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직업을 가져야지,
직업이 널 갖게 하지 말아라

엄마의 유산

by지담

지금 네가 오고 있어.

비행기 안에서 지루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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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1년만에 집에 오는 널 맞이하느라 (사실 한 것도 없지만) 대청소를 하고 침대커버부터 이불, 실내 슬리퍼까지 빨아서 봄햇살에 널었지. 그리고 네 방을 정리하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냉동실 문을 열었어.

네게 어떻게든 먹이려고 보관한,

제철에 거둔 콩과 옥수수, 고구마, 두릅을

흐뭇하게 바라봤지.


엄마 마음을

비행기 안에 있는 네 마음에 닿게 하려

온전히 보낸 하루였어.


네가 미국에 간지도 벌써 5년이 훌쩍 넘었네.

꿈을 향해 아무 연고도 없는 그 곳으로 갔고

이제 네가 걷는 길이 더 선명해지고 있어.


그래서 엄마가 오늘은

직업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말하고 싶어.


음...

시작은 네가 어려서부터 유독 파충류를 좋아하면서부터였어.

너의 기호와 재미가 탐구가 되고

탐구가 직업이 되고

직업이 삶이 되는...

좋아.

이렇게 자기 분야에서 깊게 삶을 일구는 건 바람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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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어릴 적부터 품었던 꿈, 파충류수의사


하지만, 아들아.

엄마는 경영학을 가르치고 코칭을 하고 지혜를 연구하고 또 글을 쓰잖아.

그러면서 요즘 알게 된 게 있어.

내가 좋아서, 내 성향에 맞아서 하는 일들이 일상이 되면서


좋은 성향도 강화되는만큼

반대 측면도 강해져더라.


엄마같이 가르치고 운영하고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설명하려 하고 통제하려 하지. 방향을 잡아주려 하고 말을 끝까지 듣게 만들려는 성향도 강해. 관찰하고 해석하고 감각이 무지 예민하면서 또 자기만의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해. 이 성향들이 직업의 전문성을 길러주기도 하지만 고립시키기도 해.


외과의사인 아빠는 길게 듣지 않아. 바카라임감이 지나치게 강하고 빠르게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야.

베이시스트인 네 누나는 어때?

감각적이고 자기 세계가 강하고 자유로우면서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그리고

사촌누나들 봐봐.

교사인 수*누나는 질서와 안정감을 추구하고

회계사인 시*누나는 꼼꼼하고 섬세하고 단정해.

변호사가 될 다*누나는 의심과 경계, 검증에 강하지.


직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야.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자기 결핍을 해결해주는 도구이기도 해.

그러면서도

자기 구속에 빠지게도 한단다.


인간은 오래 한 일을

결국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니까.

자기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지.


그래서 직업이 요구하는 기능성이 강화되면서

이면을 보지 못하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구속당해.

세계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야.


기획하는 사람은 모든 걸 구조로 보려 하고

상담가는 감정으로 보고

경영자는 판단하고 나서 보고

작가는 해석하고 의미안에서 맴돌지.


나쁘다는 말이 아니야.

삶 전체가 그 방식으로 해석되면 곤란하다는 말이야.


아들야,

그래서, 엄마는 스스로에게 물어봤어.

오래 같은 일을 지속한 뒤에

'난 어떤 일을 한 것이지?'가 아니라

'난 어떤 인간이 되어 있지?'라고.


넌 어려서부터 동물을 비롯한 자연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 그 직업을 향해 달리는 중이잖아.

수의학.

멋져.

생명을 살리는 일은 아주 귀중하지.


단순히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과 한계를 직면하는 힘이 필요한 일이야.

말 못하는 존재를 깊이 읽어야 하고

이미 늦어버린 상태를 되돌려야 하고

계산과 생명 사이에서의 판단,

보호자로서의 위치까지 감당해야 하지.


세밀하고 감성적이어야 하고

더더군다나 현실적으로 빠른 판단을 해내야 하는,

한마디로,

약한 존재를 대신 판단하는 사람의 위치에서

너는 살아야 해.


바로 이 지점.

약한 존재를 대신 판단하는 사람의 위치.가 강화될수록

다른 한쪽도 강화되고 있음을 늘 인지하렴.


약한 존재니까 보호해야 한다.

대신 판단해야 한다.

끝까지 바카라임져야 한다.는 특성이 강화될수록


오히려

작은 실수도 크게 느끼고

바카라임이 너의 존재 전체로 깊이 침투할 수 있어.

작업이 끝나도 긴장을 풀지 못하니

몸은 늘 대비상태에 익숙해지지.


그래서,

오히려 너의 존재, 너의 삶을 보지 못하면서도

외부로부터의 바카라임에만 강해지고

끝까지 돌보지 못한 경우의 죄바카라감으로 인해

감정을 억제하는 습관에 빠질 수가 있어.

슬픔과 같은 감정을 기능적으로 처리하고

이별을 쉽게 넘기게 될 지도 몰라.


직업적으로 강화된다는 것은

반면,

인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무뎌짐을 강화시키기도 해.


교사는 설명하지 않아야 하는 침묵을 잃고,

작가는 의미없이 존재하는 시간을 잃고

의사는 빠르게 판단하지 않아야 하는 여유를 잃고


회계사는 계산되지 않는 가치앞에서 근거를 찾으려 애쓰고

변호사는 믿고 싶은 순간에도 반론부터 떠올리게 되고

음악가는 너무 깊이 느끼는 대신

사소하고 무심한 세상의 박자를 놓칠지도 모르지.


아들아,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숭고함이

힘들어도 따뜻해야 하고

지쳐도 친절해야 하고

냉정해야 하지만 죄바카라감에 시달리고

쉬고 싶어도 바카라임감으로 경직되도록

널 구속시킬 수 있단다.


사람이 직업을 갖는 것이지

직업이 사람의 존재를 가지면 안되잖아.

사람이 기능을 움직여야지

기능이 사람을 반복시키면 안되잖아.


자기 존재보다 기능으로 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 이렇게 질문해 보자.


어디까지가 바카라임지고

어디에서 내려놓아야 할까.


엄마는 네가

훌륭한 수의사가 되는 것을 너머 끝까지 네 존재를 지키는 삶을 살길 바란단다.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네 존재부터 살피는 네가 되길 바란단다.

끝까지 바카라임져야 하는, 약한 존재를 대신 판단하기 위해

네 삶을 바카라임지는 위한 판단이 뒤로 밀리지 않길 바란단다...


언제나 넌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야.

뿐만 아니라

너는 세상에도 귀하게 쓰일 존재야.


결코 너를, 너의 존재를

그 무엇의 뒤로 밀어내지 말아라.

- 2026. 5. 17. 08:13


우리는 '직'을 갖습니다. 그 후로 그 사람은 그 '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기서 '살아간다'는 말은 그 '직'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구현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직'은 자신의 '직업'이 됩니다. '직'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고, '업'은 사명 혹은 자아실현을 의미합니다.


직업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이 찾은 그 역할을 통해 자기를 완성해간다는 것입니다.

'직'은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직'과'업'은 일체가 되지요.

이 말은 '자신'과 '직'이 일체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이때 자신은 자신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 직업 안에서 자신은 행복하고 충족감을 느낍니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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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21세기북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919230


https://cafe.naver.com/joowonw/12681


[지담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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