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 곁에서

야스미나 레자와 미셸 우엘벡, 사랑이 있어도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받는 사람도,
사랑 없이 초연히 살 수 있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다.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들


제목이 모든 걸 말해주는 작품을 만나기도 한다. 보르헤스의 문장에서 온 야스미나 레자의 소설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들』은 마치 축복 같은 문장을 작품 정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그 축복에서 조금씩 비껴나 있다. 누군가는 사랑하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누군가는 사랑받으면서도 그것을 믿지 못한다.


사랑 없이 살아갈 만큼 초연한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 때문에 다투고, 사랑이 부족해서 외로워하고, 이미 끝난 사랑을 붙잡으며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


소설은 로베르 토스카노라는 남자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그는 아내 오딜과 함께 주말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갔다. 둘은 카트를 밀고, 치즈를 고르고, 아이들이 먹을 과자와 디저트를 샀다.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결혼한 사람들은 주말마다 하는 장보기는 냉장고를 채우고, 아이들이 먹을 것을 고르고,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고,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던 장면은 사소한 말 몇 마디로 금세 갈라지기 시작했다.


오딜은 로베르에게 치즈를 사 오라고 했다. 로베르는 크로탱 드 샤비뇰과 모르비에를 사 왔다. 그러자 오딜은 그뤼에르를 왜 사 오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집에서 누가 모르비에를 먹느냐는 빈정거림도 뒤따랐다. 자신이 먹는다는 로베르의 대답이 뒤따라왔다.


둘의 갈등은 치즈에서 시작했지만, 대화 속 가시는 치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뤼에르와 모르비에, 카트에 담긴 초콜릿과 과자들 사이에서 오래된 관계에 쌓인 짜증과 피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로베르와 오딜 사이의 사소한 말다툼은 좀처럼 사소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 사이를 오가는 말에는 언제나 눈앞의 상황보다 더 많은 것이 따라붙었다. '그걸 왜 샀어?'라는 질문에는 '너는 아직도 나와 이 집의 사소한 규칙조차 모르느냐'는 원망이 묻어 있었고, '그냥 가자'라는 말에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피로가 섞여 있었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불만과 실망, 상대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감각이 카트와 진열대, 치즈 코너 사이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치즈에 관해 말하고 있었지만, 실은 치즈보다 훨씬 오래된 것들을 두고 다투는 중이었다.


오딜은 우유 초콜릿 묶음을 카트에 던지듯 집어넣었다. 로베르는 그것을 꺼내 다시 진열대에 돌려놓았지만, 오딜은 곧바로 다시 카트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로베르는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혼자 가버리겠다고 말을 했다.


오딜은 가려면 가라고 대답했다. 그는 할 말이 없어질 때마다 관계를 끝내자는 말부터 꺼낸다고 쏘아붙였다.


로베르 역시 자신이 그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딜과의 대화를 더 이어갈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그에게 떠오르는 것은 그 자리에서 당장 도망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떠날 마음에서 나온 말이라기보다, 더는 견딜 수 없다는 감정을 상대에게 던지는 오래된 위협이었다.


그는 카트를 앞으로 밀며 이제 장보기가 끝났느냐고 물었다. 오딜은 어떻게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느냐며 통로 한가운데 멈춰 섰다.


로베르는 숨이 막혔다. 카트와 진열대, 길게 늘어선 줄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까지 모든 것이 그를 짓누르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사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대로 된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그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결국 '미안해. 미안해, 오딜'이라고 사과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에 덧붙인 이름은 미안한 마음보다 조급함이, 관계를 풀어보려는 의도보다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이 더 간절했다.


오딜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카트 안에 자신의 가방까지 남겨둔 채, 냉장식품이 있는 매장 안쪽으로 사라졌다.


로베르는 카트를 밀며 통로 사이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딜의 이름을 부르며 음료 코너와 진열대 사이를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치즈 코너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오딜은 아까보다 더 길어진 줄에 다시 서 있었다. 손에는 로베르가 사 온 모르비에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그 치즈를 돌려놓고, 그뤼에르를 다시 살 생각이었다.


