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에디의 끝』, 『사라지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가족과 상처
식탁 위에는 아직 과일 껍질이 남아 있고, 텔레비전 소리는 너무 컸다.
나는 며칠 전 친구가 무심코 던진 말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별 뜻 없는 말이라는 건 알지만, 그때의 말투가 이상하게 차갑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너는 어릴 때부터 좀 예민했잖아.'
엄마는 별 뜻 없이 말을 꺼냈다.
누나는 웃으며 내가 어릴 때 양말이 까칠까칠하다며 울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음식 냄새만 조금 달라도 먹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이야기였다. 가족들은 오래된 일화를 다시 확인하듯 웃었다. 그리고 나도 웃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특별히 나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그 자리에서 따질 만한 것도 없었다.
문제는 그 말의 내용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말이 너무 오래된 나를 불러냈다는 데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문장은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가족 앞에 앉아 있는 동안만큼은 나는 여전히 오래 전의 나로 돌아가 있었다.
오래전에 성인이 되었고, 회사에서는 제법 능숙하게 말하고 일하고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렸다. 적당한 순간에 웃을 줄도 알았고, 내 몫의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가족 앞에서는 번번이 어린아이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친구가 같은 말을 했다면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족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르게 들렸다.
그 말은 현재의 나에게만 도착하지 않았다. 아직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고, 마음을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었던, 불편한 자리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도 없었던 시절의 나에게까지 가 닿았다.
*
6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
1952년 6월 15일, 일요일 오후였다.
그날 에르노는 평소처럼 미사에 다녀왔고, 제과점에서 과자를 사 왔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일요일 외출복을 벗고 쉽게 빨 수 있는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손님들이 떠나자 부모는 식료품점의 덧문을 닫았고, 가족은 라디오를 켜둔 채 점심을 먹었다.
어머니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식탁에 앉자마자 시작된 아버지에 대한 불평은 식사가 끝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좁은 부엌을 오가며 계속 아버지를 몰아세웠고, 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아버지가 온몸을 떨며 거칠게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붙잡고, 낯선 목소리로 소리치며 카페 쪽으로 끌고 갔다.
어린 에르노는 위층으로 달아나 침대에 몸을 던지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잠시 후 지하실 쪽에서 어머니가 딸을 부르는 비명이 들렸다.
그녀는 계단 아래로 달려가 있는 힘껏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어두운 지하실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어깨인지 목인지를 붙잡고 있었다. 다른 손에는 평소 나무토막에 꽂아두던 벌목낫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더 섬뜩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세 사람은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버지는 창가에 앉았고, 어머니는 난로 곁에 서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는 계단 아래에 앉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떨렸고, 목소리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딸에게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왜 우느냐고 되풀이했다.
어머니는 이제 다 끝났다고 말했다.
얼마 뒤 세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근처 시골길로 산바카라을 나갔다. 돌아온 뒤 부모는 여느 일요일 저녁처럼 카페 문을 다시 열었다.
그날 일을 집 안의 누구도 다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일은 에르노에게는 평생 씻어낼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각인되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전과 같았다. 달라진 것은 소녀가 그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녀는 부모와 단둘이 남는 저녁과 일요일 오후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가게 안에 있을 때는 안심했고, 부모의 목소리가 조금만 높아져도 하던 일을 멈추었다. 아버지의 얼굴과 손을 살폈고, 대화가 갑자기 끊기면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긴장했다.
학교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을 듣다가 문득, 집으로 돌아갔을 때 이미 모든 일이 벌어진 뒤라면 어쩌나 생각했다.
부모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거나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잠시 그날의 일이 나쁜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 웃음은 다음 순간까지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못했다.
말할 수 없는 일은 그렇게 더 오래 남았다.
시간이 지나고, 에르노는 가까워진 몇몇 남자 친구에게 그날에 관해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열두 살이 될 무렵,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했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에르노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 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갑자기 그 앞에 내려놓은 사람처럼, 자신이 어떤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잘못을 저지른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건을 말하는 순간, 부끄러움은 말한 사람의 몫이 되었다.
가족 안에서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던 일을 밖으로 꺼냈다는 사실이 마치 또 하나의 잘못처럼 그녀에게 돌아왔다.
