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장면으로 만드는 몽타주

연대기는 재미없다. 장면 배치로 만들어진 새로운 삶에 더 끌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단순한 열정』이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파격적이고 문제적인 이 작품은, 유부남과의 관계에 매몰된 그녀의 시간을 집요하게 기록하고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남자의 자리』가 압도적인 판매량을 기록해 왔다. 겉으로는 아버지의 삶을 다룬 작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족, 계급 이동, 학교를 통한 신분 상승, 말투와 교양 때문에 생겨나는 수치심이 촘촘히 스며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판매량과는 달리 그녀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작품은 『세월』이다. 한 개인의 삶에서 사진처럼 떠오르는 장면들과 시대의 흔적들을 몽타주처럼 배치한 작품이다. 그녀가 태어난 1940년대부터 2006년까지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세대의 기억을 복원하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녀가 겪어온 삶의 흔적을 따라가지만 사건의 인과 관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장면이 함께 있을 때 되살아나는 시대적 감각에 집중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한 개인이 겪어온 시간을 따라가지만, 이야기를 듣는다는 느낌보다 오래된 사진첩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과거 식탁에서의 분위기가 지나가고, 유행하던 말투가 스쳐 가고, 텔레비전 화면과 광고 문구, 가족의 몸짓과 그 계절의 공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 장면들이 낯설지 않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임에도 작품 속 감각은 놀랍도록 친숙하게 다가온다. 어느 집 부엌의 냄새, 어떤 저녁의 침묵, 텔레비전 앞에서 흐릿해지던 어른들의 표정까지.


그녀의 서사가 사람들에게 강하게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 개의 장면을 정확하게 배치했을 때 만들어낼 수 있는 공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저장된 기록물처럼 생각한다. 과거의 일들이 어딘가에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다가, 원하면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스냅샷처럼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 기억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기억은 늘 뒤늦게 따라오는 사건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설명이 더 정확하다.


어떤 장면은 유난히 선명하고, 어떤 시간은 통째로 편집되어 있기도 하다. 어떤 말은 정확히 기억하지만, 그날 하루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렇게 남아 남아 있는 기억들이 모여 누군가의 서사가 된다. 왜 남아 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남아 있는 시간의 조각들을 모아봤더니 하나의 그림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어떤 냄새, 말투, 분위기, 표정, 가끔은 몸의 움직임으로 과거를 더 오래 붙들고 산다.


연대기가 아니라 파편으로, 그리고 그 조각들은 시간순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뒤섞이고, 되감기고, 뜻밖의 순간에 다시 떠오른다.


그럼 이렇게 조각들로 남아 있는 기억을 글로 어떻게 표현할까?


프랑스 작가들은 기억이라는 주제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에르노의 작품 중에 가장 많이 읽힌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대표작으로 『세월』을 꼽는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이유는 개인의 기억을 가장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그녀의 인생을 단단한 중심에 세워놓고 있지만, 감정을 길게 독점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더 넓은 시대의 흔적을 읽어내는 쪽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그녀의 시선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작품 속에서 쓰이는 '나'를 비인칭적이고 초개인적인 형식에 가깝다고 설명한 부분이다. 그녀의 몇몇 작품에서는 '나'라는 말 대신에 '그녀', 혹은 '소녀'라는 호칭으로 자신의 경험을 소환해 내는데, 『세월』에서도 이러한 시선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작품에는 전후 프랑스 식사 시간의 분위기, 유행하던 광고와 선거 홍보 문구의 소환, 소비문화의 변화와 낙태와 피임을 둘러싼 공기가 스며있다. 에르노는 이 흔적들을 차례로 불러내며 삶의 감각을 복원해 냈다


그녀의 복원에는 인생을 선에서 점으로 바꾸어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있다.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는 방식 대신 사건들을 선별적으로 배열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무엇을 먼저 꺼내놓고, 무엇을 뒤늦게 부르고, 무엇을 굳이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두는지가 곧 이 작품의 문장이고 리듬인 것이다.


조금 더 냉소적으로 사람들이 에세이는 읽지만 회고록은 읽지 않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시간 순서대로 사건을 나열해 놓은 회고록은 그만의 리듬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연대기와 자기서사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연대기는 무슨 일이 먼저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사건을 인과의 사슬로 묶고, 원인과 결과를 정리하고, 삶을 이해 가능한 하나의 서사로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깔끔하고 논리적인 정당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자기서사는 논리적인 흐름보다 의미를 더 중요시한다. 과거의 사건을 선별하고, 두 사건을 함께 놓고, 또 떨어뜨려 놓았을 때 생겨나는 의미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한 장면과 오랜 뒤의 깨달음, 지금의 언어로만 겨우 붙잡히는 감정, 그 사이에 길게 남은 공백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영화 문법에서의 몽타주라는 개념도 이러한 특징에서부터 시작했다. 단순히 화면을 빠르게 이어 붙이는 편집이 아니라 서로 다른 쇼트를 나란히 놓아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과거 소련 영화 이론에서는 이렇게 서로 다른 각각의 장면을 함께 배치하는 것이 단순한 연결을 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레프 쿨레쇼프(Lev Vladimirovich Kuleshov)는 한 쇼트가 그 자체의 이미지 가치뿐 아니라 다른 쇼트와 나란히 놓였을 때 만들어지는 두 번째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 개념을 가장 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쿨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이다. 같은 무표정한 얼굴 쇼트를 수프 그릇, 관 속 아이, 소파에 누운 여인과 각각 이어 붙였을 때, 관객은 같은 얼굴에서도 배고픔, 슬픔, 욕망을 읽어냈다고 대답했다.


세 번째 줄 맨 오른쪽에 앉아 있는 조르주 페렉 (쿠론 거리에 있는 학교 유치원)


조르주 페렉의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이러한 효과를 훨씬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은 서로 다른 두 시점의 텍스트가 번갈아 등장한다. 한쪽은 스포츠 경쟁이 지배하는 섬을 그린 허구의 서사이고, 다른 한쪽은 유년 시절 경험한 전쟁의 기억을 더듬는 자전적 서술이다.


짧게 듣기에도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서사이지만, 두 이야기를 번갈아 읽기를 반복할수록 점점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치 기억의 빈자리 자체가 하나의 표현 방식처럼 쓰이는 두 텍스트들이 번갈아 등장하면서 설명되지 않는 공포가 두 텍스트 사이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페렉은 자신이 겪은 유년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그 상처가 무엇이었든 우회하고, 교차하고, 생략하는 방식으로 독자가 느낄 수 있게 표현해 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서사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연결되지 않는 장면들의 사이는 텍스트를 읽는 독자가 스스로 메우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강렬한 감정이 생겨났다.


자기서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삶의 세부를 빠짐없이 옮기려 할수록, 서사는 점점 힘을 잃는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어떤 장면을 남기고 어떤 장면을 지웠는가이다.


자기서사가 우리를 붙드는 이유는 누군가의 삶을 모두 알게 해 주기 때문이 아니다.


잘라내고 남겨둔 장면들 사이에서, 내 기억 역시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남의 인생을 읽다가, 비로소 자기 삶의 배열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