로베르는 그뤼에르는 다른 곳에서 사면된다며 이제 그만 나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오딜은 몸을 꼿꼿이 세운 채, 모욕당한 사람처럼 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로베르는 셋까지 세겠다고 말했다. 셋을 셀 때까지 줄에서 나오지 않으면 혼자 차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오딜의 얼굴에는 아주 잠깐 웃음의 기미가 떠올랐다. 로베르는 그것을 보았지만, 먼저 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하나를 세고, 다시 둘을 세는 동안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은 조금씩 장난으로 바뀌는 듯했다. 그러나 셋을 말하기 직전, 오딜은 그가 차를 가져갈 수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 열쇠가 그녀의 가방 안에 있었다.


로베르는 열쇠를 달라고 했고, 오딜은 가방을 몸 쪽으로 당겼다. 그가 가방끈을 잡아당기자 그녀도 반대쪽으로 힘을 주었다. 오딜은 웃으며 왜 셋을 세지 않느냐고 물었다.


로베르는 화가 났지만, 동시에 오딜이 그렇게 웃는 모습이 좋았다. 그는 거의 긴장을 풀고, 그 힘겨루기를 장난으로 받아들일 뻔했다.


바로 그때 뒤에 서 있던 여자가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타인의 웃음이 끼어들자 로베르는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는 오딜을 치즈 진열대의 투명판 쪽으로 밀어붙이고 가방 안에서 열쇠를 빼앗았다. 오딜의 손에 들려 있던 모르비에는 통로 쪽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카트와 함께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 앞에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딜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카트 안의 물건을 정리했다. 주차장에서도, 차에 올라탄 뒤에도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길 위의 불빛들이 차창을 스쳐 지나갔다. 로베르는 포르투갈 노래를 틀었다. 여성 가수는 처량한 목소리로 '소다드(Sodade)'라는 가사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는 향수,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이나 결핍, 후회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로베르에게는 그 차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향수도, 결핍도, 후회도, 마음속에서 끝내 나눌 수 없는 것들은 모두 고독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가정의 카트도, 치즈 코너의 긴 줄도, 네온 불빛 아래 아내에게 사과하는 남자도 그에게는 고독이었다.


함께 살아가면서도 나눌 수 없는 마음.

가장 가까운 사람 곁에서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고독.


*


로베르의 외로움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생겨났다. 같은 카트를 밀고 같은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는 끝내 건너갈 수 없는 거리가 존재했다.


미셸 우엘벡의 『투쟁 영역의 확장』은 이 외로움을 조금 다른 자리로 옮겨놓는다. 야스미나 레자의 인물들이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면, 우엘벡의 주인공은 이미 관계의 바깥에 홀로 남겨져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슬롯의 규칙 안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서른 살의 전산 엔지니어로 회사에 다녔고, 평균 이상의 월급을 받았다. 세금 신고서를 제때 작성하고, 고지서를 기한에 맞춰 냈으며, 외출할 때는 신분증과 신용카드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대체로 성실히 잘 따라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작품은 바로 그다음에 짧고 차가운 문장을 놓는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친구가 없다


어느 일요일, 그는 어디에 세워두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자동차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비슷한 이름의 길과 네모난 아파트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차가 거기에 있을 것만 같았다.


한참을 걷던 그는 문득 자신에게 자동차가 왜 필요한지를 생각했다. 출근할 때는 지하철을 탔다. 주말에도 특별히 갈 곳이 없어 좀처럼 파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휴가 때는 혼자보다 단체여행이나 여행사 상품을 선택하는 편이었다.


차가 없어진 사실보다, 차를 타고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


그날 저녁 그는 다시 혼자 집에 있었다. 부엌 식탁에는 종이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먹다 남은 참치 통조림의 기름 자국이 묻어 있었다. 종이에는 그가 쓰던 동물 우화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브르타뉴의 암소와 어린 암말이 욕망과 신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였다.


그는 글을 썼지만, 글이 자신을 위로해 준다고 믿지는 않았다. 다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보다는 혼란에 작은 경계라도 그어주는 편이 나았다.


