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잠자는 남자』, 『방랑하는 여인』이 말하는 고독
분장실 거울 앞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그녀의 이름은 르네였다. 이혼한 후로 파리의 뮤직홀 무대에 오르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공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남는 시간 동안 읽고 또 읽은 바카라을 펼쳐볼 수도 있었고, 아무렇게나 놓인 신문을 집어 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잠시 동안은 자기 자신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택은 달랐다. 거울 속의 자기와 마주하기로 했다.
콜레트의 『방랑하는 여인』에서 르네는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에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살피는 시간은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하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너니, 거기 있는 게?
무대 위에서 르네는 몸으로 말하는 여인이었다. 음악이 시작되면 리듬을 따라 움직였고, 조명이 켜지면 관객의 시선 속으로 들어갔다.
무대 위, 그곳에서 그녀는 분명한 역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기 전의 이 짧은 정적 속에서 그녀는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연인도, 관객 앞의 배우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자신과 함께 남겨진 사람이었다.
혼자가 되는 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찾는다. 때로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나 계획,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찾기도 한다.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고,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평소에는 피하고 있던 마음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관계는 한 사람의 삶을 너무 깊이 차지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내 삶의 감각을 강하게 깨울수록, 나는 점점 자기 자신보다 그 관계 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더 믿게 된다. 그러다 보면 상대를 잃는 일보다 먼저 두려워지는 것이 있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동안 내가 누구였는지를 잃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 문학은 혼자 있는 시간을 낭만적인 취향이나 세련된 개인주의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거리이기도 하고, 세계와의 연결을 끊어내는 위험한 방식이기도 하며, 아무리 채워도 사라지지 않는 빈자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 등장하는 젊은 커플 제롬과 실비는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형편과는 별개로, 취향만큼은 남들보다 앞서 있다고 믿었다. 무엇이 세련된 것인지, 어떤 물건이 좋은 물건인지, 어떤 삶이 더 나은 삶인지 알아보고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꿈꾼 삶은 단순히 좋은 가죽 소파와 낮은 조명, 결이 고운 바카라장과 우아한 식기를 소유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적당히 어질러진 서재와 오래된 물건들이 만들어내는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모든 것이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싶어 했다. 그들에게 행복은 하나의 감정이라기보다, 욕망과 형편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삶의 분위기에 가까웠다.
페렉은 소설의 첫 장을 거의 통째로 그들이 갖고 싶어 하는 집과 그 안에서 살아갈 하루를 묘사하는 데 쓴다.
복도, 커튼, 바카라장, 소파, 침실과 욕실, 부엌과 아침 식탁까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집을 집요할 만큼 세세하게 그려냈다.
상상 속에만 놓인 공간이었기에 그 집을 이루는 모든 문장에는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붙어 있었다.
소파가 놓여 있을 것이다.
바카라장이 벽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행복은 가정법 속에 있었다.
제롬과 실비는 자신들이 아직 도착하지 못한 삶을 사물로 앞당기려 했다. 더 좋은 집과 더 좋은 옷, 더 세련된 취향과 일상을 상상했고, 친구들과 둘러앉아 아직 오지 않은 생활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언젠가 갖게 될 공간, 언젠가 떠날 여행, 언젠가 쓰게 될 글, 언젠가 누리게 될 여유를 상상했다.
그들은 미래의 삶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만들어 말했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동안만큼은 그 삶이 이미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했다.
아직 손에 넣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속에서는 이미 그 집에 살고 있었고, 그 여행을 떠났으며,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페렉이 집요하게 보여주려 했던 것은 두 사람이 무엇을 갖고 싶어 했는가만은 아니다. 그 둘은 그토록 많은 것을 원한다는 사실로 가까워졌지만,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외에 서로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제롬과 실비는 같은 것을 좋아했고, 같은 것을 꿈꾸었으며, 같은 미래를 꿈꿨다. 그런 취향과 목표가 닮아 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두 사람을 단단히 묶어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단단히 묶어주었던 그 닮음 때문에, 정작 이 둘의 관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좀처럼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작품은 제롬과 실비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보다, 나란히 서서 같은 진열장과 같은 집, 같은 미래를 바라보는 모습을 더 오래 비추었다.
그들은 서로의 내면에 기대어 고독을 견디기보다, 같은 이미지를 함께 상상하며 고독을 잠시 잊었다. 넓은 집과 세련된 취향, 더 나은 삶에 대한 상상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공통의 언어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가려주는 장식이기도 했다.
