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곳에 우리가 있었다는 흔적

『사진의 용도』,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그만해, 거짓말』

브뤼셀의 호텔 아미고 223호실. 흐트러진 방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머물렀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지만, 정작 사진 속에는 아무도 없다.


왼쪽에는 정돈되지 않은 침대가 있고, 가운데에는 아침 식사가 끝난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커피포트와 잔, 접시와 냅킨, 미처 치우지 못한 빵 조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양옆으로 걷힌 커튼 사이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방 전체를 밝히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오른쪽의 어둠 속에서 장미가 꽂힌 꽃병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가 건넨 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 속 장미는 거의 그림자에 가까울 만큼 흐릿하다.


열려 있는 창문 앞으로 침대는 흐트러진 채로, 테이블 위의 물건들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그대로다.


누가 이곳에 머물렀는지 알려주는 확실한 단서는 없지만, 방 안에 남은 모든 것이 곧 호텔 직원의 손길 아래 사라지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체크아웃 시간이 지나면 컵은 치워지고, 이불은 다시 정돈될 것이고, 장미는 버려질 것이다.


방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사람을 맞을 준비에 들어가고, 두 사람이 사흘 동안 함께 머물렀다는 사실마저 곧 이곳에서 말끔히 지워질 듯하다.


아니 에르노와 마르크 마리는 함께 사랑을 나눈 자리에 남겨진 옷과 신발, 흐트러진 침대와 사물들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록된 약 마흔 장 가운데 열네 장을 고른 뒤에는 같은 사진을 앞에 두고, 각자의 글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사진의 용도』라는 한 장의 사진 뒤에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기억이 놓이는 독특한 공동 자전적 에세이가 만들어졌다.


IMG_5949.jpg브뤼셀의 호텔 아미고 223호실


호텔 아미고 223호실의 사진은 두 사람이 사흘 동안 머문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방을 떠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다.


흐트러진 침대와 식사가 끝난 테이블, 어둠 속에 놓인 장미와 반쯤 열린 창문. 사진에는 곧 잊히게 될 장소와 시간이 담겨 있다.


『사진의 용도』의 시작에는 이와 다른 아침이 있다.


마르크가 떠난 뒤, 에르노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햇빛이 드는 복도에 흩어진 옷과 속옷, 신발을 발견했다. 전날 밤 두 사람이 벗어던진 것들이 떨어진 자세 그대로 바닥에 놓여 있었다.


에르노는 그 장면에서 고통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녀에게는 엉망이 된 집이 욕망의 결과로 만들어진 새로운 풍경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닥에 나뒹구는 옷을 주워 각자의 방으로 정리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풍경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나눈 쾌락의 유일한 흔적을 없애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카메라를 가져와 그 장면을 찍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눈 직후나 다음 날 아침, 방 안에 남은 물건들을 계속해서 찍었다. 바카라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에는 그들의 신체는 찍히지 않았지만, 대신 그들이 빠져나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구겨진 옷과 뒤집힌 속옷, 마구잡이로 벗겨진 신발, 밀려난 의자와 식탁 위의 그릇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신발과 옷에는 그들이 얼마나 다급하게 그들이 벗어던졌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팔과 다리와 발과 엉덩이가 빠져나간 뒤에도 한동안 그 움직임을 기억하는 듯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규칙이 생겨났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구두 한 짝이나 티셔츠 한 장의 위치를 바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에르노에게 그것은 일기에 적힌 단어의 순서를 바꾸는 일과도 같았다.


그들 앞에 놓인 옷가지들은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몸짓과 의식하지 못한 움직임, 욕망과 우연이 함께 만들어 낸 하나의 작품과도 유사했다.


사물 하나의 위치조차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옮기는 순간, 방금 전까지 그곳에서 벌어진 일의 현실까지 훼손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을 찍었다고 해서 그 순간이 고스란히 보존되는 것은 아니었다.


필름을 모두 사용하고 현상을 맡긴 뒤 사진을 받아 보기까지는 한두 주가 걸렸다. 인화된 사진을 들고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 장씩 꺼내 보았다. 그런데 어느 방에서 찍은 것인지, 누구의 옷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날짜조차 이미 희미해져 있는 장면도 있었다.


그들 앞에는 낯선 색과 수수께끼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 사진만이 남아 있었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찍은 사진이었지만, 오히려 그 순간이 얼마나 빠르게 낯설게 멀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진 옆에 글이 필요했다.


