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니 주의보 / 사람 냄새, 밥 냄새, 정이 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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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업글할매


정지아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가슴이 먼저 두근거렸다.


“드디어 나왔구나!”


냉큼 주문부터 했다.

바카라 배송을 이렇게 목 빠지게 기다려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전자바카라이면 당장 읽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꾹 참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나만큼이나 좋아했던, 우리 집 양반과 같이 읽고 싶어서 종이바카라을 주문했다.


사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은 뒤, 나는 완전히 정지아 작가님의 찐팬이 됐다.


오죽하면, 내 행복한 노후 버킷리스트에 이런 것까지 적어놓았을까…


“정지아 작가님이 좋아하신다는 위스키 한 병 들고 구례로 찾아가기!”


아직 실행은 못 했지만 버킷리스트에서 지울 생각은 없다.


그러니 《찌니주의보》가 반가울 수밖에.


‘찌니 주의보’가 아니라, 마음속에는 이미 ‘정지아 주의보’가 발령됐다.



표지를 보는 순간 피식 웃음부터 났다.


커다란 빨간 하트를 온몸에 두른 두 사람,

당근은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이상한 그릇까지 둥둥 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제목도 재미있다.


《찌니주의보》


주의보라니, 도대체 ‘찌니’가 나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그런데 표지 아래 문장이 슬쩍 힌트를 준다.


“이번에는 더 웃기고, 더 따뜻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정지아 작가가 이번에는 조금 이상하고, 조금 다르고, 그래서 더 사람 냄새 나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빨리 ‘찌니주의보’가 발령된 수평마을로 들어가 봐야겠다.


정지아 작가는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웃기다가 울리는 작가’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만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정지아 작가의 글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사투리, 웃음과 눈물이 살아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깔깔 웃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이 찡해진다.


이번 《찌니주의보》에서도 바로 그 정지아표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다시 만난다.


이렇게 재미있는 목차가 또 있을까.


누구나 비밀은 있고,

누구나 조금씩은 나쁘고,

누구나 이상한 구석도 있고,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산단다.


읽다 보니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한 방 더 남아 있다.


‘누구나 모르고 산다.’


맞다.

사람은 자기가 제일 잘 아는 것처럼 살지만, 사실 모르는 것투성이다.


목차만 읽었는데 벌써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역시 정지아 작자님이다.


수평마을에 ‘찌니주의보’가 발령됐다


수평마을의 평균 연령은 무려 78세였다.


그런데 서울에서 성진과 혜진이 이사 오면서, 평균 연령이 72세로 무려 여섯 살이나 뚝 떨어졌다.


이 정도면 두 사람이 수평마을의 ‘젊음 회춘 프로젝트’에 엄청난 공헌을 한 셈이다.


마을에서 표창장이라도 줘야 할 판이다.


그런데 어디 사람 사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던가.


성진이, 혜진이 이름도 자꾸 헷갈리던 할머니들은, 두 사람을 아예 편하게 ‘찌니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찌니들의 정체(?)가 알려지면서 조용하던 마을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모였다 하면 찌니들 이야기다.


“찌니들이 말이여, 레지라 레지.”


그런데 이 말을 들은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새 레지가 왔으면 나가 모를 리가 없제!”


나도 처음에는 ‘레지’라는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레지?

그게 뭐였더라?


한참 생각하다가 ‘다방 레지’가 떠오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이고, 이 말을 도대체 얼마 만에 들어보는 건가.


너무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구례에서 다방 구경 못 한 지도 십 년이 넘었다는 할머니들에게, ‘레지’라 하면 당연히 다방 레지였던 것이다.


그러니 뒤늦게 설명을 듣고는,


“아따! 고런 레지가 아니란 말이네!”


그러고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고런 레지가 아니면 요런 레지도 있당가?”


여기서 나는 완전히 빵 터졌다.


‘레즈비언’보다 ‘다방 레지’가 먼저 떠오르는 평균 연령 72세의 수평마을.


짧은 대화 몇 마디 속에 세월도 보이고, 시골마을 풍경도 보이고, 할머니들의 천진한 표정까지 눈앞에 그려진다.


이래서 정지아 작가님의 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능청스럽게 웃음으로 풀어놓는다.


정지아 작가님, 정말이지 이번에도 제대로 웃기신다.


마을 할매들은 입만 열면 찌니들 흉을 본다.


“아이고, 저런 요상한 것들은 마을에서 내쫓아야 혀~~.”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렇게 내쫓아야 한다던 찌니들이 며칠 보이지 않으면 슬슬 걱정이 시작된다.


“근디… 밥은 묵고 사는가?”


그리고 어느 날 찌니네 문 앞에는 호박전 한 접시가 놓인다.

그다음 날에는 나물이 놓이고, 또 어느 날에는 김치까지 슬그머니 등장한다.


입으로는 내쫓고, 손으로는 반찬을 갖다 나른다.


요즘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절’이라는 말 한마디로, 관계를 끊어버리기도 하는 세상 아닌가.


이 장면을 읽으니 정지아 작가님이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구례에 내려가 살기 시작했을 때, 동네 할머니들의 전화 때문에 처음 2년은 꽤 힘들었다고 한다.


“밥 먹었능가?”


