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다리외세크의 『유령들의 탄생』, 관계 중독과 자기 상실
하루가 누군가의 모닝콜로 시작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폰부터 찾았다.
화면에는 아무런 알림도 떠 있지 않았다. 아직 시간을 확인하고 아직 몇 분쯤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날 전화는 오지 않았다.
'혹시 진동을 못 들었나?' 싶어 통화 기록을 열어보았다. 메시지 창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둔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문제는 휴대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미 다른 가능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늦잠을 잔 걸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니면 어젯밤 내가 뭘 잘못했나?
먼저 연락하면 아무렇지 않게 물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들킬 것 같았다. 전화 한 통에 아침 전체를 걸어두었다는 사실도, 연락이 오지 않은 몇 분 동안 이미 여러 번 상처받았다는 뉘앙스도 풍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아직 오지 않은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하루는 시작되지 못한 채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나의 하루는 변한 것 없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날 나의 모든 행동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겨난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고, 길을 건너기 전에도 알림을 확인했다. 바카라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기 전에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혹시 알림이라도 울리면 여지없이 휴대폰을 들고 별일 아닌 척 화면으로 눈이 갔다.
결국 메시지 창을 열었다. 위로 올려 어제 보낸 메시지들을 다시 읽었다. 지나간 문장들을 곱씹으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짧게 답한 것 같기도 했고, 마지막에 붙은 이모티콘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했다. '잘 자' 뒤에 붙은 마침표 하나가 괜히 신경 쓰였다.
별것 아닌 문장 하나가 하루 종일 여러 번 다른 뜻으로 바뀌었다.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너무 길지는 않게,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도 않았다. 장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 다정하게 보이도록, 이모니콘도 넣었다.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었다. 읽었는지, 아직 확인하지 않았는지, 읽고도 답이 없는지...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대화가 계속 됐다.
*
그때는 기다리는 것이 좋았다. 나를 기다리는, 그리고 내가 기다리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에 평범한 일상이 선명해지는 것만 같았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그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공기까지 의미를 갖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 감각에 매몰되는 순간이었다. 일상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집중되었을 때, 그 사람과의 관계는 조금씩 중독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그 강렬한 몰입에서 금세 빠져나왔지만, 스스로 끊어내지 못한 채 관계를 계속 이어갈 때 우리는 그것을 관계 중독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단순히 상대방을 너무 사랑하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평범했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 대상이 연인이든 친구든, 닿을 수 없는 연예인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음이 한 사람을 향해 기울기 시작하면, 그의 말과 행동은 이전보다 훨씬 커다란 의미를 갖게 된다.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고, 그 사람의 시선 속에서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기다리고, 궁금해하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 사람보다, 그 사람을 통해 느끼게 된 기분에 더 깊이 매달렸다.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했다. 그 사람을 잃는 것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느꼈던 설렘과 특별함을 잃는 일이 더 두려웠다.
그리고 결국 관계의 목적은 그 기분을 계속 붙잡아 두는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했고, 내가 괜찮은지보다 그 사람이 여전히 나를 좋아하는지를 더 중요해졌다.
그렇게 관계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조금씩 나 자신은 놓치기 시작했다.
*
오늘 소개할 세 작품도 자신이 사라지는 과정을 신랄하게 보여준다.
내가 나를 먼저 지우고,
다음으로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나 역시 사라진다.
*
한 여자가 자기 남편을 사랑했다.
결혼한 지 13년이 지났는데도 처음 만난 날처럼 사랑한다고, 마치 열다섯 살인 것처럼, 한 번도 버림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을 부를 때 이름을 쓰지 않았다. '내 남편'이라고만 불렀다.
빵집에 가서도 '내 남편'이 화요일에 주문을 했다고 말했고, 학교 앞에서도 목요일엔 '내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러 올 거라고 얘기했다.
그녀에게 그는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내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자신의 것이라고 믿었다.
모드 벵튀라의 『나의 남편』은 한 여자의 열렬한 사랑 고백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한다'는 말의 안쪽이 조금씩 낯선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늘 남편이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거나, 오래전 연인을 잊지 못했거나, 어느 날 갑자기 이혼 얘기를 꺼내는 상황을 상상했다.
