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7 / 라이프 ROI

업글할매 바카라방 이야기

by업글할매

《트렌드 코리아 2027》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


“아, 벌써 올해도 저물어가는구나~~.”


해마다 《트렌드 코리아》가 서점에 등장하면 나는 달력을 한 번 쳐다보게 된다.


‘벌써 내년을 이야기할 때가 됐나?’


예전에는 이 바카라이 지금보다 조금 늦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출간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다.


하긴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가.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어제까지 낯설었던 것이 오늘은 일상이 된다.


그러니 내년의 트렌드를 이야기하는 바카라도, 덩달아 서둘러 우리를 찾아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빨라지는 만큼 《트렌드 코리아》도 해가 갈수록 내게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처음 《트렌드 코리아》를 읽을 때만 해도, 새로운 단어 하나를 알아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 말도 있네?”


처음 듣는 트렌드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바카라장을 넘겼다.


그런데 작년부터인가 조금씩 느낌이 달라졌다.


분명 우리 세상 이야기인데도, 가끔은 내가 전혀 모르는 낯선 세계에 슬쩍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아이고, 세상이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니야?”


나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트렌드 코리아》를 기다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바로 지금 내가 너무나 사랑하며 사용하고 있는 이름,


‘업글할매’.


이 이름의 씨앗이 바로 《트렌드 코리아》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0》을 읽다가 ‘업글인간(Elevate Yourself)’이라는 단어를 만났다.


남과 경쟁해 성공하는 것보다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자신을 계속 성장시키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키워드였다.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 이거다.’


나이 들었다고 가만히 늙어가는 할머니가 아니라,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배우고,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아지는 할머니.


그래서 나는 나에게 이름 하나를 붙여주었다.


‘업글할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트렌드 코리아 2027》을 펼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뜻밖이었다.


10대 키워드를 쭉 살펴보는데 ‘AI’라는 단어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온 세상이 AI 이야기뿐인데 왜 AI가 없지?


이유가 재미있다.


AI가 중요하지 않아서 빠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우리는 그것을 신기한 신기술이라 불렀다.


하지만 지금 누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신기한 기술이라고 말하는가.


그냥 생활이다.


AI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참 묘하다.


그렇게 신기해하던 스마트폰이 어느새 내 손과 눈과 귀가 되어버렸듯, AI도 어느새 내 일상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와 버렸다.


2027년은 양띠 해라고 한다.


그래서 《트렌드 코리아 2027》이 내세운 슬로건이 바로,

‘ALPHA SHEEP(알파쉽)’이다.


양떼처럼 남들이 가는 길을 무작정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무리에서 한 발 먼저 뛰쳐나와 자기 생각을 가지고 먼저 시도하고 실행하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라고 한다.


요즘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다.


유튜브를 켜면 볼 것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온다.

넷플릭스에는 평생 봐도 다 못 볼 만큼 영상이 쌓여 있다.


휴대폰만 열면 쇼핑도 하고, 게임도 하고, 남의 사는 이야기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재미있는 것이 없어서 심심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심심해진다니.


《트렌드 코리아 2027》에서는 이런 현상을 ‘권태슬롯’라고 이야기한다.


맛있는 음식도 어쩌다 먹어야 맛있다.


매일 산해진미를 먹으면,

어느 날부터는 그렇게 맛있었던 된장찌개 한 그릇에도 별 감흥이 없어질 것이다.


멋진 풍경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좋은 것도 자꾸 보면 익숙해지고, 강한 자극을 계속 받다 보면 웬만한 것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과잉의 권태’, ‘바쁨의 권태’라는 재미있는 말까지 등장한단다.


그뿐인가.


얼굴 꾸미기도 지겨워지는 ‘얼태기’

옷을 사고 입고 꾸미는 것이 시들해진 ‘옷태기

바카라 읽기가 싫어지는 ‘바카라태기’,

밥 먹는 것조차 귀찮아지는 ‘밥태기’까지….


보다가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권태기도 이렇게 종류가 많았어?”


예전에는 그냥 “요즘 아무것도 하기 싫어.”

한마디면 끝났는데,


요즘은 하기 싫은 것마다 이름이 하나씩 붙는 모양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다.