“네.”


그걸로 끝이면 좋으련만 곧바로 다음 질문이 날아온다.


“뭐랑 먹었능가?”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작가님은 속으로 생각했단다.


‘내가 밥을 먹든 뭘 먹든, 그게 무슨 상관이람!’


그런데 몇 년을 함께 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궁금했던 것은 오늘의 메뉴가 아니었다.


‘너 오늘도 잘 살아 있느냐’는 안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수평마을 할매들은 찌니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밥은 챙긴다.


미워도 호박전은 부치고, 흉을 봐도 김치는 담아 갖다 놓는다.


아무리 미워도 밥은 먹여가며 미워한다.


설령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일단 밥은 먹여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어쩌면,

문 앞에 말없이 놓고 간 호박전 한 접시와 김치 한 그릇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우리가 잊고 살았던 밥의 힘이고, 정이고, 결국 사랑이다.


찌니들은 정체가 알려지자, 겁을 잔뜩 먹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가까운 이웃이 한마디 툭 던진다.


“살다보믄 호랭이도 만나고, 태풍도 만나는 법이네.

호랭이는 때려잡고, 태풍은 피해야제.”


읽다가 피식 웃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에는 오래 남는다.


그래, 인생이 어디 좋은 일만 골라서 오던가.


때로는 맞서야 할 호랑이도 만나고,

아무리 용을 써도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태풍도 만난다.


그럴 땐 싸울 것은 싸우고, 피할 것은 슬쩍 피해 가면 된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가면,

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 먹고, 웃고,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피해 가면서도

끝내 다시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


《찌니주의보》를 읽다 보니 문득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중요한 것은 그 여인에게 무슨 죄가 있었느냐가 아니라,

나는 과연 남에게 돌을 던질 만큼 흠 없이 살아왔느냐는 질문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아니다.


나는 내 앞가림하기에도 바빴다.


나 역시 실수했고, 오해했고, 내 잣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수평마을 할매들이 더 정겹다.


“고것들이 요상혀~~” 하면서도, 호박전을 부쳐 문 앞에 놓고 간다.


이해하지 못해도 밥은 먹이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프면 들여다본다.


어쩌면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함부로 돌을 던지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밥 한 그릇 놓아주는 것.


《찌니주의보》를 읽으며 나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제자가, 정지아 작가님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단다.


작가님의 대답이 참 오래 마음에 남는다.


“죽을 때 싫은 게 하나도 없으면 좋겠어.”


나이가 들수록 싫어하는 것을 하나씩 줄여가는 것.


사람도, 세상도, 늙어가는 나 자신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작가님은 말씀하신다.


자신이 그나마 덜 부끄럽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구례의 노인들 덕분이라고…


일 년 농사를 망쳐도 소주 한잔에 털어내고, 낯선 사람도 결국 품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넉넉한 마음을 보며 배웠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멋지게 늙는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가지는 일이 아니라,

미워할 것을 조금씩 줄여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삶의 마지막쯤에는

“그래도 참 좋았다. 사람도, 세상도, 나이 든 나도…”

그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찌니주의보》를 끝까지 읽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아니, 벌써 끝났다고?

아직 더 읽고 싶은데…


섭섭한 마음에 괜히 지나간 장을 다시 펼쳐본다.


혹시 2부가 나오려나, 혼자 기대도 해본다.


바카라을 덮고 나니 한 가지 생각이 오래 남는다.


사람은 오래 산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다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나와 다른 생각도 있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삶도 있다.


수평마을 사람들도 그랬다.


서로 흉보고 수군거리면서도 누가 굶을까 걱정하고, 아프면 들여다보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간다.


이 바카라을 읽는 내내 내가 참 좋아하는 말 하나를 떠올렸다.


“밥 한 번 먹자~~”


나는 밥하는 것도 좋아하고, 남에게 밥 사주는 것도 좋아한다.


따뜻한 밥 한 끼가 사람 마음을 얼마나 가까이 붙여놓는지, 확실하게 믿으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도 조심스러워졌다.


좋아서 밥 한 끼 사겠다는 마음조차 혹시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눈치를 보게 된다.


그래서 서글프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찌니주의보》 속 수평마을이 더 그립다.


말은 좀 거칠어도 호박전 한 접시 문 앞에 슬쩍 놓고 가고,

미워하면서도 “밥은 묵었능가?”부터 묻는 사람들.


나는 그런 오지랖이 싫지 않다.

조금 귀찮아도 그런 정이 있는 세상이 좋다.


그래서 바카라을 덮으며 엉뚱한 꿈 하나가 또 생겼다.


아, 구례에서 살고 싶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도 듣고 싶고,

조금 피곤할 만큼 참견해주는 따뜻한 이웃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지아 작가님이 살아가는 그 동네 어디쯤에서, 나도 슬쩍 끼어 살고 싶다.


누가 문을 두드리며 물을 것이다.


“밥 묵었능가?”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할 것 같다.


“아직이요. 같이 묵읍시다.”


어쩌면 내가 《찌니주의보》를 덮고도, 자꾸 수평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냄새 나고, 밥 냄새 나고,

조금은 귀찮아도 정 때문에 다시 문을 열게 되는 세상.


나는 아직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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