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스팔트와 맞짱 뜨다

by바담풍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던 중학생 배구부 에이스 선미. 싸움도 잘하고 운동신경도 뛰어나지만, 정작 말로 따지기 시작하면 얼굴부터 빨개지고 머릿속은 하얘진다. 그런 선미 앞에 서울에서 온 ‘말빨 최강’ 전학생 소영이 나타난다. 소영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는 오기로 시작한 디베이트. 토론대회, 보이스피싱 사건, 주니어 디베이트 코치 자격과 초등 디베이트 자원봉사를 거치며 선미는 조금씩 달라진다.















선미는 아파트 옆 동 친구 소윤이와 오늘도 PC방에서 게임을 했다. 일요일 오전이라 아침부터 PC방 안은 빈자리 없이 꽉 들어 찾다. 대부분 초등학생들이었다.


“게임은 롤이지”


선미는 게임도 배구만큼 자신 있다는 듯 중얼거리며 자판기를 사정없이 두드렸다.


“누나는 학원 안 가요?”


초등학교 4, 5학년쯤 되어 보이는 옆자리 아이가 물었다.


“일요일인데 왜 가냐?”


“우리 누나는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하루 종일 학원에 있어요.”


“니네 누나 몇 살인데?”


“고 3요”


“얌마! 나는 중 2야. 그리고 나는 학원 같은 거 안가.”


“우와! 키가 뎁다 큰데요.”


“말 시키지 마! 야이 씨! 죽었잖아. 너 저리 안 갈래?”


선미는 피시방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어 앉아 헤드셋을 한쪽 귀에만 걸친 채 소리 질렀다. 친구 소윤이는 음료수를 홀짝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선미와 초등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옆자리 초등학생은 선미의 험악한 기세에 기가 죽기는커녕, 제 모니터로 고개를 쓱 돌리며 들으라는 듯 뼈 있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쳇, 학원도 안 다니고 롤만 하면서 탑 신드라로 솔킬이나 따이고. 내가 누나보다 훨씬 잘하겠다.”


그러고는 마시던 탄산음료를 챙겨 들고 저 멀리 다른 구역으로 잽싸게 도망쳐 버렸다.


“아, 저 초딩 새끼가 진짜…….”


선미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크하게 혀를 쯧쯧 찼다. 굳이 쫓아가서 잡기도 귀찮았다. 선미는 헤드셋을 다시 귀에 꾹 눌러쓰고 마우스를 거칠게 낚아챘다.

모니터 화면 속, 부활 타이머가 끝나자 선미의 캐릭터가 다시 우물에서 깨어났다. 소윤이와 듀오로 랭크 게임을 돌리는 중이었다. 선미는 부활하자마자 텔포(순간이동)를 타고 탑 라인으로 바로 복귀했다.


“연경님 방금 사람 움직임 맞나요? 왜 그 모양이에요? ㅋㅋㅋㅋ”


화면 오른쪽 아래 채팅창에 아군 정글러가 비아냥거리는 글을 올렸다.

선미의 캐릭터 닉네임은 ‘연경’이다. 자신의 우상 배구 선수 김연경을 모델로 하고 있다. 같은 팀의 넷상 유저가 선미의 실수를 기다렸다는 듯 물고 늘어진 것이다. ‘식빵 언니’처럼 코트를 지배하는 김연경의 이름을 달고 이런 조롱을 듣는 건, 선미에게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님이 안 도와줘서 라인 무너진 거 안 보이세요? 판단력 실화인가요? 초딩임?”


선미가 키보드를 부서져라 두드리며 응수했다.


“핑계 대박이네. 탑 차이 오지죠? 연경이고 나발이고 나도 이제 안 함, 수고요.”


정글러의 캐릭터가 아예 우물 안으로 기어가 움직임을 멈췄다. 롤에서 가장 악질이라는 잠수(AFK) 선언이었다.


“아, 진짜 킹 받네.”


선미는 씹던 껌을 신경질적으로 질겅거렸다. 소윤이가 “선미야, 참아. 원래 정글러들 저래.”라며 달랬지만, 화면 속 4대 5의 불리한 구도는 이미 기운 상태였다.


그럼에도 선미는 마우스를 놓지 않았다. 닉네임 ‘연경’을 달고 서렌(항복)을 치는 것만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미니맵을 매섭게 주시하던 선미는 한타(단체 싸움)가 열리자마자 상대 원거리 딜러에게 과감하게 파고들었다. 손목 스냅을 이용해 마우스를 휙 돌리며 구체를 날렸고, 스킬을 연사해 적의 핵심 딜러를 순식간에 삭제시켰다.


