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리그

우리들의 꿈

by호수공원

내가 정민(가명) 이를 만난 건 작년 겨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에서 가장 교육열이 뜨겁다는 그 동네 센터에서 나는 국어 강사로 일하고 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센터 부원장님께서는 예비 중2학생 문법 수업을 권유하셨다.

강사 일을 하면서 줄곧 초등학생들과 수업을 하였는데, 중학생은 처음이었다.

부원장님께서는 나에게 초보라는 것을 티를 내면 안 된다고 당부하셨다.


가까운 북쪽 나라 최고 지도자도 우리나라 중2병 걸린 학생들이 무서워 우리나라에 쳐들어 오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가끔 길을 거닐다 보면 1인용 전동 킥보드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2~3명 정도 타면서 그들만의 스릴을 만끽하며 즐기는 것을 보며 혀를 끌끌 찬 적도 있었다.


그 학생은 어떤 학생일까? 나를 속 썩이거나 그러지 않았으면...


약간에 걱정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새로운 수업에 대한 도전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문법’ 수업 준비를 하려고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나는 국문학 전공자가 아닌 문창과를 졸업하였기에, 문법의 개념은 정말 너무 어려웠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 만개쯤은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일주일 후

나는 출근하였다. 그래, 인터넷 강의에서 나를 가르쳐준 선생님과 비슷하게 연기라도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정민이를 기다렸다.

덥수룩한 머리, 통통한 얼굴을 한 정민이는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맑은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나는 초보인 티를 내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게 수업을 진행했다.

정민이는 수업에 참 열심히 참여하고 모르는 것을 꼭 질문하면서 흐트러짐 없는 태도로 수업을 잘 따라왔다. 그렇게 90분 수업을 마쳤다.


“정민아, 너는 꿈이 있니? 너가 너무 열심히 공부해서 말야.”


“네. 선생님, 저는 꿈이 있어요.”


정민이는 자신의 꿈을 말하였다.

내가 우려했던 15살 청소년과는 너무 다른 정민이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다음 날, 그날은 센터에서 회의가 있었다.

부원장님께서는 정민이에 대해 나에게 알려 주었다.

정민이의 부모님은 우리나라에서 선망하는 존경받는 직업이라고 했다.

정민이의 꿈도 부모님의 직업과 같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너무 바빠 할머니께서 정민이를 돌봐주신다고 하셨다. 할머니께서 손자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 간혹 학원에 전화하는 일도 있어 불편할 때도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더욱 수업에 신경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민이와 일주일에 한 번 그렇게 수업하면서 정민이가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는 자세도 좋지만

정민이는 문제를 풀 때 손톱 주변을 자주 뜯는 버릇이 있었다.

그것이 단순한 버릇일까?

전동 킥보드를 아슬아슬하게 타는 청소년처럼 그런 불안을 마음에 숨기고 있는 걸까?


정민이는 문제를 열심히 풀다가 손톱 주변에 피가 난 적도 있어 내 가방 안에 있는 밴드를 붙여 주었다.

내 마음도 정민이의 다친 손처럼 좀 쓰라렸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정민이는 딱딱한 문법 수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았다.

잠깐의 쉬는 시간에 정민이는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팀을 반짝이는 눈으로 말해주었다.

그 야구팀을 생각하니, 오렌지빛이 감도는 향긋한 느낌이 정민이 주변에 맴도는 것 같았다.



겨울방학이 끝났다. 이제 신학기 국어 수업이다.

지난 방학 때 문법 수업에서는 나도 잘 모르거나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정민이와 탐구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수업하였다.

국어 수업 준비는 나의 전공이라 한결 수월했다.

정민이와 문학작품을 접하며 주제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정민이가 손톱 주변을 뜯는 버릇이 점점 많이 줄어 들었다.





중간고사 시험 기간이 다가왔다.

요즘에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를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신기한 마음에 ‘우와’를 연발했다.

정민이는 그때 알았을 것이다. 내가 처음 중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을...


한 번은 내가 문제 답안을 잘못 체크한 적이 있었다.

정민이는 자기 답이 확실하다며 답지를 보라고 했다.

당황하는 나를 배려하면서 정민이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정민이는 나를 믿고 수업에 따라와 주었다.


시험을 보기 전, 수행평가 준비를 해야 했다.

주제는 <사물의 목소리를 담은 시 쓰기>였다.

어라? 내가 온라인카지노에서 구독하는 작가님이 연재하는 주제와 딱 맞물려 있었다.

작가님과 이렇게 통하는 느낌이 신기하고 왠지 모를 고마움도 느꼈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의 마음에 들어가서 시 한 편을 지어 정민이에게 예시로 보여 주었다.