그날 이후 그녀의 눈에는 집 안의 사물들도 이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게와 이어진 좁은 부엌, 손님들이 드나드는 카페, 마당의 변소와 가족이 함께 쓰는 방, 부모의 거친 말투와 술에 취한 손님들.
전에는 그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였던 것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흔적처럼 느껴졌다.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 뒤쯤, 에르노는 학교 행사에 참여한 뒤 밤늦게 돌아왔다. 선생님과 몇몇 학생이 집 앞까지 그녀를 데려다주었다.
그녀는 닫힌 가게의 덧문을 두드렸다.
한참 뒤 가게 안에 불이 켜졌다. 어머니가 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로 문 앞에 나타났다.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구겨진 잠옷에는 얼룩이 남아 있었다.
조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선생님과 학생들은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잠긴 목소리로 인사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에르노는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사립학교의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잠에서 깨어난 어머니였지만, 문밖에 서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과한 뒤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에르노는 어머니의 흐트러진 머리와 낡은 잠옷, 좁고 어두운 가게가 자신들의 모습을 너무 많이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애써 감추고 있던 진짜 모습이 불빛 아래 한꺼번에 노출된 것 같았다.
지하실에서 벌어진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소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에르노의 기억 속에서 두 장면은 서로 이어져 있었다.
아버지가 낫을 들고 있던 어두운 지하실과, 어머니가 얼룩진 잠옷 차림으로 서 있던 밝은 가게 입구.
하나는 가족 안에서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게 된 순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족의 모습을 타인의 눈으로 보게 된 순간이었다.
가족은 여전히 그녀가 속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동시에 감춰야 하는 곳이 되었다.
*
에디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를 간절히 기다렸다. 에디는 어머니에게는 세 번째 아이였지만, 아버지에게는 첫 번째 친아들이었다.
그가 자란 피카르디의 작은 마을에서 남자는 단지 성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남자라면 강해야 했다.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했고, 싸움을 피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축구를 좋아해야 했고, 아파도 견뎌야 했다. 두려워도 내색해서는 안 되었고, 무엇보다 쉽게 울어서는 안 되었다.
마을에서는 그런 남자를 '센 사람', '강한 놈'이라고 불렀다.
에디의 아버지도 어린 시절부터 싸움과 술자리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학교와 공장의 규율에 잘 적응하는 사람보다,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남자가 더 큰 존경을 받았다.
아버지는 그 규칙을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믿었다. 마을에서 한 남자의 남성성은 자기 몸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을 얼마나 강한 남자로 키웠는지를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미국 드라마를 떠올리며 아들의 이름을 에디라고 지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벨그왈이라는 성과 합쳐진 '에디 벨그왈'은 그가 듣기에 강한 남자에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에디는 너무 빨리 그 기대를 깨뜨렸다. 그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자 목소리에는 자연스럽게 높은 음색이 섞여 들어갔다. 말을 할 때마다 큰 손동작이 따라왔다. 걸을 때는 엉덩이가 좌우로 흔들렸다. 놀라거나 기뻐하면 자신도 막을 수 없는 가느다란 비명이 목에서 튀어나왔다.
의식적인 반응은 아니었지만 가족들은 그것을 의도적인 행동처럼 받아들였다.
부모는 그런 그의 반응을 고쳐야 할 잘못된 버릇이라고 불렀다. 에디가 마음만 먹으면 남자답게 말하고 걸을 수 있다고 믿었다.
아버지는 축구를 시키면 조금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몸에 근육도 생기고, 다른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면 이상한 버릇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도 어렸을 때 축구를 했고, 에디의 형과 사촌들도 축구를 했다. 공을 차고, 몸을 부딪치고, 다른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몸에 밴 이상한 버릇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디는 한 번 연습에 나갔다.
