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바카라방 이야기
《너를 아끼며 살아라》는,
《풀꽃》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깨달은 삶의 지혜를 따뜻한 말로 들려주는 바카라이다.
“너를 아끼며 살아라.”
바카라 제목을 보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괜스레 뭉클해진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 한마디만으로도 작은 위로를 받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참 오랫동안 남을 아끼며 살아왔다.
가족을 챙기고, 자식을 걱정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느라 정작 ‘나’에게는 늘 조금 야박했다.
힘들어도 참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미뤘으며,
때로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우리에게 나태주 시인은 말한다.
“이제는 너도 좀 아끼며 살라고.
지금의 너도 충분히 괜찮다고.”
그래서인지 바카라장을 펼치기도 전에 제목부터 마음에 오래 머문다.
어쩌면 인생 후반에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더 잘 사는 방법이 아니라,지금까지 잘 살아온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아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너를 아끼며 살아라》는,
다섯 개의 이야기로 나누어 삶을 바라보는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마음을 들려준다.
첫 번째: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세요’
우리는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법은 많이 배웠지만,
정작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는 서툴다.
시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살아가라고 말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인생의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
살다 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순간도 찾아온다.
하지만 어둠이 깊어지면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듯, 힘든 시간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작은 희망이 나타난다.
인생에는 늦게서야 보이는 것들도 있다.
세 번째:
‘사랑은 매번 서투르고 짝사랑이며 늘 첫사랑입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사랑에는 정답이 없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도, 부부의 사랑도, 친구의 사랑도 늘 마음처럼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매번 서툴고 어렵지만, 그 서툰 마음 때문에 오히려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네 번째:
‘너를 말해주는 것들’이다.
사람을 보여주는 것은 이름이나 직함만이 아니다.
어떤 말을 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우리가 매일 하는 작은 행동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마지막 다섯 번째 :
‘마음속에 봄을 간직하면 반드시 봄이 찾아옵니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 봄은 온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힘든 날이 계속된다고 해서 삶 전체가 겨울인 것은 아니다.
마음속에 작은 희망 하나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다시 꽃이 피는 날이 찾아온다.
나태주 시인의 다섯 개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말로 모인다.
남을 따라가느라 나를 잃어버리지 말고,
지금의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것.
그래서 바카라 제목이 다시 마음에 들어온다.
‘너를 아끼며 살아라.’
어쩌면 이 한마디가,
이 바카라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가장 따뜻한 위로인지도 모르겠다.
나태주 시인은 우리 인생에는 세 가지 삶이 있다고 말한다.
‘살아지는 삶, 살아가는 삶, 그리고 살아내는 삶.’
그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은 어쩌면 ‘살아지는 삶’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아야 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렇게 힘겹게 살려고만 하지 말라고 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듯 편하게 살아가려 하지 말고, 걸어 올라가세요.
힘들다면 한 발짝 내딛고 쉬어가며 살아내세요.”
참 따뜻한 말이다.
인생이 늘 평탄할 수는 없다.
때로는 멈추고 싶을 만큼 힘든 날도 있고, 아무리 애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
한 발 내딛고 쉬었다가, 다시 한 발 내딛으면 된다.
그렇게 살아지고, 살아가고, 때로는 이를 악물고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지나온 길이 내 인생이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다.
잘 사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살아낸 삶 또한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
오늘도 내 속도로 한 발짝씩,
주어진 이 삶을 끝까지 잘 살아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태주 시인은 바카라 읽기를 ‘보물찾기’에 비유한다.
독자는 저자가 무엇을 숨겨두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마지막 페이지까지 바카라을 읽어야한다고 나태주 시인은 말씀하신다.
바카라 한 권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보물지도를 한 장 받아 든 셈이다.
그 보물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모른다.
첫 장에 있을 수도 있고, 마지막 한 문장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다행히 나는 바카라을 한번 읽기 시작하면, 어지간해서는 끝까지 읽는 편이다.
마음에 드는 문장에는 밑줄을 긋고,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노트에 옮겨적고, 때로는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돌아간다.
그러다보니, 바카라 한 권 읽고 리뷰 하나 쓰는 데 남들보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그래도 그렇게 끝까지 읽다 보면, 가끔 이런 문장을 만난다.
“아, 이 문장을 만나려고 내가 여기까지 읽었구나.”
그 순간 바카라 읽느라 들인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바카라 속의 보물은 금도 보석도 아니다.
내가 미처 몰랐던 생각 하나,
삶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해주는 문장 하나,
힘든 날 다시 꺼내보고 싶은 따뜻한 말 한마디다.
그래서 조금 느려도 괜찮다.
오늘도 밑줄 긋고, 메모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끝까지 읽는다.
어쩌면 나의 긴 바카라 리뷰는, 바카라 속에 숨겨진 보물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는 나만의 보물찾기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모습 그대로 너는 충분히 예쁘고
가끔은 실수하고 서툴러도 너는 사랑스런 사람이란다.
지금 그대로 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라.
( 너를 아끼며 살아라 / 나태주 시인)
이 문장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한참을 머물렀다.
우리는 왜 그토록 자신에게만 엄격했을까.
남이 실수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다독여주면서,
정작 내가 실수하면 며칠씩 마음에 담아두고 자바카라한다.
남에게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에게는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조금 더 잘했어야 했고,
조금 더 예뻤어야 했고,
조금 더 성공했어야 한다며
평생 나 자신을 채근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태주 시인의 말처럼
조금 서툴면 또 어떤가…
가끔 실수하면 또 어떤가…
완벽해서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모습까지 모두 품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니 이제는 남에게 건네던 따뜻한 말을
나 자신에게도 한번 건네보면 좋겠다.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
지금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다.”
세월이 흘러 주름이 늘고,
예전처럼 무엇이든 잘할 수 없게 되어도
내가 살아온 시간의 가치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나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오늘부터라도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너그럽게,
세상에서 가장 오래 함께 살아갈 사람인
‘나’를 아끼며 살아야겠다.
박목월 시인의 ‘정점을 살아라’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20대는 20대답게,
50대는 50대답게,
그리고 노인은 노인답게 살아가는 것.
얼마 전 나는 요즘 시니어들에게 유행한다는 ‘셔플댄스’에 겁 없이 도전했다.
젊을 때 피겨스케이트도 타고, 수영도 하고, 에어로빅도 곧잘 했으니
‘이 정도야 뭐!’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몇 번 따라 했더니 무릎과 허리가 슬슬 신호를 보낸다.
“할매야, 이제 그만해라!”
그제야 얼른 꼬리를 내렸다.
겨우 좋아지고 있는 몸을 다시 망가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나를 아끼는 방법이다.
남들이 같은 나이에 셔플댄스를 추고 산에 오른다고 해서,
나까지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타고난 몸도 다르고, 살아온 세월도 다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오래 살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외할머니 손에서 간신히 자라면서, 한때는 마흔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느새 칠십을 훌쩍 넘겨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이쯤 되면, 남들과 비교하며 속상해할 일이 아니라,
여기까지 잘 버텨준 내 몸에게 박수부터 쳐줘야 하지 않을까.
남이 나를 누구와 비교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비교 때문에 내가 나를 초라하게 만들 필요도 없다.
이제 내가 오를 정점은 남들보다 젊어 보이는 것도,
남들보다 더 잘 뛰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나에게 맞는 속도로 움직이고, 아프면 쉬고, 할 수 있는 것을 즐기면서, 내 나이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련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감사하다.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내 삶에 만족하자.
지금의 나를 아끼자.
그리고 남의 정점이 아니라, 지금 이 나이에 가장 아름다운
‘나의 정점’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