이렇게 재미가 넘쳐나서 생긴 권태를 이겨내는 방법이,

더 강한 재미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란다.


오히려 반대다.


일부러 좀 심심해져 보라는 것이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유튜브도 끄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손이 근질근질할지도 모른다.


‘카톡 온 것 없나?’


‘새로 올라온 영상 없나?’


괜히 휴대폰을 한번 뒤집어보고 싶어진다.


그래도 조금만 참아본다.


창밖도 바라보고, 멍하니 앉아도 보고, 천천히 걸어도 본다.


그러다 보면 이상하게 머릿속에 빈자리가 생긴다.


그리고 바로 그 빈자리에서 새로운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이거 한번 해볼까?”


“이런 글 한번 써볼까?”


김난도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심심함의 미학”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심심하면 뭔가 잘못된 줄 알고 얼른 휴대폰부터 집어 든다.


하지만 가끔은 심심해도 괜찮다.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는 조금 심심할 시간이 꼭 필요한지도 모른다.


새로운 생각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집어넣을 때보다, 아무것도 집어넣지 않고 마음 한구석을 잠시 비워두었을 때 찾아올 수도 있다.


재미가 넘쳐나는 시대에 어쩌면 가장 귀한 사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심해 볼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라이프 ROI”, 인생에도 계산기를 두드리는 시대


ROI(Return On Investment)는 원래 투자 대비 수익률을 따지는 경제용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이만큼 투자했는데, 그래서 얼마나 남았어?”


하는 계산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계산기를 돈에만 두드리지 않는단다.


인생에도 ROI를 따진다.


“내가 여기에 쓰는 시간과 노력만큼 행복한가?”


“이 돈을 쓰고 얻는 만족감이 충분한가?”


“내 귀한 시간을 여기에 써도 되는가?”


예를 들어 비싼 명품 가방 하나를 사는 것보다, 여행 한 번 다녀오는 것이 훨씬 행복한 사람이라면 여행을 선택한다.


남들이 다 나가는 모임이라 따라나갔는데 갈 때마다 피곤하고, 집에 돌아오면 진이 쏙 빠진다면?


“이 모임은 내 인생에서 ROI가 너무 낮아.”


하고 과감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돈은 다시 벌 수도 있지만 시간은 다시 벌 수 없으니, 어쩌면 돈보다 시간의 ROI를 따지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라이프 ROI’가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이것이 과연 내 귀한 시간과 노력을 내어줄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계산법이 결혼이나 주택 마련 같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도 들어오는 모양이다.


결혼해서 함께 살면서도 혼인신고를 바로 하지 않고, 주택 청약이나 각종 제도를 따져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시기에 혼인신고를 하려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결혼했으면 혼인신고부터 하는 것 아니야?”


그게 내 세대의 생각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조금 다르다.


집 한 채 마련하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청약 조건이며 각종 지원제도며 하나하나 따져보고,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혼인신고 시기를 늦추면서 주거·복지 등의 제도적 조건을 따지는 사례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기까지 오면 나는 솔직히 조금 혼란스럽다.


“아이고, 이제 결혼하고 아이 낳는 일에도 ROI를 따지는 세상이 된 건가?”


물론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이 우리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집값도 다르고, 취업 환경도 다르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주어진 제도 안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으려는 마음까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인생의 모든 일을 ‘얼마나 이익인가’라는 계산만으로 결정해도 괜찮을까?


결혼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당장은 손해처럼 보여도, 오래 지나고 나면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당장 몇 푼 더 얻고 조금 더 유리한 조건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내 인생 전체의 이익으로 남는 것도 아닐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큰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매 순간,

“이거 나한테 남는 장사야?”

“내가 투자한 만큼 당장 돌아와?”


이렇게 ROI만 따지며 살았다면, 과연 오랜 시간 한 가지 일을 붙들고 묵직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에는 당장 수익률이 나오지 않는 일이 참 많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그렇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도 그렇다.