혹시...라는 불안감은 그녀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남편이 약속에 몇 분 늦거나 평소와 다른 음식을 주문하는 사소한 변화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남편의 사소한 변화가 마음이 변했다는 징후는 아닌지, 자신에게서 마음이 떠났다는 신호는 아닌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녀는 이상한 편지가 오지 않았는지 남편보다 먼저 우편함을 확인했다. 그의 가방과 바지 주머니에 남은 영수증 내역을 꼼꼼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남편 앞에서는 의심하는 아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말과 행동을 조심했다.
소설의 섬뜩함은 남편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이르는 과정이 아니라, 파국을 막기 위해 그녀가 관계를 관리하는 모습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의식했다. 그리고 감정을 조절하는 그 일을 꽤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가끔 반가운 마음을 곧바로 드러내지 않았고, 답장을 일부러 조금 늦게 보내기도 했다. 다정한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끝내 삼키는 과정을 반복했다. 반면 남편의 말과 행동은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의 무심함에는 그에 걸맞은 벌을 노트에 적었다.
그렇게 관계를 관리한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완벽한 아내의 얼굴로 돌아갔다.
그 연출이 가장 정교해지는 순간은 남편이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그가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은 거의 연극의 막이 오르는 것처럼 준비되었다. 방 안의 조명과 앉아 있는 자세, 손에 든 바카라과 얼굴에 머물 표정, 그를 기다릴 위치까지 미리 계산했다. 남편이 자신을 계속 사랑하도록 매일 다시 배열하고, 연습하고, 연출한 하나의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연출은 무대 뒤에서도 계속됐다.
그녀는 노트에 남편이 무엇을 했는지, 그것이 어떤 잘못에 해당하는지, 그 잘못에는 어떤 벌을 내려야 하는지를 차례로 기록했다.
죄목, 형벌, 날짜.
노트에는 하소연도, 자기 연민도, 긴 심리 분석도 없었다. 자로 반듯하게 나눈 세 개의 칸만 있을 뿐이었다.
남편이 잠들기 전 잘 자라는 인사를 하지 않으면, 다음 날 아침 그를 안아주지 않는 식이었다. 자신이 옆에 있는데도 소파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봤던 다음에는 남편에게 걸려 온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복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기울어진 마음의 균형을 바로잡는 일, 사랑 안에 최소한의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남편의 다정함과 무심함을 하나씩 저울질했고, 상처받은 만큼 자신의 사랑을 가져왔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는 여자'라는 배역을 연기하는 듯 보였다. 더 매력적인 아내가 되기 위해,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기 위해, 계속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말과 표정, 몸짓을 끊임없이 고쳐 나갔다.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녀는 항상 과부와 정부, 버림받은 여자들을 부러워했다. 그녀들의 고통에는 이미 익숙했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여자, 기다리는 여자,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하는 여자에게는 힘들어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무너지는지도 분명히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받고도 채워지지 않는 여자를 위한 대본은 없었다. 남편은 곁에 있었고, 가정은 평화롭고, 삶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녀에게는 잃어버린 사람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자신의 불행을 설명해 줄 분명한 사건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 안의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소설은 마지막에 이 모든 불안이 그녀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남편은 그녀가 자신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는 한밤중에 사랑한다고 속삭인 다음 날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고, 그녀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정함과 무심함의 강도를 조절했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을 읽기 위해 모든 것을 단서로 만들었지만, 남편 역시 그녀가 읽어낼 단서를 일부러 흘리기도 했다.
한 사람은 사랑을 잃을까 봐 관계를 관리했고, 다른 한 사람은 관계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그 불안을 이용했던 것이다.
*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약해진 자리는 오래 비어 있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 틈을 알아보고, 가장 필요한 말을 건네면서 조용히 다가온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이 내 감정과 판단을 대신 설명하기 시작한다.
델핀 드 비강의 『실화를 바탕으로』는 한 사람이 지치고 흔들리던 틈으로 누군가가 들어와, 마침내 그의 삶과 목소리를 차지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 작가 델핀이다. 그녀는 자기 가족의 고통을 정면으로 다룬 바카라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 작품은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큰 성공을 거둔 상태였다.
그녀의 바카라을 읽은 독자들은 사인회장에 길게 줄을 섰다. 그들은 작품 속 인물의 고통에서 자신의 상처를 발견했고, 델핀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놓다가 눈물을 흘렸다.
한때 델핀의 어머니였던 얼굴은 바카라 표지 위에서 수백, 수천 번 복제되었고, 이제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소설 속 인물의 이미지가 되어있었다.