화면에 ‘더블 킬’ 팝업이 떴지만, 끝내 아군 넥서스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모니터에 커다란 붉은색 글씨로 ‘패배’가 박혔다.

선미는 시크하게 헤드셋을 벗어 바카라상에 툭 던져두고는, 소윤이의 어깨를 툭 쳤다.


“야, 소윤아. 가자. 기분 잡쳤다.”






선미는 피씨방에서 나와 친구와 헤어진 후 다음 주에 있을 KB전국 중학생 배구대회를 준비하러 체육관으로 향했다. 할머니께 한 달을 졸라 겨우 받아낸 자전거를 타고서였다. 밤새 내린 비가 먼지를 말끔히 씻어낸 5월의 하늘은 파랗다 못해 서늘해 보였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바람에서는 젖은 나뭇잎 냄새가 났다.


“쓰읍, 하아―.”


선미는 폐가 빵빵해질 만큼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 전까지 게임 속 싸움으로 들끓던 머릿속이 찬물에 씻긴 것처럼 맑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선미는 엉덩이를 안장에서 살짝 들어 올리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체육관까지 이십 분. 평소보다 빨리 가면 십오 분이면 충분했다.


왕복 8차선 도로 옆 자전거도로를 달리던 선미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멈칫했다. 정류장이 인도를 절반쯤 차지하면서 자전거도로가 뚝 끊겨 있었다. 선미는 뒤를 돌아보고 차도로 내려섰다. 마침 신호가 바뀌었다. 뒤에서 자동차들이 굶주린 짐승처럼 몰려왔다. 버스가 커다란 몸집으로 선미의 왼쪽을 스쳐 지나가자 바람이 옷자락을 세차게 잡아당겼다.


“씨, 깜짝이야.”


그때 앞쪽에 다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가 보였다. 차도와 자전거도로 사이에는 경계석이 길게 뻗어 있었다. 그 사이의 턱이 손가락 세 마디쯤 되어 보였다. 속도를 줄여 비스듬히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선미는 그러지 않았다.


“저 정도 턱도 못 올라가면 자전거를 왜 타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선미는 달리던 속도 그대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앞바퀴가 경계석을 타고 오르는 대신 옆면을 강하게 후려쳤다. 핸들이 갑자기 몸 쪽으로 확 돌아왔다.


퍽! 쿠당탕!


비명소리 낼 틈도 없이 꼬꾸라졌다. 자전거가 옆으로 누웠고, 선미의 몸은 그보다 반 박자 늦게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동시에 오른쪽 무릎이 먼저 아스팔트에 내리 꽂히자 둔탁한 소리가 뼛속에서 울렸다. 뼈가 직접 바닥을 때리는 소리였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잘게 부서진 아스팔트 알갱이들이 살갗을 파고들며 손바닥에 촘촘히 박혔고, 팔꿈치가 갈리며 어깨가 거칠게 돌아갔다.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마가 재차 바닥을 들이받았다. 순간 눈앞이 하얗게 표백되며 번쩍였다.


충격은 정강이를 타고 허벅지까지 벼락처럼 치솟았지만, 정작 통증은 한 박자 늦게 도착했다. 몸이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이, 손을 짚으려다 만 자세 그대로 팔꿈치가 부들부들 떨렸다. 귓속의 웅웅 거림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세 겹 두꺼운 막 아래로 밀어 넣고 있었다.


자전거는 선미보다 한 바퀴를 더 구른 뒤에야 옆으로 쓰러졌다. 뒷바퀴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허공에서 씽씽 돌아갔다. 선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고통이 너무 크면 아프다는 생각조차 곧바로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깐 번쩍였던 하얀 세상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찢어진 청바지 사이로 드러난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처음에는 작은 붉은 점이더니, 금세 서로 뭉쳐 굵은 줄기가 되어 정강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바로 그때 버스 한 대가 교통정체에 걸려 선미 옆에 멈춰 섰다. 정확히 선미가 널브러진 자리 옆이었다. 선미는 버스 창문 너머로 자신을 향한 얼굴들을 보았다. 놀란 눈으로 내려다보는 할머니, 입을 가리고 있는 아주머니, 웃음을 참느라 볼을 씰룩거리는 남학생. 그 짧은 순간에도 버스 안 모든 사람의 시선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선미는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오른발에 힘을 싣는 순간 무릎 안쪽에서 뭔가가 날카롭게 비틀렸다.