글조차 사진이 놓친 순간을 완전하게 되돌려 놓을 수는 없었다. 대신 사진을 바라보는 현재와 사진을 찍었던 과거 사이를 오가며, 그 주변에 남아 있던 기억을 불러낼 수는 있었다. 어느 계절이었는지,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그날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 사진 바깥의 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더듬게 했다.


그 시기 에르노는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몸 안에서는 삶과 죽음 사이의 또 다른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암도, 항암 치료로 빠진 머리카락도, 피부 아래에 심어진 카테터도 사진에는 보이지 않았다.


호텔 아미고의 욕실에서 에르노는 처음으로 마르크 앞에서 가발을 벗었다. 두 사람이 관계를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마르크는 민머리가 그녀에게 잘 어울린다고 말했고, 항암 치료 뒤에 아주 짧은 머리카락이 다시 돋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에르노 자신도 미처 알아보지 못한 변화였다.


그녀가 쓰던 가발은 어느 사진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진에 찍힌 것은 흐트러진 침대와 장미, 벗어 놓은 옷뿐이다. 그러나 글이 시작되자 사진 바깥에 있던 몸이 들어온다. 욕망을 느끼는 몸과 병든 몸, 살아 있는 몸과 사라질지도 모르는 몸이 같은 장면 안에 놓인다.


사진은 단순히 행복했던 순간을 보존하는 도구로서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순간을 붙잡는 일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분명히 남아 있지만, 그때의 시간과 감각까지 돌려주지는 못했다.


관계의 흔적은 늘 이런 식이다. 분명히 남아 있지만 완전하지 않다. 눈앞에 보이지만, 그때의 감각까지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사람을 불러오지만, 사람을 돌려주지는 않는다.


*


파리 오데옹 근처의 카페 콩데에는 언제부터 한 여자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두 개의 출입구 가운데 언제나 더 좁은 쪽을 이용했다. 사람들은 그곳을 '그림자의 문'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그 문으로 들어와 작은 홀 가장 안쪽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는 누구와도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자리에 앉아 있을 때도 있었고, 자정 무렵 나타나 문을 닫을 때까지 머물기도 했다.


그러다 조금씩 카페 단골들이 있는 테이블에 함께 앉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콩데의 단골 가운데 한 명인 타르잔이 그녀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루키가 왔다.'


그러자 다른 단골 자카리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이어받았다.


'오늘 밤 너에게 세례를 내리겠노라. 이제부터 네 이름은 루키다.'


처음에 루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그녀는 놀라는 듯 보였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그녀를 부르기 시작하자, 새로운 이름이 마음에 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진짜 이름은 아니었지만 카페 안에서만큼은 진짜 이름보다 더 익숙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도, 누군가의 딸도, 어디선가 도망쳐 온 여자도 아니라 그저 콩데의 루키로 머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키는 카페에서도 좀처럼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대체로 말없이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오히려 시끄럽고 목소리가 큰 사람들의 무리에 섞였을 때 더 편안해 보였다. 그들 사이에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들 사이에 스며들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카페는 조금씩 그녀의 분위기를 머금었다.


나중에 그 시절을 떠올리는 사람에게 콩데는 더 이상 평범한 카페가 아니었다. 루키가 좁은 문으로 들어와 안쪽 자리에 앉아 있던 곳, 그녀가 한동안 루키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장소가 되어갔다.


콩데의 단골 가운데 보윙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보윙은 거의 삼 년 동안 손님들이 카페에 들어올 때마다 이름과 날짜, 정확한 시간을 수첩에 기록했다. 그는 친구 두 명에게 부탁해 근처의 부케와 라 페르골라에서도 똑같이 기록하게 했다. 그는 지난 백 년 동안 파리의 모든 카페를 드나든 사람들의 이름과 출입 시간이 적힌 거대한 명부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을 '고정점'이라고 불렀다.


파리의 거리에는 매일 수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서로 만나고, 잠시 같은 자리에 앉았다가, 다시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누구는 이름도 남기지 않았고, 누구는 가짜 이름으로 불렸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보윙은 한 장소와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누가, 이날, 이 시간에,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수첩 속에서 루키는 진짜 이름이 아니라 빌린 이름으로만 등장했다.


'루키. 2월 12일 월요일, 23시.'