주말이면 그는 대체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집 안을 조금 정리하고, 가볍게 우울해했다. 가끔 오래전 함께 공부했던 신부와 저녁을 먹기도 했지만, 식탁에 마주 앉아서는 그 사람이 아직 자신의 친구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관계를 유지해야 했기에, 이해하지 못한 말에도 적당히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해 전 베로니크와 헤어진 뒤로는 어떤 여자도 만나지 못했다. 몇 차례 관계를 시작해보려 했지만, 자신조차 진지하게 믿지 않은 시도들은 예상한 대로 끝났다. 일이 바쁘면 이 년 정도는 정신없이 지낼 수 있다고 별일 아닌 듯 생각했다.


출장지에서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루앙의 백화점에서 얇게 썬 빵과 치즈를 샀다. 그날만큼은 동료와 저녁을 먹지 않고 호텔방에서 혼자 먹을 생각이었다. 혼자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는 일도 이제는 피곤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저녁, 그의 왼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몸에는 오한이 돌았고, 호텔방에 돌아와 누웠지만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다시 몸을 일으켜 앉아보았지만 통증은 어깨에서 가슴 쪽으로 천천히 번져갔다.


그는 한동안 세면대에 기대어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숨은 점점 더 가빠졌고,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한밤중에 혼자 호텔을 나섰다. 몇 걸음 걷는 것조차 힘들어 길가의 자동차에 몸을 기대야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병원 가는 길을 물었지만, 누구도 그를 데려다주지는 않았다.


가까스로 택시를 잡은 뒤에야 그는 병원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심근경색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심낭염이었다.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대로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주변 환자들에게는 병문안을 오는 가족이 있었다. 간호사들은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출장 중에 갑자기 입원한 것이어서 이 도시에 아는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루앙에 아는 사람이 없다는 데만 있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그의 상태를 알려야 할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그는 없다고 대답했다.


회사는 그가 다음 출장이 가능한지 물었고, 집에는 처리해야 할 고지서들이 쌓여 갔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을 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해야 할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병실을 찾아온 사람, 한 명쯤은 있었다.


함께 출장을 왔던 동료 라파엘 티스랑이었다.


그가 호텔방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티스랑은 회사와 경찰서, 그가 있을 만한 곳에 차례로 전화를 걸어 그의 행방을 물었다. 병실을 찾아온 티스랑은 남은 출장 업무를 자신이 혼자 맡겠다고 했다. 회사에 연락하고, 교육도 대신 진행할 테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이야기하라고도 했다.


그는 두 번 더 병실에 찾아왔다. 한 번은 바카라과 과자를 가져왔고, 주인공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티스랑이 병실을 떠나는 순간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출장 일정이 끝나자 티스랑 역시 다른 도시로 떠나가 버렸다.


퇴원한 주인공은 라로슈쉬르용에서 티스랑을 다시 만났다.


티스랑은 여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끊임없이 애썼다. 기차에서는 옆자리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고,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면 여자들이 앉아 있는 자리부터 찾았다. 술집에서는 누군가의 시선을 붙잡으려 했고, 만남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그러나 그가 다가갈 때마다 여자들은 시선을 피하거나 자리를 옮겼다. 노력은 계속되었지만, 결과는 늘 비슷했다.


어느 아침, 그는 호텔 식당에서 네스퀵이 담긴 그릇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젠장, 스물여덟인데, 아직도 모태솔로야.'


단순히 성경험이 목적이었다면 방법은 많이 있었다. 그는 안정된 온라인 게임이 있었고, 돈을 내고 하룻밤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며칠 뒤 저녁, 주차장에서 티스랑은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는 토요일마다 돈을 내고 여자를 만날 수도 있고, 아마 언젠가는 정말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남자들은 자신이 돈을 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을 금전적인 대가 없이 얻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여성의 몸뿐 아니라 사랑까지 따라온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티스랑은 아직 조금 더 시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돈을 내고 누군가의 몸을 얻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누군가가 스스로 자신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곁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감각이었다.


티스랑의 말은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이미 얼마나 오래 실패해 왔는지를 인정하는 고백이기도 했다.


