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었다

살아남은 뒤로는 살아남는 것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by스몰빅토크

진통이 2분 간격으로 오던 날.

내 오른손에는 휴대폰이 쥐어져 있었다.


진통이 오면 손에 힘이 들어가 화면이 꺼졌다. 진통이 지나가면 다시 켰다. 인공지능에게 끝없이 질문을 해댔다. "무통 맞으면 진행 느려지나?", “자궁 경부는 왜 열리지 않는걸까?” 답을 끝까지 읽기도 전에 다음 진통이 왔다.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그날 질문한 목록들을 다시 꺼내 읽는다.

한 여자의 열두 시간이 거기 다 있다.


자궁수축은 왜 하는 거지? 양수가 터졌는데 내일 분만할 수 있다고?

애기는 괜찮은 거 맞나.

대부분의 출산 후기는 다 끝난 다음에 쓰인다. 결과를 알고 나서 돌아보는 글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결과를 모르던 순간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두려웠다. 죽을수도 있다는 공포와 마주했다.


오전 6시 43분.

유도분만 날이었다.

둘째니까 빨리 낳겠지. 입원할 때 나의 믿음이었다. 첫째를 낳아봤으니까. 다 안다고 생각했다.

내진 결과는 지난주 외래에서 봤던 것과 동일했다.

1센티미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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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다 안다고 자신했다가 호되게 배웠다. 출산은 두 번째라고 쉬워지는 일이 아니다. '다 안다'는 말은 분만대 앞에서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걸. 그 기억이 올라오자, 손에 쥔 휴대폰을 더 꽉 쥐었다.


오전 10시. 여전히 1센티미터.

세 시간이 지났는데 몸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가, 휴대폰을 봤다가 했다. "둘째 진행 느린 경우." 질문했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답만 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답이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건, 나의 경우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니까.


오후 2시. 2센티미터. 그리고 양수가 터졌다.

의사가 말했다.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다시 시도할수도 있어요."

양수가 터졌는데 내일이라고?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주머니가 터졌는데, 아이가 그 안에서 하루를 더 버틴다고? 내가 입으로 물은 건 한 가지였다. "아기가 괜찮은 거 맞아요?"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또 AI에게 묻고 있었다. 양수 파수 후 시간. 감염. 위험.


AI는 차갑고 냉정한 의료진들과 달리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말투로 나를 다독였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날 계속 질문을 하다가 (살만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진통 끝나면 질문 1개 하는 식이었다.)

통계 하나에 시선이 멈췄다.


한국의 모성사망비는 2023년 기준 출생아 10만 명당 4명이다. 임신과 출산 때문에 죽는 여자의 수를 센 숫자다. 4명. 전 세계 평균이 같은 기준으로 197명이라고 하니, 한국은 아주 낮은 축에 든다. 의학적으로 안전한 나라에서, 안전한 병원에서, 안전하게 아이를 낳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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