때로는 손해도 보고, 헛수고도 하고, 괜히 했나 싶은 일도 생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인생을 오래 살아보니, 당시에는 손해라고 생각했던 일이 훗날 가장 큰 이익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조금 미련할 만큼 한 우물을 판 사람이 결국 전문가가 되고,

당장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던 공부가 십 년 뒤 내 삶을 바꾸기도 한다.


아무 조건 없이 베푼 친절 하나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뜻밖의 인연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라는 것은 참 이상한 투자다.


오늘 투자했다고 내일 수익률이 딱 찍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라이프 ROI’를 읽으며 오히려 반대의 질문을 해보게 된다.


진짜 인생 ROI란 무엇일까?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것,

당장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것,

몇 년 뒤에나 열매를 맺을지 모르는 일에 묵묵히 시간을 들이는 것.


어쩌면 이런 것들이야말로,

나중에 돌아보면 가장 수익률 높은 인생의 투자가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무엇을 할 때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한 가지를 더 물어보고 싶다.


“지금 당장은 손해 같아도, 이것이 내 인생을 더 좋은 방향으로 데려가지는 않을까?”


인생의 진짜 수익률은 오늘 당장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화기는 전화기처럼 생겨야 하고,

컴퓨터는 컴퓨터처럼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화기는 귀에 대고 통화하는 물건이고, 컴퓨터는 바카라상 위에 떡하니 놓여 있어야 컴퓨터였다.


그런데 요즘은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휴대폰을 펼치면 태블릿만큼 커지고, 안경에 컴퓨터 기능이 들어가고, 자동차 안은 단순히 운전하는 공간을 넘어 사무실도 되고 거실도 된다.


내가 알고 있던 물건들의 경계가 자꾸 무너진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물건의 모양이나 형태 자체가 달라지는 것, 이것을 《트렌드 코리아 2027》에서는 “폼팩터 시프트(Form Factor Shift)”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말은 참 어렵다.


폼팩터 시프트라니….


처음 들으면 무슨 우주선 이름 같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꼭 이 모양이어야 해?”


하고 물건의 생김새를 바꿔버리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물건이 등장할 때마다 처음에는 꼭 이런 생각부터 한다.


“아니, 멀쩡한 걸 굳이 저렇게까지 만들어야 하나?”


그런데 또 막상 한번 써보면 말이 달라진다.


“어머, 이거 편하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그런데 이번에 바카라을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폼팩터 시프트가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처럼 거창한 기술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아주 평범한 물건들도 슬금슬금 모습을 바꾸고 있단다.


예를 들어 여행 갈 때마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


바로 액체류다.


특히 비행기를 탈 때면 샴푸며 화장품 같은 것을 작은 통에 덜어 담고, 혹시 새지는 않을까 비닐봉지에 또 넣는다.


그런데 이제는 샴푸까지 모습을 바꿨단다.


액체 샴푸를 작은 타일처럼 생긴 고체 형태로 만든 제품이 등장한 것이다.


“세상에, 이제 머리 감는 샴푸까지 알약이 됐어?”


치약도 변신했다.


튜브를 꾹 짜서 칫솔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알약처럼 생긴 치약을 입에 넣고 씹어서 사용하는 제품도 있다.


향수도 꼭 유리병에 든 액체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으로 살짝 묻혀 바르는 고체 향수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서 또 한 번 놀랐다.


“세상에, 언제 이런 신세계가 열렸대?”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런 물건들이 무슨 미래과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이소같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살았다.


거의 집에만 있다보니,

세상이 이렇게 바뀌는 동안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이미 폼팩터 시프트에 동참하고 있었다.


바로 육수 알약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나는 오래전부터 멸치며 다시마를 일일이 우려내지 않고, 동그랗게 압축해 놓은 육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냄비에 하나 퐁당 넣으면 끝이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쓰면서


“아이고, 세상 참 편해졌다.”했는데,

바카라을 읽고 보니 이것 역시 익숙한 재료와 사용 방식을 새로운 형태로 바꾼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새로운 변화 속에서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 나도 폼팩터 시프트 정도는 하고 살았네.”


