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매일 커피 마셨던 친구를 방학하고 나서 3주 만에 만났다. 어쩐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어색한 마음이었다. 친구는 얼굴이 엄청 좋아졌다. 심지어 밝고 예뻐졌다. 일이 그만큼 자기 적성에 안 맞았던 것이다.
나는 백수생활에 완전히 적응되었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부지런 떨었는데 이제는 운동도 안 가고, 그래서 낮에 샤워도 안 한다. 대신 건강검진받고, 치과 스케일링도 받고, 교정치과도 다녀왔다. 시간 있을 때 1700쪽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다. 생각보다 구성이 세련되고 재미있다. 톨스토이가 어떻게 이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아는지 신기하다. 그동안 친구는 집에 틀어박혀서 영화 보고, 글 쓰고, 만화 그렸다고 한다. 발가락 다친 게 안 나았고, 목이 쉬었다고 한다.
친구하고 올해까지만 같이 일하고 내년에는 실업급여받고 다른 일을 구해보려고 한다. 친구하고 같이 일하다가 혼자 일을 하려고 하니 갑자기 마음이 불안하다. 앞으로 계속 급식알바를 할 것도 아닌데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적을 때 일을 바꾸는 게 좋은 것 같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 이제 아들도 많이 컸고, 현실감각이 느껴진다. 내가 그동안 무슨 만화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다. 친구하고 같이 일한다는 게 그런 느낌이었다. 힘들었지만 나는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친구가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