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어느 회사에서든, 어느 조직에서든

byfreejazz


회사의 조직 내에서 어떤 직원은 Top-Down으로 하달받은 긴급한 업무를 수행한다. 또 어떤 직원은 Bottom-Up으로 자신이 기안한 업무를 재가(裁可) 받아 스스로 업무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한편, 일반적인 사무직은 직군별로 다양하긴 하나 대개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를 축구와 비교하자면, 그라운드에는 감독이 지시하는(Top-Down) 작전을 팀에 전달하는 주장도 있고, 또 중원(中原)의 작전 사령관인 미드필더도 있다. 그리고 팀의 멤버 중에는 스스로 경기를 풀어나가거나(Bottom-Up) 창의적인 플레이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게임메이커(Game Maker)도 있다. 물론, 상대팀의 에이스(Ace) 혹은 골 게터(Goal Getter)만을 전담 마크(Mark)하는 전형적인 중앙수비수(Center Back) 같은 선수도 있다. 회사에서의 조직이든 축구에서의 포지션이든 모두 그렇게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법. 그런데 문득, 이쯤에서 소심하게 던지는 질문 하나. 그렇다면 과연 윗선에서 긴급하게 시킨 일만 중요한 일인 것인지?


지난해 나는 늘 업무를 스스로 찾아서 했다. 왜냐면 재작년 12월 초에 보직에서 내려오게 된 뒤부터 조직 내에서 나에게 부여된 역할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업무분장 상에서도 나에게는 특별하게 명시(明示)된,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루틴(Routine)한 업무가 없었다. 그 조직에서는 나를 두고, 너는 그냥 네가 알아서 일을 찾아 하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만들어서 보고를 하러 가면 내가 새롭게 시도한 업무는 매번 부서장의 관심 밖이었다. 혹은 늘 뒷전이었다. 언제나 나는, 그리고 내가 만든 업무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부서장의 가장 최우선 업무는 윗선으로부터 Top-Down으로 하달받은 일 뿐이었다. 그다음 순번은 예로부터 늘 해오던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그러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업무였다. 나의 업무는 그 사이에 낄 틈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부서장과 단둘이서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가 나에겐 내가 조직에서 이상하게 느꼈던 것들을 질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던 것 같다. 둘이서 한참 동안이나 의미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술을 마시던 중, 나는 나의 업무가 왜 매번 뒷 순번으로 밀리는지가 항상 궁금했다고 부서장에게 물었다. 그리고 부서장인 당신은 왜 언제나 위에서 시킨 일만 열심히 찾고 있는지를 연이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왜 위에서 시킨 일을 하는 사람들만 주인(主人) 대접을 받고 왜 나 같은 직원들은 매번 세입자(貰入者) 취급을 받는지를 좀 따지듯 물었다. 그랬더니 부서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대놓고, 윗선에서 시킨 일만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게다가 그는, 다른 직원들도 느끼게 하기 위해 일부러 윗선에서 내린 일들에 더 관심을 갖고 집중을 한다고 했다. 예상치 못했던 그의 대답에 나는 망연자실(茫然自失)했는데, 그래도 술자리니까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부서장에게 또 한마디를 했다. 그럼 나 같은 직원들의 사기(士氣)는 어떻게 되겠냐고. 그리고 위에서 시키는 일을 배분받지 못한 직원들은 앞으로도 계속 마이너(Minor) 한 인간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그런데 다소 거센 발언 때문인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회사에서 중요한 건 결국 윗사람들의 관심에 맞는 일이라고.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빨리 이 조직을 떠나야겠다고.