델핀은 자신이 쓴 작품이 더 이상 자신의 손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족의 내밀한 이야기는 세상으로 번져갔고, 문장은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동시에 그녀 자신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작가의 이름은 더 이상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로 그녀는 거의 3년 동안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했다.
단순히 다음 작품이 잘 써지지 않는 정도의 슬럼프가 아니었다. 그녀는 행정 서류나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감사하다는 작은 메모, 그리고 장을 봐야 하는 목록조차 쓰지 못했다.
노트나 종이를 보는 것만으로 속이 메스꺼워졌다. 워드 문서를 여는 순간 공포가 밀려왔다. 결국 키보드 가까이 손을 가져가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그녀의 침묵을 피로, 성공의 압박, 바쁜 일정, 혹은 한 문학적 시기의 끝으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델핀의 안쪽에서 벌어진 일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더 이상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을 노출하는 작업이 되어 있었다. 문장을 시작하는 일이 다시 한번 자기 삶을 세상 앞에 내어놓는 일처럼 느껴졌다.
바로 그때 L.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L.은 매혹적이고, 정확하고, 섬세한 여자였다. 무엇보다 그녀는 델핀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굴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던 혼란을 L.만은 알아보는 듯했다. 델핀이 미처 말하지 못한 불안을 먼저 짚어내기도 했다. 델핀 자신도 흐릿하게만 느끼던 상처에, L.은 정확한 언어를 돌려주었다.
델핀은 자신이 잘 아는 소설의 서문을 쓰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출판사에서 서문 작성을 위한 질문지를 보내왔지만, 델핀은 기한을 연장해 달라는 이메일조차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 약속만큼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마저 포기하면 정말로 삶의 균형을 잃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다잡고 컴퓨터를 켰다. 하지만 출판사가 보낸 질문지 파일을 여는 순간, 델핀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바카라상 옆에 놓인 휴지통에 뱃속에 있는 모든 걸 게워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굽힌 채 휴지통을 끌고 화장실까지 기어갔다. 그리고 다시 노란 담즙을 토해내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그녀는 거울 속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짓눌리는 것 같았다. 자신이 진흙으로 가득 찬 깊은 구덩이 밑에서 미끄러져 빠져나오지 못하는 환영까지 보았다.
그제야 델핀은 자신이 단순한 슬럼프가 아니라, 글쓰기 능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는 지점까지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장실에서 나온 델핀이 L.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래도록 알고 지낸 누군가가 아니라 L.에게만 전화한 것이다. 그 순간 L.만이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L.은 전화를 받고 30분 만에 델핀의 집에 도착했다.
L.은 외투를 벗고 차를 끓인 뒤, 델핀을 창가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델핀의 컴퓨터 비밀번호를 물었고, 델핀이 앉아야 할 바카라상과 의자에 자신이 대신 앉았다.
쌓여 있던 이메일에 답하고, 답장을 미루거나 제안을 거절하는 문구를 만들어 읽어주었다. 그리고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건물 관리를 위한 편지까지 처리한 뒤, 함께 소설의 서문을 쓰자고 말했다.
L.의 입을 거치면 이상할 만큼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복잡하고 두려웠던 일들은 그녀의 손에서 차분한 순서와 문장으로 바뀌었다.
델핀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도했다. 자신이 멈춘 자리에서 누군가 대신 움직여준다는 사실, 자신이 잃어버린 언어를 대신 찾아주었다는 사실에 구원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누군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믿게 되는 순간, 위로는 침입의 다른 이름이 된다는 사실을 델핀은 미처 알지 못했다. 도움처럼 다가온 손길은 어느새 그녀의 하루를 정리하는 것을 넘어, 삶의 방향까지 대신 가리키기 시작했다.
L.은 단순히 연락을 정리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델핀에게 이제는 사람들을 쉽게 믿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편집자와 친구, 가족이 저마다 델핀을 이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들은 델핀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얘기했다.
진짜 친구라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먼저 찾아와야 한다는 L.의 말에 델핀은 기존 관계를 하나씩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L.은 델핀 몰래 그녀의 이름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일이 발생했다. 메일은 델핀의 거의 모든 친구와 지인에게 보내졌다. 새 바카라을 쓰기 위해 몇 달 동안 아무도 자신에게 연락하거나 만나자고 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델핀 자신도 그 이메일이 사람들에게 전달된 사실을 몰랐다.