'루키. 4월 28일, 14시.'


어느 날부터는 그녀가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 수첩을 다시 펼쳐 보았지만 이름과 잠시 머문 주소 외에는 그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록된 그 사람이 정작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보윙은 이름을 기록하고 누군가가 머문 위치를 표시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도시의 익명성 속에 완전히 사라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름과 주소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찾아갈 수는 없었다.


기록은 루키가 그날 그 시간에 콩데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지만, 그녀가 왜 그곳으로 왔는지, 무엇을 피해 숨어 있었는지, 안쪽 자리에 앉아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말해주지는 않았다.


이름은 남았지만 사람은 사라졌다. 시간은 기록되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살아 움직이던 마음은 남지 않았다.


사진이 사람을 불러오면서도 그 사람을 돌려주지 못하듯, 이렇게 파트릭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는 보윙의 수첩도 루키의 존재를 붙잡으면서 동시에 그녀에게 끝내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


인위적인 기록이 누군가를 완전히 되살리지는 못하지만, 때때로 기록이 아니라 감각 속에서 돌아오기도 한다. 한 사람의 뒷모습과 걸음걸이, 어깨의 기울기가 오래전 시간을 더 빠르게 열어젖힌다.


2007년, 필립 베송은 보르도의 한 호텔 로비에서 기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기자는 막 출간된 소설에 관해 질문을 했다. 이별에 대해서, 편지를 쓰는 일에 대해서, 멀리 떠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다. 필립은 이미 여러 번 해본 대답을 거의 기계적으로 되풀이했다.


대답하는 동안 그의 시선은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 쪽으로 흘러갔다. 여행가방을 끌고 들어오는 사람과 호텔을 빠져나가는 사람, 잠시 멈췄다가 다시 사라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상상했다. 어린 시절부터 낯선 사람에게 이야기를 붙이는 것이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때 여행가방을 끌고 호텔을 나서는 젊은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필립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낯선 이의 뒷모습이 토마스일 리 없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그는 그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토마스는 더 이상 열여덟 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눈앞의 젊은 남자는 필립의 기억 속에 남은 토마스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필립은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외쳤다.


'토마스'


기자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필립은 사과하지 않았다. 젊은 남자가 돌아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필립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밖으로 뛰어나갔다. 남자를 따라잡아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젊은 남자가 몸을 돌렸다.


토마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토마스와 너무나도 닮은 남성이 그의 앞에 있었다. 얼굴과 눈빛, 몸을 움직이는 방식까지 오래 전의 그를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그는 토마스의 아들, 루카스였다.


필립 베송의 『그만해, 거짓말』은 이 작은 이벤트로 시작한다. 작가가 된 필립은 우연히 만난 첫사랑의 아들을 통해 1984년 바르베지외에서 시작된 비밀스러운 사랑과 그 뒤에 남은 시간을 다시 따라가게 된다.


호텔 로비에서 본 뒷모습은 그를 열일곱 살의 겨울로 데려갔다.


바르베지외의 고등학교 운동장에는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아 있었다. 학생들은 여학생과 남학생으로 나뉘어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입을 열 때마다 흰 입김이 번졌다.


필립은 운동장 건너편에 선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토마스는 다른 반 학생이었다. 벽에 몸을 기댄 채 두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거의 말하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막 돋기 시작한 수염, 어두운 눈을 가진 소년이었다.


필립은 이전부터 운동장과 복도, 급식실과 학교 앞 카페에서 토마스를 몰래 바라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었다.


필립은 토마스가 자신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아침, 친구들이 먼저 교실로 돌아가고 필립만 운동장에 남았다. 그는 가방 안에서 생물학 바카라을 찾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와 필립 앞에 멈춰 섰다.


필립이 고개를 들자 토마스가 서 있었다.


토마스는 그날 점심에 급식실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시내에서 함께 샌드위치를 먹자며 주소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더 설명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약속한 시간에 필립이 찾아간 곳은 도시 외곽의 허름한 카페였다.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그들을 알아볼 만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토마스는 이미 안쪽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주 앉은 장소는 처음부터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고른 곳이었다.


토마스는 자신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필립에게 다가올 용기를 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이 감정을 혼자 견디는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고 털어놓았다.


필립은 '왜 나냐'라고 물었다.