티스랑이 그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이 특별히 가까워서가 아니었다. 주인공은 여자 친구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자신이 누구에게 사랑받았는지 자랑하지도 않았다. 티스랑은 그의 곁에서만큼은 다른 남자들과 비교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격려하지도 않았다. 티스랑 역시 주인공의 외로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상대가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이미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 쪽으로 물러나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포기하지 못한 채 계속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인공의 외로움이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조용히 굳어가고 있었다면, 티스랑의 외로움은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거절당하며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티스랑에게 남은 시도는 많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는 화자와 함께 나이트클럽에 갔다.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에도 오랫동안 공을 들였지만, 그가 말을 건 여자들은 시선을 피하거나 자리를 옮겼다. 한 여자는 춤이 끝나자 친구들에게 돌아가 그를 가리키며 웃었다.


잠시 뒤 티스랑은 자신이 바라보던 여자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그토록 얻고 싶어 했던 친밀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주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그는 혼자 파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짙은 안갯속에서 자동차를 몰던 티스랑은 도로에서 미끄러진 트럭과 충돌했다. 그는 동이 트기 전 그 자리에서 죽었다.


며칠 뒤 회사에 그의 죽음이 알려졌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사고를 안타까워했고, 잠시 뒤 다시 각자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


티스랑의 삶이 특별히 불운해서 그렇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엘벡은 오히려 그를 한 시대가 만들어낸 수많은 고독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바라보았다.


그의 또 다른 소설 『소립자』는 이 세계를 더욱 넓은 자리에서, 거의 선언처럼 펼쳐놓는다.


소설은 서두에서 미셸 제르진스키가 살아온 시대를 먼저 설명한다. 그는 서유럽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냈고, 대체로 혼자였다. 이따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그 만남들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은 곧바로 그가 연구소를 떠나기 전 열린 송별회로 향한다.


냉동 배아가 보관된 장비들 사이에 샴페인이 놓여 있었다. 열다섯 명이 모였지만 준비된 것은 네 병뿐이었다.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이유도, 그들이 나누는 말도 어딘가 충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어색한 말을 한마디만 꺼내도, 모두 핑계를 대고 곧장 자리를 떠날 것 같았다.


그곳에 있는 누구도 사진을 찍자고 하지 않았다.


한 젊은 연구원은 주차할 곳을 찾아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곧 다가올 휴가에 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가족의 별장으로 갈 예정이었고, 누군가는 자연 속에서 휴가를 보낼 계획이었다.


말들은 천천히 오갔다. 그러나 어느 말도 다음 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 일곱 시 반이 되자 송별회는 끝났다.


작별의 형식은 갖추어져 있었지만,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미셸이 그곳에서 여러 해를 일했다는 사실도, 다음 날부터 그가 당분간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사람들 사이에 특별한 감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주차장으로 나온 미셸은 자신의 뒤를 이어 연구팀을 맡게 될 동료 여성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는 악수를 하기 전부터 손을 내밀고 미소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손바닥이 맞닿았고, 몇 번 가볍게 흔들렸다.


여성이 돌아선 뒤에야 미셸은 그 악수가 충분히 따뜻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자리라면 서로의 뺨에 입을 맞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작별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 늦게 도착했다.


미셸은 자동차에 올라탄 뒤에도 곧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동료의 자동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혼자 앉아 있었다. 그는 그녀가 왜 아직 차를 움직이지 않는지 생각했다. 새로운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있는지, 자신의 경력을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지 상상했다.


그러나 직접 다가가 묻지는 않았다. 여성의 자동차가 사라지자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미셸의 방에는 흰색 카나리아 한 마리가 있었다. 몇 년 전, 그는 저녁마다 자신의 귀가를 반겨줄 작은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 새를 집에 들였다.


흰색 카나리아는 주로 아침에 울었다. 저녁에 미셸이 집으로 돌아오면 짧게 지저귀기도 했다. 그는 새의 물과 모이를 갈아 주었고, 새장 바닥을 정리했다. 이것이 두 존재가 나누는 관계의 전부였다.


그날 저녁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셸이 우리 가까이 다가갔을 때, 카나리아는 이미 죽어 있었다. 작고 흰 몸은 차갑게 식은 채 모래 위에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는 새의 시체를 비닐봉지에 넣었다. 봉지가 너무 가벼워 다시 올라오지 않도록 맥주병 하나도 함께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쓰레기 투입구에 버렸다.