형편이 나아지면 그들의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같았다. 그들 사이의 사랑을 가로막는 제약도 모두 사라질 듯했다.
그러나 돈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 둘은 사소한 지출이나 쌓여 있는 설거지를 두고 다투었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파 양쪽 끝에 앉아 서로에게 반쯤 등을 돌리기도 했다.
둘은 파리에서 생활과 부족한 경제적인 상황,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튀니지 교사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원래는 친구들이 있는 튀니스로 갈 생각이었지만, 실비는 스팍스의 기술학교 교사로, 제롬은 그곳에서 35킬로미터 떨어진 마하레스의 초등학교로 발령받게 되었다.
제롬에게 초등학교 교사라는 자리가 지나치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당분간 실비의 월급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제롬은 임용을 포기하고 실비와 함께 스팍스에 머물며 다른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스팍스에서 시작된 생활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실비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점점 지쳐갔고, 제롬은 끝내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는 슬롯학 시험을 준비하거나 영화에 관한 글을 써보려 했지만, 어느 것 하나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일이 없는 제롬은 항구와 시장, 박물관과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파리의 친구들에게 조금은 쓸쓸한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하루는 실비의 수업 시간표와 영화관의 상영 일정에 맞춰 반복되었고, 몇 주와 몇 달은 거의 구별되지 않은 채 흘러갔다.
스팍스 생활에 지친 그들은 주말이나 짧은 휴일마다 자동차를 빌려 튀니지 곳곳을 돌아다녔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유적지를 돌아다니면 자신들의 무기력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비슷한 건조함과 낯섦만이 느껴졌다.
시장에는 화려한 옷감과 귀금속, 장신구와 양탄자, 은으로 된 수공예품이 가득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함마메트에서 나이 든 영국인 부부의 집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 부부는 튀니지와 피렌체를 오가며 살고 있었고, 단지 부부 단둘이 느끼는 권태로움을 잊기 위해 제롬과 실비 외에도 열 명이 넘는 손님을 함께 초대했다.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제롬과 실비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부드럽게 해변으로 내려가는 넓은 정원, 여러 개의 별채와 베란다, 바카라으로 뒤덮인 팔각형 서재, 두꺼운 깔개가 깔린 방, 영국식 가구와 거대한 벽난로가 있었다. 정원에는 레몬나무와 오렌지나무, 아몬드나무가 자라고, 대리석 길과 연못, 폭포와 장미 넝쿨이 이어졌다.
평소 제롬과 실비라면 그 모든 것을 부러워하고, 바라보고, 하나씩 이름 붙이면서 언젠가 자신들도 그런 집에서 살게 될 거라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함마메트에서 사흘을 보내는 동안에도 그들의 무기력은 깨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그 집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더 이상 새로운 욕망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집을 자신들의 미래로 상상하는 대신, 한때 자신들이 품었던 꿈의 흔적처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잃어버린 것은 물건을 갖고 싶다는 마음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까지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스팍스에 오기 전까지 제롬과 실비의 시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집, 다음 여행과 다음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직 오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견디게 해 주었다.
그러나 스팍스에는 그들의 시선을 붙잡아줄 진열장도, 함께 욕망을 키워갈 친구들도 없었다. 실비가 학교에 간 뒤 제롬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게 남았다.
그는 공부를 시작하고 글을 써보려 했지만 어느 것도 끝내지 못했다. 항구와 시장을 걷고, 신문을 읽고, 낱말풀이를 하고, 답장이 오지 않는 편지를 쓰며 하루를 보냈다.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너무 많았다. 문제는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흔히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타인의 시선과 익숙한 자극이 사라진 뒤에야, 내가 원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바깥에서 주어진 욕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제롬과 실비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자신을 되찾는 시간이 아니었다. 자신이라고 믿었던 욕망을 하나씩 잃어가는 시간이었다.
파리에서는 갖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자신을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스팍스에서는 마침내 아무것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혼자 남는다는 것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진다는 뜻만은 아니다. 나를 앞으로 끌고 가던 기대와 이미지가 사라진 뒤에도, 자신의 시간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
페렉은 2년 뒤, 정반대의 인물을 만들어 냈다.
『잠자는 남자』의 젊은 남자는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 공백을 없애는 대신,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기보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상태를 꿈꿨다. 더 나은 삶을 바라보기보다 삶이라는 게임 자체에서 조용히 빠져나가고 싶었다.
