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글할매 바카라 이야기
유시민 작가의 《유럽 도시 기행 3》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망설일 것도 없이 바로 바카라을 주문했다.
유시민 작가의 바카라이라면 일단 믿고 읽는다.
단순히 유명한 관광지를 소개하는 여행바카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의 오래된 건물 하나를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역사 속으로 데려가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상처, 기쁨까지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다 슬슬 머리가 무거워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맛있는 음식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 바카라에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말을 듣자, 점심을 먹고 있던 우리 집 양반의 눈빛이 갑자기 달라졌다.
젊은 시절 잠깐 스페인에서 살았던 추억이 있는 사람이다.
평소에는 내가 무슨 바카라을 주문하든 별 관심이 없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재촉한다.
“그 바카라 얼른 주문해. 마드리드하고 바르셀로나가 자세히 나온다잖아.”
아직 밥도 다 먹지 않았는데 바카라부터 사란다.
그 한마디에 나는 웃음이 났다.
스페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오래전 기억 속 골목과 광장이 다시 떠오르는 모양이다.
다행히 우리 노부부는 둘 다 바카라을 좋아한다.
문제는 취향이 너무 다르다는 데 있다.
남편은 역사와 정치, 묵직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와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을 좋아한다.
같은 방에서 나란히 바카라을 읽어도 서로 전혀 다른 세상으로 여행할 때가 많다.
“그 바카라 재미있어요?”
내가 물으면 남편은 한참 역사 이야기를 늘어놓고,
남편이 내 바카라을 물으면 나는 사람 마음 이야기만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처럼 같은 바카라을 읽게 되었다.
남편은 자신이 기억하는 스페인과 바카라 속의 스페인을 비교할 것이고, 나는 유시민 작가의 시선을 따라 낯선 도시의 골목과 광장을 천천히 걸어볼 생각이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지나 리스본과 뽀르투까지, 바카라 한 권을 사이에 두고 우리 부부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몸은 제주 집에 그대로 앉아 있지만,
바카라장을 넘기는 동안만큼은 시간도 국경도 사라진다.
모처럼 우리 집 식탁에 밥 이야기 말고도 나눌 이야기가 하나 더 생겼다.
유시민 작가는 정치인과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했지만,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로 돌아온 사람이다.
삶과 역사, 슬롯를 깊이 들여다보며 사람과 시대를 연결하는 글을 써왔다.
지금까지 100권이 넘는 바카라을 쓰고 번역하며, 자신이 쌓아온 지식과 생각을 독자들과 꾸준히 나누고 있다.
유시민 작가의 글에는 어려운 이야기도, 사람 사는 이야기처럼 편안하게 풀어내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의 바카라을 읽다 보면 지식을 얻는 데서 끝나지 않고, 내가 살아온 삶과 지금의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바카라 띠지에 적힌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긴, 길을 잃어도 좋겠어.”
낯선 도시를 설명하면서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역사와 예술을 이야기하다가 어느새 삶의 위로와 즐거움까지 건네준다.
짧은 문장 몇 줄만으로 그 도시를 걷고 싶게 만들고,
그곳에 잠시 머물고 싶게 만든다.
역시 유시민이다.
이번 《유럽 도시기행 3》에서 유시민 작가는 우리를 유럽의 서쪽 끝, 이베리아반도로 데려간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그리고 뽀르투다.
그런데 “이 가운데 딱 한 도시만 간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님의 대답이 재미있다.
한 달 넘게 머문다면 바르셀로나,
보름 정도라면 리스본,
열흘 이내라면 뽀르투를 추천한다.
이유도 마음에 든다.
꼭 봐야 할 것은 많지 않은데, 재미있는 것은 많은 도시들이기 때문이란다.
그중 작가님에게 가장 재미있는 도시는 바르셀로나, 가장 독특한 도시는 뽀르투였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나니 궁금해진다.
도대체 뽀르투가 얼마나 독특하길래?
작가님은 마드리드를 “처음 봐서는 잘 모르는 도시”라고 말한다.
스페인의 수도라고 하니 얼마나 화려할까 싶지만, 막상 가보면 가장 화려한 도시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도 아니란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머물수록 마음이 간다.
총칼보다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권력보다 예술을 사랑하며, 거창한 것보다는 광장에 모여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드리드는 관광버스 창밖으로 휙 보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아깝다.
천천히 골목을 걷고, 광장에 앉아 사람 구경도 하고, 미술관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 한참 서 있어 봐야 한다.
첫눈에 반하는 도시는 아니지만, 오래 볼수록 슬며시 정이 드는 도시.
작가님이 들려주는 마드리드는 그런 곳이었다.