“흡!”


신음이 새어 나왔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줬다. 허벅지는 부들부들 떨렸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다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버스 안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선미는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대신 아스팔트와 쓰러진 자전거를 번갈아 노려봤다. 마치 자전거와 도로가 짜고 자신을 넘어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순간 선미의 머릿속에 반대 상황이 떠올랐다. 자기가 버스에 타고 있는데 창밖에서 어떤 곰 만한 여자애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힘찬 도약과 함께 아스팔트를 온몸으로 찍어 눌러버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걱정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웃기기도 했을 것이다. 솔직히 엄청 웃겼을 것이다.


“아, 씨방꺼. 쪽팔려…….”


선미는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뒤쪽에서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웃은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미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마침내 신호가 풀리고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가에 붙어 있던 얼굴들이 하나씩 선미 곁을 지나갔다. 선미는 버스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차량 정체가 풀린 뒤에도 선미는 광장 모퉁이에 세워진 동상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움직이면 무릎이 부서질 것 같기도 했지만, 버스가 떠난 직후 다시 주저앉는 것도 지는 기분이 들었다.


십여 분이 지나서야 선미는 몸에 주었던 힘을 천천히 풀었다. 도로 옆 화단 턱에 걸터앉아 찢어진 청바지를 조심스럽게 걷어 올렸다. 무릎 전체가 벌써 검붉게 부풀고 있었다. 정중앙은 살갗이 넓게 벗겨져 있었고, 피가 상처 틈에서 숨 쉬듯 조금씩 솟아올랐다. 손바닥에도 모래알과 검은 아스팔트 가루가 박혀 있었다. 이마를 만져보니 따끔거리기는 했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넘어질 때 눌린 모자가 비뚤어진 채 한쪽 귀에 걸려 있었다.


고통은 코스요리처럼 연달아 찾아왔다. 무릎의 욱신거림이 조금 가라앉는가 싶으면 이번에는 손바닥의 따끔거림이 찾아왔다. 그러나 선미에게는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있는 배구 대회였다. 이번 대회를 위해 두 달 동안 매일같이 체육관 바닥을 굴렀다. 이번 대회에서 눈에 띄면 고등학교 배구부 감독들이 자신을 기억할지도 몰랐다. 그 모든 장면 위로 퉁퉁 부은 무릎이 시뻘건 신호등처럼 떠올랐다.


선미의 입에서 긴 한숨이 빠져나왔다.


“하아…… 다음 주가 시합인데.”


다시 무릎을 굽혀봤지만 이번에도 통증이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 선미의 얼굴이 굳었다.


“나, 이러고 뛸 수 있나?”


한 참을 굳은 듯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일어섰다. 여전히 통증은 잘게 부서진 유리 파편이 살점을 헤집는 듯 무릎을 타고 이어졌다.


“병원을 가야 하나? 일단 약국부터 찾아야겠다.”


혼잣말을 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도심 한복판인데도 일요일이라서 약국은 문을 연 데가 없었다. 한 참을 돌아 겨우 문을 연 약국을 찾아 들어갔다. 이를 본 약사 아주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 얘, 어쩌다가 다쳤어? 어머 어머, 이 피 좀 봐. 너 빨리 병원 가야겠다. 한 블록만 가면 365병원이 있거든. 빨리 그리로 가. 내가 응급소독은 해 줄게.”


선미는 그렇게 터덜거리며 병원을 찾아 응급처치를 하고 나오면서 투덜거렸다.


“하여간 이 몸은 타고났단 말이야. 장군감이야 아주. 깁스를 해야 할 정도인데 붕대 몇 번 감는 것으로 끝내잖아.”


속으로는 걱정이 태반인데도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반쯤 찢어진 청바지 안쪽으로 칭칭 감긴 하얀 붕대에는 병원 응급실에서 소독한 빨간 약이 얼룩덜룩 배어 나와 있었다. 손바닥과 팔꿈치는 누더기처럼 밴드가 붙어 있었고, 이마의 거즈는 욱신거렸다. 하지만 몸의 통증보다 선미의 가슴을 더 시커멓게 태우는 것은 의사의 경고였다.


“당분간 붕대 풀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다음 주 시합은 출전 불가야.”


코트 위에서 팀원들을 이끌며 땀 흘렸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억울함과 슬픔에 목이 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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