주인공은 파리의 좁은 다락방에서 혼자 살아가는 스물다섯 살의 슬롯학과 학생이다. 어느 무더운 날, 그는 레몽 아롱의 『산업슬롯 강론』을 무릎 위에 펼쳐두고 있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한 줄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었다.
몸은 무겁고, 다 식어버린 커피는 너무 달았고, 끝맛은 조금 씁쓸했다. 좁은 방 안에서 그의 시선은 물에 담가둔 양말과 천장에 번진 균열과 얼룩 같은 것들에 오래 머물렀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움직이게 했던 그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도, 앞으로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도 더 이상 그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계속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얼마 뒤 슬롯학 시험 날이 찾아왔다.
그는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알람도 맞춰두었다. 아침이 되어 알람이 울리는 소리까지 분명히 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몸을 일으켜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았다.
늦잠을 잔 것도 아니었고,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미리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일어나지 않았고, 씻지 않았고, 시험장으로 가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이 답안지를 받아 들고 그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동안, 그는 좁은 방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날의 결시는 단 한 번의 시험 포기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결국 학업을 마치지 않았고, 다시는 공부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음 날, 친구 한 명이 여섯 층 계단을 올라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만으로도 친구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끝내 문을 열지 않았다.
친구는 한동안 문 앞에서 기다리다 돌아갔고, 나중에 다시 찾아와 쪽지를 문 아래로 밀어 넣었다. 그 뒤로 다른 친구들도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약속을 남겼다.
그는 쪽지를 읽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구겨서 버렸고, 누구도 만나러 나가지 않았다.
시험장에 가지 않은 일이 삶의 궤도에서 한 걸음 비켜선 일이었다면, 문을 열지 않은 것은 사람들과 이어져 있던 마지막 통로까지 스스로 닫아버리는 일이었다.
그 뒤로 그는 방 안에 오래 누워 천장의 균열과 얼룩을 바라보았다. 물에 담가둔 양말과 금이 간 거울 속 자신의 얼굴도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는 우편물을 찾으러 가지 않았고, 도서관에서 빌린 바카라도 돌려주지 않았고, 부모에게 편지를 쓰지도 않았다.
그는 밤이 되어야 방을 나섰다. 때로는 밤새 파리의 거리를 걷고 낮 동안 잠을 잤다. 허름한 영화관이나 카페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보고 싶은 영화가 있거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아무 목적 없이 거리를 떠돌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얼마 뒤에는 파리를 떠나 오세르 근처의 시골 마을에 있는 부모님의 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몇 달을 머물렀지만 부모님과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조용히 식탁에 앉았고, 어린 시절 읽었던 바카라들을 다시 읽는 것이 전부였다. 또, 날마다 비슷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시골의 고요도 그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는 다시 파리의 다락방으로 돌아왔고, 이전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이어갔다.
그가 하려 했던 것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무관심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 무엇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그리고 어떤 일도 기대하지 않는 상태가 되고 싶었다.
음식의 맛과 옷의 가치, 신문의 기사와 거리의 풍경 사이에 어떤 차이도 두지 않았다. 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았고, 무슨 영화인지도 살펴보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그는 거리와 카페를 떠돌면서도 어느 장소를 더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으려 했다.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까지 지우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세상이 더 이상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더 이상 자신을 흔들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유처럼 느껴졌다.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도착해야 할 곳도 없었다. 그는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고, 배가 고프면 아무 식당에나 들어갔으며, 눈앞에 보이는 영화를 보았다. 거리의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서도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았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니 잘못 선택할 일도 없었다.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할 일도 없었고,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않으니 거절당할 일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마침내 세상으로부터 안전해졌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에서는 상처받을 일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기다릴 일도, 기뻐할 일도, 하루를 다음 날로 이어 줄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밤의 산바카라과 영화관, 카페와 카드놀이는 점점 같은 동작의 반복이 되었다. 어디를 가든 풍경만 달라질 뿐, 그는 다시 같은 고독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무관심이라고 믿었던 것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쌓은 벽 안에서, 점점 자신의 감정을 잃어가는 선택이었다.
무관심은 너를 다르게 만들지 못했다.
그러나 무관심은 생각했던 것처럼 단단한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았고, 어떤 일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 평온함이 이어졌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평온 속으로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는 잠들지 못한 채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였고, 손톱을 피가 날 때까지 물어뜯었다. 거리로 나가 핀볼 기계 앞에 몇 시간씩 매달리기도 했다.
밤과 거리는 더 이상 그를 숨겨주지 않았다. 혼자 있다는 사실을 잊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걸었지만, 사람들 속에 섞일수록 자신이 누구와도 이어져 있지 않다는 감각만 또렷해졌다.
