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사랑하면서도 끝내 외롭다고 말할까?

롤랑 바르트와 아니 에르노가 바라본 관계 속 외로움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화가 끊긴 것도, 관계가 끝난 것도 아니지만, 그 막연한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우리는 오히려 더 많은 말을 꺼낸다.


감정을 털어놓으면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아 삼키고, 오해받을 것 같아 지우기로 한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주제를 골라 그 안에 복잡한 감정을 숨긴 채 괜찮아 보이는 말들만을 건네게 된다. 오늘 나눈 이야기는 날씨와 온라인 게임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찾아오는 혼자만의 시간. 함께 있지만 가장 깊숙한 곳에는 아무도 없다.


어쩌면 외로움은 혼자 있을 때만 오는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랑에 빠졌을 때 더 선명해지는 감정이다. 기대했기 때문에, 닿고 싶었기 때문에, 이해받고 싶었기 때문에 생기는 외로움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왜 사랑하면서도 끝내 외로울까?' 였다.


*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이 질문에 가장 먼저 도착해 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서문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오늘날 극도의 고독 속에 놓여 있다


작품 속 사랑하는 사람은 늘 누군가를 향해 있다. 약속 장소에서 상대를 기다리고, 전화가 오기를 바라고 수화기 곁을 떠나지 못하고, 떠난 사람에게 속으로 계속 무언가를 말한다.


누군가를 향해 있지만, 그리고 속으로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대부분 혼자다.


그는 그 외로움을 드러내는 일조차 망설인다.


바르트는 사소한 일로 울고 난 뒤, 붉어진 눈을 감추려고 검은 안경을 쓰고 나타난 사람을 등장시킨다. 울었다는 사실조차 들키고 싶지는 않았던 걸까. 자신의 감정으로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알아보고 먼저 '무슨 일 있어?'라고 물어주기를 바란다.


들키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묻지 않아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두 마음 사이에서 망설인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너무 무거워질 것 같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 자신의 마음이 영영 전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완전히 말하지도, 완전히 감추지도 못한 채 작은 신호를 남길 뿐이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고, 대답이 짧아지고, 낯선 검은 안경을 쓰는 방식으로.


한 사람에게는 간절한 신호였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몸짓으로 읽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곳까지 이해받기를 바라지만, 정작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상대가 스스로 찾아내기를 기다릴 뿐이다.


*


바르트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감춘 채 상대가 알아봐 주기를 기다린다면,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등장하는 여자는 상대의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그가 남긴 모든 것을 들여다본다.


그 남자는 외국인이었다. 프랑스어를 제법 능숙하게 구사하지만, 그의 말에는 늘 아주 미세한 어긋남이 있었다. 문장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다가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멈췄고, 익숙한 단어가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에르노는 그가 한 말을 알아들으면서도, 그 말이 자신이 이해한 것과 정확히 같은 뜻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의 언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언제나 에르노의 언어로 대화를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녀에게 기울어진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단어 하나를 선택할 때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해야 했다. 그가 이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 이 표현에 자신이 아는 것과 같은 감정이 담겨 있는지 가늠해야 했다.


말은 분명 그녀에게 도착했다. 그러나 그 말이 출발했던 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었다.


에르노는 처음에는 이 언어의 차이를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장애물처럼 느꼈다.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단순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과 같이 이 관계를 원하고 있는지, 함께 보낸 오후가 그에게도 특별한 시간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에르노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남긴 몇 개의 말과 표정뿐이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행복한 듯 침묵할 때, 그녀는 그 표정에서 사랑을 읽었다. 그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미친 듯이 차를 몰고 왔다고 말하면, 그녀는 그 다급함을 달아올랐던 자신과 같은 크기의 열정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어린 시절과 아버지, 열두 살 때 숲에서 따 먹었던 산딸기에 관해 이야기하면, 자신에게 내밀한 부분까지 열어 보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순간이면 그녀는 이유 모를 안도감에 젖었다. 자신만 이 관계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두 사람은 같은 곳에 서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확신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가 전보다 말수가 줄어든 것처럼 느껴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고, 더는 선물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녀는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친구에게서 꽃이나 바카라을 선물받은 날이면, 그녀는 A가 자신에게는 그런 것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은 꽃이 아니라 욕망이라고. 그가 여전히 자신의 집을 찾아오고, 자신과 사랑을 나눈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선물이라고 믿기로 했다.


에르노는 그가 하는 말 속에서도 사랑의 증거를 찾아냈다.


A가 크리스마스에 어디로 갈 것인지 물었을 때, 그녀는 그것을 질투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이 다른 남자와 여행을 떠날지 궁금해서 에둘러 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무심한 질문 하나는 그녀의 안에서 금세 사랑의 기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사소한 질문은 질투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다음 만남을 언제로 해야 할지 확인하려는 실용적인 질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가 여행을 떠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다른 여자와 시간을 보내기에 편하도록.