바르셀로나에 가면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유시민 작가님은 이곳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정말 노는 데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도시 그 자체였단다.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떠나고 나면 다시 오고 싶어지는 도시라고 한다.
구엘 공원에서 그라시아를 지나 고딕지구와 바르셀로네타 해변까지 걷다 보면 오랜 역사와 오늘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다.
현지인은 현지인대로, 여행자는 여행자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서 자기 방식으로 시간을 즐긴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살기 좋은 도시의 기준도 재미있다.
“나도 여기 사람들처럼 한번 살아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도시, 심지어 길을 잃어도 그 길에서 재미있는 무언가를 만날 수 있는 도시가 좋은 도시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문득 요즘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외국인들이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한강공원에서는 라면을 끓여 먹고 치맥을 즐긴다.
이제는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처럼 살아보는 것 자체가 여행이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가난했던 시절, 더 나은 삶을 찾아 고국을 떠나야 했던 이민자의 눈에는 이런 변화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제 세계 사람들이 일부러 한국을 찾아와
“한국 사람들처럼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세월 참 많이 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살짝 올라간다.
그래, 우리 대한민국 정말 많이 컸구나.
포르투갈은 국토 면적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인구는 약 1천만 명 정도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땅은 비슷한데 사람은 훨씬 적은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작은 나라를 찾아오는 관광객의 숫자다.
해마다 인구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수많은 외국인이 포르투갈을 찾는다.
그러니 나라 경제에서 관광과 서비스업이 큰 몫을 차지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포르투갈을 찾아갈까.
수도 리스본을 들여다보면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리스본은 그저 햇살 좋고 풍경 예쁜 관광도시가 아니다.
역사의 격변 속에서 무너지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운 도시다.
혁명과 격동의 시간이 흘렀고, 그 곁에는 언제나 바다와 파도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리스본에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화려하게 자랑하기보다는 조금 쓸쓸하고, 오래된 골목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 쓸쓸함 속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이 느껴진다.
바카라에서 만난 리스본의 또 하나의 매력은, 여행자가 비교적 편안하게 도시를 걸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작가의 경험 속에서는 거리의 노숙인이나 구걸하는 사람이 눈에 많이 띄지 않았고, 도난 걱정에 잔뜩 긴장하며 다닐 필요도 크게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유명한 관광지가 많은 것도 좋고, 음식이 맛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여행에서 더 중요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는가.
골목길을 천천히 걷고, 마음에 드는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 앉고, 바다를 바라보다 아무 이유 없이 한참 머물 수 있는 곳.
그런 곳이라면 진정한 여행 천국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사람들이 포르투갈을 다시 찾는 이유도 화려한 볼거리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그 여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유시민 작가님이 리스본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 가운데 하나가, 파두 박물관이었다고 한다.
‘파두(Fado)’라는 단어에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였다.
쉽게 말하면 포르투갈 사람들의 슬픔과 그리움을 노래하는 전통 음악이다.
특히 리스본의 오래된 서민 동네 알파마와 깊은 인연을 맺으며 발전했다.
파두를 들어보면 처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신나게 어깨를 들썩이는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멜로디도 애절하고, 가수의 목소리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감정이 묻어난다.
기타 반주에 맞춰 한 사람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듯 부르는 노래다.
처음에는 어부와 노동자 등 서민들의 삶과 가까운 음악이었다고 한다.
힘들게 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이, 술집이나 작은 식당에 모여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슬픔과 그리움을 달랬던 것이다.
파두의 마음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포르투갈 말이 ‘사우다드(saudade)’다.
그냥 “보고 싶다” 정도의 그리움과는 조금 다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이미 떠나버린 사람, 되돌릴 수 없는 사랑과 지나가버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까지 뒤섞여 있다.
그래서 바카라을 읽으며 문득 우리말의 ‘한(恨)’이 떠올랐다.
완전히 같은 감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오래 묵혀두었다가 노래 한 곡에 슬며시 꺼내놓는다는 점에서는 묘하게 닮았다.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이민 생활을 떠올렸다.
고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오래 살다 보면,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한국 노래 한 곡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때가 있다.
오래된 가요가 흘러나오면 노래가 좋아서 듣는 것인지, 그 노래 속에 남아 있는 고향과 젊은 시절이 그리워 듣는 것인지 모를 때도 있다.
어쩌면 파두를 듣던 리스본 사람들의 마음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돌아갈 수 없기에 더 그립고,
잃어버렸기에 더 아름다운 것들.
리스본은 그런 마음을 억지로 잊으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타를 들고 노래로 만들었다.
슬픔을 없애지는 못해도 노래할 수는 있으니까.
