒤몽테는 서재에 틀어박혀 지난 20여 년의 시간을 거꾸로 되짚기 시작했다. 아내가 말을 타러 나가던 시간과 비외 부크, 자신과 거의 관계를 맺지 않았던 시기에 이어졌던 임신, 그리고 세 아이의 얼굴까지.


마침내 그는 시드니와 밀렌, 레몽을 불렀다. 그리고 그제야 세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뒤몽테는 마침내 오랫동안 자신의 자녀라고 믿어온 아이들이 사실은 비외 부크와 아내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사라져 버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잊혀.
다시 내 눈에 띄면
쇠사슬을 채워버릴 테야.
나는 그냥 조용히 죽고 싶다.


뒤몽테는 세 사람을 집에서 내쫓았다. 자신의 땅 어디든 좋으니 최대한 멀리 가서 살고,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집에서 쫓겨난 셋에 메리와 윌리가 함께했다. 마그리트도 함께 하고 싶었지만, 레몽은 아직 그녀를 데려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섯 사람은 자신들이 살아온 뒤몽테의 저택, 그리고 오래된 노예들의 캠프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향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뒤몽테의 영지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한 번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땅이었다. 따로 나 있는 길도 없었고, 빽빽한 숲과 덤불을 헤치고 습지를 지나야 했다.


거리로만 보면 뒤몽테의 저택에서 십여 킬로미터 남짓이었지만,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숲과 늪 때문에 그 길은 훨씬 멀게 느껴졌다.


정해진 길도 없이 남쪽으로 나아가던 중, 레몽이 먼저 이상한 장소를 발견했다.


숲 속에서 들려오는 비둘기 울음소리를 따라 일행에게서 잠시 벗어난 그는 작은 연못 하나와 마주쳤다. 연못의 바닥에는 푸른 현무암이 깔려 있었다. 돌들은 자연이 우연히 만들어놓았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일정한 무늬를 이루며 맞물려 있었다.


한때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돌아와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다시 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들에게 덩굴과 커다란 잎에 뒤덮인 오래된 건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배당이었다.


지붕은 거의 사라지고 돌로 쌓은 벽만 남아 있었다. 검은빛이 도는 단단한 목재인 흑단으로 된 들보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었고, 토끼와 고슴도치, 쥐 같은 동물들이 안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떠난 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연이 천천히 건물을 되찾은 듯한 모습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과는 전혀 다른 침묵이 내려앉았다. 창가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벽에는 오래된 십자가가 남아 있었다.


그때 윌리가 예배당의 돌에 손을 댔다.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밀려왔다. 불에 덴 듯한 고통과 설명하기 어려운 증오가 돌을 통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윌리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풀 사이로 밀어 넣고, 돌과 돌 사이의 틈을 더듬으며 그곳에 남아 있을 또 다른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래전에 그곳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예배당이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들려주었다.


돌을 나르던 사람들은 자유로운 모습이 아니었다. 무거운 돌을 발목에 매단 채 움직여야 했고, 머리 위에도 화산암을 이고 날라야 했다. 그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손을 등 뒤로 묶은 채 이빨로 잡초를 뽑게 했다. 저항한 사람들에게는 더 잔혹한 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윌리는 자신이 예배당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무너진 건물을 고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고통을 알게 된 이상, 그 흔적을 그대로 버려두고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 기억을 다시 세우고, 되갚을 수 있는 것은 되갚아야 한다고 느꼈다.


밀렌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과거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왜 윌리의 바카라임이 되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윌리는 자신만의 바카라임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그 일에 바카라임이 있고, 되갚을 수 있는 것은 되갚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밀렌에게 눈앞의 예배당은 오래된 돌과 무성한 풀, 반쯤 썩은 십자가만 남은 폐허일 뿐이었다.


윌리도 당장 그곳에 남지는 않았다. 예배당을 다시 세우겠다는 결심을 품은 채, 일단 다른 네 사람과 함께 다시 길을 나섰다. 그가 실제로 돌을 다시 쌓기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뒤의 일이 되었다.


다섯 사람은 다시 남쪽을 향했다.


해가 저물 무렵, 길게 이어지던 숲이 마침내 끝나고 그들 앞에 바다가 나타났다. 두 갈래로 뻗은 바위가 작은 만을 감싸고 있었고, 바깥에서 밀려온 파도는 그 사이에서 부서졌다.


마치 두 바위 사이가
바다를 막는 마개 같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드니가 말했다.


그리고 메리가 웃으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


르 부숑(Le Bouchon)


프랑스어로 '마개'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다섯 사람이 새롭게 살아갈 장소에 처음으로 이름이 붙었다.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의 파리』에서 건축 자체를 인류가 오랫동안 써 내려온 하나의 거대한 바카라처럼 바라보았다. 종이가 인간의 기억을 보관하기 전에는 생각과 믿음, 한 시대의 흔적이 돌 위에 새겨졌고, 그렇게 건물은 자신을 만든 사람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데비의 『잃어버린 왕국의 연대기』에서도, 소니아 드빌레르의 『전설의 피아노』에서도 사라진 세계는 뜻밖의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한쪽에는 숲 속 폐허를 이루고 있는 오래된 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텅 빈 집의 마룻바닥에 피아노가 남긴 작은 홈이 있다. 이미 사라진 세계에서 남겨진 것은 그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 흔적을 바라보고, 손을 대고, 그곳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순간 끊어진 듯 보였던 시간은 다시 이어진다.


작품 끝자락에 데비는 짧은 문장을 남긴다.


Parce que tout demeure. 모든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장과 드빌레르의 처음 자크가 돌아온 빈집의 장면은 오묘하게 닮아 있다.


전쟁이 끝나고 식민지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 시간을 살아간 사람들의 기억과 상처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과거를 어떻게 짊어질 것인지는 개인의 몫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