하지만 훈련이 끝난 뒤 공동 샤워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축구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몇 번 더 권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얼마 뒤 두 사람은 길에서 축구부 회장과 마주쳤다. 회장은 에디가 왜 더 이상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시선을 내린 채 아이가 조금 아프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축구부 회장은 그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의심스러운 눈빛 앞에서 아버지는 결국 에디가 원래 조금 특별하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을 돌렸다. 그리고 끝내 작은 목소리로 에디가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그 순간 부끄러워한 사람은 에디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몸을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실패를 고백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아들이 축구를 싫어한다는 단순한 사실이, 그가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는 증거처럼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에디는 아버지의 당황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는 가족이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지켜보았다. 미움받는다는 말을 듣기 전부터, 자신에 관해 말하는 부모의 낮아진 목소리와 피하는 눈빛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몸을 감추는 일이 더 어려웠다. 한 남학생은 운동장에서 에디에게 달려보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에디가 어떻게 달리는지 보여주겠다며 웃었다. 에디가 거절하자, 뛰지 않으면 때리겠다고 위협했다.
에디는 아이들 앞에서 달렸다. 자신의 다리가 얼마나 무겁게 움직이는지, 팔이 어떤 모양으로 흔들리는지 생각하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 뒤로 걷고 말하고 뛰는 일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동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이름 붙일 것 같았다.
복도에서는 두 명의 남학생이 그를 기다렸다. 한 명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 다른 한 명은 그의 머리를 벽으로 밀쳤다. 그리고는 그의 배를 걷어차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서 모욕적인 말을 되풀이했다.
에디는 다음 날에도 그 복도로 갔다. 그곳이라면 다른 아이들에게 맞는 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폭력을 피하는 것보다, 폭력을 당하는 자신을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맞는 편을 선택했다. 수치심은 그렇게 폭력을 숨기는 일까지 피해자의 몫으로 만들었다.
에디는 집에서는 손짓을 감췄고, 학교에서는 상처를 감췄다. 가족에게는 남자다운 아들처럼 보여야 했고, 친구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는 아이처럼 보여야 했다.
그러나 마을을 떠나 아미앵의 고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그는 뜻밖의 장면과 마주했다.
그곳의 남학생들은 악수 대신 서로의 볼에 입을 맞추며 인사했다. 가죽 가방을 들고 다녔고, 말투와 몸짓은 부드러웠다. 에디가 다니던 중학교였다면 곧바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 행동이었다.
그는 처음에 그들을 보며 자신이 배운 모욕적인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곧 이상한 안도감에 휩싸였다.
그곳에서는 부드러운 말투와 섬세한 몸짓이 남자다움을 훼손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공장 노동자들이 믿었던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남학생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달라진 것은 그 몸을 읽는 세계였다.
마을에서는 그의 목소리와 걸음걸이가 잘못된 남자아이의 증거였다. 그러나 다른 계급의 아이들이 모인 학교에서는 비슷한 몸짓이 교양이나 세련됨으로 받아들여졌다.
가족에게 배운 수치심이 오래 남는 이유는 그 규칙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것을 우리 집과 동네, 혹은 이웃들의 질서라고 배우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목소리가 잘못되었고, 자신의 걸음걸이가 놀림감이 될 만큼 우습고, 자신의 정체성이 가족을 부끄럽게 한다고 받아들인다.
가족을 떠난 뒤에도 몸은 쉽게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에디는 새로운 학교에서 자신과 비슷한 몸짓을 한 남학생들을 보며 안도했지만, 동시에 그들을 향해 자신이 배운 모욕의 말을 먼저 떠올렸다. 가족과 마을의 목소리는 이미 그의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떠난다는 것은 그 목소리가 곧바로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진실이라고 믿어온 말을, 이제부터 하나씩 의심하기 시작하는 일이었다.
*
그러나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폭력과 수치심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가족이 가장 어려운 관계인 이유는 그 안에 상처만큼 분명한 사랑도 있기 때문이다.
클라라 뒤퐁모노의 『사라지지 않는다』는 미워하면서도 떠날 수 없고, 돌보면서도 지치며,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리를 너무 일찍 내어주기도 하는 바로 그 복잡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세벤 산맥의 오래된 집에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건강한 아이처럼 보였다. 처음에 아무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이는 조용했고, 둥근 뺨과 검은 눈을 가진 예쁜 아기였다. 친척과 이웃들은 그들이 사는 마당으로 찾아와 새로 태어난 아이를 맞이해 주었다. 어머니는 밤꽃술을 내놓았고, 아이는 다른 아기들과 다르지 않은 듯 보였다.