하나의 문장은 전혀 다른 두 개의 의미를 품고 있음에도 무슨 의도로 질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에르노는 묻지 않았다. 질문을 던졌다가 자신이 믿고 있던 의미가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그의 침묵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말없이 웃었던 것은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그 순간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 것은 특별한 신뢰의 표현이었을까. 술을 마신 사람이 우연히 풀어놓은 오래된 기억에 불과했을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빠르게 차를 몰았다는 말은 그리움의 고백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속도와 자동차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에르노는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렇게 결국 두 사람이 함께한 오후의 의미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녀에게 그 시간은 하루의 일부가 아니었다. 전화가 오기 전의 시간은 기다림이었고, 그가 집에 머무는 몇 시간은 삶의 중심이었고, 그가 떠난 뒤의 시간은 다시 다음 만남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녀는 문득 그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웃고, 업무를 보고, 차를 몰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


그가 하루 종일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동안, 그녀는 그의 하루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녀를 놀라게 만들었다.


자신에게는 그가 모든 것의 중심이지만, 자신은 그에게 중심이 아닐 수도 있었다.


에르노는 자신과 그의 태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더 깊이 사랑하므로 더 진실하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이 놀라운 차이를 바라볼 뿐이다.


에르노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사랑이 아니라, 그 순간의 욕망뿐이다.


그들이 섞은 육체는 가장 가까운 증거이면서 동시에 가장 잔인한 한계이기도 했다. 몸은 그가 지금 여기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여기 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처음에 에르노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는 사실 때문에 이 거리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 역시 그의 말과 행동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그 차이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가 프랑스어를 조금 어긋나게 말할 때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소통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사용한 단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망설일 때마다, 말은 서로의 내부를 그대로 옮겨주는 투명한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미세한 어긋남은 오히려 그녀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게 만들었다.


사랑하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환상.

가까워지면 서로의 마음이 같은 방식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환상.

몸을 나누고, 비밀을 들으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 두 사람이 결국 하나의 감정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환상.


그녀는 연인들이 대개 관계의 끝에서나, 헤어짐의 위기에서나 발견하게 되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남자는 낯선 사람이다.


한 사람의 내부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도 완전히 열리지 않는다.


흔히 우리는 연인이 되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도, 혼자일 때 느끼던 외로움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단순한 열정』은 오히려 사랑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몸은 만났지만, 두 사람의 시간과 의미까지 하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낯선 사람을 완전히 익숙한 사람으로 바꾸지 못한다. 다만 그 낯섦에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가게 할 뿐이다.


*


그런 의미에서 에르노는 『사진의 용도』에서 그 낯섦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어느 아침, 사랑을 나눈 뒤의 흔적이 집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식탁은 치워지지 않았고, 의자는 제자리에서 밀려나 있었다. 두 사람이 벗어 던진 옷과 속옷, 신발이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진 풍경을 에르노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옷을 하나씩 주워 다시 나누고, 신발을 제자리에 놓고, 흐트러진 방을 정리하는 일이 조금 전까지 그곳에 있었던 시간을 지워버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지럽혀진 방 안의 물건들은 그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갔는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카메라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흔적을 사진으로 찍었다.


사진 속에는 늘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풀어진 끈, 뒤집힌 옷의 안감, 멀리 떨어진 두 신발, 바닥에 웅크린 청바지, 침대에서 흘러내린 이불. 그것들은 두 사람이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진을 오래 바라볼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은 그들의 존재가 아니라 부재였다.


사진 속에는 두 사람은 없었다. 서로를 바라보던 눈도, 피부에 닿았던 손도, 그때 오간 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진은 사랑의 흔적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사랑이 이루어졌던 장면은 보여주지 못했다. 에르노는 그것을 '보이지 않는 장면'이라고 불렀다.


에르노와 마르크 마리는 같은 사진을 보고, 같은 장소와 같은 밤을 떠올리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에르노는 흩어진 옷을 바라보며 암에 걸린 자신의 몸과 죽음을, 반면 마르크 마리는 같은 신발과 옷에서 어린 시절과 부모의 집, 죽은 어머니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불러냈다.


에르노는 글을 다 쓴 뒤 서로의 원고를 교환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랑과 일상이 가려두었던 상대의 낯섦이 글을 통해 한꺼번에 드러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결정적이었던 장면이 그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죽음을 떠올린 자리에서 그는 오래전 어머니를 기억했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두 사람의 사랑을 보았던 사물에서 그는 전혀 다른 시간을 바라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진은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지만, 그들이 그 순간을 같은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까지 증명할 수 없었다.


한 사람에게 그날의 신발은 사랑의 흔적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죽은 어머니의 물건을 떠올리게 하는 사물이 된다. 같은 방에 있었고 같은 시간을 통과했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 서로 다른 장면을 살아간다.


사랑은 두 사람 사이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그 흔적을 읽는 방법까지 같게 만들지는 못한다.


우리는 함께한 시간이 같은 기억으로 남기를 바라지만, 하나의 순간은 각자의 내부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남는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든 장면조차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혼자여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끝내 같은 세계를 살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외로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