그래서 파두는 단순히 슬픈 음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슬픔을 품고도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래.
그것이야말로 수많은 상처를 겪고도 다시 일어선 도시,
리스본과 참 잘 어울리는 음악인지도 모르겠다.
유시민 작가님은 뽀르투를 ‘걸음을 멈추게 하는 도시’라고 표현한다.
뽀르투에는 “이것만은 꼭 봐야 한다”며 관광객을 재촉하는 명소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골목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고, 도우루강가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기 좋은 도시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도시.
작가님은 어쩌면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국의 젊은이들이 뽀르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늘 경쟁하고, 서두르고,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내야 하는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뽀르투는 슬쩍 말을 건넨다.
“뭘 그렇게 서둘러. 잠깐 멈춰 있어도 괜찮아.”
그래서일까.
작가님은 뽀르투를 시간이 멈춰 선 듯한 느낌을 가장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도시라고 한다.
도우루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칵테일 한 잔을 앞에 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
생각해보면 우리가 여행에서 정말 원하는 것도 이런 순간인지 모르겠다.
평생 시간을 아끼고 쪼개며 살아왔으니, 이제는 가끔 시간을 마음껏 낭비해 보는 호사도 누려볼 만하지 않을까.
강물은 흘러가는데 나는 멈춰 있고,
시계는 가는데 마음은 느긋해지는 곳.
어쩌면 뽀르투는 지도 위의 도시 하나가 아니라,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이 마음속에 하나쯤 품고 있는 작은 로망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도 무릎이 허락한다면, 도우루강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칵테일 한 잔을 앞에 놓고 말해보고 싶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오늘 하루쯤은, 시간을 실컷 낭비해도 좋다.”
‘뽈뽀’는 쫄깃하고, ‘폴포’는 힘이 없다
바카라을 읽다가 ‘뽈뽀’라는 단어 앞에서 한참 웃었다.
문어를 뜻하는 말을 우리말 외래어 표기 원칙에 맞춰 적으면 ‘폴포’가 되지만, 유시민 작가는 이 음식만큼은 굳이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뽈뽀나 폴포나 그게 그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입으로 직접 소리를 내보니 묘하게 다르다.
“뽈뽀!”
이렇게 부르면 입안에서 말부터 통통 튄다.
쫄깃한 문어 다리 한 점이 포크 끝에서 탱글탱글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폴포…”
갑자기 힘이 빠진다.
싱싱하던 문어가 축 늘어져 접시 한구석에 누워 있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제일 신난 사람은 우리 집 양반이다.
스페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남편은, 예전부터 외국어의 소리를 한글로 옮기는 방식에 가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 소리를 그렇게 적지? 현지에서는 그렇게 안 부르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별 관심 없이 대답했다.
“나라에서 그렇게 쓰라니까 그런가 보지, 뭐.”
그런데 유시민 작가가 바카라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니 남편 얼굴이 갑자기 밝아진다.
“거봐!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니까.”
마치 수십 년 묵은 억울함이라도 풀린 사람 같다.
그러고 보니 남편에게는 정말 오래된 ‘이름의 한’이 하나 있다.
우리 집 양반의 성은 장씨다.
그런데 미국에서 살면서 로마자로 적힌 ”Chang”이라는 성을, 현지 사람들이 읽으면 우리가 듣기에 ‘장’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되곤 했다.
‘장’이 아니라, 졸지에 ‘챙’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편은 그게 평생 못마땅했다.
“우리 아버지가 물려주신 성은 ‘장’인데, 왜 나는 평생 엉뚱한 이름으로 불려야 하느냐.”
50년 가까운 미국 생활 동안 수없이 자기 이름을 말하고 고쳐주었지만, 상대방 입에서는 좀처럼 익숙한 ‘장’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영문 표기로 된, “Chang”로 읽다보니, ‘장’이 아니라 엉뚱한 ‘챙’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옆에서 들으며 웃기도 했지만, 《유럽 도시기행 3》의 ‘뽈뽀’를 읽다 보니 이제야 남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글자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그 안에는 그 말을 쓰며 살아온 사람의 귀와 입과 기억이 함께 들어 있다.
음식 이름은 더 그렇다.
입으로 부르는 순간 맛이 떠올라야 한다.
‘타파’보다 ‘따빠’가 바삭하게 들리고, ‘핀초’보다 ‘삔초’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작가의 이야기도 그래서 재미있다.
물론 표기법에는 표기법 나름의 이유가 있다.
누구나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적는다면 오히려 더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정확하게 적는 것과, 그 말이 가진 살아 있는 느낌을 전하는 것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긴다.