친구들은 메일에 쓰여 있는 대로 델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몇몇은 격려의 답장을 보냈지만, L.은 그 메시지들을 델핀에게까지 전달하지 않았다. 나중에 델핀이 이 일을 알고 따졌지만, '널 도와주고 싶었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 일로 두 사람은 한동안 멀어졌다. 그러나 얼마 뒤 델핀이 발을 다쳐 병원에 실려 갔을 때, L.은 다시 나타나 곁을 지켰다. 델핀은 자신을 위해 달려온 사람을 끝내 밀어내지 못했다. 두 사람은 먼저 델핀의 연인 프랑수아가 소유한 시골집에서 함께 지냈다. 파리로 돌아온 뒤에도 L.은 델핀의 집에 계속 머물렀고, 두 사람은 몇 주 동안 같은 욕실과 식탁을 나누며 함께 생활했다.
L.은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델핀이 다시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개입도 깊어졌다.
L.은 델핀이 누구를 만나고 어떤 말을 나누는지 신경 썼고, 자신만이 델핀의 본모습과 그녀가 써야 할 글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내 델핀은 폭발했다. 자신에게는 L.이 말하는 숨겨진 바카라도, 아직 꺼내지 않은 진실도 없다고 소리쳤다.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 있는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다음 날 아침, L.의 짐은 이미 현관에 놓여 있었다. L.은 자신의 존재가 델핀에게 부담이 된 것 같다고, 혼자 있어야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델핀에게 빌린 열쇠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네가 걱정돼.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조심해."
그 말을 남기고 L.은 떠났다. 델핀에게 그것은 걱정이나 충고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일을 예고하는 저주처럼 들렸다.
L.이 사라진 뒤, 델핀은 자신이 알고 있던 일들마저 다시 확인하기 시작했다.
몇 달 전, 델핀은 투르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리는 독자와의 만남에 초대받았던 적이 있었다. 행사 전날 공황에 빠진 델핀을 대신해 L.이 그녀의 옷을 입고, 그녀의 이름으로 학교에 가기로 했다. 그날 밤 돌아온 L.은 학생들과의 만남과 사인회, 교사들과 나눈 대화까지 자세히 들려주었다. 델핀은 L.이 정말로 자신의 자리를 대신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뒤늦게 학교와 오간 메일을 찾아보았을 때, 델핀의 컴퓨터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으로 쓰인 메시지들은 모두 삭제되어 있었다.
델핀이 직접 학교에 전화하고 나서야 진실이 드러났다. 그날 학교에는 델핀도, L.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많은 학생이 기다렸지만 취소 연락조차 없었고, 담당 교사가 보낸 항의 편지에도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파상의 소설에 붙인 서문은 조금 달랐다. 델핀은 자신이 작품에 대해 생각한 것을 말했고, L.은 그것을 문장으로 옮겼다. 델핀은 완성된 글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일에 동의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서문을 다시 읽고 사람들 앞에서 작품에 관해 말해야 했을 때, 자신이 쓰지 않은 문장 아래 놓인 자신의 이름은 이전과 전혀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는 도움이라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L.은 델핀의 편지와 메일뿐 아니라, 그녀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갈 문장까지 대신 쓰고 있었다.
관계가 한 사람을 잠식할 때, 가장 먼저 빼앗기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판단이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나다운 것인지, 누구의 말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가늠하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L.은 델핀 앞에 바로 그 판단을 대신해 주는 사람처럼 나타났다. 그러나 누군가 대신 판단해 준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친밀함으로 다가오지만 친밀함이 깊어질수록, 타인은 내 삶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침내 나의 자리 자체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저항해야 할 순간조차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느새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자기 감각보다 상대의 판단을 더 신뢰하게 된다.
그 잠깐의 의존이 무엇을 빼앗아갔는지는, 모든 일이 이미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보인다.
*
내가 나를 지우고,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하기 시작했다면, 상대방이 사라질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남편이 사라졌다.
남편은 퇴근해 돌아와 가방을 벽에 기대어 세워두고, 바게트를 사 왔느냐고 물어봤다. 저녁 일곱 시 반쯤이었다. 그는 바게트를 사러 나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전부였다.
거창한 이별도 없고, 설명도 없고, 마지막 대화도 없었다. 그는 그냥 사라졌다.