생후 석 달이 지났을 무렵, 어머니는 아이 앞에 오렌지를 들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주황색 과일을 천천히 좌우로 움직였다. 그러나 아이의 검은 눈은 오렌지를 따라가지 않았다. 시선은 어딘가에 머무르지 못한 채 옆으로 흘렀다.
어머니는 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첫째와 둘째를 마당으로 불렀다. 플라스틱 의자가 바닥을 긁었다. 아홉 살인 첫째는 일곱 살인 여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버지는 어린 동생이 앞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확한 결과는 검사를 더 받아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고는 두 아이에게, 이제 학교에서 점자 카드를 가지고 놀 줄 아는 사람은 너희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첫째와 둘째는 잠시 불안해했지만 곧 누가 먼저 점자 카드를 학교에 가져갈지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장애도 하나의 특별한 능력처럼 말할 수 있었다. 가족은 아직 자신들의 삶이 어디까지 달라질지 알지 못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뒤에야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아이는 앞을 볼 수 없었다. 걸을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팔다리는 뇌의 명령을 받지 못했고, 스스로 목을 가눌 수도 없었다. 다만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편안하면 웃고 불편하면 울 수 있었다. 의사는 아이가 평생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로 살아갈 것이며, 세 살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이후 가족의 시간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부모는 병원과 행정기관을 오갔다. 첫째는 동생의 머리를 받치고, 기저귀를 갈고, 음식을 먹이는 법을 배웠다. 둘째는 부모와 오빠의 시선이 모두 동생에게 향하는 동안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마당을 둘러싼 오래된 붉은 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돌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고통은 언제나 먼저 설명되지만, 그 곁에서 함께 삶이 바뀐 아이들은 쉽게 이야기 바깥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먼저 부모의 삶을 걱정한다. 병원과 진단, 돌봄과 비용, 끝없이 반복되는 행정 절차의 번거로움에 대해서 말을 한다.
그러나 돌들이 바라보는 것은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아이들이었다. 동생을 돌보느라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첫째와, 아무도 자신의 슬픔을 물어보지 않아 분노하는 법부터 배운 둘째.
한 아이의 탄생은 가족 모두의 삶을 바꾸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모두에게 같은 모양으로 남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미 두 아이가 있었다. 아홉 살인 첫째와 일곱 살인 둘째였다.
그해 성탄절, 오래된 집에는 친척들이 가득 모였다. 부엌에서는 멧돼지 고기와 양파 타르트 냄새가 났고, 벽난로 곁에서는 플루트와 첼로 소리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밖으로 뛰어나가 산길에 작은 촛불을 놓았다. 하늘에서 내려올 산타클로스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든 활주로였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벽난로 곁의 요람 의자에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고 접시가 부딪치고 음악이 울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검은 눈은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천천히 떠돌았다.
그날 첫째는 사촌들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아이의 입가를 닦아주고, 등을 받칠 쿠션을 고쳐놓았다. 개가 가까이 오면 쫓아냈고, 방 안이 시끄러워지면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카라을 읽으며 한 손가락을 동생의 닫힌 주먹 안에 넣어두었다.
그날 이후 첫째의 아침은 달라졌다. 그는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눈을 떴다. 차가운 바닥을 밟고 동생의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었다. 목을 받치며 아이를 침대에서 들어 올렸고,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혔다. 아래층으로 데려가 전날 어머니가 준비해 둔 과일 퓌레를 천천히 먹였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첫째는 침대 위로 몸을 숙여 자신의 뺨을 동생의 뺨에 가져다 댔다. 두 아이는 잠시 말없이 붙어 있었다. 첫째는 동생의 고른 숨결이 피부에 닿는 것을 느꼈다.
동생은 볼 수 없었지만 들을 수는 있었다. 첫째는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세상을 소리로 옮기기 시작했다.
말린 버베나 잎을 동생의 귀 가까이에서 비볐다. 대야의 물을 손으로 저어 물결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돌담에서 작은 돌 하나를 빼내 바닥에 떨어뜨렸고, 성탄절 아침에는 선물을 싸고 있던 포장지를 여러 번 구겼다.
