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적이"의 추억

그 시절 우리의 학생회실 공동일기(共同日記)

byfreejazz


대학시절 학생회실엔, 그리고 동아리방엔 "날적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건 말하자면, 그 시절 우리들의 공동일기(共同日記) 같은 거였는데요. "날적이"는 당시 선후배나 동기들 간에 서로의 생각을 나누던 글로, 외로움을 달래고 술 약속을 잡을 수 있었던 매개체(媒介體)였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소위 '삐삐'라 불리던 무선호출기를 가지고 있었고 또 PCS(Personal Communications Service)나 핸드폰 혹은 시티폰도 있었기 때문에 급할 땐 그런 통신매체를 통해 바로 연락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뭔가 어렵게 얘기해야 할 것들은 글로 적는 게 효과적이었기에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기엔 "날적이"만 한 게 없었죠. 그러다 보니 아무도 없는 학생회실에서 홀로 "날적이"를 적는 동기들 혹은 선후배들이 꽤 있었는데요. 누군가 쓰고 나간 스프링 노트를 보면 무슨 내용이 담겼을지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그 노트를 자주 펴봤고, 만약 새로 적힌 글이 있다면 그 글 밑에 댓글을 남기거나 혹은 그 글과 연계된 새로운 글을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간혹 군(軍)에서 휴가 나온 선배들이 남몰래 학생회실에 왔다가 "날적이"를 적고 가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그럴 땐 적힌 글을 읽으며 직접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다음을 기약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제 생각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온 스무 살 즈음의 새내기들은 한창 고민이 많은 나이대(帶) 같습니다. 만약 재수(再修)나 삼수(三修)를 했어도 서로 고작 1~2년 차이니까 거의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청년들이겠지요. 그리고 선배들이라 해봤자 그보다 몇 살 더 많은 청춘(靑春) 일뿐이고요. 또한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일지라도 학내(學內)에서 조금 더 어른스러울 뿐, 혹은 고민의 결이 조금 달라졌을 뿐, 고민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학교 적응 문제부터 친구 문제, 선후배 문제, 또는 연애 상담까지. 나중엔 성적(成績) 고민이나 진로(進路) 고민까지. 그 시절엔 고민도 그렇게 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새내기의 풋풋함부터 헌내기의 치열함, 그리고 복학생의 노련함까지 모두 섞인 그 노트엔 여러 사람의 필체가 조화를 이루었고, 서로 걱정해 주던 온기(溫氣)와 인간적인 냄새를 통해 우리는, 젊은 시절의 외로움을 서로 달래곤 했습니다. 그러다 가끔, 즐거웠던 시간은 사진으로 현상(現像)되어 노트 어딘가에 붙었고, 어떤 때에는 세상을 향한 불만과 거친 목소리가 그 속에 담기기도 했습니다.


한편, "힘들다, 괴롭다"는 새내기의 짧은 문장엔, 곧바로 선배들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엔 "힘내라!" 혹은 "술 먹자!" 같은 응원의 글이 주를 이뤘고요. "선배님, 형님, 누님 술 사주세요."라는 짧은 글에는 "언제 누구와 같이 후문 옆 어디 술집으로 와라."는 류(類)의 답변이 달렸습니다. 그리고 추운 겨울엔 "오뎅국물에 소주 한잔 콜?" 같은 류의 따뜻한 제안이 담기기도 했습니다. 글에 누구라고 이름을 적진 않았어도 필체(筆體)를 보면 글쓴이를 바로 알 수 있었고, 간혹 PC통신처럼 ID나 별명(닉네임)으로 글을 마무리하기도 했었지만 그 또한 누군지 대부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있는 선후배 동기들과, 혹은 같은 동아리에서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선후배 동기들과 서로 믿고 마음을 주고받았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따뜻하게 응원하고 있었다는 것이 "날적이"의 가장 큰 역할 같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아날로그(Analogue)에서 디지털(Digital)로 전환되는 세기말(1998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디지털 전환이 어느 정도 진행된 2004년 여름에 대학을 졸업했기에, "날적이"와 "PC통신" 혹은 "인터넷 게시판"이 혼재되던 시기를 보냈습니다. 또한 그때는 필카(필름 카메라)와 디카(디지털카메라)가 공존하다가 서로의 점유율을 맞바꾸던 그런 시기였기에 저는 그 시절의 자료를 가끔 복사나 스캔을 통해 남겨 놓기도 했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직전, 오랜만에 저의 예전 저장매체를 뒤져 보니 "날적이"의 흔적이 꽤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유한 스캔 파일 중에서 몇 개를 골라 이 글 하단에 첨부했습니다. 그중엔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학생회실로 보낸 편지들도 나왔는데요. 제가 복학을 하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 편지가 결국은 저에게 다시 돌아왔던 것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그 편지들을 보던 중 저는, 제가 군대에서 학생회실로 보냈던 마지막 편지를 발견했는데요. 근데 막상 그 편지 보내놓고 며칠 후에 9.11 사태가 터져서 계획했던 날짜에 말년 휴가를 나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네요. 당시엔 휴가 나가서 칼복학까지 하려고 치밀하게 계획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크나큰 욕심이었고요. 게다가 제가 있던 곳은 미군부대여서 당시엔 상황이 매우 심각했었습니다. 하필이면 마지막 야간 당직근무를 섰을 때 TV에서 9.11(당시 쌍둥이 빌딩 테러 사건)이 긴급 속보로 나와서, “아, 나 전역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사진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군 시절 제 필체(筆體)가 너무 악필(惡筆)이어서 대신 이 글에 직접 타이핑을 해서 넣었습니다.