괜히 조금 위로가 된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기술이라고 해서 꼭 거대한 로봇이나 AI처럼 요란하게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샴푸 한 조각,

치약 한 알,

향수 한 통,

육수 한 알처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작은 물건의 모습을 살짝 바꾸면서 어느새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새로운 기술을 만드느냐만큼, 그 기술과 아이디어를 어떤 모습으로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집어넣느냐가 더욱 중요해지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나니 또 궁금해진다.


다음에는 또 뭐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려나?


샴푸도 바뀌고, 치약도 바뀌고, 안경도 바뀌고, 자동차도 바뀌는데….


도대체 세상은 어디까지 변하려는 걸까.


이렇게 새로운 것을 하나씩 구경하는 재미 때문에라도,

아무래도 오래 살아야겠다.


예전에는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준비부터 잔뜩 해야 했었다.


글을 쓰려면 글솜씨가 좋아야 할 것 같고,

영상을 만들려면 편집 프로그램부터 배워야 할 것 같고,

그림을 그리려면 그림 솜씨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시작하기도 전에 겁부터 먹었다.


“나는 글을 못 쓰니까….”

“나는 그림을 못 그리니까….”

“기계는 기계치라서 영 안 돼.”


그렇게 스스로 안 되는 이유부터 찾아놓고 시작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AI 시대가 되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글이 막히면 AI와 함께 다듬어보고, 그림을 못 그려도 원하는 장면을 설명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볼 수 있다.


음악도 만들고 영상도 만들어본다.


예전 같으면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일에,

평범한 사람도 일단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일단 한번 해볼래?”

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나이에 그걸 어떻게 해?” 하고 돌아서는 사람과,

“몰라도 한번 해보지 뭐!”하고 버튼부터 눌러보는 사람.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1년, 2년 지나고 나면 두 사람의 차이는 꽤 커질 것이다.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 시작하는 시대에서,

일단 해보고, 틀리면 고치고, 또 해보고, 그러면서 배우는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해봄경제”라는 말이 참 마음에 든다.


고 정주영 회장님이 즐겨 쓰시던 말이 생각난다.


“이봐, 해봤어?”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했다.


해보고 안 되는 것과,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도 얼마 전 아주 큰 ‘해봄’을 하나 했다.


칠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내 생애 처음으로 그림바카라을 만들었다.


그것도 한 권도 아니고, 무려 세 권이나!


처음에는 겁이 났다.


“내가 과연 바카라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림도 제대로 못 그리는 내가?”

“남들이 보고 웃으면 어떡하지?”


별별 걱정이 다 들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 여기서 멈췄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래, 못 만들면 어때. 일단 해보자.”


AI의 도움도 받고, 모르는 것은 하나씩 배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만들었다.


고치고 또 고쳤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만들다 보니 어느새 한 권의 바카라이 되었고, 그것이 다시 세 권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종이바카라이 되어 내 손에 들어온 날.

그 기분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PDF 화면으로 볼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바카라장을 한 장씩 넘겨보고, 표지를 쓰다듬어보고,

“세상에, 내가 정말 이걸 만들었어?” 싶어서 또 들여다봤다.


너무 신기하고 자랑스러워서 바카라을 가슴에 꼭 품어보기도 했다.


그 순간 알았다.


해보지 않았으면 절대로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이었다.


생각해보면 ‘해봄경제’의 진짜 매력은 성공에만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일단 해보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본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가 남는다.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음번의 나를 조금 덜 두렵게 만든다.


한 번 해본 사람은 두 번째가 덜 무섭고, 두 번 해본 사람은 세 번째에는 제법 능숙해진다.


그래서 나이와 상관없이 가장 강한 사람은 어쩌면 이런 사람이 아닐까.


뭐든 한번 해보는 사람.


“내 나이에 뭘….”

그 말 대신,


“내 나이가 어때서? 한번 해보지 뭐!”

하고 시작하는 사람 말이다.


나는 이번에 그림바카라 세 권을 만들면서 제대로 배웠다.


해봐야 내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겁부터 먹지 않으려고 한다.


잘하면 좋고,

못하면 배우면 되고,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해보지 않으면 ‘내가 해냈다!’는 그 짜릿한 순간도 절대로 만날 수 없으니까…


요즘은 어딜 가나 사진부터 찍는다.