그는 보이지 않는 풍경도 말로 들려주었다. 산을 덮고 있는 초록은 하나가 아니라고 말했다. 연한 초록과 짙은 초록, 노란빛이 섞인 초록과 햇빛에 반짝이는 초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창밖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있고, 마당 바닥에는 밤빛에 가까운 돌이 깔려 있으며, 그 너머에는 오래된 담과 산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가 네가 태어난 곳이야. 잘 들어야 해.'
첫째는 전에는 누구에게도 그렇게 많은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동생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배가 부르고 몸이 따뜻해지면 입가를 천천히 벌렸다. 때로는 가느다란 소리가 목에서 흘러나왔다. 첫째는 그 작은 소리를 자신에게 돌아온 대답처럼 들었다.
그는 동생의 울음도 하나씩 구별하게 되었다. 배가 아플 때의 울음과 배고플 때의 울음, 몸이 불편할 때의 울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필요한 물건을 적어 어머니에게 건넸고, 아이의 손을 펴서 펠트와 나뭇가지, 민트 잎과 빗물에 닿게 했다.
점점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머릿속에는 친구나 음악보다 비누가 남아 있는지, 당근 퓌레를 만들 수 있는지, 보라색 잠옷이 말랐는지가 먼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너무 일찍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직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누군가의 목을 받치는 법을 배웠고, 자신의 하루보다 다른 사람의 체온과 배고픔을 먼저 살피는 법을 익혔다.
그러나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동생을 눕히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아이는 그에게 무엇이 되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실망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누워 강물과 벌레와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첫째는 그 곁에서 오래 기다렸다. 그에게 동생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기울어진 목을 바로 놓아주고, 차가운 손을 감싸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끝없이 들려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첫째가 동생의 세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동안, 다른 한 아이는 조금씩 그 세계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일곱 살이었던 둘째도 동생이 아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동생이 일부러 부모를 지치게 한 것도 아니고, 오빠를 빼앗으려 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서 덜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의 여자아이가 마당에 놀러 왔다. 아이는 첫째를 가리키며 둘째에게 다른 형제자매도 있느냐고 물었다.
둘째는 없다고 대답했다.
동생은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집 안이나 마당의 커다란 쿠션 위에 누워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둘째의 대답 속에서 그 아이는 잠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동생이 부끄러워서만은 아니었다. 그 아이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뒤이어 올 질문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살인지, 왜 걷지 않는지, 왜 말을 하지 않는지, 학교에는 다니는지 설명해야 했다. 상대의 표정이 호기심에서 당황으로, 당황에서 연민으로 바뀌는 순간도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둘째는 자신에게는 오빠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 그날의 거짓말은 동생을 지운 것이면서, 동시에 동생에게 빼앗겼다고 느낀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일이기도 했다.
마당에서 동생은 늘 커다란 쿠션 위에 누워 있었다. 첫째는 아이의 입을 닦아주고, 몸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햇빛이 강해지면 쿠션을 그늘로 옮겼다. 둘째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예전의 첫째는 자신과 함께 산을 뛰어다니던 오빠였다. 어두운 길에서는 앞장섰고, 위험한 곳에 다가가면 어깨에 손을 올려 막아주었다. 둘째는 그를 무서워하면서도 누구보다 따랐다. 그러나 이제 오빠의 손은 다른 아이의 목을 받치고 있었다.
어느 수요일, 둘째는 마당을 가로질러 가다가 동생이 누워 있는 쿠션 앞에 멈췄다. 집 안에 누가 보고 있는지 살핀 뒤, 갑자기 발로 쿠션을 걷어찼다.
두껍고 무거운 쿠션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동생도 울지 않았다. 검은 눈은 여전히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았다.
둘째는 곧바로 달아났다.
그녀가 미워한 것이 동생인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그 몸인지, 모든 것을 빼앗긴 것 같은 자신의 생활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분노를 돌려줄 사람이 필요했고, 가족 안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그 앞에 누워 있었다.
때로 둘째는 오빠처럼 동생을 사랑해보려고 했다. 마당에 쿠션을 펴고, 동생의 귀 가까이에서 나뭇잎을 비볐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말로 설명해보려 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문장은 어색했고,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다.
그녀는 자신의 뺨을 동생의 뺨에 대보기도 했다.