토마스는 필립이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스스로는 모르지만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필립은 결국 이곳을 떠날 것이고, 자신들은 남게 될 것이라고.


토마스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유일한 조건이었다.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숨을 장소가 필요했다. 두 사람은 빈 체육관과 운동장 옆 창고, 부모가 집을 비운 필립의 방에서 만났다. 학교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쳤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시선조차 오래 마주치지 않았다.


필립에게 그것은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어디에도 드러낼 수 없었다. 아무도 그들을 함께 본 적이 없었고, 그들의 관계를 증언해 줄 사람도 없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필립은 부모에게 받은 카메라로 토마스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토마스는 돌담 위에 앉아 손가락 사이에 풀잎을 끼운 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필립은 토마스가 사진을 찍겠다고 했던 이유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토마스는 그 만남이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필립은 자신의 미소를 가져갈 수 있도록 사진 속에서 웃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해 여름이 끝나자 두 사람의 길은 갈라졌다.


필립은 보르도로 떠났고, 가족을 따라 스페인에 갔던 토마스는 그곳에 남아 일하기로 했다.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없었다.


필립은 토마스 앙드리외를 자신의 삶에서 지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필립은 그해 여름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오랫동안 어떤 신호를 기다렸고,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돌담 앞에서 찍은 사진 한 장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7년, 호텔 로비를 지나던 루카스의 뒷모습이 그 꺼진 줄 알았던 시간을 다시 열었다.


필립은 그날 루카스로부터 토마스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러나 끝내 전화를 걸지 않았다. 토마스 역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시간이 흘렀다. 2016년, 루카스가 필립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파리에 갈 예정이며 반드시 건네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


필립과 마주 앉은 루카스는 토마스가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던 중, 그는 옷장 서랍 안에서 오래된 편지들을 발견했다. 그중에는 약간 누렇게 변한 봉투 하나가 있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봉투 안의 편지는 필립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1984년 8월, 토마스가 스페인으로 떠나기 직전에 쓴 편지였다.


편지는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보내지지 않은 채 삼십여 년 동안 서랍 속에 남아 있던 편지였다.


루카스는 그것을 필립에게 건넸다.


편지에서 토마스는 두 사람의 길이 이제 갈라질 것이라고 썼다. 자신은 말하는 법을 몰랐고, 필립이 결국 그 마음을 이해했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분명한 이름으로 불렀다.


사랑이었다고.


필립과 함께한 몇 달 동안 자신은 행복했고, 그토록 행복한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고도 적었다.


편지는 무엇도 되돌릴 수 없었다. 토마스를 되살려내지 못했고, 끝나버린 관계를 다시 이어주지도 못했고,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못했던 길을 다시 열어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필립이 오랫동안 혼자 간직해 온 과거의 의미를 바꾸어 주었다.


그들이 한때 무엇을 느꼈는지, 그 시간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만큼은 잊히지 않도록 만들어 주었다.


*


관계를 정리했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본다. 관계가 끝나면 모든 것이 사라질 것처럼, 헤어지고 나면 삶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게 모든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곧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옷을 주워 각자의 방으로 돌려놓으면 엉망이던 집은 다시 정돈된다. 호텔 직원이 침대를 정리하고 컵과 접시를 치우면 방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사람을 맞는다. 카페가 문을 닫고 수첩이 덮이면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름도 조금씩 희미해진다.


그러나 흔적은 지워지는 대신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흐트러진 침대를 담은 사진 속으로, 한때 드나들던 카페와 그곳에 놓였던 의자 속으로, 서랍 안에서 삼십여 년을 기다린 편지 속으로 옮겨간다. 때로는 낯선 사람의 뒷모습과 걸음걸이, 어깨의 기울기 속에 숨어 있다가 예고도 없이 오래전 시간을 현재로 데려오기도 한다.


호텔 아미고 223호실은 이미 수없이 정돈되었을 것이다. 사진 속 장미는 버려졌고, 구겨졌던 이불은 다시 펴졌으며, 두 사람이 사용했던 컵과 접시는 다른 손님들의 테이블에 놓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장의 사진 속에서는 아직 침대가 흐트러져 있고, 아침 식사가 끝난 테이블이 남아 있으며, 어둠 속의 장미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무엇도 과거의 사람을 온전히 돌려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외로움은 아마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함께했던 세계는 아직 남아 있는데,

그 세계를 함께 읽어줄 사람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