예쁜 카페에 가도 찰칵,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또 찰칵.


심지어 맛집을 고를 때도 음식의 ‘맛’만큼이나 사진이 얼마나 예쁘게 나오느냐가 중요해진 세상이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젓가락부터 드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부터 드는 사람들이 많다.


《트렌드 코리아 2027》에는 “저장인류”까지 등장했다는데, 나는 우리 집 양반 때문에 저장인류 대열에 끼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막상 내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나도 만만치 않다.


먹었던 음식, 예쁜 꽃, 여행 사진은 기본이다.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찍어둔 바카라의 한 페이지,

‘이거 괜찮네’ 하고 캡처한 물건,

좋은 문장,

인터넷 화면,

블로그에 쓸까 싶어 저장한 자료까지….


사진첩을 내리다 보면 끝이 없다.


가끔은 내가 찍어놓고도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데 내가 이걸 왜 찍었지?”


분명 그 순간에는 아주 중요해서 저장했을 텐데, 시간이 지나면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고 무엇에 쓰려고 저장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머릿속에 기억했다.


전화번호도 외우고, 약속 날짜도 기억하고, 좋은 문장은 수첩에 옮겨 적었다.


지금은 다르다.


굳이 외우지 않는다.


사진 찍고, 캡처하고, 저장 버튼을 누른다.


“일단 저장해놓자. 나중에 보면 되지.”


문제는 그 ‘나중’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장은 열심히 하는데 다시 보는 일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과 아이패드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사진과 자료가 쌓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저장했느냐가 아니라, 필요할 때 그것을 찾아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찾지 못하는 저장은 어쩌면 집 안 창고에 물건을 잔뜩 쌓아놓고,

“언젠가는 쓰겠지.”하며 문을 닫아버리는 것과 비슷하다.


디지털이라고 다를 게 없다.


디지털 세상에도 잡동사니는 쌓인다.


내 주변에도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무조건 저장용량이 큰 것을 찾는 사람이 있다.


“나는 용량 큰 걸 사야 돼. 맨날 부족해.”


그렇다고 휴대폰으로 특별히 거창한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유는 하나다.


매 순간 사진을 찍고, 한 번 저장한 것은 거의 지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몇 년 전 사진부터, 왜 찍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진까지 차곡차곡 쌓인다.


이제 나는, 필요 없는 사진이나 자료는 생각날 때마다 지우려고 노력한다.


비슷한 사진이 열 장이면 잘 나온 것 한두 장만 남기고, 다시 볼 것 같지 않은 캡처 화면도 지운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저장공간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지낸다.


《트렌드 코리아 2027》의 “저장인류”를 읽으면서 나는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장하는 능력만큼이나 앞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버리는 능력 아닐까.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정말 필요한 것을 남기고,

필요 없는 것은 그때그때 버리고,

남겨둔 것은 필요할 때 찾아서 제대로 사용하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진짜 똑똑한 ‘저장인류’가 되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컴퓨터에게 일을 시키려면 명령어를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이제는 그냥 말하면 된다.


“이 글 좀 부드럽게 고쳐줘.”

“여행 일정 만들어줘.”

“이 사진 분위기 좀 예쁘게 바꿔줘.”


사람이 원하는 느낌과 방향을 말하면, AI가 그것을 알아듣고 일을 해준다.


그래서 중요한 능력도 달라진다.


내가 모든 기술을 직접 다룰 줄 아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AI에게 잘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결국 AI 시대에도 주인은 사람이다.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소용없다.


앞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은 혼자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손발을 잘 맞추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식당을 하나 열었다고 생각해보란다.


첫 번째 식당은 매일 새로운 손님이 100명씩 찾아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 왔던 손님은 다시 오지 않는다.


두 번째 식당은 처음에는 손님이 많지 않다.

그런데 한번 왔던 사람이 또 오고, 친구를 데리고 오고, 나중에는 주인과 눈만 마주쳐도 “오늘도 그거 주세요.”할 정도로 단골이 된다.


어느 식당이 오래갈까?

아마 대부분 두 번째를 꼽을 것이다.


