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찾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더라.

엄마의 유산

by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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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안다는 건 말이야.

알려한다고 알아지는 게 아닌 것 같아.

새로운 곳에 데려다 놓으니

몰랐던 자신의 모습이 막 나오는 것 같아.


엄마가 시골에 와서 2번째 봄을 맞았잖아.

여기서 엄마가 이렇게 즐겁고 신나게,

아니, 그 단어로도 부족할 정도로

엄마의 내면에 있는,

지금껏 몰랐던 모습들이 너무 많이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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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몇주전 벗꽃이 지기 시작할 때 / 우> 지난 주 이모들이랑 별빛 아래에서 수다


엄마는 벌도, 뱀도, 벌레도 무서워할 줄 알았거든.

아니더라.

신나더라.


엄마는 씨뿌리고 싹이 나는 게 그냥 당연했거든.

그런데 아니더라.

그렇게 신기하고 신비로울 수가 없더라.


엄마는 사람들이 자연에서 배운다고 말할 때

그게 별 게 아닌 줄 알았거든.

아니더라.

나무가, 흙이, 개미와 거미가,

그리고 애벌레들이 엄마에게

바카라만큼, 아니 바카라보다 더 큰 배움을 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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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만나는 나비, 애벌레, 뱀


자연은 가감없이 치밀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원리.

이쪽이 흔들리면 저쪽이 붙잡는.

그러니까 양극에 의해 철저히 흔들리며 균형이 잡히는 진리,

그리고,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나를 통과한다는 이치,

하는 것이 곧 되는 것이라는 논리까지.


경전, 철학, 사상가들이 쓴 활자들이

여기선 모든 시간, 모든 장면에서

입체로 엄마 앞에 보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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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작약이 막 올라왔을 때 / 중,우> 이제 백작약이 터뜨리기 직전이야.


엄마는 엄마의 존재를 찾으면 찾아질 것이라 여겼는데

아니었어.

바뀐 환경 속에서

드.러.났.어.


그렇게 현실을 사는 엄마와

현실을 보는 초월적인 엄마가 분리되면서

먼 시선에서 자신을 본다는 것,

믿는 힘으로 지금을 산다는 것,

하나에 집중하면 전체가 일궈진다는 것을

씨앗 하나에서부터 배우고 있어.


시골에 오길 참 잘한 것 같아.


고라니가 상추를 다 뜯어먹어도 기특하기만 하고

뱀이 엄마 옆을 지나가도 신기하기만 하고

벌이 창문 위에 집을 지어도 재미있기만 해.


무엇 하나,

어떤 녀석 하나.

허투루 움직이지 않아.

철저히 자연에 맞춘 시간으로

자기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의무만을 위해

하루를 사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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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바라본 노을, 마을, 집앞의 강


아이야,

우리가 살면서 배워야 할 것이 뭐가 있겠니?

자신의 삶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자신의 정신, 신체, 영혼이 어떻게 연동되어야 하는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쓰여야 하는지..

이런 것 아니겠니?


어제 작약이 꽃망울을 터뜨렸어.

하지만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찔레가 질투하지 않아.

두릅이 비탈을 점령하려는 듯 얼굴을 여럿 내밀어.

하지만, 그 어떤 나무나 풀도 찍어 누르지 않아.


엄마가 이사오자마자 베어버린 나무들의 구근에서도

계속 잎을 올리고 가지를 뻗쳐.

원망도 타박도 탓도 없어.


모든 시계가, 의미가, 방향이

자.연.을 기준에 두고 흘러가.

그렇게 오로지

자기 몫만을 해내는 존재들 사이에.

엄마가.

있네.


이렇게 살아야 삶이지.하며

매순간마다 고개를 끄덕인단다.


평화로워.

편안하구.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


'자연스럽다'는 말...

쉽게 자주 내뱉았었는데

이렇게 깊은 의미를 담은 소중한 말인지 몰랐어.

모든 것이 조화를 위해 순종하는,

그렇게 자신의 의지마저 내려놓은 흐름에

자기 생을 올려놓았을 때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마구 달렸던 지난 시간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 시간들로 다시 돌아가서

명예가, 지위가, 금전이 주어진다 해도

엄마는 지금의 생활이 더 가치있게 느껴져.


그리고 보여주고 싶어.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에게.


너희들도 어김없이,

결코 어김없이

엄마의 나이를 맞을 것이고

그 때

엄마의 삶이 너희들에게

'나이든다는 것'의 의미를 보태줄

하나의 방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가 잘 살아볼께.


사랑한다.

-2026. 5. 1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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