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리뷰
이렇게 매력적인 제목의 산문집이라니. 그런데 사실 부제 "미래를 도모하는 소설가들이 사는 집"은 바카라을 다 읽고 나니 와닿지는 않았다. 소설은 두 저자 서고운, 예소연을 설명하는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고리이긴 하지만 소설가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이 둘은 함께 살며, 맥주를 참 많이도 마시며, 함께 여행 다니며, 미래를 도모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가들이 사는 집'이라는 느낌보다는 두' 친구가 함께 사는 이야기인데, 어쩌다 보니 둘 다 소설가가 되었네.'에 가깝게 느껴졌고 그래서 좋았다.
서고운 작가는 사실 친분이 있다. 나는 그가 소설로 등단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나에게는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고운이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하다. 이런저런 활동 현장에서 마주하면 인사 나누는 사이였는데,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이자 평화활동가인 두부가 병역거부를 하면서 나로서는 부쩍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두부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 때 고운 님께 지지연대 발언을 부탁드렸는데 그 발언이 참 좋았다. 군더더기 없고, 후까시 잡지도 않고, 지나치게 비장하지도 않고, 두부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는 솔직 담백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그 발언문이 기억에 깊게 남았다. 병역거부 선언의 말들은 자칫 의미나 감정이 과잉되기 마련인데, 짠맛 매운맛 단맛 같은 자극적인 맛 하나 없이 깔끔하면서도 감칠맛은 깊게 우러난 음식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고운 님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고운 님이 쓴 연대발언문은 내가 쓰고 싶어 하는 글의 모습이었다. 아룬다티 로이처럼 나도 창작하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는데 고운 님은 벌써 이룬 것이 아닌가. 활동가들이 쓴 바카라을 연대의 마음, 공부하는 마음으로 되도록 구매하는 편인데, 고운 님의 바카라은 그럴 필요 없이 정말로 독서인으로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소연 작가는 친분 따위는 없고, 우연한 기회(어떤 기회였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그 개와 혁명'을 읽게 되었다. 정말 배꼽 잡고 읽었고, 딸이 기억하는 운동권 아버지의 인생에 대한 후일담이라는 측면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비슷하다고 느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젊고 재기발랄한 느낌이었다. 굉장히 정치적이지만 아주 유머러스한 언어, 이 또한 내가 꿈꾸는 경지 아닌가. 당장 예소연 작가의 단행본 <사랑과 결함>을 사서 읽었다. 여러 편이 단편을 읽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예소연의 소설의 인물들은 좀 더 어둡고, 쪼잔하고 짜치고 그래서 어디다 말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것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게 마치 내가 숨기고 싶은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줄 30대 여성이거나 30대 여성들의 어린 시절인데,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렇지만 지금 평화운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고 만나야 하는 이들의 삶이 소설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예소연 작가의 바카라을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재밌는 공부라면, 날마다 9교시까지도 할 수 있다!
올해 5월에 전쟁없는세상이 서울인권영화제와 영화 하나를 같이 상영했는데 그때 고운 님이 예소연 작가와 친구하고 했을 때 깜짝 놀랐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했다. 한국 슬롯 워낙에 좁으니까. 그런데 그냥 아는 사이 정도가 아니라, 고등학교도 같이 다녔고 성인이 되고 5년을 같이 산 아주 가까운 친구라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조만간 두 사람이 함께 쓴 산문집이 나온다고 넌지시 알려줬다.(고운 님의 소설집도 비슷한 시기에 나올 거라고 했는데 왜 안 나오는 거지???) 목을 빼고 기다리다 나오자마자 바카라을 샀고 한달음에 읽었다. 솔직하고, 담백하고, 가식 없고, 허세 없고, 혐오 같은 것은 당연하게도 발 붙일 틈이 없고, 유머가 있고, 웃음이 있고, 따뜻한 마음이 있고, 근심과 고민과 걱정과 슬픔이 있는 글들이 바카라 한 권에 잔뜩 들어있었다. 바카라에서 하도 맥주를 마셔대서 나도 모르게 맥주를 사 와서 마시면서 읽기도 하고, 어쩐지 바카라에서도 맥주향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바카라. 나는 고운과 소연이 함께 맥주를 마시듯 바카라을 친구 삼아 맥주를 마시며 바카라을 읽었다.
친구라는 게, 특히 가까운 관계라는 게 너무나 좋으면서도 그만큼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친구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으니 상처받을 일도 없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가까우니 다 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고, 그러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니까. 애정, 따뜻함, 온기, 돌봄, 배려 같은 것들로 친구를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질투심, 부러움, 열패감, 자격지심 같은 감정도 친구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니까. 아마 고운과 소연 두 저자의 관계도 바카라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가득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으면서 나와 내 친구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내 친구 사귀는 패턴은 두루두루 여러 명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단짝 친구를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딜 가나 같이 놀 사람은 많았지만, 고속버스 탈 때 꼭 붙어서 함께 앉아서 가는 아이들을 보면 내심 부럽기도 했다. 약간은 풍요 속 빈곤 같은 쓸쓸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때 나는 친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학을 많이 다녔고, 그래서 늘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바빠서였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평화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친구들이 제법 많아졌는데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의 나는 친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잘못으로, 상대방의 잘못으로, 때로는 누구의 잘못도 없이 관계가 멀어지거나 소원해진 친구들을 떠올릴 때면, 친구가 있으면 좋지만 친구가 없다고 인생을 잘못 산 것도 아니고 인생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뭐 나름 친구가 많은 편이라 하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아무튼 각자 할 일을 마치고 맥주 한잔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각자의 할 일에 대해 잘 이해해 주고,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친구라면 더더욱. 바카라 읽을 때는 맥주 마시며 읽었지만 리뷰 쓸 때는 맥주는 안 마시고 내 친구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바카라. 요즘 날씨 너무 덥고, 나는 날씨 더우면 정신을 못 차리는 편이어서 쥐 죽은 듯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친구들에게 연락 한 번 돌려봐야겠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불볕더위 가시면, 한잔 하러 가자고 이야기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