첫째가 그렇게 할 때면 두 사람 사이에 자신은 알 수 없는 고요가 생겼다. 그러나 둘째는 금세 몸이 불편해졌다. 동생의 입에서 나는 삶은 채소 냄새와 기저귀 냄새가 신경 쓰였고,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그녀는 오빠를 불렀다. 첫째는 다가와 익숙한 손으로 동생의 발목을 들어 올리고 기저귀를 갈았다. 목소리는 다시 부드러워졌다. 둘째는 그 옆에 서서, 오빠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빠는 다시 동생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둘째가 원하는 것은 동생이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저 누군가가 자신에게도 다가와주기를 바랐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뛰어다니는 아이도 돌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봐 주기를 원했다.
부모는 병원과 행정기관을 오갔고, 첫째는 동생을 돌보았다. 둘째는 혼자서 잘 놀았고, 혼자 학교에 갔고, 혼자 화를 냈다.
아픈 아이는 울음으로 필요한 것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건강한 아이는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아이처럼 여겨졌다.
둘째는 점점 더 크게 말하고, 더 거칠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개를 주먹으로 때렸고, 산에서는 나뭇가지를 부러뜨렸다. 학교에서는 싸웠고,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먼저 날을 세웠다.
어느 날 그녀는 산을 올라가 작은 참나무를 발견했다. 돌 하나를 집어 들고 나무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휘어진 가지가 얼굴과 팔을 할퀴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잎과 가지가 바닥에 흩어질 때까지 계속 돌을 휘둘렀다.
그 뒤에는 신발을 신은 채 강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종아리와 허리까지 차올랐다. 그녀는 두 팔을 벌리고 서서 숨을 고르려 했다.
'누가 나를 도와줄까?'
그러나 그 질문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다시 물 밖으로 걸어 나왔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가족 곁에 앉았다.
둘째의 방황을 알아본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도시에서 살았다.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작은 굽이 달린 구두를 신었으며, 성탄절 저녁에는 새틴 드레스를 입었다. 산과 돌과 오래된 집에 속한 사람이면서도 자신은 도시를 위해 태어났다고 말하는 여자였다.
둘째는 할머니의 집에서 오후를 보냈다. 두 사람은 오렌지를 넣은 와플을 굽고, 뜨거운 밤의 껍질을 벗기고, 엘더베리 잼을 만들었다.
할머니는 둘째를 영화관에 데려갔고, 친구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워크맨과 운동화를 사주었다. 또래 아이들이 보는 잡지도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할머니와 함께 있을 때 둘째는 장애가 있는 아이의 누나도, 지친 부모의 딸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새로 나온 영화를 보고 싶어 하고, 친구들 앞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이야기하고 싶은 여자 아이였다.
할머니는 동생도 돌보았다. 과일 퓌레를 만들어 집에 가져다 놓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솜이나 안약이 떨어지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렸다.
그런데 둘째는 할머니가 동생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도 질투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관심이 동생에게 향한다고 해서 자신의 몫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할머니는 둘째를 차에 태우고 산길을 올랐다. 길가에는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흙도 거의 없는 곳에서 가느다란 몸을 세우고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는 차를 멈추고 그 나무를 바라보았다.
'저 나무는 살고 싶은 거야.'
그리고 둘째를 보며 덧붙였다.
'너처럼.'
할머니는 둘째에게 동생을 이해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부모를 도와야 한다고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아이가 여전히 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바로 둘째에게 필요했던 시선이었다.
*
가족은 우리가 가장 먼저 사랑을 배운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어떤 모습을 감춰야 하는지도 함께 배운다. 어떤 일은 말해서는 안 되고, 어떤 몸짓은 고쳐야 하고, 어떤 슬픔은 다른 사람의 슬픔보다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렇게 감춘 것들은 오래도록 상처로 남는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바로 그 가까움 때문에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왜 슬퍼하는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때, 우리는 혼자가 된다.
어쩌면 가족들이 오래전의 일을 자꾸 끄집어 내는 이유는 그 시절의 내가 아직 그 자리에서 충분히 이해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이미지 : 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의 〈저녁 식사, 램프 효과Le Dîner, effet de lam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