말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침묵 속에서 그에게 돌아온 것은 더 깊은 침묵뿐이었다.
그가 자유라고 믿었던 상태마저 조금씩 무너졌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어떤 삶에도 속할 수 없다는 것과 같았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하루는 버텨야 할 이유까지 잃어버리는 일이었다.
그는 한동안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고 믿었다.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고, 어떤 사건에도 흔들리지 않는 투명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대로 있었고, 시간도 멈추지 않았다. 거리의 신호등은 바뀌었고, 교회의 종은 계속 울렸으며, 복도의 수도꼭지에서는 물방울이 일정하게 떨어졌다.
그가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무관심은 그를 세상 밖으로 데려가지 못했다. 오히려 같은 자리에서 조금씩 지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목적 없이 반복한 산바카라과 영화, 카드놀이는 그의 삶을 멈추게 하지 못했고, 다만 하루와 다음 날의 차이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세상과의 연결을 모두 끊어버린다고 해서, 자기 자신에게서까지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외면하려 했던 불안과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무관심은 자신을 지켜주는 벽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과 단둘이 남게 만드는 빈방에 가까웠다.
*
함께 욕망하는 이미지로 빈자리를 가리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무관심으로 주변을 밀어내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기 삶을 잃지 않기 위해 감당하는 고독이다.
콜레트의 르네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고독이 얼마나 쓰라린지 알고 있었다. 혼자 사는 삶이 늘 우아하거나 당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어떤 날의 고독은 자유의 술처럼 취하게 만들었지만, 어떤 날에는 쓴 약이 되고, 어떤 날에는 머리를 벽에 찧게 만드는 독이 되었다.
르네는 오랜 시간 남편 아돌프의 거짓말과 반복되는 외도를 견뎌야 했다. 그녀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점점 침묵하게 되는 시간을 경험했다. 그리고 어느 날 더는 그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살아가기로 선택했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혼자였다. 거울은 더 이상 화려한 무대의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분장이 지워진 얼굴, 누구의 아내도 아닌 얼굴, 오직 자기 자신으로 남은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르네의 고독은 상처 때문에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런 르네 앞에 막심이 나타났다. 그는 다정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막심은 르네의 외로움을 알아보았고, 그녀에게 행복을 주고 싶어 했다. 그녀를 붙잡고 싶어 했고, 그녀의 삶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르네 역시 흔들렸다. 혼자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해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다정함에 기대고 싶고, 더는 모든 밤을 혼자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싶은 순간이 그녀에게도 있었다.
막심의 사랑이 선의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어려웠다. 그는 르네를 진심으로 아꼈다. 사랑은 때로 다정함의 얼굴로도 한 사람의 삶 안으로 너무 깊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네는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나누겠다고 말할 때, 그 나눔은 때로 아주 자연스럽게 소유로 바뀔 수 있었다.
시간의 일부, 선택의 일부, 침묵의 일부가 어느새 누군가의 몫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함께하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어느 순간 그 함께한다는 이유로 내 안의 가장 은밀한 방까지 열어달라는 그 요구가 정당한 것처럼 포장되기도 했다.
르네는 막심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것도, 함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그 다정함이 어디까지 들어오려 하는지를 보았다.
그가 내미는 손은 따뜻했지만, 그 손을 잡는 순간 자신의 삶이 다시 누군가의 리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르네는 알았다.
그래서 르네는 떠나는 선택을 했다.
끝맺지 못한 편지 한 장을 남기고, 그녀는 막심에게서 멀어지기로 했다. 그 편지에는 사랑하면서도 떠나야 하는 사람의 문장이 남아 있었다.
나는 너를 그리워하면서,
너 아닌 모든 것을 선택했어.
르네는 막심을 그리워하면서 떠나갔다. 그가 줄 수 있는 행복을 몰라서 거절한 것도 아니었다. 그 행복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았기 때문에, 바로 그 행복이 자신을 다시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물러났다.
르네가 택한 고독은 승리와는 성격이 달랐다.
그녀는 자유로워졌지만, 그 자유에는 갈증이 남았다. 그녀는 앞으로 막심을 그리워할 거고, 그가 줄 수 있었던 따뜻함을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의 벽 그늘, 누군가의 팔, 누군가가 만들어줄 수 있었던 평온함을 상상하면서.
르네가 거절한 이유는 행복보다 더 지키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의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 관계 안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