지난해 연말에 기존 조직에서 방출되고 난 뒤 새로운 조직으로 왔을 때 여기에선 내가 과거에 했던 업무를 생각보다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 물론 그렇다고 나를 엄청나게 대접해 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존 조직에서보다는 나와 내 업무의 존재감이 훨씬 더 커진 건 분명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내가 기존에 수행했던 업무의 범위를 더 확대해서 판을 키우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되면 내 일이 너무 많아질 것 같다는 우려가 살짝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기존 조직에서 오랜 시간 주변인(周邊人)으로 지내왔던 터라 나의 중요성을, 그리고 내가 수행하는 업무의 중요성을 인정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컸으니까. 물론, 갑작스러운 관심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드디어 내가 폐쇄적인 집단 밖으로 나왔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내가 기안한 일을 하면서도 주눅이 들거나 위축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면서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인정받는다는 것에 그동안 해왔던 맘고생이 이제야 좀 해결되는 것 같았다. 이젠 그들만의 조직에서 더 이상 서자(庶子)로 숨어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무엇보다 안심이 됐다.


이전 조직의 조온라인 게임에게, 그리고 그 조직에 속한 하위 부서의 부서장에게 나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어떤 조직이든 필요 없는 일은 없고, 중요하지 않은 일도 없다는 말을. 축구에서도 득점 후 혼자 모든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다 받는 게 공격수라고 해서 공격수만 필요한 건 아니다. 상대 공격수를 끈질기게 전담 마크할 수 있는 수비수도 필요하고, 상대의 양 측면을 빠르게 뒤흔들 수 있는 윙백(Wing Back)도 필요하다. 또한 현대 축구에서는 공이 없는 곳에서도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교란시켜 동료가 침투할 공간을 창출해 주는, 전술적인 키플레이어(Key Player)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사유로 위에서 시킨 일만 중요하고 다른 업무를 경시(輕視)한다면, 그건 사람의 귀천(貴賤)을 따지거나 혹은 일의 경중(輕重)을 따지는 어리석은 행위일 것이다. 축구에서도 수비를 강화해야 실점을 막을 수 있고, 중원(미드필드)을 강화해야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으며, 그걸 바탕으로 공격적으로 임해야 공격수가 골(Goal)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수비와 중원 그리고 공격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그게 팀이고, 팀 플레이를 해야 결국 골을 넣어 승리할 수 있다. 즉, 스포츠 팀에서도 그리고 회사의 조직에서도 중요하지 않은 포지션이나 역할은 결단(決斷)컨대 결코 없다.


최근 2026 북중미 월드컵 축구대회부터 참가국이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어나면서 UEFA(유럽 축구 연맹) 회장이 재미없는 경기가 많이 생겼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자 이번 월드컵 참가국 중 FIFA 랭킹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들은 즉시, 중요하지 않은 경기는 없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UEFA 회장의 발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 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전한 카보베르데(당시 FIFA 랭킹 67위)는 조별예선에서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전 세계의 이목(耳目)을 끌었다. 특히 토너먼트 32강전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선 어마어마한 명승부가 펼쳐졌고, 연장 끝에 2:3의 스코어로 석패(惜敗)했다. 그래서 나라의 이름만 보고 경기의 질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이었는지, UEFA 회장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단언컨대,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어느 회사에서든, 어느 조직에서든.





(참고 1)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 중요하지 않은 경기는 없다는 성명 관련 기사


(UEFA 알렉산데르 체페린 회장의 발언)

월드컵 48개국 출전 허용하여 재미없는 경기가 늘어났다. 물론, 작은 나라나 상대적으로 FIFA 랭킹이 떨어지는 국가도 월드컵에 참여해 열기를 느끼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참가팀이 48개국으로 확대되면서 전혀 흥미롭지 않은(uninteresting) 경기들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다.


(체페린 회장의 발언에 대해 공동 규탄 성명 발표)

- 공동 성명 내용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월드컵 경기란 없다. 체페린 회장의 발언은 전 세계 선수와 감독, 팬들의 노력과 열망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축구는 일부 국가만의 것이 아니며, 축구의 힘은 보편성에서 나온다."


- 공동 성명 발표 국가

카보베르데, 우즈베키스탄, 퀴라소, 요르단,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이티, 모로코, 코트디부아르, 튀니지, 이집트, 세네갈, 알제리, 가나, 콩고민주공화국


사진출처 : https://www.allthatboots.com/



(참고 2) 대문사진 출처

https://kr.linkedin.com/pulse/how-prioritize-tasks-eisenhower-matrix-clockwise-inc--6dcoc?t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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