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쁜 8월이었다.
7월 중순이 지나고 여름방학의 시작과 더불어 내가 일하는 곳에서 나에게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다.
내년 고입 모의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중3학생들의 가르침이었다.
국어 국문학 전공이 아닌 나에게 고등 문법은 정말 ‘산 넘어 산’이었다.
나는 솔직히 수능을 보지 않았다. 살다 보니 어찌어찌하여 학사를 졸업하고 국어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열여섯 두 명의 학생들과 같은 걸음으로 준비해 가야지...
유난히도 덥기만 했던 어느 날, 또 한 명의 중3학생이 나에게 왔다.
원장님의 지인의 소개로 오게 된 이 학생을 방학 기간인 3주 만에 이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는 중대한 업무가 떨어졌다. 나는 눈을 뜨자 마자 문법바카라과 모의고사 문제의 지문들을 보고, 수업을 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하는 시간을 빼고는 문법바카라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큰 애 등원을 깜빡하여 큰애를 지각하게 할 뻔한 적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 주에 작은아이 유치원 방학이라 엄마와 시어머니가 집에 와서 봐주시기로 하셨다.
폭풍 같은 엄마 잔소리에 밀린 집안일도 틈틈이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결국, 나는 목에 담이 와서 목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하는 근처에서 침을 맞고 한 주를 버틴 것 같다.
뜨거운 태양 아래 나는 열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하루를 불태우며 휘몰아치듯 3주가 지났다.
항상 성실한 자세로 반짝거리는 눈과 내가 툭툭 말을 걸 때마다 빙긋 웃어주던 그 학생과 좋게 마무리를 지었다.
벌이가 시원찮아 일을 그만두고 살림에만 집중하길 원했던 엄마도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친정에 가셨다.
8월 중순, 주말이었다. 전날 남편과 싸우고 좀 심난한 마음이 들었다.
일을 마치고 온 남편이 별안간 놀이공원에 가자고 했다.
주말 야간에도 놀이공원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이들을 회전목마에 태우고 좀 심심했다.
보호자 동반이 필요한 놀이기구를 아이들과 탔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시하게 느껴졌던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좀 어지러웠다.
사십 대 가까이 막내를 출산하고, 내 몸 어딘가 고장 난 기분이 들었다.
그치만 올해 만큼은 달랐다.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놀이기구 들을 탔다.
이참에 아줌마가 되기 전 즐겨 탔던 바이킹에도 도전해야지...
오늘의 마지막을 알리는 그 소리에 딸아이와 서둘러 바이킹호에 몸을 실었다.
배가 들썩 들썩 움직일 때 마다 머리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가슴까지 파고드는 상쾌한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그 날에 마지막에 탔던 바이킹호는 나에게 끝이 아니라 내년, 내후년, 그 후에도...
나는 앞으로 바이킹 호 승선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꽤나 길었던, 아니 바쁜 시간 속에서 조금은 짧게 느껴졌던 여름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얼마 전, 네팔에서 커다란 자연재해로 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소식을 들었다.
그 일이 있고, 나는 평상시처럼 중3학생과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자 한 통이 왔다.
“선생님이 딸아이 이름으로 기부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번에 네팔에 안 좋은 일 있었던 거 알지?
기부를 할까? 말까?”
아이는 망설임 없이 “해야죠.”라고 말했다.
나는 그 아이의 한마디에 바로 작은 금액으로 마음을 전했다.
어제 뉴스를 보니 네팔의 자연재해 원인은 지구 온난화라고 하였다.
네팔은 공장이 많은 산업화가 된 나라와 거리가 먼 나라 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네팔에도 봄날이 올까?
아침에 눈을 뜨니 스산한 공기가 반갑다. 이제 가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