유시민 작가는 문어 한 마리의 이름에서도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나는 그 대목이 참 재미있었다.
역사 이야기를 하다가 음식으로 빠지고, 음식 이름 하나를 붙잡았다가 어느새 언어와 사람의 감각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수십 년 묵은 ‘장씨의 한’까지 다시 끄집어냈다.
바카라 한 권 읽다가, 문어 때문에 부부가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결론은 간단하다.
앞으로 우리 집에서는 ‘폴포’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문어는 역시,
“뽈뽀!”
하고 불러야 한다.
그래야 말도 쫄깃하고, 문어도 쫄깃하다.
그리고 옆에서 우리 집 양반이 한마디 보탠다.
“그러니까 내 성도 제대로 ‘장’이라고 불러달라고!”
유시민 작가님은 뽀르투 여행 중 어느 술집 쇼윈도에서 만난 재미있는 문장 하나를 떠올린다.”
“우유를 마시면서 친구가 되긴 어렵다.”
술을 사랑하는 내 눈에 이 문장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같이 공부하는 50대 초반의 멋진 친구가 있다.
어느 날 주량을 물었더니 자기 주량을 모른단다.
마시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고 한다.
세상에나!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부터 달아오르는 나에게는, 그 말이 어찌나 멋지고 부럽던지…
아무리 나이 들어가도, 분위기 좋은 곳에서 와인 한 병 놓고 밤늦도록 우아하게 마셔보고 싶다.
하지만, 마음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몸이 먼저 말린다.
그게 조금 서글프다.
너무 완벽하게, 모범생처럼 반듯하게 사는 인생이 얼마나 답답한지 나는 이미 온 몸으로 느끼며 산다.
수십 년을 완벽주의자 모범생 남편과 함께 살아보니 이제는 알겠다.
사람 사는 게 어디 자로 잰 듯 똑바르기만 하겠는가.
가끔은 흐트러져도 되고, 조금 엉뚱해도 되고, 살짝 취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에게도 조그만 일탈이 있다.
점심을 준비하다 슬쩍 냉장고 문을 연다.
그리고 남편 눈치를 한번 살핀 뒤 시원한 맥주 한 캔을 꺼낸다.
“딱 한 잔만…”
부엌에서 혼자 홀짝이는 그 맥주 한 잔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뽀르투 어느 술집의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우유를 마시면서 친구가 되긴 어렵다.”
물론 우유를 마시면서도 친구는 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이 너무 반듯해서 숨이 막히는 날에는,
가끔 맥주 한 잔 앞에 놓고 조금 흐트러져도 괜찮지 않을까.
인생에도 가끔은 술 한 잔 만큼의 일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유시민 작가는 여행을 10배 더 즐기려면,
많이 보는 것보다 천천히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행은 떠나는 순간부터가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때부터 이미 시작된다.
그러니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욕심내지 말고, 오전에 한 곳, 오후에 한 곳 정도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미술관에서도 유명한 작품만 쫓아다니지 말고,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림 한 점을 찾아본다.
낯선 골목을 걸으며 그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구경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본다.
결국 좋은 여행이란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녀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여유롭게 보고 느꼈느냐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행에서 배운 그 느긋함을 일상으로 가져온다면 더 좋다고 말씀하신다.
조금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여행도 인생도 꼭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까…
《유럽 도시기행 3》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여행이란 단순히 낯선 곳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다.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낯선 거리를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그동안 보이지 않던 내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젊을 때의 여행은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찍고, 유명한 곳을 빠뜨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멋진 풍경 앞에서 잠시 멈춰 서고, 골목의 작은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오늘 내가 걷고 있는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더 좋아진다.
어쩌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새로운 도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서 미처 보지 못했던 내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는 것.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것.
가끔은 낮술 한 잔에 기분 좋아져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사는 것도 제법 훌륭한 인생이라는 것.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나는 이미 꽤 먼 길을 걸어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걸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남은 길에서는 자꾸 시계만 들여다보며 서두르고 싶지 않다.
좋은 풍경을 만나면 멈춰 서고,
마음에 드는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고,
좋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오래 이야기하고,
가끔 맥주가 당기면 눈치 보지 말고 한 잔도 해야겠다.
길을 조금 잘못 들면 또 어떤가.
거기서 뜻밖의 풍경 하나 만나면 그 또한 여행이다.
어쩌면 인생의 멋은
얼마나 멀리 갔느냐가 아니라,
가는 길에서 얼마나 많이 웃었느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언제 갈지 모르는 나의 여행도 그렇게 가고 싶다.
조금 느리게,
조금 제멋대로,
그리고 많이 웃으면서.
아직 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