그는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새를 묻어줄 장소도 없었고, 죽음을 함께 슬퍼할 사람도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은 몸을 정해진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그날 밤 미셸은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꿈꾸었다. 커피 필터와 먹다 남은 음식 사이에서 벌레들이 카나리아의 작은 몸을 뜯어먹고 있었다. 다리와 내장이 찢겼고, 눈알이 터졌다.


그는 악몽에 몸을 떨며 깨어났다.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누르기 위해 알약 세 알을 삼켰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일에서 벗어난 뒤 맞이한 첫 번째 저녁이었다. 연구소에 출근할 필요도 없었고, 정해진 시간에 회의에 참석할 이유도 없었다. 누구에게 자신의 일정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자유로웠다. 그러나 그 자유 속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소설은 그것을 그의 첫 번째 자유의 저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저녁에 미셸이 마주한 것은 새로운 가능성이 아니라, 자신이 돌아갈 곳이라고 생각했던 방의 완전한 침묵이었다.


그에게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카나리아를 들인 이유부터가 저녁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맞아줄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그 외로움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먼저 전화를 걸거나, 함께 있어달라고 말하거나,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붙잡는 일은 그의 삶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세계를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익숙했다. 악수를 나눈 뒤에는 그 악수에 온기가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이 지나간 뒤에는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누군가가 멀어진 다음에는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도 알아차렸다.


그러나 깨달음은 늘 너무 늦게 도착했다.


그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사랑이 자신의 앞에 도착했을 때, 그쪽으로 몸을 움직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오래전부터 그의 곁에 와 있었다.


안나벨은 미셸이 돌아오는 저녁이면 대체로 역으로 나가 그를 기다렸다. 그가 열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이면 달려가 품에 안겼다. 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끌어안고 서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미셸이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달라져가는 자신의 몸을 만지게 되리라고 기대했다. 조급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셸은 그 믿음 앞에서조차 움직이지 못했다.


여름밤,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을 때 안나벨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같이 춤추지 않을래?


미셸은 믿기 어려울 만큼 느린 몸짓으로 거절했다.


안나벨은 몇 초 동안 그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가 마음을 바꾸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셸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돌아서서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미셸은 혼자 텐트에 누워 새벽을 기다렸다. 그는 인간의 감정 가까이까지 다가갈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신을 직접 건드리지는 못하리라는 예감을 느꼈다. 자신과 세계 사이에는 몇 센티미터쯤 되는 빈 공간이 있었고, 그것이 단단한 껍질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의 텐트는 비어 있었다. 안나벨은 돌아온 뒤 미셸에게 편지를 썼다. 여러 번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는 동안 편지는 마흔 쪽이 되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쓴 사랑의 편지였다.


편지를 부치고 기다렸다. 하지만 대답은 오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 그녀는 다시 짧은 편지를 보냈지만, 미셸은 그 편지에도 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기까지는 거의 스물다섯 해가 걸렸다.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안나벨은 그를 기다렸고, 먼저 다가갔으며, 자신이 품고 있던 마음을 글로 건넸다. 사랑은 이미 미셸의 삶 앞에 도착해 있었다.


다만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되돌려주고, 자신의 곁에 머물게 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미셸은 사랑이 사라진 세계에만 살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랑이 눈앞에 와 있어도 그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이 오지 않는 것도 불행이지만, 자신을 향해 건너온 사랑을 알아보면서도 끝내 붙잡지 못하는 일은 그보다 더 잔인했다.


브뤼노는 그 반대편에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다가가려 했다.


여자들이 많은 장소를 찾아갔고, 대화를 시작할 기회를 엿보았으며, 자신의 몸과 옷차림을 신경 썼다. 머리카락을 심고 운동을 하면서, 아직 자신이 누군가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려 했다.


그가 원한 것은 사랑이었지만, 사랑을 향해 가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어긋나 있었다.


브뤼노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을 알아가기보다 먼저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지, 자신보다 젊거나 잘생긴 남자가 곁에 있는지, 자신에게도 선택받을 가능성이 남아 있는지를 살폈다.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싶다는 마음은 점차 자신이 아직 매력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욕망으로 바뀌었다.