철쭉꽃이 흐트러지게 피었던 5월 초의 주말, 학교 교우회(校友會)의 모교(母校) 방문 행사에 초청을 받아 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제가 다녔던 대학교 교정(校庭)을 거닐다 왔습니다. 졸업 후 22년 만이었네요. 그랬더니 "날적이"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이렇게 몇 자 적어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그때부터 "freejazz"라는 ID를 계속 써왔네요. 오랜만에 그때 그 느낌으로 날적이에 적혔던 글과 군시절 제가 학교로 보냈던 편지를 글에 담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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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XX과, OO반 식구들에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군에서의 편지-


벌써 이렇게 오고야 말았습니다. 열흘 후면 말년 휴가에 전역을 앞둔 상황이라 약간은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초가을에 노랗게 익어가는 벼이삭에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작업 나가 잠시 쉬는 틈을 타 바라본 하늘에서도, 논둑길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무리들에게도, 사람들이 사는 냄새가, 땅의 냄새가, 그리고 너무나도 인간적인 슬롯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지긋지긋한 군생활을 정리하고 슬롯로 눈을 돌리려는 지금... 그러나 사실 어떤 홀가분함보다도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닫혀 있지 않은 공간에서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마치 수능시험 끝난 수험생처럼 말입니다.


한편, 학교는 2학기 개강을 맞아 정신없이 바쁘겠네요. 병장 때 분대장을 오래 하느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 학교에 대한 생각은 예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그리운 곳, 학교와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공간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얼른 다시 보고 싶네요.


상병 말 때부터 병장 초까지 ▶▶ 『빨리 감기』처럼 정신없던 시간들이 요즘에는 ∥▶ 『느려 터지게』처럼 지나갑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부담이 없어져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래도 저래도 가는 시간인데 빨리 지나가겠지요.


아무튼 머지않아 학교에서 뵙겠습니다. 선배님들, 동기들, 후배님들께서는 반갑게 저를 맞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제대하고 학교 가면 소주 한잔 call?


2001. 9.

almost 예비역 병장 98학번 OOO 드림





(사진 1) 학생회실에 있던, 90년대 중반의 날적이에

담겼던 89학번 선배님의 글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까마득한 학번의

선배였지만, 이런 선배님들의 글은 예전의

날적이에서 자주 만났던 것 같습니다.




(사진 2) 1998년 가을, 내가 좋아해서 많이 따르던

93학번 선배님의 글

이런 선배님들께 글 쓰는 법도 배웠고

또한 술도 자주 얻어먹었습니다.




(사진 3) 1997년 가을, 기념 공연(무슨 무슨 밤)을

준비하던 97학번 선배의 글

대학시절엔 계절마다 다양한 형태의

음악 공연이 있었습니다.




(참고) 온라인카지노 글쓰기엔 맞춤법 검사 기능이 있지요.

검사 결과 "오뎅"의 표준어는 "어묵"이기에

단어 수정 제안이 뜹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고치지 않고 그냥 두었습니다.

왜냐면 저 같은 술꾼의 귀에는

"어묵" 국물보다는 "오뎅" 국물이

어감상 더 술을 부르는 듯했거든요.

그런 사유로 글에 본의 아니게 "oden"이라는

일본어가 들어갔네요.

만약 글을 읽으시다가 해당 단어가 다소

거슬리더라도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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