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음속 가을
어느덧 9월이다. 내 그림자는 조금씩 길어지는데, 한낮의 햇볕은 아직 따갑다.
도시의 계절 변화를 감지하는 건 이른 새벽녘 울어오는 귀뚜라미 소리도 아니고 한적한 시골길에 저들끼리 무리 져 있는 분홍 코스모스도 아니다. 도시의 초가을은, 가을학기가 시작되어 두꺼운 전공교재를 옆구리에 낀 채 학교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대학생들과 출근하는 온라인 게임인들의 긴소매 옷차림으로만 느낄 수 있다. 어느새 계절은 특유의 소리와 색깔이 아닌, 사람들의 겉모습으로만 남은 채 나의 일상 속을 떠나버렸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씩 나를 가둬놓는 회사 사무실, 이른 아침 출근 직후엔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만 들려온다. 그룹웨어를 열면 메일함에는 마치 모니터 밖으로 쏟아질 것 같은 읽지 않은 메일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나는 모바일로 메일함을 접속해서 머릿속을 예열(豫熱)한다. 아침 기온은 매일 낮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올해는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내년 사업계획 수립 지침이 나왔다. 메일 발송 시점을 보니 정확히 8월 31일 월요일. 9월도 시작하기 전에 회사 경영층의 시야(視野)는 벌써 내년으로 훌쩍 이동해 있다. 되돌아보니 이런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하지만 올해의 근무시간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난다. 출근할 땐 그나마 아직 밝지만, 퇴근할 땐 캄캄한 어둠 속 제법 찬바람도 느껴진다.
주말을 맞는 금요일 밤조차도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무실 자리를 정리한다. PC를 끄고 퇴근하기 직전엔 잊지 않고 보안 문서들을 파쇄(破碎) 처리한다. 그런데 종이가 세절기에 갈려 나가듯, 내 몸도 기계에 같이 갈려 나가는 느낌이다. 내 마음속 초가을이라는 계절까지 잃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