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 더 남았을까?
이제 남편보다 덩치가 커진 중2인 첫째는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새 옷을 준비해야 한다. 그 핑계로 조금 멀리 가자 남편을 채근했다. 그렇게 차로 달리다가 '빛내림'을 만났다.
구름 사이로 빛이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 나는 꼭 어디선가 축복받을 일이 벌어지는 것만 같아 볼 때마다 설레고, 뭉클하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쿵 하고 내려앉는 건 한 번인 줄 알았다.
아빠가 다시 암에 걸렸다. 이번에는 혈액암이다. 다발성골수종.
아빠가 암에 걸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년 전 아빠는 담도암 0~1기를 진단받았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했지만 수술은 가볍지 않았다. 장기 서너 개를 다른 경로로 이어 붙이는 큰 수술이었고, 회복하면서도 이전보다는 모든 기능이 떨어지셨다.
그전까지 아빠는 꽤 건강한 편이었다. 음식을 가리는 일도 없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스트레칭을 하고, 집 인근 밭에도 가면서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는 일상을 보내셨다. 그런 아빠가 암에 걸렸다. 그때 나는 삶이 또 한 번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보다 먼저, 첫 번째 쿵이 있었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이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 동생이 떠난 뒤 우리 가족의 삶에는 이전과 이후가 생겼다. 나 역시 그 일을 겪고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부모님도 그랬을 것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뒤에도 삶은 계속되었지만, 이전과 같은 삶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동생이 떠나고 나는 생활방식도,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졌다. 두 배로 살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주한 떠남은 내게 시간이 언제까지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려줬다. 그래서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해봤다.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배웠다. 그저 살아 있는 동안 나를 더 많이 써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동생을 보내고 시간은 흘렀다. 아빠가 담도암 수술을 받고도 시간은 흘렀다. 우리 가족은 다시 밥을 먹었고, 웃었고, 각자의 일을 했다. 아이들은 자랐고, 나도 내가 할 일을 찾아갔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다.
'이만큼 겪었으니 이제는 좀 괜찮겠지.'
큰 일을 하나 보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나보다. 그런데 삶에는 그런 순서가 없었다. 이번에는 아빠에게 다발성골수종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세 번째 쿵이었다.
마흔 중반이 되면 삶의 큰 일 앞에서도 조금은 의연해질 줄 알았다. 이미 겪어본 일이 있으니 예전보다는 덜 흔들릴 거라고 짐작했다.
아니었다. 슬픔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걱정에는 연습의 효과가 없었다. 다시 마음이 내려앉았다.
세상은 마음이 내려앉았다고 해서 삶까지 함께 멈춰주지는 않았다. 밥을 차려 먹어야 했고, 아이들을 돌봐야 했고, 챙겨야 할 하루는 계속됐다.
계절이 바뀌면 그때그때 준비해야 할 것들이 생긴다. 오늘은 첫째의 새 옷이었다.
내달리는 차 안에서 한참 빛내림을 보며, 아빠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