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쿠르 후보작으로 읽는 2026 프랑스 문학
조금 길었던 여름 끝에 올해 공쿠르상 1차 후보작 16 편이 발표됐다.
개인적으로는 지나가다 한 번쯤 마주쳤던 작가들의 이름도 몇 보였지만, 대부분 익숙지 않은 작가들이었다.
프랑스에는 매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랑트레 리테레르(rentrée littéraire)'라고 불리는 시즌이 찾아온다.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수백 권의 신작이 짧은 기간 동안 한꺼번에 출간된다.
바로 이맘때 서점에 들어서면 입구 테이블 위에는 새 소설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신문과 잡지의 지면도 신작을 소개하는 기사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프랑스에서 독서의 계절을 맞이하는 또 다른 방식은,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어떤 바카라들이 공쿠르를 비롯한 여러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지 지켜보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가 상을 받았는지보다, 어떤 작품들이 후보 목록에 이름을 올렸는지를 더 관심 있게 지켜보는 편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몇몇 작품과 작가의 이름을 메모할 수 있고, 또 그해 프랑스의 문학계가 어떤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권의 바카라만으로 한 해의 프랑스 문학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공쿠르 후보 목록을 살펴보는 일이, 나에게는, 매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찾아 읽는 것처럼 그해 문학의 분위기를 가늠해 보는 작은 습관이 되었다.
올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우선 올해도 새로운 세계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보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과거의 것들이 지금 우리의 삶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를 바라보게 만든다.
작년 공쿠르상 수상작과 비슷하게 가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소재의 작품도 보이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감정을 다룬 이야기도 후보에 올랐다.
사라진 사람이나 잃어버린 사물을 다시 추적하는 작품은 언뜻 보면 파트릭 모디아노의 작품 세계를 떠올리게 만들고, 자신들이 태어난 곳을 떠나 국경을 넘는 이야기들은 프랑스 문학에서 오래도록 반복되어 온 이주와 망명의 서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조금 더 오래된 시간을 향하는 작품들도 있다. 전쟁과 식민주의,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벌어진 국가의 폭력은 프랑스 문학에서 낯선 소재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해서 돌아오는 이유는 과거의 사건을 다시 설명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전쟁은 끝나고 식민지는 사라졌지만,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이 남겼던 선택과 침묵, 기억과 상처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가족 안에서 다음 세대로 건너가고, 어떤 것은 한 도시의 풍경이나 오래된 기록 속에 남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과거를 다루는 소설은 종종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주목을 받는다.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
지금의 나와
정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록 속에서는 이미 끝난 사건이 한 가족의 침묵이나 한 도시의 풍경,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현재형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가족에게서 받은 것.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남은 것.
떠나온 장소에서 가지고 온 것.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전의 역사에서 건너온 것.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한 곳에서 만난다.
남겨진 것들.
얼마전 한 세기 가까이 지난 누군가의 행적이 어느 날 증손녀의 이름 옆에 다시 놓였다.
당연히 조상의 선택이 후손의 죄가 될 수는 없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족사에 대한 무지라는 문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이 우리에게는 남아 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 불편함을 묻고 앞만 보며 갈 것인지,
아니면 과거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인 듯하다.
과거로부터 좋은 것만 골라 물려받을 수 없다면,
가문의 명예와 성취를 자신의 역사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역사 안에 함께 들어 있는 불편한 과거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
그 지지부진한 시간을 직접 겪겠다고 선택한 프랑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는 결국 승전국의 자리에 섰다. 그러나 그 승리의 기억 뒤에는 1940년의 패배와 독일 점령, 그리고 비시 정권의 점령국에 대한 협력이라는 또 하나의 역사가 함께 남아 있었다.
전후 프랑스가 오랫동안 가장 앞에 세웠던 기억은 레지스탕스였다. 레지스탕스는 독일의 점령과 비시 정권에 맞서 지하조직을 만들고 정보 전달, 선전, 무장 투쟁 등을 벌였던 저항 운동을 말한다. 그리고 그 정항은 독일에 맞서 싸운 프랑스의 이야기는 국가를 다시 세우는 중요한 기억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야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과거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독일군과 협력했던 사람들, 비시 정권 아래에서 박해받았던 사람들, 그리고 프랑스 경찰의 손으로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졌던 사람들까지.
전쟁은 승리로 끝났지만, 그 안에도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문학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그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고, 자신들이 무엇을 외면해 왔는지를 조금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최근 프랑스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앞으로 몇 주 동안 16편의 후보작들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작품을 읽어보고 다뤄볼까 합니다.
시즌제처럼 몰아서 다루고 싶지만, 읽지 않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라서 이번에는 조금 긴 호흡의 연재 형식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바카라들은 주문해 놨으니 너무 늦지 않게 작품에 대한 내용을 포스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