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강을 넘지 못하지만 연결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유홍준/창비

by한산

'남도답사 일번지' 이어 두 번째 편이다. 역시 처음이 어렵지 거기에 흥미를 느끼면 이어가는 것은 쉽다. 이 흥이 7권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근간)'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작가는 소제목(부제)을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로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산의 한계로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산과 강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일까. 산이 강을 넘지 못하지만 다리와 배로 연결은 된다고 생각한다. 다리와 배를 만드는 게 사람이고 그렇게 산과 산 사이를 이동하는 것도 사람이다. 그렇게 이 마을 저 마을 이야기들인 역사가 서로 연결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아닐까.


온라인카지노 글을 쓰기 전에 필사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어제보다 더 나은 글을 위한 나의 의식행사다. AI가 글쓰기를 대신해 이제 사람 맛이 나는 글은 사라지지 않을까 위협받는 시대라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딱 보면 글이 AI가 썼는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고들 한다. 표준적인 글, 무난한 글이지 않을까. 그런 AI투의 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고민하다 그래 나만의 경험이겠다 싶었다. AI는 경험하지 못한 나만의 경험말이다. 진솔한 서평을 쓰는 네 가지 원칙에서도 나의 일상과 연결하기, 솔직한 감정을 더하거나 빼기 없이 써보기, 글을 읽고 난 후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 마음에 와닿는 나만의 한 두 문장을 인용해 깊게 파고들어 감상 쓰기라고 작은 수첩에 흘림체로 쓴 후 이 서평을 쓴다. 첫 번째 일상과 연결하기에서 난 한 때 "마을교육공동체"에 깊이 빠져들어 '마공 마공'하면서 학습연구년제 프로젝트에 흠뻑 빠져 전남 이곳저곳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마지막 발표를 했을 때 마지막 요약 마무리 멘트가 "벽은 넘어뜨리면 다리가 된다"였다. 그래 산이 강을 넘지는 못하지만 다리를 통해 서로 건너가고 오고 하는 이을 수 있다. 요즘 '잇다'라는 낱말을 자주 보는데 그 잇다를 하는 게 사람이고 역사이지 않을까. 그렇게 작가 유홍준은 해외로만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큰 우리 자국민들에게 그래도 우리 국토인 대한민국의 산과 강을 먼저 알고 매력에 빠지면 어떨까요?라고 이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7권까지 꼭 읽고 싶다.


작가는 이번 2권에도 참 많은 곳(지리산 동남쪽 함양과 산청, 영주 부석사, 아우라지강의 회상 평창과 정선, 토함산 석불사, 철원 민통선 부근, 청도 운문사와 그 주변, 미완의 여로 부안 변산)을 다녀온 후 역사, 지리, 미술, 과학, 신변잡기, 인물들과 융합해서 글을 썼다. 그 어우러짐으로 쓴 글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AI도 없던 시절에 말이다. 초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첫 번째 바카라을 쓴 후 글의 잘못과 수정 보완 사항 등을 지적해 주는 독자 덕분이라고 했다. 독자들과 대화라는 검증의 시간으로 글쓰기와 바카라 읽기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바카라을 쓰게 된 행복한 필자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게 진정 과정중심 글쓰기 아닐까. 이때 등장한 '부시맨 1편보다 2편이 훨씬 재미있고 좋았다는 대목에서 초등학교 시절에 나온 추억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며 싱긋 웃게 만든 작가에게 감사를 전한다.


절의 주지스님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얼마 전 만났을 때 스님인지라 속세 인연인 친구를 어떻게 부를까 궁금했다. 그때 주지스님인 친구는 나를 부를 때 '한 처사'라고 했다. 처사라는 호칭이 그때는 생소했지만 이 바카라을 만나면서 달리 들렸다. '위대한 처사, 남명 조식' 편에서 작가는 처사에 대한 의미를 상세히 풀어준다. 퇴계 이황과 당대 쌍벽을 이뤘지만 이황은 그 호칭을 듣고 싶어도 높은 벼슬을 두루 거쳤으니 처사 지망생이었고 진정한 처사는 남명이었다고 한다. "왕비를 배출한 집안보다도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이 낫고,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보다도 문묘 배향자를 낳은 집안이 낫고, 문묘 배향자를 배출한 집안보다도 처사를 배출한 집안이 낫다고 했다"라고 옛말에 전한다. 무명교사를 꿈꾸고, 오롯이 아이들만 생각하며 승진하지 않는 것을 훈장처럼 여기는 선생님들이 진정한 처사이지 않을까. 아버지는 장원급제하시고, 정통유학과 제자백가(춘추전국시대 고대 중국에서 생겨난 다수의 사상가를 일컫는다. 선생(자, 子)들이 여럿이고, 학문 집단(가, 家)이 백여 개나 된다는 뜻, 출처: 나무위키), 노장사상에 학문의 깊이가 있었다. 당시 시대상황인 기묘사화(1519년 훈구파인 남곤과 홍경주 등이 주도하여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 세력을 숙청한 사건,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로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에 열중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고 한다. 회재 이언적의 추천으로 헌릉참봉과 퇴계의 추천으로 단성현감으로 왕에게 추천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시대상이 자신과 맞지 않으면 흐르는 물에 발을 씻듯 탁족 하며 지내는 선비 중 선비였다. 정치가는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라고 동주 이용희선생님께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시대상을 비판하는 쓴소리도 하는 분이었다. 진짜 처사 남명 조식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조정에 대리청정을 비판하는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던 남명 조식 같은 처사분이 지금 이 시대에도 분명 있겠지. 자신의 안위가 아닌 나라를 위한 진심을 담은 마음으로 비판할 이들이. 제2, 제3의 남명은 누굴까 생각해 보니 근래 한 분이 떠올랐다. 그런 이들이 존중받고 진심이 인정받는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석굴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바카라 표지에 있는 고개를 갸웃하고 턱을 우아하게 바치고 있는 유희좌 보살상을 오랜 시간 감상한다. 석굴암을 두 번 다녀왔지만 내게 이 보살상이 기억에 남지 않고 이렇게 바카라으로 보아 감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계속 강조하는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는 만큼 관심이 가는 것이며 그 이후에 대하는 태도는 실로 달라진다는 게 맞는 말인가 보다. 나중에 다시 석굴암에 간다면 꼭 확인해 보리라. 예전과 달리 보이는지. 또 석굴암 복원 과정이 엄청 고단했다는 것도 이 바카라을 통해 알게 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발굴이 되고 시멘트로 복원이 되는 과정, 다시 1960년대 국가차원에서 다시 복원되고 옛 조상들의 슬기를 넘어서지 못해 습기와 이끼를 막기 위해 에어컨을 틀어야 했던 과정. 그리고 수굴암, 목굴암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석굴암으로 바뀌는 과정까지 정말 다사다난한 석굴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다시 거기 간다면 달리 보이겠지.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한산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삶을 위한 배움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81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어쩌다 대한민국 학교를 쓴 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