관계는 만남이 아니라 평가가 되었다. 여자가 웃어주면 그는 아직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시선을 피하거나 다른 남자에게 다가가면, 자신이 다시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갈증은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보다, 자신이 거절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확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확인은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한 번의 관심은 곧 더 강한 관심을 필요로 했고, 한 번의 선택은 다음 선택을 보장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보다 젊고 아름답고 자신감 있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선택받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선택받고 싶은 마음은 비교에서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비교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마음은 끝내 자신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는 피로로 남았다.


브뤼노에게 관계는 점점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아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수단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는 사람에게 다가갈수록 더 외로워졌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사람의 마음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보았고, 사랑을 원할수록 다시 매력과 나이, 몸과 선택의 가능성을 따지는 자리로 돌아왔다.


브뤼노는 사랑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하다가 끝내 혼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매달렸던 욕망의 가장 오래된 자리에는,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 있었다.


브뤼노가 네 살 무렵, 그는 유치원에서 남자아이들이 나뭇잎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여자아이들에게 건네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목걸이를 완성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브뤼노의 손에서는 나뭇잎이 자꾸 찢어졌다. 하나를 이어놓으면 다른 하나가 떨어졌고, 아무리 애써도 목걸이는 완성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고, 결국 그의 손에는 건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는 울기 시작했다. 자신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아이들은 목걸이를 건네며 마음을 보여주었지만, 브뤼노에게는 그 마음을 대신해 줄 물건조차 없었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고, 놀이는 그대로 끝나버렸다.


브뤼노의 삶은 어쩌면 그 장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무엇을 건네야 할지 모르는 사람. 마음은 있으나 그것을 상대에게 닿을 수 있는 모양으로 만들지 못하는 사람.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먼저 선택받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숙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사람들 사이에 분명한 서열이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강한 아이들은 약한 아이를 쉽게 골라냈고, 한번 약한 사람으로 지목된 아이는 끊임없이 모욕당했다. 브뤼노는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이 겪은 일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다정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선택했고, 누군가는 선택받았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밀어낼 수 있었고, 누군가는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했다.


십 대가 된 뒤에도 그 구도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겨울 저녁, 학교에서 영화를 보던 브뤼노는 옆자리에 앉은 카롤린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몇 초 동안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브뤼노는 자신이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곁에 머물러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잠시 그를 감쌌다.


그러나 카롤린은 곧 말없이 그의 손을 치웠다. 세게 밀어낸 것도 아니었고, 그를 비웃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거리를 되돌려놓았을 뿐이었다. 브뤼노는 그 뒤로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누군가를 차지하는 일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곁에 머물고, 자신의 손길이 거부당하지 않으며, 자신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반복되는 거절과 수치심을 지나며 점차 다른 모습으로 변해갔다.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자신이 선택받을 수 있는지를 먼저 따지게 되었다. 가까워지고 싶다는 바람보다 자신이 아직 매력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려 했다.


관계는 함께 머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브뤼노는 욕망을 따라갈수록 자신이 처음 원했던 것에서 멀어졌다.


네 살의 브뤼노는 나뭇잎 목걸이를 건네고 싶었고, 십 대의 브뤼노는 누군가의 곁에 받아들여지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나이와 외모, 다른 남자들의 매력과 여자들의 반응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일이었다.


그는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에 도착하기 전에 매번 경쟁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외롭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사랑할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


누군가는 자신 앞에 놓은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외롭고, 누군가는 사랑을 얻으려 애쓰는 동안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사랑이 없어서만 외로운 것이 아니다. 사랑이 있어도 그것을 건네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건네진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에 머물기 때문에 외롭다.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받는 사람도,

사랑 없이 초연히 살 수 있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어느 자리에도 온전히 머물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랑하면서도 상대를 상처 입히고, 사랑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믿지 못한다. 사랑 없이 살 만큼 초연하지도 못해, 이미 멀어진 사람과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계속 기다린다.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축복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해서 행복하다.


그러나 그들 바깥에는 사랑을 품고도 그것을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래도록 혼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