새 손님을 끊임없이 데려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 찾아온 사람이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힘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리텐션(Retention)”, 쉽게 말하면 “떠나지 않게 붙잡는 힘”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7》에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리:텐션 전략”이라는 키워드를 이야기한다.


그동안 기업들은 새로운 고객을 데려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신규 가입하면 할인!”

“처음 오신 고객에게 쿠폰!”


그런 광고를 볼 때마다 기존 고객 입장에서는 가끔 억울했다.


“아니, 새로 온 사람만 고객이고 나는 뭐야?”


십 년을 써도 별것 없는데, 옆집 통신사로 옮긴다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이것저것 혜택을 준다고 한다.


그럴 때면 오래 이용한 사람이 오히려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나도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돌아오자마자 KT를 신청했고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다.


원래 이것저것 바꾸는 것을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통신사도 한번 정하면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0년 가까운 장기 고객이 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10년이나 있었는데 무슨 특별한 대접을 받았더라?”

딱히 떠오르는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리:텐션 전략”을 읽으면서 괜히 귀가 솔깃해진다.


앞으로 기업들이 새로운 고객을 데려오는 것만큼 기존 고객이 왜 떠나는지, 어떻게 해야 계속 머물게 할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오래 이용한 고객을 대하는 방식도 지금과는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변화다.


“그래, 이제야 오래 머물고 있었던 보람이 좀 생기려나?”


물론 장기 고객이라고 무조건 큰 혜택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의 생각이

“새로운 사람을 어떻게 데려올까?”에서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떠나지 않도록 할까?”

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은 재미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기업과 고객의 관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하지만 10년, 20년, 30년 동안 한 사람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훨씬 어렵다.


친구도 그렇고, 이웃도 그렇고, 부부도 그렇다.


새로운 인연을 백 명 만드는 것보다, 이미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에게 전화 한 통 더 하고,


“밥은 먹었어?”

한마디 건네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새로운 것을 얻는 것보다, 이미 내 곁에 있는 것을 잃지 않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씩 알게 된다.


기업도 이제 그것을 깨닫기 시작한 모양이다.


새 고객만 찾아다니지 말고,

오랫동안 곁을 지켜준 고객도 한번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리:텐션 전략’을 아주 쉽게 이렇게 기억하기로 했다.


“있을 때 잘해~~.”


사람도 그렇고, 고객도 그렇다.


떠난 다음 붙잡으려면 이미 늦을 수 있다.


AI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음악까지 만드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도 사람보다 빠르고, 때로는 너무나 매끈하게 잘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AI가 완벽해질수록 오히려 사람의 흔적이 더 귀해진다는 것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7》에서는 이것을 ‘휴먼엣지’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조금 서툴고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 냄새가 나는 ‘결점의 엣지’,


결과보다 그 사람이 애쓰고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중요한 ‘과정의 엣지’,


기계로 똑같이 찍어낸 것보다, 직접 만들고 다듬은 흔적에서 느껴지는 ‘손맛의 엣지’가 있다.


생각해보니 내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AI에게 글을 몽땅 맡기면 훨씬 매끄러운 글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먼저 서툴게라도 내 이야기를 쓰고, AI에게 다듬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래야 그 글 속에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내 생각, 내 말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 AI 시대에 사람이 AI보다 더 완벽해지려고 애쓸 필요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이건 사람이 만들었구나.”


그렇게 느끼게 하는 나만의 흔적.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휴먼엣지’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다.


AI 시대가 되면 인간의 능력이 덜 중요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다.


AI가 글을 잘 쓸수록 내 이야기가 중요해지고,

AI가 그림을 잘 그릴수록 내 취향이 중요해지고,

AI가 답을 빨리 찾아줄수록 그 답이 맞는지 판단하는 내 생각이 중요해진다.


결국 AI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AI와 경쟁해서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잘 이용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AI를 밀어내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내 인생을 몽땅 맡기지도 않을 것이다.


필요할 때는 요술방망이처럼 신나게 사용하되,

마지막에는 꼭 내가 물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아마 그것이 AI 시대에도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나만의 휴먼엣지일 것이다.


사람이 중년쯤 되면 몸이 슬슬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단다.


