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휴가
저는 지금 바다를 바라보며 해수욕장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앉아 있습니다.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쓸 거면서 중대형 SUV 차량의 큰 트렁크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던 간이 파라솔과 캠핑 의자를 활짝 펼친 뒤 캠핑 의자 위에 세상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핸드폰을 열고 온라인카지노 앱을 켠 뒤 여기까지 글을 써가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이제 막 심각한 폭염(暴炎)이 시작된 한반도에서 이토록 따가운 해를 피할 방법은 없는 것 같네요.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있어 파라솔 밑 의자에서도 이글이글 끓는 것 같은 뜨거움이 잔뜩 느껴지고 있습니다.
근처 바다에서는 가족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저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숙소에서 아이스 박스에 넣어 온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서 홀짝홀짝 마시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곧 바다에 뛰어들겠지만, 잠시 동안만이라도 이렇게 느끼고 있는 혼자만의 여유가 무척이나 좋네요. 그런데 불현듯 생각나는, 술 마시고 바다에 들어가지 말라는 피서지(避暑地) 안전 교육에서의 강력한 멘트. 뒤이어, 파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너머 살랑살랑 흔들리는 배 한 척을 보니 이걸 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나. 푸른 바다를 바로 앞에 두고 낮술로 마신 맥주 한 캔 정도야 뭐 괜찮겠지요,라는 변명이 머릿속에서 바로 술술 나옵니다.
한여름의 찜통더위가 시작된 지난주, 때맞춰 저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 여름휴가를 내고 이렇게 해변에 나와 집과 회사를 잠시 떠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해변에서는, 내리쬐는 8월 초의 강력한 햇빛 탓에 아무리 선크림을 바른다 하더라도 땀에 젖고 바닷물에 씻겨가서 피부가 갈색 톤으로 변하거나 어떤 부위는 벌겋게 올라오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지만 매우 답답한 사무실보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이지만 그래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이곳에 있어 너무나도 좋습니다.
돌아보면 여름휴가 때마다 매번 여길 왔으니 이곳에 온 건 이번까지 합쳐 무려 아홉 번째네요. 그러니까 해외 주재원 시절을 제외하면 매년 이곳에 온 건데요. 아, 맞다. 작년엔 해외 주재국(駐在國)을 3년 반 만에 다시 방문하여 이곳에 오지 못했으니 올해에는 2년 만에 오게 된 거긴 합니다. 그래도 거의 매년 여름이면 연례행사로 이 휴가지를 만났으니 사실상 거의 매년 온 거나 다름이 없지요. 그런 사유로 저희 가족에게 이곳은 휴가지로서 정말 익숙합니다. 게다가 매년 오는 이 숙소는 마치 여름의 별장(別莊)과도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땐 작은 방을 잡았지만 아이들이 한창 클 무렵부터는 매년 가장 큰 방을 예약했네요. 심지어 매번 같은 호수의 방으로 예약을 했습니다. 참고로 이 방에서 해변은 바로 코 앞입니다.
매년 휴가가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에 퇴근을 하면서부터는 회사 일은 일부러라도 싹 다 잊어버리려 합니다. 그다음 날인 토요일엔 떠날 짐을 싸며 살짝 머릿속을 정리하고 몸을 충전한 뒤 일요일 아침에 바로 출발합니다. 매년 동일하게요. 그리고 도착 한 시간 전쯤에 위치한 지방 소도시의 대형마트에서 매년 비슷한 시간에 장을 보고 갑니다. 여기 숙소는 큰 방의 경우 각 방마다 테라스에서 노을을 보며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곳이라 매년 그날 마트에 들어온, 가장 좋아 보이는 한우 부위와 돼지 목살을 사 옵니다. 마트에는 주로 육류와 각종 채소류 등 바비큐를 해 먹을 식재료를 구입하러 가지만, 들른 김에 그 외 여러 용품들도 꼭 둘러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휴가 기분 내면서 여기 마트에서 장난감도 많이 사줬는데요. 이젠 그 장난감을 제가 삽니다. 작은 레고(Lego)와 토미카(Tomica) 시리즈에 저절로 눈이 가네요. 이렇게 매년 휴가 때는 마음까지 고삐가 풀려, 평소에는 절대 구입하지 않을 것들을 괜스레 이것저것 사게 됩니다. 이런 게 휴가지, 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는 다시 휴가지를 향해 차를 운전합니다. 맑은 하늘과 밝은 햇살 아래 에어컨을 한껏 틀고 시원한 여름 노래를 들으면서요.
휴가지로 가는 길, 햇볕은 따가워도 마음만은 시원합니다. 매년 여름,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은 반드시 휴가지를 다녀와야지만 풀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사실 머리로는 매번, 휴가 때 그냥 집에서 TV와 넷플릭스만 보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거기에 더해, 매일 배달음식 시켜 먹으며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죠. 양옆에 주말을 낀 일주일이 휴가니까 총 9일간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정말 꿈같은, 달콤한 휴가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바다를 보고 오는 게, 이게 참 생각보다 큰 것 같습니다. 바다를 봐야 비로소 힘든 마음이 위안을 받고, 바다에 몸을 담가야 지친 몸이 풀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여행은 이렇게 저의 몸과 마음을 회복하게 해 줍니다. 특히, 한여름의 휴가지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 같고요.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이런 편안한 휴가는 '쉼'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첫째 아이가 내년이면 벌써 고등학생이 됩니다. 아마도 그때부턴 입시 준비라는 핑계로, 가족 여행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동안 해외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여름마다 연휴마다 또 명절 때마다 가족끼리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습니다. 매년 여름휴가 때 같은 장소에서 휴식을 취했다면 연휴나 명절 때에는 역사, 문화, 레저 등의 테마 여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산에서는 오리엔티어링(Orienteering)도 하고 천문대 망원경으로 별도 보고, 숲에서는 나무 공예도 하고 삼림욕(森林浴)도 했지요. 강에서는 빠지(Barge)에 가서 수상 레저 활동을 하고 숯불 닭갈비도 먹었고요. 한편, 바다에서는 꽃게를 비롯한 바다 생물도 채집하고 이렇게 해수욕(海水浴)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여행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성장할까요?
여행은 언제나 삶에서 기분전환이 됩니다. 그리고 여행 이후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여행이 끝나도 안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이지처럼 푹 절어있던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잠시나마 건져내서 회복하게 하는 건 역시 휴가와 여행밖에 없네요. 물론, 여행이 끝나고 휴가가 끝나면 오이지가 들어있는 통에 다시 들어가 원치 않는 절임을 당하겠지만, 그래도 잠시동안 이렇게 건져내진 뒤 쉴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습니다. 숨통이 확 트이니까요.
짧은 2박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며칠 쉬다 보면 휴가가 끝나겠지요. 그리고 다음 주가 되면 다시 회사 사무실로 복귀해야 하겠지만, 그건 일단 당분간은 생각하지 않으렵니다. 왜냐면, 저는 아직 이곳 뜨거운 해변에 있고 곧 시원한 바다에 풍덩 빠져들 거니까요. 그래서 여기까지 쓰고, 파라솔 아래 깔아놓은 돗자리 위 크로스백에 핸드폰을 욱여넣은 뒤 바로 바다로 달려갑니다!
2026. 8. 3.
여름휴가가 이제 막 시작된 휴가지에서 초안을 쓰고,
2026. 8. 8.
여름휴가가 거의 끝나가는 오늘,
그 글을 살짝 다듬어 조심스럽게 발행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