처음에 아내는 그가 실종됐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블랑제리에 사람이 많다고만 생각했다. 아니면 블랑제리가 문을 닫아 근처 다른 곳을 찾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그저 조금 늦을 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길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조금 길게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들)과 저녁을 먹게 되었는지도...
그녀는 창가에 서서 거리 쪽을 내려다보았다. 계단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돌아오면 따질 말을 마음속으로 준비했다.
이제는 걱정보다는 먼저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배고픔과 분노를 간신히 삭이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것을 한꺼번에 쏟아낼 생각이었다.
시간이 더 지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이 있어서 늦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상황이, 어느 순간부터 이유를 붙일 수 없는 불길한 느낌으로 변해갔다. 몇 분 정도는 이유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유들은 하나씩 힘을 잃어 갔다.
그렇게 그녀에게 남은 것은 바게트를 사러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단순한 사실 뿐이었다.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았고, 전화기를 손에 들었다. 텔레비전을 켰다가 껐고, 결국 거리로 나가 근처 블랑제리들을 확인했다.
그래도 남편은 없었다.
그때부터 집 안의 사물들은 더 이상 평소의 자리를 유지하지 않았다. 방은 비어 있었고, 창문은 기다림의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전화기는 부재를 확인하는 기계가 되었다.
냉장고의 차가운 빛, 식탁 위의 음식, 저녁의 그림자까지 모두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사라진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속한 세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남편이 없다는 사실은 더 이상 하나의 사건에 머물지 않았다. 현실의 질감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
방은 같은 방이었고, 창문은 같은 창문이었고, 냉장고와 전화기와 식탁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조금씩 낯설게 느껴졌다. 남편이 사라진 뒤, 세계는 비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상할 만큼 무거워졌다.
남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곧바로 주저앉아 울지 않았다. 그를 찾아 동네 블랑제리를 돌아다녔고, 회사와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있을 만한 곳을 하나씩 확인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남편은 없었다. 텅 빈 거리를 바라보는 동안 다리에서 힘이 빠졌고, 가슴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걷고 숨 쉬는 평범한 동작조차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던 첫날 저녁, 창가에 서 있던 순간을 떠올렸다.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따뜻한 햇빛을 얼굴에 받으며 조용히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자신이 온전한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단순히 늦게 돌아온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종으로 바뀌자, 그녀가 알고 있던 일상도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없는 집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을 기다리는 일이 하루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녀의 생활 전체가 되어버렸다.
남편이 사라지자 흔들린 것은 결혼 생활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온 시간 속에서 유지되던 자기 모습도 함께 흔들렸다. 그녀는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점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마리 다리외세크의 『유령들의 탄생』에서 사라진 사람은 남편이지만, 유령이 되어가는 것은 오히려 그녀 자신이다.
자기 자신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 익숙하던 집은 더 이상 예전의 집이 아니었다. 매일 보던 익숙한 것들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를 흔든 것은 남편을 잃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하던 일상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세상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확인해 왔기 때문이다.
밤이면 남편의 숨소리가 집 안의 다른 소음을 밀어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안심하고 잠들었고, 어둠 속에서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 수 있었다. 부엌의 노란 의자와 함께 고른 전등갓, 욕실에 남은 낡은 칫솔처럼 사소한 물건들도 두 사람이 같은 시간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남편이 사라지자 그 물건들은 더 이상 평범한 생활의 일부로 보이지 않았다. 집 안의 모든 것은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가 없는 자리를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익숙했던 집은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변했다.
실제로 가끔 누군가와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자기 삶의 모양을 확인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이 돌아오는 시간, 잠든 뒤 들려오는 숨소리, 함께 사용하던 식탁과 침대는 어제와 오늘을 이어준다.
그저 한 사람이 없을 뿐인데, 집 전체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늘 곁에 있던 사람이라면 단지 슬퍼지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쉽게 일, 타이틀, 혹은 누구와의 관계 속에서만 나 자신을 확인해 왔다면,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삶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 이상으로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하루의 질서가 무너지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남편이 사라지자 이상하게도 더 희미해진 것은 남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 남편이 없는 세계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 상태, 남편이 유령이 된 뒤, 그를 기다리는 그녀 역시 조금씩 살아 있는 사람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바게트를 사러 간 남편이 어쩌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남편이 돌아왔다 한들, 그를 기다리던 아내는 아직 그곳에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말해줄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