잠 자는 것도 예전 같지 않고, 갑자기 덥기도 하고, 별일 아닌데 마음이 울컥하기도 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7》에서는 인생 중간쯤에 나타나는 이런 변화에 주목하는 것을 “하프시그널”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몸이 옆구리를 슬쩍 찌르는 것이다.


‘나는 하프시그널이 언제 왔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우리 때는 중년이라는 것을 느낄 틈도 없이 살았던 것 같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너무도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몸이 “나 많이 힘들어~~.”하고 신호를 보냈어도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알았어. 그런데 지금 바빠. 나중에 얘기해.”


그런데 그 ‘나중’이 몇십 년이나 지나버렸다.


중년을 훌쩍 건너 노년이 되고 나니 이제야 몸이 하는 말이 들린다.


그것도 한꺼번에 아주 잘 들린다.


무릎이 한마디 하고,

허리가 한마디 하고,

눈도 가만있지 않는다.


한 군데가 조용하다 싶으면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온다.


이 정도면 나에게는 ‘하프시그널’이 아니라, ‘엔딩시그널’이 아닌가 싶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엔딩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다.


아직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벌써 끝이라니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제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다르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제 끝날 때가 됐어.”라는 신호가 아니라, 남은 시간도 재미있게 살려면 이제 나를 좀 더 챙기자고…


젊었을 때는 아파도 참고, 피곤해도 몸을 질질 끌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몸과 싸우지 않으려고 한다.


피곤하면 쉬고,

아프면 살펴보고,

못하는 것은 억지로 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먹으려고 한다.


하프면 어떻고, 엔딩이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도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잘 듣고, 나 자신을 조금 더 챙기고 사랑하는 것일 테다.


그래서 오늘도 몸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디 불편한 데 없니?”


아무 대답이 없다면?

그날은 정말 운 좋은 날이다.


똑같은 돈을 가지고도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이 있다.


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멋있고, 유명한 식당이 아니어도 숨어 있는 좋은 집을 찾아낸다.


바카라 한 권을 골라도 지금 자기에게 꼭 필요한 바카라을 집어 든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고 말한다.


“너, 안목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칭찬 중 하나가 바로 “안목 있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제 안목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하나의 자본이 되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많이 아는 사람이 유리했다.


하지만 AI에게 물어보면, 순식간에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그중에서 무엇을 고르느냐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지,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그것을 판단하는 “보는 눈”이 중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트렌드 코리아 2027》에서는 이것을 “안목자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안목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고, 또 많이 실패하고, 그러면서 때로는 후회하면서 조금씩 생겨나간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이 드는 것도 꼭 손해만은 아닌 것같다.


젊은 사람에게는 없는 것이,

나이든 사람한테는 하나쯤은 있으니까…


바로 오랜 세월 보고 겪으면서 만들어진 ‘보는 눈‘이다.


나 역시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그런 내가 칠십을 훌쩍 넘어서도 AI라는 낯선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이것저것 배우며 흉내라도 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조금은 안목이 있었던 것 아닐까?”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건 나한테 쓸모가 있겠다.”하고 알아보는 눈 말이다.


그리고 안목을 키우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기록하는 습관이란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적어두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 메모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왜 좋은지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기록이 결국 내 취향이 되고, 내 생각이 되고, 나만의 안목이 된다.


AI가 무엇이든 찾아주는 시대.


어쩌면 앞으로 더 필요한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잘 골라낼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보는 눈’은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더 좋아질 수 있다.



결국 2027년은 ‘사람’으로 돌아가는 시대인 것 같다.


2027년 트렌드 열 가지를 하나씩 읽다 보니 묘하게 한곳으로 모인다.


AI는 점점 똑똑해지고 세상은 점점 빨라지지만, 정작 중요해지는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것, 일단 한번 해보는 것,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 그리고 나만의 안목을 갖는 것이다.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오히려 사람에게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진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모든 유행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다만 겁먹고 멈춰 있지만은 말자.


모르면 배우고, 궁금하면 물어보고, 재미있어 보이면 한번 해보자.


나이 일흔이 넘었다고 세상의 변화를 구경만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나도 한번 해보지 뭐!”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멋진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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