나는 안경
J

주인님은 항상
자기 코에 나를 걸쳐 놓고는
무심하게 ‘툭’ 쓰곤 하지


주인님이
아침에 일어날 때
학교에 갈 때
나는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녀

빠직
운동장에서 날아온 농구공에
잃어버린 내 다리
씩씩거리는 주인님 손에
나는 ‘좌천’되어 버렸어

나도 다리가 있어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나도 새처럼 훨훨 날아오를 거야.


“선생님, 안경이 부러지면 고쳐서 쓰면 되지. 왜 버려요?”


“여기 시에 쓰인 중2 남학생은 화가 많고 반항기가 많은 애라서 그래.

너처럼 순한 애가 아냐.”


정민이는 내가 쓴 시를 재미있게 보고는 자신만에 시를 완성했다.


그렇게 무사히 수행평가가 끝나고, 본격적인 시험이 다가왔다.

정민이는 중학교 때 나의 성적을 물어보았다.

나는 학창 시절 ‘국어’ 빼고는 흥미가 없어 뛰어난 성적이 아니었다.

나는 거짓말하기가 싫었다. 정민이는 얼굴을 보니 실망이 가득하였다.


“그래. 선생님은 국어 빼고는 다른 과목에 관심이 없었어.

그치만 지금 너가 참 열심히 하고 잘하니까 멋져 보여.”


나의 말에 정민이는 다시 활짝 웃으며 당당하고 기운찬 목소리로


“선생님, 저 정말 제 꿈을 꼭 이룰 거예요.”


‘그래, 정민아 그 누구에 기대도 아닌 스스로 너의 꿈을 꼭 이루었음 해.’


나의 약점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키우는 정민이의 순수함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렇게 또 한 주가 흘렀다.

정민이는 시험이 다가오자 더욱 열심히 수업에 임하였다.

급기야 교재에서 잘못 출제된 문제까지 콕 집어내기도 했다.

하긴 겨울방학 때 문법 수업에서도 예외의 상황도 딱 알아챈 정민이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가 더욱 정민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구나 싶었다.


다음 날, 나는 정민이의 말을 듣고 교재 출판사로 전화했다.

관계자분은 다음부터는 그렇게 수정된 채로 교재가 나갈 것이라 했다.

나는 관계자분께 학생이 더욱 수업에 동기 유발할 수 있게 상품권이라도 보내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관계자분은 미안한 마음을 보이며 거절하였다. 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험이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정민이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민이는 야구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수업에도 열심히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나에게 카톡이 왔다.

부원장님 카톡이었다. 정민이 수업이 끝나고 부원장님께서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호수 강사님이 일요일에도 열심히 정민이 보충해 주는 거 알겠는데, 정민이한테 엄마 역할 하지 마세요.

만약 성적이 떨어지면, 할머니께서 호수 강사님 탓을 할 텐데...

그동안 노력한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부원장님은 내가 걱정되어 마음을 써 주셨다. 나는 부원장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퇴근했다.


얼마 전 할머니께서 카톡으로 정민이가 만점을 받게 해 달라는 그 메시지를 떠올리면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정민아,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시험이 보기 일주일 전이다.

정민이는 작년도 기출문제를 출력해서 가져왔다.

올해 개정판과 다른 전년도 문제라서 공부를 거의 안 한 부분이었다.

정민이는 스스로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해 보았다. 정민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까 기출문제 푼 거 다 잊어. 어차피 올해 개정판의 기출문제가 아니니까.

정민아, 지금은 너가 좋아하는 야구에서 3회 초 밖에 안 되는 경기에 불과해.

아직 9회 말까지 가려면 한참 남았어. 그러니까 좀 더 분발하자. 응?”


정민이는 내 말을 듣고 다시금 기운을 얻고 문제를 풀었다.

중간고사 시험 날이 다가왔다. 나는 궁금해서 정민이에게 전화를 걸어 점수를 물어보았다.

정민이는 작년보다 15점 이상 국어 점수가 올랐고, 상위권 커트라인에 들어간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 웃음이 나왔다.


정민이와 수업을 시작하고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원장님과 정민이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가 문득 생각이 났다.

“원장님, 저는 정민이와 수업하고 있는 것이 저에게는 행운이에요.”


앞으로 나와 정민이가 함께 치르게 될 시험대에서

경기를 치를 때마다 원하는 만큼 성적을 차츰 올리면서

나와 정민이가 그 꿈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image.png<야구를 하고 있는 스누피. 특정 야구팀 사진을 올리 수 없어 스누피 그림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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