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면 여전히 이스탄불인 경우가 있습니다. 매일 출근하는 길에 보스포러스(Bosphorus) 대교를 지나며 탁 트인 마르마라(Marmara) 海를 보던 게 엊그제 같을 때도 있습니다. 아직도 꿈을 꾸면 가끔, 이스탄불 유럽 사이드에서 보스포러스 대교를 건너 아시아 사이드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작년 이맘때쯤엔 귀임 3년 반 만에 이스탄불을 다시 느끼고 왔더니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지금, 이스탄불의 여름이 몹시 그리워지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 서울의 여름 하늘 아래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마음속에서는 아직 보스포러스 해협을 떠올리며 서울 곳곳을 낯설게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느덧 이곳 서울에 다시 온 지 4년 6개월을 지나 서울 생활 복귀 5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말이지요.
다시 돌아온 회사는 사실, 생각만큼 많이 바뀌진 않았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영향으로 MZ세대들의 퇴근 시간이 상당히 빨라진 것과 사무실이 자율좌석제로 바뀐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건 없었는데요. 그런데도 귀임 후 본사에 다시 적응한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어렵고 힘든 일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복귀 4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뭔가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랄 때도 있거든요. 터키법인의 주재원으로 근무했을 당시엔 힘들 때마다 한국 본사에만 돌아가면 모든 것이 그냥 다 해결될 것이라고, 저는 근거 없이 그냥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회사는 그런 저의 바람대로 무언가를 쉽게 해결해 주는 존재가 절대 아니었고, 한국 슬롯 또한 그리 녹록한 곳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귀임 후 첫 단추였던 부서배치부터 저에겐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귀임할 때 누가 보더라도 자연스럽게 복귀할 수 있는, 부임 전의 원(原) 소속 부서에서는 저를 받지 않았거든요. 물론, 거기에서 저를 원하지 않는다고 저에게 대놓고 말을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촉(觸)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저는 귀임 전에 그쪽 부서장들께 이따금 이메일로 안부 인사를 드리면서 제가 갈 만한 자리가 있을지 살짝 문의를 드렸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더라고요. 솔직히 불안했습니다. 4년이라는 주재원 부임 기간 동안 저라는 사람의 존재가 잊힌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도 저를 원하는 곳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돌아 돌아 그쪽 조직으로 가게 됐는데요. 하지만 불행히도 해당 조직은 제가 간 지 6개월 만에 해체되어 결국 저는 원(原) 소속 부서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부자연스럽게요. 그러니 저는 그 부서에서 제대로 안착하기조차 쉽지 않았고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건 사실상 만무했을 겁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주변인으로서의 조직 생활, 거기에 메인(Main) 업무를 담당하지 못하고 떠밀려서 맡게 된 사이드(Side) 업무. 조직 개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제 거취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불안한 줄을 타고 있던 사람처럼, 그 줄이 끊어지지 않길 바라면서, 귀임 초의 불안함을 어떻게든 이겨 보려 했습니다. 선후배 직원들을 만나 괜스레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술잔도 꽤나 자주 기울이고 하면서요. 한편,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시기 현지 법인엔 현지의 협력업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도대체 무슨 돈으로 그렇게 값비싼 술을 마시나 싶은, 당장 무슨 조사를 받는다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인간도 있었는데요. 오히려 그런 자는 귀임하면서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중요한 직바카라을 떡 하니 차지하더라고요. 그런 정치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저는, 귀임 직후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주재원씩이나 다녀왔으면, 회사 조직에서의 정치 같은 거에 더 관심을 갖고 윗사람들에게 더 잘했어야 했습니다. 조직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거라면 솔직히, 주변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별 영양가가 없었을 테죠. 그 대신, 윗사람의 니즈(Needs)에 맞춰 주중엔 술도 같이 마시고 주말엔 필드(Field)에도 같이 나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중엔 일하느라 바빴고, 주말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했죠. 물론, 윗사람들과의 "최소한"의 관계를 위해, 저는 '그들'이 제안했던 술자리엔 가급적이면 참석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그들과의 어떤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뭔가를 계획하진 않았죠. 그러니까 애초에 저에겐 줄 자체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 것들과 관련하여 제 스스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조직 내에서 제 역할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겠죠.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그런 저의 모습을 지지해 주셨던 임원분이 계셨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께서는 자리를 잡지 못한 저의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셨던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연말에 퇴임을 하시게 되었음에도 인사 쪽에 저를 추천해 주셔서, 운 좋게 제가 중간관리자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관리자로서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도 교류하는 고맙고 소중한 후배 직원도 만났습니다. 하지만, 직원들과의 소통이란 것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상대하기 어려운 선후배들도 많았거든요. 게다가 주재원 때와는 다르게, 본사에서는 저를 다소 불편하게 바라보는 후배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제가 수행하고 있던 업무를 폄훼(貶毁)하거나 혹은 저의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선배들도 주변에서 많이 목격되었지요. 그래서 결국 "관리자"로서의 제 역할은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 역할을 야구 경기로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은 상황일 것 같네요. 팀이 이기고 있다가 점수를 내주게 되어 선발 투수가 강판당한 상태에서 제가 어렵게 중간 계투로 등판하게 되었는데, 공 몇 개만 던지고 불과 한 타자만 상대한 뒤 마운드에서 내려온, 그런 상황. 마치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서 "네 역할은 여기까지다."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마운드 위에 올랐다가 바로 강판당한 저는 더그아웃에 들어가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겁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다소 일방적인 회사의 지시에 잔뜩 주눅이 들었을 게 분명하니까요. 그래서였는지, 눈을 감았을 때 다시 돌아갈 순 없지만 그래도 여전히 익숙한 "나의 도시, 이스탄불"이 자꾸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두렵기만 한 제 머릿속이 잠시나마 정화(淨化)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요.
(사진 1) Bosphorus Bridge (Boğaziçi Köprüsü)
(교량의 정식명칭 : 15 Temmuz Şehitler Köprüsü)
이스탄불의 여름 궁전, "Beylerbeyi Sarayi"에서
2022년 1월에 직접 촬영
(사진 2) Bosphorus 해협 유람선에 탑승한 관광객
유럽과 아시아를 모두 품은, 낭만의 도시 이스탄불
사진출처
(참고)
"Bosphorus"의 한글표기는 원래 "보스포루스"가 맞다고 합니다. 현지어로 발음하더라도 그게 맞는 표기법 같네요. 하지만 저는 4년 내내 "보스포러스"라고 발음했기에 맞춤법 검사 후에도 수정하지 않고 표기 상태 그대로 두었습니다. 읽으시다가 발음이 다소 거슬리시더라도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